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서 영적 유익을 얻기 위해 주목할 부분(성경과 죄)

 

아더 핑크

 

1. 말씀이 우리를 죄 있는 자라고 가르칠 때에 우리는 말씀에서 영적 유익을 얻는다.

2.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죄에 대해 슬퍼하게 가르칠 때에 우리는 말씀에서 영적 유익을 얻는다.

3. 하나님 말씀의 인도하심으로 죄를 고백할 때 우리는 말씀에서 영적 유익을 얻는다.

4. 성경 말씀이 읽는 이로 하여금 죄를 심히 미워하게 만들 때 우리는 말씀에서 영적 유익을 얻는다.

5. 하나님 말씀으로 인해 죄를 버리게 될 때 우리는 말씀에서 영적 유익을 얻는다.

6. 하나님 말씀을 통해 죄에 대해 강력히 저항하게 될 때 우리는 말씀에서 영적 유익을 얻는다.

7. 말씀이 그것을 읽는 이로 하여금 죄와 반대되는 것을 행하게 만들 때 우리는 말씀에서 영적 유익을 얻는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성경을 읽고 공부했지만 사람들이 영적인 유익을 별로 얻지 못했다는 데에는 어떤 중대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참으로 우리는 이보다 더한 경우를 볼 수도 있다. 즉 성경 공부가 축복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저주가 되었다는 예를 종종 접하게 될 때 우리는 크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 같은 말이 심한 경우를 보여주는 말임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 같은 사례의 심각성 그 자체보다 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사는 남용될 수 있으며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 또한 오용될 수 있는데 이런 사실이 말씀 공부에서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은 그 열매를 통해 명백히 드러나는 사실이다.

본성에 속한 사람도 과학을 연구하듯이 큰 열정과 기쁨을 갖고 성경 연구에 착수할 수 있는데, 이 경우에는 지식의 양이 늘어나는 만큼 그의 자만심도 커지게 마련이다.

흥미 있는 실험에 열중하는 화학자처럼 성경을 지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은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었을 때 참으로 자만하게 된다. 그렇지만 후자의 기쁨이란 전자의 기쁨만큼이나 영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화학자가 성공하면 자만심이 커져서 자기보다 무지한 사람들을 멸시하기 쉽듯이, 성경 속의 숫자나 예표나 예언이나 그 밖의 다른 주제들을 연구한 사람들도 이 같은 경우에 속할 때가 많다.

 

성경을 대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동기가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문학적 자부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성경을 읽는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성경을 모르면 교육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단순히 성경의 일반적 내용을 습득한다는 것이 존경할 만한 일이며 인기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다른 유명한 글을 읽어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듯이 그런 목적으로 성경을 읽는다.

또 다른 이들은 자기들만의 특정한 자만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성경을 읽으며, 또 자기 교단의 특성을 보여주는 구절들을 외우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하며 "자기네 교리"를 뒷받침하는 구절들만을 열심히 찾는 사람들도 있다. 또 다른 이들은 자기들과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공박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일에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나 영적으로 세움을 받으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 혼이 아무런 유익도 얻지 못한다. 그렇다면 성경 말씀에서 얻을 수 있는 참된 유익이란 무엇인가?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에 명확한 해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라"

이 내용 중에서 혹시라도 빠진 것이 있는지 살펴보라! 성경은 우리의 지적 만족이나 세속적 사색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니다. 성경을 주신 목적은 가르치고 책망하고 바로 잡음으로 우리로 하여금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다. 이제 이 말씀의 의미를 더 명확히 찾아보기 위해 다른 구절들도 인용하도록 하겠다.

 

1. 말씀이 우리를 죄 있는 자라고 가르칠 때에 우리는 말씀에서 영적 유익을 얻는다.

