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퀴나스(1224-1274).

 

 

이탈리아의 로카세카에서 출생한 카톨릭신학자요 철학자이다. 아퀴노의 란돌포와 테오도라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5세 가량되었을때에 몬테카시노 근처에 있는 베네딕투스 수도사 밑에서 초보 학문을 닦기 시작했다. 또 나폴리대학에서 인문과목을 계속 공부하였다.

아퀴나스는 1224년 설교자단,곧 도미니쿠스회에 입단하기 이전에 이미 나폴리대학에서 인문과목에 능통하게 되었을 것이다.그는 도미니쿠스밑에서 공부하였다.1252년에는 파리대학으로 갔는데 이는 신학의 고급과정을 공부하기 위해서 였다.

그는 이 대학에서 강좌를 맡았는데 1256년까지는 신학자였다.1257년 이 대학의 교육가 되었다.

다소의 반대도 없지 않았으나,정식 교수가 된 아퀴나스는 파리대학에서 1259년까지 계속 가르쳤다.그후 아퀴나스는 로마 근교의 여러 도미니쿠스수도회에서 거의 10년간을 보냈다.이 동안 신학과 철학을 강의하거나,그 수도회에서 여러 자문 및 행정 직임을 수행했다.

1268년 가을에는 파리대학으로 돌아가,두번째 교수직을 시작하였다.그는 세가지의 논쟁에 개입하였다.즉 아퀴나스의 철학사상을 비판하는 일단의 보수적 신학자들과 싸웠으며 도미니쿠스수도사들과 프란체스코수도사들을 비판하면서 이들에게는 대학에서 교수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과 싸웠다.또한 아리스토텔레스 주의,곧가틴 아베로이스주이의 급진적 주창들과도 싸웠다.

아퀴나스이 많은 저작들이 대부분 이 시대에 나왔거나 완성되었다.이런 작업을 해내는 데는 비서의 도움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사실상 아퀴나스의 필체는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12723년 초에 프랑스의 리용으로 출발하였는데,이것은 교회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였다.악화된 건강으로 그가 자기의 출생지 근처까지 왔을 때 더 이상 여행을 할 수 없었다. 그는 그 해 3월 포사노바에서 세상을 떠났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작들은 그가 교수 활동을 하던 20년동안에 나왔다.모두 라틴어로 쓰여졌으며,긴 신학 논문들이 대부분이고,신학과 철학 논쟁에 관한 기록들,약간의 성서 주석,12개의 아리스토텔레스 논문들에 관한 해설 그리고 뵈티우스와 위디오니시우스,익명에 대한 주석서가 더 들어 있다.이밖에도 40편 가량의 단문,서한,설교,철학이나 신학 주제에 관한 짧은 글들이 있다.아퀴나스의 철학 견해는 그의 저작 어디에서도 엿볼수있지만,특별히 철학자들의 관심을 끄는 논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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