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확신 (1)
 
박혜근
다음 글은 칼빈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박혜근 교수의 조직신학 과목인 <구원의 확신>에 대한 강의 내용을 녹취하여 편집하였다. <리폼드뉴스 편집부>
 
구원의 확신은 우리의 구원의 경험 중의 하나이다. 구원의 확신은 평신도 사이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었지만 통일된 가르침 없이 흘러왔다. 그런 면에서 어떤 점에서는 생소하고 과목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구원의 확신에 대한 책이 없다. 유일하게 있는 책이 R. Ryle 정도의 책이다. 평신도용이다. 그러나 신학적 지평을 알기에는 부족하다. 신학적인 논의는 훨씬 더 광범위하고 복잡한 이슈들을 담고 있다. Joel Beeke 박사학위 논문이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학교에서 지향하는 목회는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교육적 목회이다. 개혁파는 칼빈 사후에 한번이라도 다른 목회를 시도한 적이 없었다. 그 점을 꼭 기억하라. 하나님 말씀을 잘 가르치는 것이 목회의 처음이고 마지막이다. 목사의 사명이다. 밥 퍼는 집사들이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도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선교도 가르치는 것이다. 선교가 나귀타고 들판에 다니면서 성경책 나눠주는 게 선교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람들이 말도 타고, 나귀도 타고 밀림도 헤치는 궁극적 목적은 가르치려는 것이다. 병원을 짓고, 학교를 만드는 것은 복지국가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라면 복음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잘 가르치는 것이다. 가르쳐서 그들로 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돌아오도록 이끌어 가는 사람이 선교사이고 목사이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목사를 세우는 것이고, 교회 안에 교사를 만드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직업을 갖기 위해서 소명을 가지고 이 자리에 온 것이다. 부단하게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 없이는 절대로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없다.
 
과거에 솔로몬 성전에서 대제사장들이 안식일에 바톤 터치하였다. 안식일에 바꿀 때까지는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잠을 자는데, 누워서 자는 사람은 선임들이고, 나머지는 벽에 기댄 채로 밤을 새웠다. 그러니까 한번이라도 그 거추장스러운 절차를 멈춘 적이 없었다. 과거 유대인들이 제사장의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서 동트는 시간을 맞추어서 지평선에 해가 오르는지를 보았다. 해가 오를 때 제사를 집행하고 해가 질 때 집행을 멈추었다.
 
향 피우는 것도 복잡한 절차이지만 그들은 수백 년간 그것을 반복하였다. 그런데 서기관들이 있는데 성전에서 말씀을 날마다 연구하고 가르쳤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말씀 연구하고 가르치다가 인생 마쳐야 한다. 그렇게 할 생각이 없으면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된다. 말씀을 공부하고 그 공부한 지식으로 사람들을 깨우쳐야 한다. 그것이 여러분의 사명이다. 그러니까 공부를 하고 깨우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한다.

1. 구원의 확신에 대한 논쟁

한국교회가 이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 가볍게 다룬 점이 없지 않다. 사경회나 부흥회에 가면 구원받은 줄 믿습니까? 아멘! 이 말로 구원의 확신을 종결지었다. 그런데 사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번 학기는 구원의 확신을 다루면서 구원의 확신과 관련된 성경적 근거하든지 신학적인 것을 다룰 것이다.

책을 찾아보니까 루이스 벌코프나 후크마의 책에도 구원의 확신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다. 그래서 이 구원의 확신은 많이 다루는 주제인데 거기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아서 안타까운 게 현실이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에 관련된 신학에 대하여 전반적인 소개를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궁극적인 구원에 대한 확신-확신이라고 말하면 이렇게 알아들어야 한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다-이 세상에 사는 동안 과연 가능한가에 대한 논쟁은 종교개혁시대를 가장 뜨겁게 달구었던 논쟁점 중의 하나이다. 500년 전 종교개혁시대로 돌아가서 종교개혁자들이 로마 카톨릭 교회와 무엇을 가지고 논쟁했는지 들여다보면 논쟁점 중의 하나가 바로 구원의 확신에 대한 논쟁이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이 논쟁은 또 다른 양상으로 번져나갔다. 종교개혁시대에도 그랬고, 종교개혁 후 시대에도 그랬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구원의 확신에 관련된 논쟁은 종교개혁시점부터 오늘까지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논쟁이 되고 있는 핵심 논쟁 중의 하나라고 보면 된다.