바로 이것이 말씀의 첫 번째 기능이다. 그러므로 말씀은 우리의 타락함을 드러내며 우리의 더러움을 밝히 드러내며 우리의 사악함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우리의 도덕 생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수도 있으며 인간관계가 나무랄 데 없이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사람의 마음과 양심 속에 말씀을 적용하사 죄로 가려진 눈을 뜨게 하시고 그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 및 태도를 바라보게 하실 때에 비로소 그 사람은 대언자 이사야 같이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하고 울부짖게 된다. 참으로 구원받은 영혼은 이런 식으로 예수님의 도우심과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되, 온전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필요하나니"(눅 5:31).

참으로 성령님께서 자신의 능력으로 말씀을 적용하실 때에야 비로소 모든 사람은 자신이 병들었으며, 병들어 죽게 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인간의 본질 속에 죄가 이루어 놓은 황폐한 자취들이 있다는 것을 마음속에서 확신하는 일은 회심한 이후에 즉시 일어나는 초기 경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으로 내 마음속에 축복을 내리실 때마다 나는 그분께서 내 앞에 세우신 기준 즉 "오직 너희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 같이 너희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할지니"(벧전 1:15) 라는 기준에서 내 자신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으며 또 내가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 다음과 같이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성경 속에서 여러 사람들이 비참하게 실패한 것을 읽을 때에 그 사실이 나로 하여금 나도 저들처럼 비참한 상태에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가?

또 그리스도의 복되고 완전한 삶에 대해 읽을 때에 그 사실이 나로 하여금 나는 그분에 비해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해주는가?

 

2.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죄에 대해 슬퍼하게 가르칠 때에 우리는 말씀에서 영적 유익을 얻는다.

돌밭과 같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는 자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나니."(마 13:20,21) 한편 오순절 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의 가책을 느낀 자들에 대해 성경은 "그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행 2:37)고 기록한다.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모습이 그대로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교자의 수사학적 능력이나 지적 기교를 보여주는 화려한 설교나 '세대주의적 진리' 등을 담은 말씀을 듣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대개 이런 것들은 양심을 꿰뚫는 침투력이 없다. 사람들은 이 같은 설교에 수긍은 하지만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든지 혹은 가깝게 접근하려 들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여 자신의 "지적 탁월함"에 대한 명성을 얻으려고 힘쓰지 않는 신실한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인용하여, 훌륭했던 하나님의 사람들조차도 비참하게 실패했었음을 보여주며 신자들의 성격과 행동의 지침을 삼게 해야 한다.

 

비록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설교자를 멸시할지 모르지만 참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자신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하고 슬피 울며 부르짖게 해주는 그 말씀에 고마움을 표할 것이다. 성경을 홀로 읽을 때도 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 성령님께서 이와 같은 방법으로 말씀을 적용시켜 주실 때에 우리는 자신의 부패함을 바라보며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예레미야 31장19절에는 "내가 교훈을 받은 뒤에 내 볼기를 쳤나이다. 내가 부끄럽고 참으로 당황하기까지 하였나이다." 라는 말씀이 있다. 독자 여러분은 이 같은 체험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가? 성경 공부를 통해 상한 마음을 갖게 되고 하나님 앞에 스스로를 겸손하게 낮추어 본 적이 있는가? 성경을 공부하면서 스스로의 죄를 깨달아 매일 같이 하나님 앞에 회개해 본 적이 있는가? 유월절 어린양은"쓴 나물"(출 12:8)과 함께 먹어야만 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때에도 성령님께서는 그것이 우리 입에 달게 되기 전에 쓰게 만드신다. 계시록 10장 9절의 "내가 그 천사에게 나아가 말하되, 그 작은 책을 내게 주소서, 한즉, 그가 내게 말하되, 이것을 가져다가 먹으라. 이것이 네 배를 쓰게 할 것이나 네 입에서는 꿀같이 달 것이라, 하거늘" 말씀에서 순서를 자세히 살펴보라. 이것이 바로 영원토록 적용되는 실증적 순서이다. 위로 받기 전에 먼저 애통함이 있어야 하며(마 5:4) 높임을 받기 전에 먼저 겸손함이 있어야 한다(벧전 5:5).

