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과 효과적 부르심
루이스 벌콥 2013. 9. 24. 04:09중생과 효과적 부르심 / 벌코프의 조직신학에서 발췌
Ⅵ 중생과 효과적 부르심
A. 중생에 대한 성경적 용어와 그 의미
1. 고려되야 할 용어.
2. 이 용어들의 의미.
이 용어들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1) 중생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며, 따라서 이 사역에서 인간은 완전히 수동적이며 인간의 협력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
(2)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새로운 생명을 생성하고, 이로 인해 인간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 부활의 삶에 참여하게 되며, 따라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불릴 수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3) 중생에는 두가지 요소, 즉 새 생명의 발생(generation)과 새로운 생명이 감추어진 심연에서 표출되는 출생(bearing)을 구분해야 한다. 전자는 영혼안에 새로운 생명의 원소가 주입되는 것(principie)이며, 후자는 이 원소가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은 중생을 적적하게 이해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B. 신학에서의 중생이라는 용어의 용법
1. 초대교회와 로마 카톨릭 신학에서.
2. 종교개혁자들과 개신교회.
루터는 중생과 칭의의 혼동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그는 중생 혹은 새로운 출생을 상당히 광범위한 의미로 언급했다. 칼빈도 역시 이를 새로운 생명을 생성시키는 하나님의 행동 이외에 회심(회개와 신앙)과 성화를 포함하는, 인간이 갱신되는 전 과정을 나타내는 용어로 매우 포괄적으로 사용했다. 일부 17세기 저자들은 중생과 회심을 구분하지 못하고 두 용어를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하며, 중생을 부르심 즉 효과적 부르심 아래 두었다. 도르트 신조도 두 단어를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벨기에 신앙고백서도 중생을 보다 광범한 의미로 언급하고 있는 듯하다. 중생이란 용어의 이러한 포괄적 사용은 종종 혼동을 초래하고 매우 필요한 구분들을 무시하게 한다. 예를 들면 중생과 회심이 동일시 되는 반면, 회심에서 인간은 어느 정도 하나님에게 협력하지만 중생은 하나님의 단독사역으로 선언된다. 중생과 칭의의 구분은 명백해졌지만, 중생을 보다 제한적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점차 필수적이고 통상적인 관례가 되었다. 투레틴은 두 종류의 회심을 구분한다. 첫번째는 '습관적인' 또는 수동적인 회심으로서, 영혼의 성향 혹은 습성을 창출하는 것으로 이는 '중생'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두번째는 '실제적' 또는 '능동적' 회심으로서, 여기서 나온 습관이나 성향이 신앙과 회개에서 능동적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개혁파 신학은 중생이라는 단어를 보다 제한적인 의미로, 즉 죄인이 새로운 영적인 생명을 부여받고 새 생명의 원소가 처음으로 행동화되는 하나님의 행위를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한다. 이렇게 생각할 때 중생은 "재발생(begetting again)"과, 생명이 발현되는 "새 출생(new birth)" 양자를 포함하게 된다. 하지만 중생이라는 용어의 문자적인 의미와 엄격히 조화될 수 있도록, 중생이라는 용어를 이러한 새 생명의 첫번째 발현과는 구분시켜서, 단지 영혼 안에서의 새 생명의 주입(implanting)을 지칭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좋다.....
C. 중생의 본질
1. 그릇된 견해들.
(1) 중생은, 원죄를 실체로 이해하여 중생시 다른 실체에 의해 대체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종교 개혁 시대의 플라키우스 일리리쿠스나 고대의 마니교도들이 주장하듯 인간 본성의 실체의 변화가 아니다. 어떠한 새로운 물질적인 씨앗이나 싹이 인간에게 이식되는 것은 아니다. 영혼의 기능에 있어서는 어떠한 첨가나 감소도 없다.
