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내가 만난 하나님의 공의(소금)

짐보

(소금)

‘빛과 소금’ 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설교를 숫하게 들어 왔기에
식상(?)한 주제라 성경을 읽을 때도 무심코 지나치는데
어느 날 아침 평상시처럼 개역개정 성경과 KJV 성경을 같이 놓고 읽기 전
성령님의 도움으로 말씀을 깨달고 그 말씀이 가슴 판에 새겨지어
온몸을 움직이는 공급하시는 힘이 되기를 간구하며 이 구절을 읽었을 때
놀라운 사랑의 깨우침을 성령님으로부터 받게 되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Ye are the salt of the earth: but if the salt have lost his savour, wherewith shall it be salted? it is thenceforth good for nothing, but to be cast out, and to be trodden under foot of men.
마태복음5:13]
salt of the earth 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인데
but if the salt have lost his savour
라고 KJV 는 표현 했을까?
Savour 이라는 뜻은 맛, 풍미, 을 의미하나 ‘향기’로 해석함이 옳다.
고린도후서에 보면 savour 를 향기로 표현 했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For we are unto God a sweet savour of Christ,
in them that are saved, and in them that perish: 고린도후서2:15]

직역하면 “만약 소금이 그의 향기를 잃어버리면”
trodden under foot of men.
사람에게 밟인다 어떻게?
trodden ...짓밟힌 상태
“만약에 소금이 그의 향기를 잃어버리면 사람들에게 무자비 하게 짓밟힌다.”
그때부터(thenceforth)
향기를 잃어버린 그때부터.
찔림을 넘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만약에 그리스도의 향기(공의)를 잃어버리면 세상에 짓밟힌다.
누가?
내가
우리가
교회가
세상에서 세상으로...짓밟힌다.
이 얼마나 무서운 표현인가
자신을 뒤돌아보면서 섬뜩했고 두렵기 까지 했다.
주위를 뒤돌아보면
왜 교인이 교회가 세상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는지?
무슨 변명을 한단 말인가...
‘내’ 가 누구인가?
‘가정’이란 무엇인가?
‘교회’ 란 무엇인가?
그것들의 정의에 대하여 성경으로 확증하고 마음으로 확정한
확고한 고백이 없다면
앎이라는 지식적이라 성경의 의가 가슴에 녹은 원동력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은 배고픈 허기에 응얼거림에 멈춘 상태일 뿐이다.
그럼 소금이란 무엇인가?
성경의 첫 소금이란 단어는 창세기 19:26 절에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롯의 아내는 왜 소금 기둥이 되었나?
롯은 의로운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천사의 말을 어겼다고
소금기둥이 되다니 너무 야박하시니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신가는 의문은
이 구절을 보면서 다시 묵상했다.
성경은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기 때문이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베드로후서2:6-7]

룻의 아내는 어떠한 사람이었는가?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롯의 처를 기억하라
누가복음17:29-32]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사람이었다.
한글 성경은 간단하게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표현하였는데
[But his wife looked back from behind him,
and she became a pillar of salt. 창세기19:26]
KJV에서는 룻이 중심으로 기록 되어
그의 아내는 룻의 뒤에서 (룻의 뒤에 숨어서) 뒤를 돌아보았기에
소금 기둥으로 변화되었다 기록한다.
무엇이 그녀를 돌아보게 하였을까?
지난날의 룻과 한 소돔의 생활이 어찌 하였든 정들었을 거고
떠나는 마음이 뒤숭숭하고 착잡하였기에
남편의 어깨위로 소돔을 바라보았고 유황불이 떨어지는 소돔을 바라보면서
소금이 되어가는 자신을 보면서 어떠한 심정이었을까?
룻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룻과 룻의 아내의 결과를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베드로후서2:9-10]
이렇게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의문은 언약으로 귀착된다.