종교개혁 이전에는 구원에 대한 확신에 대한 논쟁이 없었다. 왜냐하면 어거스틴 죽고 난 뒤 종교개혁이 있기까지 약 1000년, 중세시대에는 구원에 대한 확신에 대한 논쟁은 없었다. 왜냐하면 교회의 일관된 입장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로마교회의 구원에 대한 입장이 무엇이냐, 구원의 확신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만약에 구원의 확신에 관한 어떤 개인적인 시도를 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1600년대 트렌트 종교회의에 가면 뭐라고 하냐면, 그것은 사악하고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정죄하였다. 그러니까 로마교회는 중세 1000년 동안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종교개혁 이후 트렌트 종교회의에서는 정의하면 그런 구원의 확신을 얻고자 하는 시도 자체는 단순하게 바람직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 사람은 그레고리 대제이다. 그런데 종교개혁 이후에 마침내 구원의 확신의 문제가 논쟁점이 되기 시작하면서-반격했던 이유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한다- 터져나온 로마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은 과거 중세시대의 교회에서 가졌던 것보다 더 강경한 것이었다. 어떤 것이냐면 만약 구원의 확신을 얻고자 시도하는 것은 저주를 받을 짓이라고 정죄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종교개혁 이전에는 구원의 확신을 둘러싼 논쟁은 없었다.
 
그러면 구원의 확신에 대한 논의가 있었느냐면 있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히포의 어거스틴이었다. 또 한 사람은 Duns Scotus였다. 어거스틴이나 둔스 스커타스의 입장은 이런 것이었다. 구원에 대한 확실성은 논의하기는 어려워도 구원을 받으리라는 어느 정도의 추정은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구원의 확신이라고 하기는 어렵고 구원에 대한 대략의 추정은 이 땅에 사는 동안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들의 입장은 100% 확신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단지 개연성 정도에서 구원의 확신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었다.

자, 이렇게 기껏해봐야 구원의 확신은 개연성 정도에 머문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중세의 로마교회의 고해성사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고해성사제도는 죄 용서를 베풀기 위한 교회적 절차이다. 지금도 고해성사를 한다. 죄 용서 받기 위해서는 사제를 찾아가서 자신의 죄를 개인적으로 자백을 하게 되면 그 죄의 고백을 들은 사제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죄 용서를 선포하는데 반드시 거기에 따르는 징벌적인 명령을 내린다. 그것이 헌금이든, 금식기도든 혹은 고행이든 무엇이든 간에 교회가 부과하는 소위 말하는 죄값을 치러야 한다. 그것을 얼마나 철저하게 얼마나 진실하게 수행하느냐에 따라 죄의 용서가 주어질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어쨌든 고해성사와 관계가 있다.

어거스틴은 견인의 교리를 가르치면서-구원의 확신은 견인 교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견인을 어거스틴이 가르칠 때 무엇이라고 했냐면 어거스틴은 그의 생애 초기와 후기는 중기와는 다르다. 그의 사상이 절정에 이른 중기 시대에는 견인을 인정하였다. 견인의 교리를 발전시킬 때는 어디에서 근거를 찾았느냐면 예정의 교리에서 가져왔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창세전 예정하시는 무궁하신 사랑 위에서 성도는 구원받는 날까지 구원받는 믿음을 간직하게 된다고 자기 사상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런데 후기에 접어들면서 무슨 말을 하면, 어거스틴이 비록 신자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질 수 있다고 말하면서 견인의 입장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입장을 후기에 보였다. 그러니까 믿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견인의 교리의 부정이다. 견인이란 하나님이 창세전에 예정하신,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신 그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대로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까지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정하실 때에는 구원이라는 결과만 예정하시는 것이 아니다.
 
구원 받게 하시되 그 사이 과정은 역사적 우연에 맡겨 놓고 어떻게 하든지 간에 구원에 이르도록 예정하셨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예정행위는 목적도 결과도 과정도 구체적으로 예정하셔서 그것을 역사의 우연에 맡겨 놓지 않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과정에 따라 진행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예정의 속성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마침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영광의 상태에 도달하기까지 그 전체 일생은 하나님이 예정하신대로 된다는 것이 예정론의 중요한 원리이다. 그러니까 예정을 믿는 신자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우여곡절을 입고, 천신만고를 당하고 정말 말할 수 없는 어려움과 좌절을 경험한다.
 
그것을 하나님의 예정을 믿는 신자들은 그것을 우연의 바다에 던져진 운명의 슬픔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구원의 과정이라고 보았다. 그것이 우리 개인의 기대에는 벗어나는 사고이기도 하고 사건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계획한대로 되는 것이다. 그런 확신 안에서 자신의 삶을 낙관적으로 보았다. 정말 여러분들이 긍정적 사고를 말하려면 예정론을 믿어야 한다. 인생의 낙관적 입장을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창세전 예정을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절대로 구원의 확신이 없다. 그런데 어거스틴이 나중에 후기에 가서 뭐라고 하냐면, 신자가 은혜에서 떨어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만약에 그렇게 해서 끝났다면 어거스틴의 명예에 누가 될 뻔했다. 그런데 뭐라고 했느냐, 은혜에서 떨어진 신자들이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하였다. 은혜에서 떨어진 신자가 어떻게 회복 하냐면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은혜에서 떨어진 신자가 회복된다고 말하면서 성찬에 막강한 권능을 부여하였다. 그러니까 성찬에 참여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은혜를 주시는 것으로 가르쳤다. 그렇게 됨으로써 성찬은 어떻게 되는가? 한마디로 은혜의 주입이라는 기계적인 은혜의 주입이 이루어지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중세 로마교회가 성찬에 구원론적인 의미를 성경이 의도한 것 보다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한 것에는 이러한 어거스틴의 공헌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찬제도, 고해성사 같은 로마교회의 시스템의 일정한 공로자가 누구냐? 사실 어거스틴이다. 지금도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성찬이 사람들에게 스스로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었거나 혹은 하나님의 은혜가 절박하게 필요한 자들에게 주시는 은혜의 통로가 성찬이라고 보는 것이다. 미사의 중심이 성찬이다. 그래서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예배에 언제나 성찬을 행한다. 왜냐하면 그것이야 말로 은혜의 수단이다.

