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더 핑크의 회심과 회심 후의 초기의 영적인 삶 (이얀 머레이) 

 

 

아더 핑크가 강신술에 발을 깊이 들여놓은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입문 과정에서 중도 하차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불과 20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속한 주의 가장 두드러진 연설자 중의 하나였다. 
사실 그는 자신을 강신술계의 주도적 역할을 맡은 떠오르는 별들 중의 한 사람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그의 부모님이 이런 사실을 알고 나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매일 아들이 집에 들어와서 자신의 이층방으로 올라갈 때마다 성경 구절 하나씩을 일러주는 것이었다. 
대개 그런 모습은 핑크가 급히 자기 침실로 들어가려고 아버지를 지나칠 때 핑크의 귀에 그냥 성경말씀이 들리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평소 때와 다름없이 핑크는 아들의 귀가를 기다리는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그를 지나쳐 자신의 침실로 올라가려던 중 늘 그렇듯이 그의 부친이 일러주는 성경 말씀을 듣게 되었다. 
그 말씀은 잠언 14:12 말씀인,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이었다. 
그는 바로 그 주간의 모임에서 연설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이 말씀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급기야 연설 준비를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머리를 식히고자 욕실에 들어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갔다. 
그러나 그래도 이 성경 말씀은 떠나지 않았다. 무슨 일을, 무슨 생각을 하든 "어떤 길은..."의 말씀이 그를 괴롭혔다. 
그는 급기야 무릎을 꿇어 거의 3일을 아무 것도 먹지 않고 하나님께 울부짖기 시작하였다. 아래층에서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그의 부모도 함께 기도하였다. 3일 후 핑크는 자신의 침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구원이 없으며, 참 만족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아들이 나오자마자 아버지는 외쳤다.
"하나님께 찬양을! 내 아들이 구원받았으므로!"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의 직접적인 역사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핑크가 그 주간에 해야 할 연설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강신술 사교 모임에 참석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곳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의 유일성을 선포하기 시작했다. 여기 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고, 사람들은 핑크가 미치기 시작했다고 요동하였다. 급기야 갑작스런 휴식시간을 갖게 되었고, 핑크는 그 후로 강신술과 결별을 선언하였다. 강신술 모임의 사람들도 그를 멀리 하였다.

 

핑크는 훗날 이렇게 고백하였다. 
"영들과 교류한 메시지는 상당수가 진짜이다. 그러나 그 영들은 실제로 죽은 자들의 영이 아니라 그런 것처럼 가장한 악한 영들이다. 또 나는 강신술을 떠나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왔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만나보지 못했다." 
그러나 핑크는 언제나 자신의 회심 체험을 말하기를 주저하였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의 체험을 기준으로 삼아서 "회심의 체험은 반드시 이런 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까봐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회심과 동시에 목회로의 소명을 받았다. 이런 강신술로 인한 위기 후, 2년 동안 핑크는 직장을 계속 다녔다. 그러나 이제 그의 침대에는 늘 성경이 펼쳐져 있게 되었다.

 

매일 성경을 열장씩 읽었고, 열장씩 읽는 성경에 한 주간을 지내면서 ‘10분이나 10분 이상’ 그가 특별히 연구하려는 한 개의 특정 본문을 추가하였다. 
이에 덧붙여 그는 매일의 묵상을 위하여 책갈피 같은 종이에 특정 구절을 지니고 다니면서 휴식시간에는 하나님께 ‘이 말씀의 영적인 뜻을 알게 해주시고 이 말씀이 나의 마음에 새겨지기를’ 간구하면서 보려고 힘썼다.

 

이런 훈련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권하면서 그는 훗날, ‘필자는 시내 전차에서 에베소서의 전체 내용을 한 번에 한 구절로 요약하였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직장을 쉬는 날이면, 새로운 기쁨으로 성경을 보는데 10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성경 연구의 의도는 그의 일생이 복음 전하는 것에 있다는 확신과 맞물려 있었다.

 

그의 초기 생애 가운데 1934년 기록된 것을 짧게 요약하여 소개해본다. 그는 다음과 같이 하였다. 
‘나는 1886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16살에 직장에 들어갔고 그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주목할 만한 성공을 허락하셨다. 1908년은, 하나님께서 나를 나의 침실에서 구원하신 해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나는 그분이 나를 당신의 종으로 부르셨음을 알게 되었다.’ 
같은 해, 그는 그리스도인의 모임에서 처음으로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그는 그 해(1908년)를 1948년에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필자가 첫 번째 설교를 한지도 40년이 되었다. 그 때 처음 전한 본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롬 1:16)였다. 그 모임에 참석한 사람은 700명이 넘었다. 우리가 공석에서 처음으로 말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그 때는 아주 진땀을 흘렸었다. 특별하게는 노팅엄의 우리집에서 그러하였다.’ 

 

이언 머레이의 "아더 핑크의 생애", 회심과 회심 후 초기의 영적생활 중에서

 

 

출처: 포도나무선교회

생명나무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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