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구원의 비밀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비밀 가운데 하나는 죄인을 미워하시면서 동시에 죄인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결과에 대하여 사망이라고 선언할 정도로 미워하십니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생명을 주시면서 사랑하셨다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의롭지 않은 사람을 의롭다고 하셨으며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비밀입니다. 바울은 그 사실을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4:5]

 

구원에 대한 오해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거저 받는 것에 대하여 불편한 심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드시 어떠한 거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고받는 것이 정상적이며 그래야 마음이 편하게 느껴집니다. 누군가 거저 받았다 그러면 잘 믿지 않고 의심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것은 구원에 대하여 큰 오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도 어떠한 선함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선한 행동이 있어야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고 여기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모든 생각을 뒤 엎는 것입니다. 의로운 행동이 있어야 의롭게 여김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양심의 법에 따라 혹은 실정법에 따라 우리의 선함과 행함을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우리는 죄와 관계없으며 선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는 의인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3: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3:9-18]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선함이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 가운데 우리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오심은 의인을 찾으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의인이 아니라 죄인입니다. 의인이 있다면 주님이 이 땅에 오실 이유가 없습니다. 죄인들에게 의를 주시려 오신 것입니다. 즉 죄인인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의롭게 만드신다.

 

그렇다면 경건치 않은 사람이 경건하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다시 말한다면 죄인이 의롭게 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인이 죄에서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하게 된다는 것은 죄를 다 탕감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그 죄를 탕감할 수 가 있겠습니까? 이 땅의 사람들이 죄를 용서해 줄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모두가 죄인이므로 인간은 누구도 인간 본성의 죄를 해결 할 수 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는 방법을 만드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자신의 어떠한 행위가 결코 구원에 이르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죄인을 의롭게 할 수 있습니다. 경전치 않은 자가 경건하게 되는 길은 하나님의 은혜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하여 구원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며, 그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본성만은 가장 사악한 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합니다.

 

하나님 없다고 자만한 삶

 

이 땅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없다고 자만한 자들입니다. 혹시 당신이 그 주인공은 아닙니까?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습니다. 나아가서 하나님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자랑하였습니다. 이것은 입으로만 부정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 있다고 하면서도 하나님 없이 살고 있는 삶을 향하여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에게 놀라운 소식이 온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롬4:5절의 말씀입니다. 경건치 않은 자를 경건하게 여겨 주신다는 소식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된 소식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복된 소식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랑의 주님께서 은혜의 장치를 고안하실 때 바로 당신 같은 사람을 염두에 두시고 고안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아량이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자신에게 빚진 모든 사람들의 빚을 해결해 주기로 작정했다고 가정해보십시오. 이처럼 행복하고 기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구원이 이러한 것입니다. 우리의 빚을 탕감하여 준 것입니다. 이것의 구원입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이것은 구원의 결과입니다. 스펄젼은 이렇게 말합니다.

 

“구원의 결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결과가 이루어지기 전에 구원이 먼저 오는 것입니다. 즉 더럽고, 보잘것없으며 잘못된 상태, 형편없는 상태, 경건하지 않은 상태에 있을 때 구원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 즉 경건하지 않은 사람을 의롭게 하는 기쁜 소식이 임할 때의 상태가 그렇습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의 더러움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의 있는 그대로 나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 주시고 어두움의 나라에서 건저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겸손입니다.

 

가져온 곳 : 
카페 >문화와 설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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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신동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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