자,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고해성사를 통한 죄의 용서라는 로마교회의 교리적인 시스템은 궁극적인 확신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죄를 지으면 고해성사를 하고, 그리고는 은혜의 회복을 위해서는 성찬에 참여한다. 그럼으로써 마침내 회복하고 용서를 받는다. 이것이 로마교회의 시스템이다. 죄를 지으면 고해성사해야 하고, 고해성사하면 성찬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을 받아 누리는 것이다. 상찬을 하게 되면 무엇이 일어나느냐? 은혜의 주입이 일어난다.
 
여러분, 은혜의 주입의 강조점은 개인의 어떠한 믿음의 여부보다 무엇이 중요하냐면, 교회의 권능을 강조하는 말이다. 교회가 성찬을 집행하면 집행하는 그 성찬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진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찬을 유효하게 만드는 것은 개인의 믿음이 아니고 교회의 권위라는 것이다. 교회가 시혜(은혜를 베품)하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에서 과연 확신은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죄를 지으면 고해성사해야 되고 성찬을 통해 회복하기는 하지만 사람에게는 중생한 이후에도 죄의 본성이 남아 있다. 그래서 죄가 끊임없이 활동한다.
 
그래서 문제는 이러한 고해성사를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는 한계가 하나 있고, 두 번째는 저런 시스템에서 용서는 어떤 것이냐면, 용서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선행에 상응하는 조건적 은혜이다. 용서란 용서를 가능하게 하는 선행이 있어야 한다. 그 선행이 무엇이냐면 기도, 참회, 고행, 헌신 등을 통해서 용서를 받을 만한 선행을 먼저 해야 한다. 이것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기도문에 잘 나온다. 로마 카톨릭의 기도문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참회에 합당한 열매로서 나의 죄에 대한 만족을 이룰 수 있는 은혜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기도문을 이렇게 시작한다. 고해성사의 합당한 열매로 인해서, 고해성사의 합당한 열매가 무엇인가? 그것이 뭐냐 하면 고통을 겪는다든지, 십자가를 진다든지 혹은 어떤 징벌을 받는다든지 이런 것을 통해서, 그런 것들을 뭐라고 하냐면 고해성사의 합당한 열매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 열매를 통해서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는, 죄에 대한 보상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변상을 해야 하는 고해성사의 합당한 열매로 내 지은 죄값을 충분히 치룰 수 있도록 은혜를 달라. 그런데 이 은혜는 어떤 은혜인가? 그것은 고해성사에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돕는 은혜이다.
 
그리고 뭐라고 하냐면 “나는 기꺼이 하나님의 눈으로부터 그것이 고통이든, 십자가든, 환난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사오니 그것을 통하여 내 남은 날을 지나게 하여 주옵소서. 철저하게 죄값을 치룰 각오를 해야 한다. 용서 받으려면. 그것이 사는 것이든 죽는 것이든 나의 죄책에 대한 형벌로서 기꺼이 받아들인 준비가 되었나이다. 간절히 구하옵나니. 그리스도의 수난과 그리스도의 죽음과 고통에 내가 연합하게 하사 그것에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수난에, 십자가에 합한다는 것은 죄값을 치루기 위한 고통을 감내하는 기꺼이 감내하는 일체의 과정을 그와 같이 설명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무엇이 주어지느냐, 마침내 용서가 선포되는 것이다. 이 때 용서는 전적 은혜가 아니다. 개신교에서 말하는 전적 은혜가 아니다. 이 은혜는 한마디로 하면 그 용서를 가능하게 하는 선행에 상응하는 조건적 은혜이다. 좋은 예로 미션이란 영화가 있다. 완전히 카톨릭적인 관점이 반영된 영화이다. 형과 동생이 여자 하나를 두고 형이 동생을 죽인다.
 
그리고는 양심의 고통 때문에 폐인처럼 방안에 갇혀 있는 그 남자가 신부의 권면에 따라 어느 날 자신의 등에 노예생활을 하다가 썼던 갑옷이며 투구를 그물에 싸서 벼랑 위를 기어 올라간다. 그것이 바로 고해성사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그것을 지나고 마침내 용서가 선포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기준에 합할 때 마침내 용서는 선포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용서는 누구에게 달려 있느냐면 나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정말 나의 죄값을 지불하고자 했던 일체의 과정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수준에 도달했는지는 모른다. 그것을 모르겠는 것이다. 아까 말했듯이 중세 시대에 로마교회가 구원의 확신을 얻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고해성사 때문이다. 고해성사의 과정이 단순하게 내가 이런저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면 신부가 건너편 방에서 내가 너의 죄를 용서하노라, 그러면 죄를 다 용서받은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거기에 합당한 선행을 하도록 요구되는데 그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에 도달하는지는 다른 문제이다.
 
