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내가 만난 하나님의 공의

짐보 ㆍ 2014-02-15 (토) 10:14


(빛)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1:1-4]
나는 이장을 읽을 때 마다 신묘(神妙 mysterious and march)한
세상의 시작을 보는 것 같아 묘한 마음이 들고
그중 “빛이 있으라” 는 의미에 뜻을 두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는
빛이 되어 세상에 오신 주님을 떠오르고
빛의 자녀가 되어 다시 빛으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심정이 된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1:9-12]
주께서 빛으로 오셨지만 세상과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고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Authority)을 주셨다.
자녀로서 공의의 하나님이신 공의를 본받아 진리의 말씀으로 행하여
나로 말미암아 세상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고 수없이 다짐했던 기역이 떠오른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5:14-16]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시고
우주 안에 지구를 창조하시고 창조물로 지구를 채우신 다음
제일 나중에 창조의 절정으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흙으로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복을 빌어 다른 피조물을 다스리고 보존하게 하셨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1:3-5]

빛은 세상을 비추어 어두운 세상에서 빛이 나듯이
빛은 죄를 드러나게 하고 빛은 있어야 생명이 있듯이
계시의 빛 인 말씀을 거울과 같이 비추어 자신을 바라보았고
이제도 다시 바라본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11:35-36]

어린 시절 추웠던 겨울날 아침밥을 거르고
보고 싶고 그리웠던 어머니의 사진을 바라보다 찢어버리고
울다 엎드린 방안의 창을 통해 창의 통해 비추는 햇살을 무심히 바라보다
빛 때문에 눈물을 그치고 유심히 바라본 빛살은
수많은 먼지를 비추고 나를 비추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방안에 수없이 많은 먼지가 있음을 알았고
먼지가 흩어져 날리며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날리는 모습이
아직까지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후 그 먼지가 내 내면을 잠식하는 죄였고 죄에 포로로 잡힌
하나님을 원망하는 어두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일은 마치 다메섹에서 빛을 만난 사울이 바울이 되었듯이
진리가 빛으로 닿아옴으로 어두운 슬픔과 어둠의 시간이 물러나는 축복이라
삶의 힘이 되었고 소망이 되어
종당엔 빛이 내 삶의 생명이 되었다.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사도행전22:6]

그분이 내게 빛이 섰다.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요한복음12:46]

그 복된 일은 주께서 내게로 오셨다는 기쁜 소식인 복음이고
복된 소식을 모든 이들에게 전해야 겠다는 결단을 하게 되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에베소서5:8]

복음의 구원은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속제 제물로 자신을 드리신 예수그리스도처럼
나를 산제사로 사는 빛의 자녀로
삶이 예배가 되는 하나님의 공의를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일꾼과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달게 되었다.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나갈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이사야51:4]

빛이 어둠을 비추듯
빛의 자녀로 빛이 되어 세상을 공의로 비추어
약육강식의 세상의 법칙이 죄임을 드러내는
세상의 화려한 문화가 유혹이며 선동임을 드러내어
하나님의 공의가 하늘에서 이루어 저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가치관의
기준이 빛의 자녀로 본을 보이는 생활이 산제사, 산 예배 이다.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요한복음3:21]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시편43:3]

성경을 읽으며
전에 갔었던 선입관으로 굳어진 의식을 버리고
나와 형제와 자매와의 관계를 투명한 하나님의 빛으로 다시 설정하고
“나”에서 “우리”로 (그것이 교회고)교회는 천국의 모형인 천국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서 지친 몸과 영혼이 안식하는 안식처고
“너”로 인해서 “나”로 인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형상을 회복하고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듯이 “내가 너를, 네가 나를”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가 된 지체로 말씀과 물질을 나누는
공동체를 회복하려는 탄식을 성령님으로부터 듣지 못한다면
어둠의 자식이요 가라지 라 빛으로 오신 주님을 온전히 알 수가 없다.
사랑이란
드라마 같은 눈물의 씨앗이 아니라 나로 인하여 네가 힘이 되고 내가 힘이 되는
서로를 향한 기쁨의 씨앗이라서
촛불처럼 나를 태워서 너의 빛이 되는 나의 진정한 기쁨이 되는 행위의 완성이라
나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시기하지 아니하고 자랑하지 아니하며
오래 참고 온유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
내게 진리란
사랑과 함께 하고
사랑의 가장 가까운 말은 긍휼이고
믿음의 가장 가까운 말은 분별이 되어
나는 너의 소망이 되고자 하는 작은 불꽃이고 싶었다.
그러다 쓰러진 적이 더 많아서
이제는 네가 나의 연약함을 메워주워야 하고
나는 너의 꿈이 되어야 한다...
어둠의 일을 벗어 버려야 가능한
성령님이 인도하여 주시는 깨달음으로.
사랑,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시기 까지 한 사랑
그 사랑이 성령에 의한 통치
그래서 모든 덕과 정의의 기본이고 기초인 사랑은 첫 번째 열매가 된다.
희락,
성령이 인도하신 구원의 기쁨 내외적인 기쁨은
상황과 환경에 지배받지 않는 기쁨이 된다.
화평,
어떠한 어려움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인간의 능력 밖의 평화 평안 평강
이것들 사랑과 희락과 화평이 기본이 되어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된다.
성령 충만 이란 빛이신 성령님과 완전히 일치한 빛의 자녀가 된
성령님께 사로잡힌 성령의 완전한 다스림임을 깨달게 되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로마서13:12]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119:105]