 

3. 하나님 말씀의 인도하심으로 죄를 고백할 때 우리는 말씀에서 영적 유익을 얻는다.

성경은 "책망"(딤후 3:16)하기에 유익하므로 정직한 사람은 말씀을 통해 자기의 허물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세상에 대하여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고 또 빛으로 나아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자기 행위를 책망 받을까 함이요"(요 3:20) 라고 말하고 있다.

거듭난 마음의 소유자는 "하나님이여,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부르짖게 된다. 말씀으로(시편 119편) 새롭게 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범죄한 사실을 깨닫게 되고 우리의 죄를 자백하게 된다.

"자기의 죄들을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들을 시인하고 버리는 자는 다 긍휼히 여김을 얻으리라"(잠 28:13).

우리가 마음 한가운데에 죄를 숨기고 있으면 결코 어떤 영적 성장이나 열매(시 1:3)를 기대할 수 없으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숨김없이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맛볼 수가 있다. 우리의 양심이 고백하지 않은 죄로 눌려 있으면 평안이 있을 수 없으며 우리 마음 한가운데 진정한 휴식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께 온전히 모든 죄를 털어놓을 때에 비로소 안식이 찾아온다.

다윗이 체험한 고백을 들어보자.

"내가 잠잠할 때에 하루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들이 쇠하였나이다. 밤낮으로 주의 손이 나를 무겁게 누르오니, 내 진액이 여름 가뭄에 마른 것 같이 되었나이다. 셀라"(시 32:3,4).

당신은 상징적이면서도 강한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가? 혹은 당신 자신의 신앙의 역사를 통해 이 말씀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개인의 체험 없이는 도저히 만족스런 해석을 할 수 없는 성경구절들이 많이 있다.

다음 구절에 나오는 말씀은 참으로 매우 복된 말씀이다.

"내가 말하기를, 나의 범법한 것들을 주께 고백하리이다, 하고 주께 내 죄를 시인하고 내 불법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주께서 내 죄의 불법을 용서하셨나이다. 셀라"(시 32:5).

 

4. 성경 말씀이 읽는 이로 하여금 죄를 심히 미워하게 만들 때 우리는 말씀에서 영적 유익을 얻는다.

"주를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악을 미워하라."(시 97:10).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미워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우리는 악을 피하고 그 속에 계속 머물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악을 대항하고 마음속으로 그것에 분개해야 한다."(C. H. 스펄젼).

회심했다고 고백한 후에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시험은 죄에 대한 마음의 태도이다.

거룩한 생활의 원칙이 마음에 세워지면 거룩하지 못한 모든 것을 미워할 필요가 있다. 만일 우리가 죄를 미워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죄악을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감사하게 된다.

다윗의 경험을 보라. "주의 교훈들을 통해 내가 깨달음을 얻으므로 모든 거짓된 길을 미워하나이다."(시 119:104). 이 말씀을 잘 살펴보면 거짓된 길을 "단지 삼가는" 정도가 아니라 "미워하며", "일부 혹은 몇 가지"가 아니라 "모든 거짓된 길"이며 단순히 "모든 악"이 아니라 "모든 거짓된 길"인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모든 것에 관한 주의 교훈들을 바르게 여기며 모든 거짓된 길을 미워하나이다"(시 119:128).

그러나 사악한 자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반대의 말씀을 하신다.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시 50:17).

잠언 8장 13절을 보면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 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말씀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다.

신명기 17장 18-19절을 보라. "그가 자신의 왕국의 왕좌에 앉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있는 것에서 이 율법을 책으로 한 권 필사하여, 평생토록 자기 곁에 두고 읽어서 주 자기의 하나님 두려워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법규를 지켜 행할 것이니라."

다음의 말은 이에 대해 아주 바르게 설명해 주고 있다.

"죄를 미워하기 전까지는 결코 죄를 죽일 수 없다. 마치 유다인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고함을 지르며 그분을 증오했던 것처럼 참으로 그렇게 죄를 미워하지 않고는 결코 울부짖으며 죄를 대적할 수 없을 것이다."(E. 레이너 1635).