어떤 사람은 절벽을 올라가면서 빙벽 타는 마음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동기는 여러 가지 일 수 있다. 겉으로 볼 때에 처절하게 용서를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절벽을 기어 올라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마음 중심에는 그 죄를 뉘우치는, 그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 정말 절절하게 있는지, 아니면 과거에 등산하던 마음으로 스릴 있다고 생각하고, 정상적으로 할 수 없는 아드레날린을 분비하기 위해서 하는 무모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까 그 동기가 어떤 것인지는 모른다. 그런데 그 동기가 하나님이 보실 때 합당한 것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아니면 그 과정을 거쳤다 할지라도 온전한 용서의 선포는 유보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고해성사 시스템 안에서는 사죄의 확신(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사람이 자기의 의로는 절대로 사죄의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히브리서에서도 가르친다.

여러분, 예술가들이 겪는 가장 고뇌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도자기 굽는 가마에 가면 가마 옆에 도자기 무덤이 있다. 도자기를 망치로 그렇게 좋은 것을 깬다. 망치로 탁 옆구리를 깬다. 계속 깬다. 예술가가 겪는 가장 큰 고뇌는 자기 작품에 대한 불만이다. 그 작품에 대한 불만이, 예술의 경지에 오를수록 줄어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예술적 경지에 오르면 오를수록 자신의 작품에 대한 오점이나 결점을 보는 눈은 더 날카로워지고 기대치는 더 높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가는 늘 좌절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만약 자신의 선행으로 이런 죄용서를 받고자 한다면 좌절감은 훨씬 더 커진다. 따라서 이런 시스템에서는 교회가 죄 용서를 선포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최종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 로마교회도 사실 그것을 인정한다. 최종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언제나 의심과 의혹 속에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성도의 마땅한 삶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지금도 로마교회는 구원의 확신에 대한 개념이 없다. 묻지도 않고 묻는 그 자체가 사탄적이고 정죄받을 짓이다. 지옥에 떨어질 짓이다.

결과적으로 중세시대에는 확신에 대해 언급할지라도 어떤 오류없는 확신에 이른다는 것은 신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따라서 트렌트 종교회의에서는 아까 말했듯 어떤 특별계시-하나님께서 나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너의 죄를 용서해 주고 너는 천국에 들어올 자다라는 것-을 주시지 않는 한 구원의 확신을 논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고, 그와 같은 논의를 하는 것 자체가 중대한 범죄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의 성경의 무오성, 성경의 신적 권위에 대한 믿음, 종교개혁자들은 이 세상에서 다른 어떠한 것도 진리의 기준의 될 수 없다고 보았다. 교회도 아니고, 교회의 수단인 교황도 진리의 준거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만약 진리를 논하는 유일한 기준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계시, 성경 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니까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성경에 대한 믿음 때문에, 소위 로마교회의 성직자들에 의한 중재 역할을 부정하게 되었다.
 
무슨 말이냐면 전부 다 고해성사, 성찬. 그중에서도 고해성사를 부정하게 되었다. Father가 중재자, 중보자인데 그래서 기도할 때도 고해성사하는 사람이 중재자에게 고백하면 중보자가 아버지께 그들의 죄를 사해주기를 구한다. 그래서 이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교회란 무엇이냐면 조직으로서의 교회이다. 특별히 조직의 핵심은 성직자단이다. 성직주의가 교회의 핵심이다. 결국에는 이런 성직주의를 버리게 된다. 부정하게 된다. 칼빈이나 루터, 쯔빙글리, 부처 등등의 종교개혁 1세대들은 구원의 확신을 무엇이라고 봤냐면 구원의 확신은 구원하는 믿음의 규범적인, 본질적인 요소라고 하였다. 꼭 기억해야 한다. 시험에 나온다. 이것에 대한 어떤 학자들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The Saving faith(구원하는 믿음), 이것은 assurance와 같다. 한마디로 말하면 구원하는 믿음을 누군가 가지고 있다면 동시에 그 사람은 구원의 확신을 가진 것으로 보았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구원받는 믿음은 곧 구원의 확신이라는 확고부동한 믿음이 있었다. 그것을 가르쳤다. 여기에는 이견이 없다. 아까 칼빈주의자 안에서 많다고 하였다. 그 논쟁도 일단 여기에서 다 동의한다.
 