(우리는 여기서 글을 쓰고 읽고 토의를 하지만
자기주장에 반한 상대의 부족함에 비수를 감추고 끝장을 보려는 마음은
이미 그리스도를 떠난 자기 욕심의 파멸을 보여줄 뿐이다)
단언하건데
진리는 사랑과 함께 하기에
사랑이 결여된 진리는 진리를 가장한 지식이고 교만이다.
그리고 지식에 덕이 결여되면 넘어짐의 앞잡이 인 교만이 되기에
진리라 할 수 없고 진리는 지식의 배움으로 알 수 없을뿐더러
성령의 도움 없이는 불가 하다.
신학도 성경의 참고서 일 뿐 모든 신학이 진리가 아니듯.
성경의 덕이란
진리를 진리로 온전케 인도하는 일이라면
덕이란 상대의 마음의 중심을 보아 들보까지 용납하여
마음으로 순복(順服)하는 상대에 대한 배려이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간직한 자 만이 누리는 긍휼이라
토론에 결여된 덕이란
이미 다리가 성하지 못한 자의 절름발이 걸음으로
상대의 걸음을 탓하는 비난이다.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요한일서2:9]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미가7:8]

하나님의 공의를 잃어버린 혼란의 시대라
직분이 믿음의 척도로도 형편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여
이제는 세상의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간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성경은 계시의 문자의 언어이다.
계시가 무엇인가
사람의 이성으로 알지 못하는 하나님 자신을 직접 드러내시거나 알리시는 것을 뜻하고
성경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혜와 지식으로 인도하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신앙의 역사다.
우리보다 앞선 과거의 빛의 사람들이 남겨놓은 흔적을
이제는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어
세상에 속하여 살지만 세상에 동화되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변화시키는 빛으로 어둠을 비치는 흔적을 남겨놓아
우리의 후대가 우리의 발자국 같은 흔적을 따라 오듯이.
(흔적을 그런 흔적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문화” 다.
정신적 내면적인 공의의 문화...정직 정의 긍휼 자비 평등...
빛의 자녀로 만들어 가야 할 외적인 문화...신앙 공동체의 문화...)
이 시대 우리에게 무엇의 흔적이 있을까?
내게 무슨 흔적이 있을까?
사실 비관적인 비판이 앞선다.
도무지 요즘의 나와 교회는 성경적인 빛의 사람으로서 너무 멀리 동떨어져있다.
(바울과 같은 흔적이 있는가?)
도무지 정의 아니 정직만이라도 밥 말아 먹지 않았더라도
세상 사람으로 부터 인정을 받았을 텐데...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빛의 자녀라면서...
습관적으로 모이는 교회의 예배와 모임이 서로가 서로의 사정과 이름도 모르는 모임이
다음 세대에 무엇의 흔적을 남겨놓는단 말인가...?
일하라는 교회의 직분이 계급적인 수직적인 수동적 조직이 되어버리면
세상 방식의 관료주의자가 되어
독선적이며 형식적이고 획일적이여 억압적인 사고방식은 전혀
그리스도의 본받는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고
교회의 조직이 세상의 조직과 다른 점은 직분 맡은 지도자 책임자가 낮아져서
솔선수범하는 빛이 되어 자신을 태우는
그래서 물은 주었지만 성장케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소유의 의식과 운영의 개념마저 사라지지 않는 다면
종교의식과 껍질만 남은 건물에 자기만족으로 변한 자기복음 만 있을 뿐
세상은커녕 자신도 변화하지 못하고
어둠의 시대에 동참하는...

흑암의 죄의 세상에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소식을 전하는 복음이
세상에 알려줘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우리의 삶이 빛이 되어 세상의 빛이 되는 하나님의 공의,
이제는 우리 모두가 일어나 빛을 발하여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선포하는
삶으로 빛이 되어야 되지 않을까
다짐해 본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이사야60:1]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시편43:3]

빛 !
나날이
내가 듣고 싶었던 만큼 말하고 싶은 빛
내가 깨달은 만큼 보고 싶었던 빛
내가 갈증 내어
내가 목말라 했던 빛
내가 듣고 싶었던 구체적인 삶의 빛
그래서 매일 매일이
그래서 내 형편이 되어버린 빛

내가 갈망했던 세상을 향한 빛!                    

내 몸을 불살라
세상을 환하게 비추지는 못 하더라도
내 작은 행실에
내 작은 몸짓에
주위를 밝히는
꺼지지 않는
작은 불꽃으로 살고 싶다.

(빛으로 오셔서 빛이 되신 주님
이제 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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