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끼오~!” 담장 위에 냉큼 올라앉은 수탉이 목청 돋워 새벽 미명을 알리는 울음소리를 신호로, “구구구~” 부지런한 암탉도 어느새 일어나 그 품속에 있는 병아리들의 먹이를 찾아 나선다. 부리로 짚더미를 헤치기도 하고 언 땅을 발톱이 닳도록 열심히 파헤치기도 한다. 수탉에게 질세라, 사립문 틈으로 목을 쑥 빼고 밖을 내다보던 누렁이가 아직은 이른 시간, 호젓한 시골 길, 지나가는 이 하나 없는데, 저 멀리 사라져가는 달그림자를 좇는 것인지, 희부옇게 밝아오는 하늘을 향해 “컹컹!” 요란하게 짖어댄다. 자신이 주인집을 지키는 지키미임을 과시하는 충성스러운 표현일 것이다.

부엌에서는 어머니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끓이는 냉잇국 냄새가 구수하게 집안을 감싸 흐르고, 부지런한 아버지는 손수 만드신 싸릿대 비로 “사그락사그락” 밤새 떨어져 내린 오동잎을 끌어모으기도 하고 “서걱서걱” 긴 작두로 소여물 써는 소리가 꿈결에서 들리듯 정겹다. 어른이 된 후, 각박한 세상을 힘들게 헤쳐가는 동안에도 평화롭던 고향 집은 필자에게 지속적으로 정서적 안정을 제공하는 요람처가 되고, 질서정연한 자연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메마른 심령을 풍요롭게 해준다.

그렇다. 창조주가 맡겨주신 사명을 역행하거나 거스르는 일 없이 순복하는 자연, 질서 정연한 세상은 언제 어디서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우리(여성들)도 모든 분야에서 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말하면, 그 대답은 “Yes, 얼마든지 될 수 있다.” 이다. 능력만 있다면 여성이라고 해서 지도자가 되지말란 법이 없다. 성경에도 수많은 여인이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하기도 하고 여선지 ‘드보라’는 정치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최고 지도자 자리라고 할 수 있는 여성 사사였다. (당시 이스라엘에 왕이 없던 때라, 사사가 치리했으니, 그때 사사는 현대 대통령과 같은 위치임(사사기 4:4절 참조)) 그리고 그녀는 그 역할을 훌륭하게 잘 감당해 나왔음을 성경이 증명해 주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모두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만물을 다스리고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어떤 분야에서건, 그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두뇌와 자질, 그리고 지도력을 가졌다면 여자라고 해서 한 단체의 지도자가 되지말란 법은 없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오랫동안 유교사상에 찌든 문화는 “남존여비”라는 무서운 이념을 체계화시켰고, 때문에 수많은 여인이 어두운 곳에서 눈물과 한숨으로 얼룩져 한 맺힌 삶을 살아나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국가이기에 그 수치의 역사를 바로 잡는 의미에서도 여자 대통령을 선출한 것은 잘된 일이라고 본다.(필자는 정치를 좋아하지 않기에, 누가 더 좋은가 나쁜가에 관한 matter가 아님을 알아주기 바란다.)

이런 관점에서, 여자 대통령이 다른 나라가 아닌, 대한민국, 우리나라에서 탄생한 것은 글자 그대로, 획기적인 일이요,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한 많은 여성들에게 능력만 있으면 무엇이건 할 수 있다고 하는 소망으로 미래를 열어가는 견인차 구실이 될 것이란 점에서 그 시사하는 바 크다 하겠다.

그러나 그 책임 사역을 제대로 감당해 나가려면 피나는 노력과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여인이 한 나라의 운명을 걸머지고 나간다는 것은 결코 만만하지도, 녹록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나라라는 특성이 그렇고,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남성분들 대다수는 아직도 여성 리더에게 그리 우호적이질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가 자못 크다. 정치와는 상관 없이, 필자도 한 사람의 여인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ㅠㅠ

그렇다면, 신약시대, 교회 안에서 여성의 사명은 무엇인가?
 
여성은, 교회 안에서 치리(주관자)자의 사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도우는(helper)사람, 조력자(partner)조용히 배우는 자로서 사명이 주어졌다. 목회 서신서(디모데 전 후)에서는 교회와 가정에서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는 것(치리권)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여성)로서는 상당히 억울(?)한 느낌이긴 하지만, 성경은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고 선언한다(고전 11:3; 엡 5:23). 성경은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를 사람의 머리와 몸으로 비유하고,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도 사람의 머리와 몸으로 비유하였다(엡 1:22, 23; 4:15; 5:23; 골 1:18). 머리는 온 몸과 지체들을 주관하듯,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주관하고 다스리듯, 남자가 여자를 주관하고 사랑하는 것이 성경적 원리다. 남자를 여자의 머리로, 여자를 남자의 몸으로 삼으신 제도와 위계질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때부터 설정하신 원리며 제도로서 이것을 지키는 것이 바로 창조 질서를 지키는 것이다. 세상적, 유물론적, 정치적 이슈와는 다른 그 무엇이 하나님의 교회, 그리고 천국의 작은 모형인 가정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께서 지시하신 것이다!!!

“여자의 남자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가정에서 아내가 남편을, 교회에서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남자”(아넬, ; an adult male, husband)는 남자 어른 또는 남편을 뜻한다. “주관하는 것”(아우덴테인, ; to exercise authority; 권위를 행사하다) 이 단어는 권위를 행사하다(아우덴테오, ; to exercise authority or to domineer over, 위에 권위를 가지다 또는 지배하다)의 현재·부정·능동이다. 현재 부정사는 동사에서 나온 명사로서 행동의 계속이나 반복개념이 있다.