그러니까 루터든, 칼빈이든 종교개혁 1세대에서는 구원하는 믿음이 구원의 확신과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무슨 말이냐면 구원받는 믿음과 구원의 확신은 동시적이고, 그런 점에서 구원의 확신은 구원하는 믿음의 규범적이고 본질적인 요소라고 본 것이다. 구원받는 믿음을 갖는 순간 그 사람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된다는 점에서 구원의 확신은 결정적이다. 그러니까 종교개혁자들에게는 이런 것이다. 구원의 확신은 중생한 신자라면 마땅히 가져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정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굳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개가 새끼를 낳으면 강아지가 되고 코끼리가 새끼를 낳으면 코끼리 새끼가 되고, 사람이 아기를 낳으면 사람이 된다. 그것은 결정적이다.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결정적이다. 마찬가지로 구원받는 믿음을 가지는 순간에 구원의 확신은 자동적으로, 동시적으로 주어진다는 의미에서 결정적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로마 카톨릭 교회 입장하고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런 입장을 가지게 된 신학적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종교개혁자들이 가졌던 믿음에 대한 이해가 달랐기 때문이다. 이 믿음에 대한 이해, 루터나 칼빈이 가졌던 믿음에 대한 이해와 교리가 로마 카톨릭 교회하고는 달랐다. 더 나아가서는 사람이 어떻게 의롭게 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달랐다. 그런 종교개혁자들의 칭의의 이해를 우리는 이신칭의라고 말한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움. 잘 보시라. 이신칭의라는 것은 사실, 믿음에 대한 그들의 이해가 달라졌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말로 이신칭의가 justificatio by Faith. 이때 믿음은 수단의 원리. 그러니까 칭의는 일차적으로 죄의 용서를 받아야 하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의를 우리가 받아야 한다. 무죄의 상태에서 의의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 칭의이다. 그런 죄용서, 의로움의 상태에까지 나아가는 일체의 모든 것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느냐? 오직 믿음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때 이 믿음에 대한 그들의 이해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종교개혁자들은 그들이 가르치고 있는 그들의 이해가 로마 카톨릭과는 확연히 달랐다. 믿음을 무엇으로 보았느냐?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고, 고해성사하는 것 필요 없는 것이다. 성찬 필요 없고, 의롭게 되는 일의 수단으로서 성찬이나 고해성사를 말하지 않았다. 왜냐, 성경에 보아도 고해성사나 성찬이 사람으로 하여금 의롭게 한다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할례도 아니고, 선행도 아니고 그 어느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유일한, 그래서 by faith only, ‘오직’이라는 말을 붙이기를 좋아했다. 그러니까 오직 믿음으로 이렇게 말할 때 액센트는 어디 있느냐, 사실은 그들의 의식 속에는 무엇이 있냐면 로마 카톨릭의 고해성사도 아니고, 공로주의도 아니고, 아니고, 아니고, 이 말이 only 안에 있다. 그러니까 그것을 다 배제하는 말이다. 굉장히 부정적은 접근이다.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서 구원받는 믿음으로 사람이 의롭게 된다고 말할 때, 믿음에 대한 정의와 교리는 로마 카톨릭 그것과는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고, 동시에 믿음에 대한 그들의 이해는 전적으로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가 있는 것이다.
 
그것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종교개혁자들이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고해성사에 근거한 죄용서를 가르친 로마 카톨릭 교회하고는 근본적으로 다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문제가 나중에 교회론으로까지 번진다. 그러니까 칭의를 다룰 때 로마 카톨릭은 제일 먼저 무엇을 다루고 싶었느냐? 교회가 무엇인지 다루고 싶었다. 교회가 무엇인지 다루고 사람이 어떻게 의롭게 되는지를 다루고자 하였다. 순서가 다르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지를 먼저 다루고 교회가 무엇인지 다루고자 하였다.
 
그러니까 대화가 되지 않는 것이다. 사실 교회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종교개혁자들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 그 사람들이 교회이다. 그러니까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사람이 어떻게 의롭게 되는 지를 먼저 대답하여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회는 그 반대였다. 교회가 규범적인 것이고, 칭의론은 그에 따른 결과로 보았다. 어쨌든 이런 이신칭의에 대한 그들의 이해는 믿음에 대한 새로운 성경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히 로마 카톨릭 교회하고는 극한의 논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자, 이렇게 초기의 종교개혁자들, 특별히 칼빈은 구원의 확신을 어디에 기초했느냐면, 그리스도 위에, 그리스도 공로 위에 놓았다. 이 믿음은 누구를 향한 믿음이냐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다. 성경에서 믿음은 어떤 서술적 형용사가 붙지 않은 개인 신념으로서의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믿음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다. 사람과 그리스도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성경적 용어가 믿음이다. 어쨌든 믿음의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것을 성경은 다른 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은혜라고 말한다.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결국 그리스도의 은혜 위에다가 무엇을 두었냐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므로 구원의 확신을 그리스도 위에 두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고 세례받고, 교회의 일원이 되면 누구든지 구원의 확신은 마땅히 가진다고 보았다. 가지려고 노력할 것도 없고 가진다고 보았다. 그러니까 구원의 확신은 개인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주관적인 체험이 아니고 믿을 때 주어지는 결정적인 요소라고 하였다. “아! 나는 이제 구원 받았구나 하나님의 자녀이다. 천국의 영광이 내 것이다. 나는 이제 이리 가나 저리 가나 하나님 나라 간다. 아무리 고난당해도 마침내 하나님 영광의 나라에 이른다.” 그런 확신이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개혁 후 시대, 탈 종교개혁시대에 접어들면서-그러니까 종교개혁 1세대가 세상을 떠나고 종교개혁 후 시대에 접어들면서 구원의 확신은 믿음과 결부되어 있는 구원의 확신이 무엇과 같이 논의되기 시작하냐면, 중요하다, 논쟁점의 핵심이다. 후기에 접어들면서 이 구원의 확신이 성화와 관련되어 논의되기 시작한다. 무슨 말이냐면 순종, 헌신, 도덕적인 개선은 점진적 성화. 성화에는 확정적 성화가 있고 점진적 성화가 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의롭게 될 때 그들은 이미 거룩하게 된다. 확정적이다. 그러나 확정적 성화 이후에 점진적인, 윤리적인 변화, 개선으로서 점진적 성화가 있다. 그러니까 점진적 성화와 함께 구원의 확신을 같이 다루기 시작하였다. 후대에 들어서.

