유물론 유물론과 세속성에 대한 성경의 위치는 무엇인가?

열 번째 질문 

하나님의 성회는 창설 초기부터 일상생활의 필요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우리 주님께 사랑의 표현으로 헌신적 헌금을 드리고, 또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것 보다는 영적 가치에 대한 성경의 주제들에 대해서 강조해왔습니다. 우리들을 세상으로 이끌며, 영 원한 진리와 가치로부터 멀리하도록 만드는 것은 그 무엇이든지 모두 세속적인 것입니다. 물질주의, 혹은 세속적인 소유물에 마음을 두는 것은 인간이 받는 가장 강한 유혹 중의 한 가지입니다.

성경에서는 부(富) 그 자체를 견책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그것은 하나의 선물과 축복으로 인식되며, 특별히 그것을 구하지 않을 때 더욱 그렇습니다 (열왕기상 3:13). 그러 나 성경에는 부의 위험과 그것의 적절한 사용에 대한 여러 말씀이 있습니다.
부는 부 그 자체를 위해서 축적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부정 또는 탄압을 통해서 얻어져서는 안 됩니다. 부는 흔히 탐욕으로 연결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우 리들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단지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우리들이 그것을 가 난한 사람이나 연약한 사람, 그리고 압제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을 때 우리는 죄 를 짓는 것입니다 (에스겔 22:29). 관대함은 기독교인이 부를 사용하는 표시입니다.
몇몇 기독교인들은 부유함을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기본적인 음식, 의 복, 그리고 거주지를 위하여 필요한 것보다 더 가지고 있을 때, 우리들은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부유합니다. 부와 물질에 대한 유혹은 부자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부자들이 가지는 욕심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들이 가지는 욕심은 유물론에 대한 징후 입니다.
세속적 사회는 항상 부와 물질의 소유에 높은 값어치를 두어왔습니다 (누가복음 16:9,11에 기록된 불의의 재물). 이러한 것을 강조하는 것이 교회의 성격을 나타내야 하는 영적인 우선권을 착색하고 침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우리의 훌륭한 본보기가 되시는 예수님은 결코 부나 소유물을 축적하지 않고, 겸손하고 낮은 신분의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장래에 대하여 염려하지 말 것을 가르쳤는 데, 왜냐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해 마련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마태복 음 6:25-34).
신약 성경이 부자에 대하여 강력한 권고와 경고의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들은 물질적 빈곤함이 고유한 가치가 있다고 추정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그렇게 가 르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그의 사도들은 고통을 완화시키는 그들의 노력 가운데 기독교 인의 노력을 칭찬했습니다. 어떤 초대 기독교인들은 부유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얼마나 부유한 것이 충분할까요? 유물론은 “조금만 더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요한 웨슬리의 예는 모든 신자들에게 도전이 됩니다. 그의 중년에 요한 웨슬리는 그가 생활을 하기 위해서 매년 얼 마가 필요한가를 계산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생활비를 거의 똑같은 수준으로 유 지하겠다고 서약했으며, 후에 그의 많아진 수입은 주님의 일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하나님 의 성회는 모든 회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모든 것에 대하여 좋은 청지기가 될 것을 격려합니다.

관심사:

현대 사회로부터 받는 심한 압력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그들의 성경적 가치와 삶의 우선순위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압력은 물 질적인 것들에 대한 과도한 평가, 성공의 상징으로서 물질의 축적, 상류상회로 진출하려고 하는 노력(pursuit of upward social mobility), 그리고 당장 만족을 취해야만 하는 것 (fixation on immediate gratification)을 포함합니다. 공생애 동안에 이 땅위에서 가지셨 던 예수님의 삶은 오늘날의 여러 문화가 보여주는 삶에 대한 자세와는 매우 대조적이었습 42 니다. 마가복음 8:31-38의 “복음의 역설”은 생명이 고난과 죽음으로부터 나온다는 원리 에 기초하여 사는 제자직분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위하여 죽으시기 위해 오셨습 니다. 왕관이 있기 전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희생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의 한 부분이어 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성회의 위치를 보여주는 선언문 “신자와 긍정적(적극적)인 고백”은 성경적 가르침을 어떤 은사주의 모임에서 인기 있는 유물론적 “믿음 가르치기 (faith teaching)”와 구분하는 명확한 선언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신자들을 물질과 재정적인 성공으로 축복 하셔서 그들이 지상명령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자원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 나 물질적 성공은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부를 내려줌으로 말미암아 그에 대 한 것을 하나님이 승인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별로 소유물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을 부와 유물론에 관 하여 주의를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물질적 소유물을 유 연하게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이 그에게 믿고 맡기신 것들에 대해 좋은 청지기가 되는 부 한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반면에, 가지고 있지 않은 물질적인 것들을 탐내고 움켜 쥐려 하는 것은 죄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물질적인 부를 가지고 있는지 혹은 갖고 있지 않은지가 아니라, 참된 경건의 삶을 이끄는 것은 무엇이 그 사람이 삶에서 우선순위냐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17-19).

* 위에 기술한 선언은 “신자와 긍정적인 고백”에 기록되어 있으며,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이해에 근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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