(2) 중생은 한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영혼의 기능의 변화가 아니다. 중생은, 예를 들면 일부 복음주의자들이 생각하듯 하나님의 일에 대한 혐오의 제거를 통한 정서적 생활(감정이나 마음)의 변화, 혹은 합리주의자가 생각하듯이 죄로 어두워진 마음에의 조명을 통한 지성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생은, 성경적인 의미로 이해한다면, 영혼의 중심적이며 모든 것을 통제하는 기관으로 생명의 원천인 인간의 마음(heart)에 영향을 준다. 이것은 중생이 인간 본성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3) 또 중생은 재세례파나 다른 열광적인 종파들이 주장하듯, 인간의 본성 전체나 부분에 있어서 완전한 변화가 아니다. 이들은 중생한 자들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중생은 인간의 본성 전체에 영향을 주지만, 성령의 역사에 의해 인간 안에 야기되는 모든 변화를 나타내는 용어가 아니다. 중생은 회심과 성화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
2. 중생의 긍정적 특성.
(1) 중생이란 인간 안에 새로운 영적 생명의 원소(principle)를 주입하고 성령의 영향아래 하나님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생명을 탄생시키는 변화로, 영혼의 지배적 성향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원리적으로 이 변화는 전인적으로 일어난다.
(2) 중생은 전인적으로 즉 지성적으로 정서적으로 도덕적으로 즉시 영향을 미치는, 인간 본성의 즉각적인 변화이다. 중생을 즉각적인 변화라고 주장하는 것은 다음 두가지를 내포하고 있다.
① 중생은 로마 가톨릭 교인들이나 모든 반펠라기우스주의자들이 가르치듯 인간이 영혼 안에서 점진적으로 예비되는 사역이 아니다. 생명과 사망 사이에는 중간 단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살든지 죽든지 양자 택일이다.
② 중생은 성화처럼 점진적인 과정이 아니다. 일부 개혁파 신학자들이 중생을 성화까지도 포함하는 용어로 사용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구원의 순서가 오늘날처럼 완전히 전개되지 못한 시대에 있었던 일이다.
(3) 중생은 가장 제한된 의미로 이해한다면, 잠재의식에서 나타나는 변화이다. 이는 인간에 의해 직접적으로는 인식될 수 없는, 하나님의 은밀하고 불가사의한 사역이다. 변화는, 중생과 회심이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인간이 이를 즉시 인식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일어난다. 이후에 있어서도 인간은 '단지 그 결과로서만' 이를 인식할 수 있다. 이는 기독교인이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회의와 불확실성과 투쟁해야 하며, 한편으로는 점진적으로 이것들을 극복할 수 있고 확신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해 준다.
3. 중생의 정의
현재 사용되는 중생에 관한 상기 진술로부터 중생을 두 가지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다. 가장 엄격한 의미에서 우리는 중생을 "새 생명의 원소가 인간에게 심겨지고 영혼의 지배적 성향이 거룩하게 되는 하나님의 행위"(Regeneration is that act of God by which the principle of the new life is implanted in man, and the governing disposition of soul is made holy.) 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재발생"의 개념뿐 아니라 새 출생의 개념을 포함하기 위해서, 본 정의에서 "이러한 새로운 성향의 최초의 거룩한 활동이 확보되어 있다"라는 문장을 보충해야 할 것이다.
D. 외적 부르심에 관련된 효과적 부르심과 중생
1. 외적 부르심과 불가분의 관계성
(1) 내적 부르심은 성령의 사역에 의해 구원적으로 적용된 말씀에 의한 부르심이다.(고전1:23,24; 벧전2:9)
(2) 이는 강력한 부르심, 즉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효과적인 부리심이다(행13:48; 고전1:23,24).
(3) 이는 회개 없이 일어난다. 즉 변화될 수 없고, 결코 철회될 수 없는 부르심이다(롬11:29)
2. 내적 부르심의 특징
(1) 도덕적 설득과 성령의 강력한 사역이 결합되어 일어난다.
(2) 인간의 의식 영역에서 역사한다.
(3)목적론적이다.
3. 중생과 효과적 부르심의 관계
(1) 17세기 신학에서의 양자의 동일시.
17세기 신학이 효과적 부르심과 중생을 동일시하거나 완전히 동일시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중생이 부르심에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부 옛 신학자들은 부르심에 관해서는 별개의 장(章)을 가지고 있었으나, 어느 누구도 중생을 별개의 항목으로 다루지 않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0장 2절에 의하면 효과적 부르심은 중생을 포함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부르심과 중생이 인과적으로 관계된다고 말할 때, 우리는 전문적인 의미에서 내적 혹은 효과적 부르심이 아니라, 창조적 부르심까지도 포함하는 일반적 부르심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종교개혁 이후의 시대에서는 죄인의 삶에서 은혜의 사역의 발단을 지칭하기 위해 중생보다 부르심이라는 용어를 광범하게 사용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의 사역간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부르심이라는 용어가 사도 시대에 성행한 것은, 선교적 시대에 교회에 모이게 된 사람들의 경우에 있어서는 중생과 효과적 부르심이 일반적으로 동시적이었으며, 그 변화가 하나님으로부터의 강력한 부르심으로서 의식 생활 가운데 반영되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하지만 진리를 체계적으로 진술하기 위해서 우리는 부르심과 중생을 구분해야 한다.