그것이 무슨 변화냐고 말할 사람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큰 변화이다. 칼빈은 믿음과 확신이 동시적이라고 가르쳤다. 나중에 가면 성화하고 확신 이렇게 되면서 성화하고 확신을 다루어지면 무드는 확실히 달라진다. 아까는 결정적으로 주어진다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실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몸부림쳐야 한다. 잠자고 놀고, 기도 안하면 구원의 확신은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또 이 상태에서는 구원의 확신을 확고부동하게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왔다 갔다고 할 수 있다고 잔 오웬이 나중에 주장한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구원의 확신도 그 사람의 성화의 정도에 따라 그 수준과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알고 있는 구원의 확신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가 성화와 확신 쪽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산기도 가야겠구나, 잘먹고 편안했더니 이렇게 되었구나, 나를 스스로 채찍질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교회 안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주식시세만 보고 집 값 올라갔는지 본다. 슬픈 일이다. 한국교회에 여기에 고민이 없다. 과거에는 구원의 확신이 있느냐, 성화가 있느냐고 고민했는데 한국교회가 잠든 지 오래 되어서 그런 것으로 고민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자신의 점진적 성화를 위해서 구원의 확신을 위해서, 죄를 끊어 버리기 위해서 기도원에 올라오는지 살펴보면 놀랄 것이다. 하나같이 기도제목이 실용적이다. 굉장히 실천적인 동기가 기도의 동기라고 말한다. 이것은 신앙의 순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영적인 관심사보다 현세적인 관심사가 너무 지배적이라고 말해도 절대로 틀리지 않는다. 어쨌든 성화가 확신과 결부되면서 매우 실천적인 내용이 확신과 함께 논의되기 시작한다. 어떻게 하면 확신을 찾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확신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 올릴 수 있겠는지, 어떻게 하면 잃었던 확신을 다시 회복하게 되는지, 우리는 매우 목회적이고 실천적인 장르 안에서 구원의 확신을 다루게 되었다. 종교개혁 후 시대에는.

따라서 후대에 가면 구원의 확신은 구원하는 믿음의 불가피한 요소로 인식되기보다는 신자 각자의 성숙에 따른 개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해하는가? 이렇게 변화되었다.

자! 이런 변화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안에서도 그대로 감지된다. 1647년에 작성된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보면 두 가지를 확실히 나누고 있다. 거기에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있다. 믿음 다루고, 믿음 다룰 때 확신을 같이 안 다루고 확신을 따로 다룬다. 분리했다. 후대의 발전적 경향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초기 칼빈의 사상보다는 칼빈의 후예들의 사상과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일체성을 강조했다. 믿음과 확신의 일체성을 강조했는데 후대에는 개별적인 것으로 따로 다룬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겠는가? 1647년에 작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소위 말하면 칼빈의 원래적 사상보다는 후대의 발전된 칼빈주의자들의 사상을 더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실제로 신앙고백서를 보면 믿음과 구원의 확신을 분리해서 서로 다른 장을 각각 할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둘을 비연속적인 관계 안에서 다룬다. 둘이 마치 아무 관계없는 것처럼 따로 다른 장에서 다루고 있다. 이렇게 됨으로써 구원의 확신을 다룰 때 성화를 토대로 다루는 것이 칼빈 신학에서 허용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칼빈 신학에 없던 것을 후대가 새롭게 고안한 것인지? 문제가 되고 있다.
 