 

5. 하나님 말씀으로 인해 죄를 버리게 될 때 우리는 말씀에서 영적 유익을 얻는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다 불법에서 떠날지어다"(딤후2:19).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이며 주님이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더욱 더 잘 알 수 있다.

더욱이 우리의 마음이 주님과 함께 바른 관계에 있다면 우리의 생활 방식도 그 말씀에 더욱 부합될 것이다. 이를테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요삼 4절)이 있게 된다. 고린도후서 6장 끝 부분을 보면 자신들을 불신자들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사람들에게 주신 귀한 약속 몇 가지가 있다. 성령님께서 이것들을 어떻게 적용하시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라. 그분께서는 "이 약속을 가진 자들이여, 그러므로 위로를 받고 안심하라" 고 하시지 않고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이 하자"(고후 7:1) 고 말씀하신다.

"이제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깨끗하게 되었으니"(요 15:3).

이 말씀에는 우리가 늘 우리 자신을 시험해 보아야만 하는 중요한 규칙이 들어 있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하여 우리의 행위를 깨끗하게 하고 있는가?

구약의 시편 기자는 이런 질문을 하였다.

"청년이 무엇으로 자기의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하나님은 이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신다.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라". 옳은 말씀이다. 말씀을 단순히 읽고 믿고 기억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우리의 "행실"에 적용시킴으로 깨끗함을 받을 수 있다.

"음행을 피하라"(고전 6:18),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고전 10:14), "이것들을 피하라-즉 돈을 사랑하지 말라“(딤전 6:11),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딤후 2:22).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버리고 떠나기 위해서는 위의 사항들을 삶에 적용시켜야 한다. 죄는 단지 고백하는 차원을 넘어서 "버려야"(잠 28:13)하는 것이다.

 

6. 하나님 말씀을 통해 죄에 대해 강력히 저항하게 될 때 우리는 말씀에서 영적 유익을 얻는다.

성경은 우리의 본성에 따른 죄를 나타내주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롬 3:23) 여러 가지 면들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죄로부터 구원받고 하나님을 노엽게 만드는 길에서 떠나는 방법들을 제시해주고 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숨겼나이다"(시119:11).

이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요구되는 실천 사항이다.

"청하건대 너는 그분의 입에서 법을 받고 그분의 말씀들을 네 마음에 쌓아 두라"(욥 22:2).

이 말씀은 우리가 특별히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귀중히 여길 필요가 있는 명령이며 권고며 훈계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하며 묵상하는 가운데 기도로 실천에 옮겨야 하는 것이다.

땅에서 잡초가 자라는 것을 막으려면 좋은 씨를 뿌려야 한다.

"악에게 지지 말고 도리어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더욱 "풍성히"(골 3:16) 거하면 거할수록 죄가 우리의 마음과 삶 속에서 활동할 자리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성경이 진리임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다고 볼 수 없다. 우리는 성경을 사랑을 가지고 애착심을 가지고 받아야 한다. 성령님께서는 사람들이 배교하는 이유가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기"(살후 2:10)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단지 입술이나 마음속에만 두고 이야기 거리나 사색 거리로 삼는다면 곧 그 말씀이 사라지고 만다. 땅 표면에 놓인 씨앗은 공중의 새들이 물어가고 만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땅속 깊이 묻어야 한다. 말씀을 귀로 듣고 생각 속으로 넣고 그 뒤 마음속에 깊숙이 새기고 다시 새겨 마음 깊숙이 잠기게 해야 한다. 말씀을 사랑으로 받는다는 것은 말씀이 마음속에서 우선권을 갖는다는 것이다. 말씀을 우리의 정욕보다 더 소중히 여길 때 말씀이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T. 맨튼)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은 결코 미끄러지지 아니하리로다"(시 37:31).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세상의 나쁜 영향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사탄의 유혹에서 건져 주며 죄에 대한 효과적인 예방법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진리가 우리 안에서 활동하고 양심을 움직이며 우리가 진정으로 진리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결코 실족하지 않을 것이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유혹을 받들 때에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하리이까?"(창 39:9) 라고 말하였다. 말씀이 그의 마음속에 있어 그의 정욕보다 더 큰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말로 다할 수 없이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구원하실 수도 있고 멸망시키실 수도 있다.