(2) 중생과 효과적 부르심의 차이.
엄격한 의미에서 즉 "재발생"으로서의 중생은 인간의 잠재의식에서 발생하며, 인간이 이에 대해 취할수 있는 어떠한 태도와도 독립되어 있다. 반면 부르심은 의식을 대상으로 하며 의식생활의 일정한 성향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중생은 안으로부터 역사한다면, 부르심은 밖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다. 유아들의 경우, 우리는 부르심보다는 중생에 대해 언급하게 된다. 더욱이 중생은 창조적이며 초자연적인 성령의 사역으로, 이로써 인간은 다른 상태로의 전이, 즉 영적인 사망의 상태에서 영적인 생명의 상태로 옮겨지게 된다. 반면 효과적인 부르심은 목적론적이며 새로운 생명을 이끌어 내며 하나님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는 새로운 성향이 발현되게 하며 새 생명을 활동하게 한다.
(3) 부르심과 중생의 관련 순서.
우리가 다음의 단계들에 주목한다면 이들의 관련 순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① 논리적으로 볼 때 말씀의 설교에서의 외적 부르심(유아의 경우는 제외)은 일반적으로 새 생명이 인간의 영혼 속에 생성되는 성령의 사역에 선행하거나 이와 동시에 일어난다.
② 이때 창조적 말씀으로 하나님은 새 생명을 생성시키시고, 영혼의 내적 성향을 변화시키시며, 마음을 조명하고, 감정을 고양시키시며, 의지를 새롭게 한다. 하나님의 이러한 행위 안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영혼을 구원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을 수 있는 귀가 심어지게 된다. 이것이 엄격한 의미에서 중생이다. 여기서 인간은 전적으로 수동적이다.
③ 영적인 귀를 가진 후 죄인은 이제 복음 안에서의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게 되며, 효과적으로 이를 마음에 받아들이게 된다. 저항하고 싶은 열망이 순종하고 싶은 열망으로 변화되고, 죄인은 성령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설득력에 감화된다. 이것이 설교 말씀의 도구를 통해 하나님의 영에 의해 효과적으로 적용되는 효과적 부르심이다.
④마지막으로, 이러한 효과적 부르심은, 진리를 통해 영혼 안에 탄생된 새로운 성향이 최초로 거룩하게 발현되도록 한다. 새 생명이 발현되기 시작하고, 심겨진(주입된) 생명은 새로운 출생을 일으킨다. 이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중생의 사역의 완성이요, 회심으로 전환되는 시점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논리적 순서를 모든 경우에 적용될 수 있는 시간적 순서로 이해하는 우(愚)를 범치 말아야 한다. 새 생명은 종종 유아들이 복음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게 되기도 전에 이들의 마음속에 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복음이 설교되는 곳에서만 새로운 생명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새 생명이 생성되게 하는 하나님의 창조적 부르심은 항상 존재한다. 복음의 집행하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들이 분별력을 갖추기 오래 전, 즉 효과적인 부르심이 의식에 침투하기 오래 전에 중생의 씨앗을 가질 가능성도 많다. 하지만 중생된 자로서 이들이 수년 동안 심지어 성장한 이후에도 여전히 죄 가운데 생활하며 그들 안에 있는 새로운 생명의 증거를 전혀 보여주지 못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반면 언약의 집행하에 생활하지 않았던 자들은 중생과 효과적인 부르심 사이에 시간적 간격을 상정할 필요가 없다. 효과적인 부르심에서 이들은 자신의 갱신을 인식하게 되고, 즉시 중생의 씨앗이 새로운 생명으로 발육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중생, 효과적 부르심, 회심이 모두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생과 효과적 부르심 / 벌코프의 조직신학에서 발췌 (714-7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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