만약 칼빈이 살아있다면 이런 식의 구원의 확신에 대한 접근을 두고 동의하겠는지? 반대할 것인지? 그것을 두고 칼빈주의자들 안에서 양분되어 다투고 있다. 그래서 이런 발전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긍정적으로 보는 대표적인 인물이 누구냐면 벨카우어, 칼 바르트 이런 사람들은 그런 발전을 칼빈 신학에서 암시되고 있던 것을 자연스럽게 계승해 낸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후대의 변화에 대해서 칼빈의 신학을 제대로 계승했다고 보는 사상을 가장 최초로 표명했던 사람이 하나 있다. 가장 먼저 들고 나온 사람이 윌리엄 커닝햄이다. 로버트 댐리, 찰스 하지. 우리가 알고 있는 정통 칼빈주의 신학자들은 하나같이 후대의 발전은 칼빈의 사상의 계승이라고 본다. 그런데 그것을 칼빈의 신학사상의 계승이라기보다는 칼빈의 신학사상으로부터의 이탈이다. 그것은 칼빈이 승인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신학적인 개조라고 보는 사람이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로버트 켄달(R. Kendall), 윌리엄 리즐이다. 그래서 지금도 칼빈주의 안에서 지금도 논쟁중이다. 최근에는 누가 다수냐. 이게 다수다. 후대 칼빈주의자들의 개별적인 분리 믿음과 구원의 확신을 쉽게 말하자면 믿는다고 꼭 구원의 확신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그런 입장이 칼빈이 가르쳤던 사상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칼빈주의의 발전이라는 것은 결국 칼빈주의의 사상의 이탈이라고 보는 입장이 일반적인 학계의 주류이다. 이것이 구원의 확신에 관해서 학문적 경향이 어디로 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을 발전이라 보지 않고 개조라고 보는 사람들이 주류이다. 결국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칼빈의 사상과 달라진 것으로 본다. 그런 사람들이 학계를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이 논쟁 안에 뛰어 들면, 만약에 이런 논쟁 안에 뛰어들게 되면 구원의 확신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원래 논쟁을 통하면 사상이 분명해진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의 성경적인 이해를 제시할 생각이다. 일단 이런 큰 그림을 이해하고 수업에 들어오도록 그렇게 하시길 바란다.

자! 그렇다면 이런 논쟁이 왜 벌어졌는가? 근데 이런 논쟁이 벌어지게 된 사실, 어떤 단초는 칼빈신학 안에 내재되어있다. 가만 보면, 칼빈신학이 그만한 여지를, 이런 식의 논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도록 어느 정도 여지를 준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칼빈신학을 보면, 왜냐하면 칼빈은 두 가지 사실을 다 가르쳤기 때문이다.

첫째는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믿음의 수동성을 가르쳤다. 믿음은 주어지는 것이다. 그 주어지는 믿음 안에 구원의 확신도 같이 필연적으로 주어진다고 가르쳤다. 그렇게 끝나면 좋은데 칼빈은 동시에 무엇을 가르쳤느냐? 어떤 사실로부터 정당하게 유추된 지식으로서의 믿음의 능동성도 가르쳤다. 어떤 사실로부터 즉 어떤 A라는 사실로부터, 어떤 사실 하나를 유추, 지극히 정당한 지식의 유추라고 한다면 유추된 지식도 믿음의 내용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해하는가? 이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

이방 여인이 자신 아들이 병 낫기를 위해서 기도할 때 뭐라고 했는가? 구할 때 내가 이방인을 위해 보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보냄을 받았다라고 할 때 그 여자가 뭐라고 했는가?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얻어먹지 않습니까? 그러니 은혜의 부스러기라도 내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그 여자의 믿음을 보시고 은혜를 베풀었다. 그것이 사실이란 말이다. 근데 그 사실로부터 정당한 유추를 가능하게 한다. 누구든지 나가서 주님께 구하면 주신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예도 있다. 상에 들림 받아 가지고 내려온 중풍병자가 나음 받았다. 그런데 그때 낫게 하실 때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시고 낫게 하신 것이 아니고, 침상을 지붕을 뜯어서까지 내렸던 네 명의 친구들의 믿음을 보고 침상에 누워있는 중풍병자를 고쳐 주신 것을 잘 안다. 우린 이 사실을 놓고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가?
 
비록 어떤 이유든 그가 그리스도를 의식적으로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있을 때 그의 친구나 그의 부모나 형제의 믿음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면 성경적인 하나의 근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완전히 교리로 굳히기는 어렵다고 할지라도. 꼭 주의하셔야 된다. 교리화하는 것과 정당한 유추는 다른 것이다. 예를 들면 그 침상에서 내려온 중풍병자의 나음을 근거로 해서 본인이 믿지 않아도 부모나 형제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곤란하다. 그것을 교리화하는 것은 안 된다. 그러나 정당한 유추는 가능하다.
 
예를 들면 불가피한 상황 즉 어린아이, 자녀들, 아직 자녀들은 스스로 믿거나 결단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 그럴 때 부모님 믿음에 의탁하고 유아세례를 주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에 동참하게 하는 이것은 성경적 근거가 있고 지지받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믿을 수 있는데도 믿지 않고 다른 사람의 믿음에 의탁해 구원 받는 것조차도 거기 다 포함시켜 교리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어쨌든 이런 어떤 하나의 사실로부터 정당한 유추를 함으로써 그 유추를 지식의 내용물로 가지데 되는 것. 그것도 믿음이라고 칼빈이 말함으로써 믿음의 능동성을 이야기 하였다.