민수기 18:19 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
소금 언약은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고 맛이 변하지 않는다는 특징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상징했고
언약(Covenant)은
엘 베리트(El Berith 언약의 하나님)에서
히브리어 berith '끊는다‘는
어원으로 brith 할례의 뜻이며 할례의 의미는 ‘언약의 증표’이고
할례는 아이가 태어나서 생후 8일째 행하고
할례를 행치 않는 사람은 ‘언약의 공동체’에서 끊어졌다.
(끊어졌다...
여기서 전기에 충격을 받는 것같이 전류가 온몸에 지나가듯이 쇼크였고
이런 격동은 전율하게 하였다.

-할례는 왜 생후 8일째 하였을까?
일주일이란 기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안식한 날 까지 이며
8일 째는 새로운 날이다.
언약을 이루는 새로운 날 이다.
주님을 맞이하는 새로운 날이고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는 날 이기에-

주께서 이 못난 나를 사랑하시기에 성령님께서 말씀을 풀어주시고
언약을 온 몸에 기억케 하시는 성령의 충만함이라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새롭다.)
언약은 당사자들이
짐승을 반으로 쪼개어 마주보게 하고 그 사이를 통과하는 의식으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의 행함 이었고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언약은
쪼갠 제물사이를 하나님이 지나가신
제물의 피는 생명의 피를 흘려 피의 언약을 주신 주님을 상징 하였다.
이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소망을 누구도 환경도 죽음도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기에
조금만 힘들어도 엄살을 피고 조그만 일들에 불평 말고
상황에 환경에 연연 하지 말고 ‘담대해라’ 는 거다.
이보다 큰 위안이 무엇일까
모세의 언약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지키면 축복하고 순종하지 않는 다면 징벌하신다는
순종의 언약이다.
이제는 새 언약으로 예레미야가 언급한 하나님의 용서를 따라서
한 언약(렘31:32)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식사 때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22:20]

새 언약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그의 자녀가 맺은 언약으로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는 언약이다.
옛 언약이 돌에 새긴 율법으로 몸에 할례를 하는 언약의 표시였지만
새 언약은 마음에 새겨 성령의 세례로 소망을 갖고
성령님이 오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부패와 불순종의 죄를 제거하는
말씀을 가슴 판에 새겨 순종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교제하는
거듭난 자로 새로운 인격체로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은혜라
옛 언약과 새 언약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연속에서
값없이 주신 선물이란 언약이며 은혜라

은혜(Grace)란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난 하나님의 선하심이라
성가대의 찬송에 감동하였다고
목사의 설교에 감동하였다고
또는 부흥회에서 뜨거워졌다는 “은혜 받았다”
그런 감동과 의미의 차원이 아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택하였다는 확신과 고백을 동반하나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이나 긍휼 감동이 아니라
선하신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인간에 대한
사랑의 최대의 베풀음이고 행위이시고 긍휼이며
그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본 보여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였고
성령님을 통하여 언약으로 확정한 우리의 소망이다.
단지 성도는 그 은혜의 통로로 소망의 길로 쓰임을 받고
받기를 바랄 뿐 이다.

