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땅 밑은‘보물창고’… 어찌하오리까 [중앙일보]

팠다 하면 나오는 조선시대 유물 유적, 개발·보존 딜레마

① 보물급 불랑기자포 등 철제무기류와 각종 도자기류, 유구 수십 기가 발굴된 서울시 신청사 부지. 발굴 전에 군데군데 박아놓은 H빔이 눈에 띈다.
②서울 종로 청진5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발굴현장에서 출토된 백자명기 세트. 무덤 부장품인 명기가 살림집터에서 발굴돼 화제가 됐다.
③청진1지구에서 출토된 15~16세기의 달항아리. 당장 보물로 지정되어도 손색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화재청 제공]
전란에, 일제의 파괴에, 개발에 사라진 줄 알았던 조선의 500년 도읍지 한양이 땅속 깊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동대문운동장 땅밑에선 4m 높이의 이간수문(二間水門·도성 밖으로 물을 빼기 위한 2개짜리 문)이 온전히 발굴돼 최근 동대문역사공원에 복원 전시됐다. 피맛골 아래에선 보물급 달항아리 3점이 둥실 떠올랐고, 조선시대 명기(무덤 부장품)도 출토됐다. 서울시 신청사 부지 한 켠에서도 보물급 조선 중기 화포 등 유물과 수십 기의 건물지가 나왔다. 그러나 발굴 전 이미 지하 5층 깊이까지 철제 H빔 수십 개를 박아버린 뒤였다.

◆도심 지하는 보물창고=최근 열린 서울시 신청사부지 발굴 지도위원회에서 박성근 문화시설사업단 단장은 “신청사 부지에는 지하 방제시설이 설치돼 있어 이미 문화재가 교란된 상태라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조선의 흔적이 살아있을 줄 몰랐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시 도심 재개발과 함께 발굴된 조선시대의 유적은 지하 1.5~6m 아래에까지 골고루 분포돼 있었다. 세종로 지하 1.5m에서는 육조거리 유적층이, 경희궁에선 지하 6m에서 17세기 광해군 무렵의 지층이 나왔다. 선조들은 전란으로 불타 무너진 집터 위에 흙을 덮어 대충 집 짓고 살았던 것이다.

조유전 경기문화재연구원장은 “지금이라도 개발의 방향을 바꾸거나 멈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 원장은 “서울 4대문 안이라도 보존했더라면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었을 텐데, 조선시대를 느끼며 잘 수 있는 여관 하나 없다”며 “의식적으로 우리 역사를 무시하면서 어떻게 뿌리를 단군에서 찾느냐”고 반문했다.

현재 재개발 대상지역 건물은 대부분 저층이라 지하를 깊이 파고들어가지 않았다. 문화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유다. 그러나 현재 개발 중인 건물은 지하 5~6층까지 파고들어가는 추세라 ‘지하 보물창고’가 파괴될 수밖에 없다. 나선화 문화재위원은 “4대문 안은 ‘문화수복지구’로 가는 게 옳다”며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해 유물과 유적을 어떻게 보존할지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건길 매장문화재분과위원장은 “현재 서울시 개발계획대로 밀고 나가면 ‘서울’은 완전히 없어진다”며 “서울 전반이나 4대문 안, 그것도 무리라면 고지도를 놓고 보존할 부분을 선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하 문화재, 기록으로라도 남겨야=현행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신축·재건축 부지가 3만㎡ 미만이면 관할 구청과의 협의 하에 문화재 지표조사를 생략할 수 있다. 가령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종로구 관할인 관철동 5-13번지는 발굴 중이고, 중구 관할인 수표동 88-1번지는 지표조사 없이 빌딩이 건설되고 있다. 문제가 된 서울시 신청사 부지 역시 중구 관할 지역이다. 발굴 관련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종로에는 학예사가 있고, 중구에는 학예사가 없어 문화재 관련 건축 인허가에 차이가 난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김봉렬 교수는 “개발은 피할 수 없더라도, 공동의 유산인 지하의 유적은 철저히 기록하고 중요한 부분은 보존·전시해야 한다”며 “서울 도심의 문화재 조사를 의무화하고 조사 결과를 기록해 시대별 ‘지하 문화재 지도’를 완성하자는 장기적인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남규 한신대 국사학과 교수는 “서울시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제가 한반도를 점령한 뒤 가장 먼저 한 것이 거점지역의 향교 등 중세(고려·조선) 도시의 파괴였기에 경주·충주·청주 등의 지하엔 중세 유적이 묻혀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학계의 인식 부족으로 중세 고고학 전공자가 거의 없고, 국가적 몰이해와 개발론이 겹쳐 고려·조선시대 유적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있다”며 “역사에 대한 국민적 이해 없이는 결코 선진국으로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이경희 기자

대안은

매장문화재 기금 조성, 지표·발굴조사 비용부터 만들어야
양심적으로 절차 밟는 건축주들만 손실 보지 않게


역사와 문화재가 중요하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그러나 평당 1억원이 넘어가는 도심 금싸리기 땅의 소유자에겐 재산권의 문제다. 재산권이 늘 앞서 문화재 조사는 흐지부지 넘어가던 서울 4대문 안의 발굴이 본격화된 건 2004년 종로구 청진동 르 메이에르 빌딩부터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2004년 1월 1일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 공사현장에서 뒹굴던 장대석 사진을 찍어 신고했다”고 기억했다. 황 소장은 “건물을 짓기 전에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가장 먼저 끝내고 그에 따라 건물의 규모와 컨셉트가 나와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전부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은 차치하고 국가와 지자체가 앞장서서 대규모 공사를 추진하며 문화재를 뒷전으로 밀어두는 것도 문제다.

피맛골 일대를 비롯한 서울 도심 곳곳의 발굴을 맡고 있는 김홍식 한울문화재연구원장은 “제일은행·교보빌딩·경희궁의아침 등은 물론이고 지하철 공사를 할 때도 문화재 발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양심적으로 절차를 밟는 건축주들만 극심한 손해를 떠안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유적 보존을 위해 지하는 파지 못하게 하되 지상의 건축제한을 완화해준다거나, 주차장기준법을 풀어주는 등 숨통을 터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건물 신축이나 재건축 때문에 문화재 지표·발굴조사를 할 때는 건축주가 비용을 댄다. 출토 유물 등의 매장문화재는 모두 국가로 귀속된다. 문화재가 걸려 발굴이 시작되면 공사 지연으로 인한 손실까지 떠안아야 한다. 문화재청 발굴제도과 심영섭 과장은 “다른 국가들도 홍역을 앓고 지나갔지만, 유적을 파괴하는 원인 제공자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은 만국 공통”이라 전제했다.

하지만 이남규 한신대 국사학과 교수는 “건축주는 ‘재수없이’ 문화재에 걸려 재산권을 잃고, 국가는 매입할 여력이 없어 유적을 방치하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매장문화재 기금을 만들어 지표조사·발굴조사 비용이나 중요 유적 보존 부지를 국유화하는 자금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주택공사·건설업체 등이 개발비의 일정액을 보험금처럼 불입해 펀드를 조성하자는 것이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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