좀 더 쉽게 실천적 삼단논법을 보면,
1. 어떤 사람이 X를 행함으로써 구원을 받는다.
2. 하나님의 은혜로 X를 행하였다.
3. 그러므로 나는 구원에 이른다.

이것이 실천적인 삼단논법이다. 이런 식의 접근을 칼빈이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신학 안에 이런 요소가 있다. 단순하게 예를 들면 위의 첫 번째 요소만 믿고 끝내는 것이 아니고, 그 다음 그것으로부터 유추된 어떤 사실들을 믿음의 내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식의, 소위 말하면 믿음의 능동성, 단순하게 믿음을 지식으로 생각하고, 칼빈이 제일 먼저 강조했던 믿음의 요소가 무엇인가하면 지식이었다.
 
그 지식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내가 받음으로써 구원의 확신을 받는다고 수동성도 강조했고, 동시에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함으로써 그 순종을 통해 내가 성화되어가고 성화를 통해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고 가르친 적도 있다. 그런데 그 행함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함으로써 일종의 신인협동설을 닮은 듯이 보이지만 아직 믿음의 능동성을 강조하는 측면도 있었다.

칼빈의 신학 안에, 그러니까 후대의 칼빈주의자들이 바로 이런 믿음의 능동성을 더욱 더 체계화하고 그것을 광범위하게 발전시켜 나갔던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찰스 하지 같은 긍정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도 있었고, 켄달 같은 사람들은 이런 식의 발전은 칼빈이 모르는 것이었다고 보는 것, 한마디로 말한다면 칼빈은 믿음의 능동성은 가르치지 않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믿음과 확신의 관계를 규명하고자 할 때 구약에서 소개하고 있는 하나님의 행위에 관한 진술들을 보면 지금 우리가 규명하려고 하는 믿음과 확신 사이의 관계를 구약에 있는 내용만 가지고는 제대로 충분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명확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면, 예를 들면 그의 믿음이 여호와와 그의 약속에 대한 확신을 수반하는 것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믿음을 가지고 가나안 땅을 향해 출발할 때 그의 믿음 안에 확신이 있었냐고 물으면 확신이 있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니까 성경이 구체적으로 명시적으로 아브라함의 믿음 안에 확신이 있다고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닌데 그의 믿음을 보면 확신이 있었다고 추정할만한 충분한 근거는 있다.

또 구약성경의 시편을 보면 시편의 저자들이 비록 불안이나 회의를 품고 있기는 해도 아브라함과 유사한 어떤 하나님께 대한 확신을 피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침내 내가 구원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마침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다’라는 확신은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시편 22편, 40편, 130편을 보라. 거기에 보면 처음에 굉장히 불안해한다. 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 언제까지 나의 기도에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이렇게 회의로 시작한다. 시편의 1/3이 회의이다. 낙심, 좌절, 이런 슬픔이다. 그러나 언제나 공통점은 끝날 때는 언제나 확신으로 끝낸다. 나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찬양하리이다. 이런 확신들이 있다.

그러나 신약성경만해도 다르다. 신약성경에는 좀 더 명시적으로 딱 말한다. ‘믿음이 곧 확신이다’라고 말한다. 대표적인 성경구절이 히 11:1을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니” 이것이 본문이 의도한 신학적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왜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이것이 무슨 말인가? 사실 실상이라는 말이 문자적인 번역이긴 한데 그것이 정확하게 정곡을 못 찌르는 것이다. ?π?στασι?(휘포스타시스), ‘실상’이란 원래에 영어성경에 보면 ‘Now faith is the assurance of things hoped for...’, ‘실상’이라는 말을 어떻게 번역했냐면 영어<NASV>는 ‘assurance’라고 이렇게 번역했다. ‘믿음은 우리가 희망하는 것들에 대한 확신이다’라고 했는데 왜 ‘실상이다’라는 말이 왜 나왔느냐 하면 이 ‘assurance’의 헬라어가 ‘?π?στασι?’, ‘?π?’는 ‘under', ‘아래’라는 말이고 'στασι?'는 'to stand' '서다'라는 말이다. '무엇 무엇 아래 서다'라는 말이다.

이 ‘?π?στασι?’의 일반적인 고대 헬라어에서의 용법이 무엇인가 하면 ‘권리증서’, ‘보증서’ 혹은 ‘매매계약서’이다. 어쨌든 일단 겉으로 봐도 분명히 신약성경이 가르치고 있다. ‘믿음은 확신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니”라고 하는데 이 ‘증거’가 영어 성경에는 무엇이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 ‘the conviction of things not seen’, ‘the conviction’ ‘확신’, ‘of things not seen’, ‘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확신이다’라고 한다. 어째든 확정성을 말한다. 그러니까 두 번씩이나 반복하는 것이다. 믿음이란 확신이고 그건 확정이다. 그럼, 믿음이 무엇이냐? 확신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칼빈은 믿음을 구원의 확신이라고 본 것은 이 성경이 가리키고 있는 믿음의 속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고 성경적인 가르침을 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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