은혜 받은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기회(Second Chance)이며
'chance' 는 ‘떨어지다’ 라는 의미의 'cad'에서 비롯된 말로
‘cide'와 동족어로 ’chance, 에는 ‘복(福)’ 과 ‘화(禍)’ 를
‘기회(機會)’ 와 ‘위협(威脅)’ 을 상반된 의미를 내포하며
‘-cide ’는 ‘죽임’ 과 ‘살해(자)’의 명사를 만든다.
은혜에서 떨어짐은 화(禍)라 심판에 놓이고
자기 자신을 죽이는 죽임을 뜻하고
은혜란
또 한 번의 기회로
멸망의 길로 가거나 생명의 길로 갈지를 결정하는 일상에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결단의 끝없는 동력이며 시간 이라
삶이 공의로워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소금의 역할을 하고자 하는
성령님의 도움심 이다.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For every one shall be salted with fire,
and every sacrifice shall be salted with salt.
Salt is good: but if the salt have lost his saltness,
wherewith will ye season it?
Have salt in yourselves, and have peace one with another
마가복음9:49-50]
소금은 언약이다.
주께서 생명을 바쳐 십자가에서 이루신 언약이다.
그 언약을 잊지 말라고
구약시대에는 마음에 새기고 손목에 매여 기호를 삼고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였고
언제 어느 때 든 지 잊지 말고
또 자녀에 가르쳐 강론하며 후에 자녀가 묻거든
하나님께 경외하며 은혜의 복을 누리며 오늘 함께 하심을 알게 하려 함이라
가르치신다.
그런 믿음은
우리 세대(世代)와 자녀 세대 그리고 세대를 뛰어넘는 시대(時代)를 바라보아
다음세대에 물려줄 유산이고 현시대를 넘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함을 바라보는,
버릇 같은 관습과 전통을 넘어 바라보는,
이것이 믿음을 가진 자들의 위대함이라 담대함이라,
속 좁아 감정에 좌지우지하는 휘둘림이 아니라
옹졸하여 상처주고 시험받는 좀스러움이 아니라
세월을 따라 밴댕이 소갈머리로 변해가는 신앙이 아니라
오늘날 이 말씀을 심장에 새기면
또 속 좁은 나를 뒤집어 놓으시고
은혜에 감사하고 소망을 주심에 감사하면
끝없이 사랑을 베푸셨듯이 그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마음이 되면
마음에 샘솟는 공의의 강물이 흘러 차고 넘쳐 형제자매를 향하고 이웃을 향하여
그것이 나의 힘이 되어 돌아온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And these words, which I command thee this day,
shall be in thine heart: 신명기6:6]

영혼에 도장을 새기듯 성령으로 말씀을 각인(刻印)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명기6:5]
예수님 말씀처럼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마가복음12:30-31]
이제는 사람마다 성령으로 소금 치듯 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잃지 않게
네 마음의 중심에 언약을 녹여
나와 너의 평안(平安)이 되어라 는.

-------------------------
소금은 녹아야 맛을 냅니다.
맛은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그러기에 소금은
나의 욕심 욕망을 녹여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고
너의 시험과 인내를 녹여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너와 나 사이에 소금을 두고
그리스도의 언약을 두고
내 자신을 녹여 너를 그리스도로 연결하는
너를 녹여 나를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과 언약을 이루는
너는 나의 언약의 소망이고
나는 너의 언약의 믿음이고
그러기에 성령님이 언약의 증인 이십니다.

(주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주의 언약을 이루셨듯이
이제 주의 언약을 알게 되었사 오니
우리로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힌 삶으로 십자가에 죽어
언약으로 살게 하여 주소서.
주께서 생명을 바쳐 주의 언약을 이루셨듯이
우리 목숨을 바쳐 주님의 언약을 믿사오니
우리로 세상의 소금이 되게 하여 주소서.
부패한 세상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여
우리로 하여금 썩어가는 세상을 멈추게 하시고
주의 공의가 만국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여 주소서.

그러다 지쳐
눈물 흘리는 자매에게
우리 눈물로 자신을 녹여 위로케 하옵시고
고통이 있는 형제에게
우리 고통을 녹여 인애케 하시여서
우리의 언약을 잊지 않게
우리의 가슴에 언약의 소금을 녹여
숨을 들어 마시고 내 쉴 때 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는 일상이 되게 하여 주소서.)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골로새서4:2-6]

'짐보님의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내가 만난 하나님의 공의  (0) 2014.12.20
10.내가 만난 하나님의 공의  (0) 2014.11.21
9.내가 만난 하나님의 공의  (0) 2014.11.09
공의의 검(劍) 감사)  (0) 2014.10.31
6.내가 만난 하나님의 공의  (0) 2014.02.1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