"너희 가운데 누가 이 일에 귀를 기울이겠느냐? 누가 다가오는 때를 위하여 귀를 기울이고 듣겠느냐?"(사 42:23).

그렇다. 앞으로 다가올 비상 사태에 대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저장해 둠으로써 미래를 예견하고 방어해야 하는 것이다.

 

7. 말씀이 그것을 읽는 이로 하여금 죄와 반대되는 것을 행하게 만들 때 우리는 말씀에서 영적 유익을 얻는다.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율법도 범하는 것이니 죄는 곧 율법을 범하는 것이라"(요일 3:4).

하나님께서는 "너는.....을 하라"고 말씀하시지만 죄는 "나는......을 하지 않겠다" 말하며, 하나님께서 "너는.....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 죄는 "나는 .....을 하겠다"고 대답한다. 이와 같이 죄는 하나님께 반항하는 것이며 자기 갈 길로 가고자 하는 결심하는 것이다(사 53:6).

또한 죄는 영적 세계에 존재하는 일종의 무정부 상태이며 하나님 앞에서 붉은 기를 드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불법을 행하지 않으려면 법에 굴복해야 하듯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않으려면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이처럼 죄와 반대되는 길로 걷기 위해서는 순종의 길로 걸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성경을 주신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을 깨닫게 된다. 또한 성경은 책망과 바르게 함을 위해 유익할 뿐만 아니라 의로 교육하기에도 유익한 것이다.

여기에는 반드시 우리 자신을 시험해 보아야 하는 중요한 사항이 있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사고를 형성하고 있으며 내 마음을 지배하며 내 길과 행실을 통제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요구를 하신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감사의 표현 방법을 보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명령들을 지키라"(요 14:15). 이를 위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나로 하여금 주의 명령들의 길로 들어가 걷게 하소서. 내가 그것을 기뻐함이니이다"(시 119:35). 이것이 바로 다윗의 기도였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가는 길을 보여 줄 빛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행하고자 하는 마음도 필요하다. 우리의 마음은 어두운 고로 지침이 필요하고 우리의 마음은 연약한 고로 은혜의 역사가 필요하다. 만일 우리가 진리를 받아들이고 따르지 않는다면 진리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다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맨튼).

진리를 받아들여 죄와 반대되는 것을 행하는 것이 "주의 명령의 길"임을 유의하라. 이 길은 자신이 선택하는 길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명백히 제시된 길이며, 누구나 다 아는 "큰 길"이 아니라 개인만이 아는 "좁은 길"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 같이 위에서 열거한 7 가지 사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그리고 열심을 내어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우리의 성경 공부가 우리 자신을 더욱 겸손하게 만들었는가?

혹시라도 지식을 얻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지는 않았는가?

성경공부가 우리 자신을 친구보다 더 높은 존재로 만들어 사람의 존경을 받게 만들었는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좀더 겸손하게 만들었는가?

성경 공부가 자신의 죄성에 대한 혐오감과 증오심을 유발시켰는가? 아니면 자신에 대한 깊은 만족감을 주었는가?

우리가 교제하거나 가르치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나도 저 정도의 성경 지식을 가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탄식하게 만들었는가? 아니면 그들로 하여금 ‘나의 선생님이나 친구에게 주셨던 믿음과 은혜와 거룩함을 주소서!’ 하고 주님께 기도하도록 만들었는가?

"이것들을 묵상하고 네 자신을 이것들에 온전히 드려 너의 진보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 4:15).

 

아더 핑크의 "성경은 언제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가 - Profiting from the Word"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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