“허락지 않는다”(우크 에피트레포, ; do not permit;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가르치는 것과 연결되어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는 일, 남자 위에서 권위를 행하는 일을 계속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는 것은 성경이 허락하지 않는다.)

주관하는 자리(치리권)는 교회에서는 감독(장로, 목사)의 임무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히 13:17)고 하였다. 여기서 다스리며 권면하는 자들과 인도하는 자들은 동일한 직분을 맡은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가리킨다(딤전 3:5; 5:17).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여자가 남자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한다는 말씀은 여성이 목사 안수 받아 총 책임 지도(주관(leader))자가 되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딤전 2: 12-15절 참조) 이 말씀이 주는 진정한 의미는 여자는 교회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란 것이거나, 성경공부도 가르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주관하는 자리 즉, 교회에서 총책임 리더(Leader)격인 목사 안수를 받아서 남자를 주관하는 자리까지는 탐하지 마라...그런 뜻이다.

성경에서 분명히 이브(여자)는 아담(남자)의 갈비뼈를 취해서 만드셨다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창 2: 23)' 교회나 가정에서 최고의 권위는 하나님에 의해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대리로서 여성에게로서가 아니라 남성에게 그 사명이 주어진 것은 보다 나은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각자에게 맡겨주신 것이며 누가 더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위계 질서 문제인 것이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성경말씀을 가감하지 마라

얼마 전 올라온 아멘넷 기사엘 보면, "아담을 남자로 보면 큰일 난다." 라고 하는 대목이 있다. 아담이 인류를 대표하기에 인류로 보아야 한다는 뜻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이라면 이해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담이 인류를 대표하는 중성이 아니라, 인류를 대표하는 ‘남성(Man)이 틀림없는데, 어찌해서 이런 말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인지, 참으로 의아해진다. 진리를 거스르려고 하면 다른 이가 아닌 그 자신이 먼저 고통당한다. 창조 질서를 무너뜨리고서야 어찌 평안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물론, 우리나라는 과거 '남존여비'사상으로 인해서 여성들이 압박을 많이 받은 나라이긴 하다. 그래서 많은 여인의 가슴에 한이란 것이 있다고 한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인생의 잣대, 신앙인의 가는 길에 이정표가 되는 성경 말씀마저 변개하는 것은 옳지가 않다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남성분들, 특히, 기독교 남성분들이 회개해야 한다. 교회에서, 가정에서 그리스도가 그 교회를 사랑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준 것처럼 헌신과 사랑을 쏟아붓지는 않으면서 여인들에게만 순종과 복종을 강요하는 목사님들이 있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즉, 인간은 남녀가 동등하다, 그러나 역할 면에서는 반드시 구분되어야 하고 그 구분을 할 수 있는 '매뉴얼'이 성경 말씀이고 그 ‘매뉴얼’대로 순복하는 것이 창조질서에 부합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 어떤 경우라고 하여도 성경 말씀을 변질시키거나 호도해서 가르쳐서도 안 되고 내 삶에 끌어당겨서 적용해서도 안 된다...진리는 변개시킬 수도 없고, 또 변질을 시켜 내 삶에 적용한다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가지 않는 것이 창조 질서를 지키는 것

성도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귀와 절과 각이 서로 맞다. 구약에서 말씀되어진 내용이 신약에서 나오고 있으며 신약에서 인용되는 글이 구약에서 출처 된다.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시다.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성경을 기록한 목적은 인간 구원이다. 성경을 인간의 언어로 기록한 사람은 각계각층의 사람이지만,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성령에 감동되어진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받아 기록하였다. (딤전 3: 16절 참조) 때문에 각각의 시차와 역사와 문화를 달리하여 기록된 예언이 수천 년이 지나서도 이루어지고, 성경은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성경을 풀기 위하여는 성령의 감동함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 기준선(基準線(base line))이다. 성경은 인간이 자신의 뜻대로 사사로이 풀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벧후 1: 20-21)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서 다른 사상을 주입시키려 하는 것은 영적 교만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고로, 말세를 사는 우리 성도들은 이런 자들의 패역한 교훈을 단호하게 배격해야 하며 엄히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닭은 새벽을 알리는 울음을 우는 것이 사명이고, 개는 주인 대신 도적을 보고 힘껏 짖어대는 것이 사명이며, 해는 반드시 동쪽에서 떠 서쪽으로 져야만 한다. 기차는 철로(railroad)를 벗어나지 않고 달리는 것이 사명이다. 교회에서나 가정에서 여인은 남자의 부족한 부분을 도와 완전케 하는 것이 창조 질서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확신한다. 사랑하는 동역자님들이여,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성경을 넘어서지 말자. 그것만이 창조 질서를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아름다운 신앙의 미덕일지니...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벧후 1: 20-21), “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고전 4:6)


1. J. Glen Gould, I and II Timothy, Titus(B.B.C. Vol. 9), p.577
2. G.L. Archer, Encyclopedia of Bible Difficulties, pp.411-413
3. William M. Hendriksen, Timothy and Titus(Banner, 1964), p.109
4. Donald Guthrie, The Pastoral Epistles(IVP), p.76


USA아멘넷: 별똥별/최송연의 신앙칼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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