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2:12-13
12  When I came to Troas to preach the gospel of Christ, even though a door was opened for me in the Lord, 13  my spirit was not at rest because I did not find my brother Titus there. So I took leave of them and went on to Macedonia. 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저희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복음의 확장을 위해서 가장 수고한 인물을 꼽으라고 하면 당연히사도바울이 떠오른다바울은 그야말로 인생 전부를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을 기쁘게 여긴 사람이다복음을 위해서라면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바울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베드로가 안디옥교회에 와서 할례파의 평가가 두려워서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거부하기 시작했을 때, 공석에서 베드로의 위선적인 모습을 폭로했던 바울이었다. ( 2) 그리고 바나바와 결정적으로 갈라서게 된 이유도 제2차 전도여행을 위해서 마가를 데리고 가야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심한 다툼이었는데,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떠나고, 바울은 전도여행을 실라와 함께 떠나게 되었다. ( 15) 그뿐만 아니라, 바울은 행여나 천사가 다른 복음을 제시한다면 그 천사의 머리 위에 저주를 과감히 퍼부을 정도로 복음에 대한 헌신(dedication)이 남다른 정도가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뛰어났었다

 

다른 사도들이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한다 하더라도 바울만큼은 복음전파라는 사명감에 불타오르는 사람이었다복음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 바울 그렇게만 알고 있던 우리에게는 여기 고후 2:12-13 엄청나게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가 없다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드로아에 도착했다. 그리고, 주 안에서 문이 열렸다. 복음을 전파할 기회가 열린 것이다황금의 기회를 눈앞에 둔 바울은 복음전파에 전적으로 임했어야 한다. 그런데 13절에 보면 바울의 행동은 예상을 뒤엎는다.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디도는 바울의 전도팀의 일행이었다. 그리고 바울이 아주 아끼는 동역자요, 또한 믿음 안에서 아들과 같은 사람이었다. (디도서 1:4).  그럼에도 바울은 복음에 전념했어야 정상적이다. 최소한 그것이 우리의 예상하는 바이다. 그러나, 바울은심령이 편치 못하여결국 드로아를 떠났다.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편지를 쓰던 바울이다. (고전 9:16)  그런 바울이 복음을 위해서 주님 안에서 문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디도가 드로아에 없어서 심령이 편치 못하여서 사역을 거두었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은 너무나도 신선한 충격이다복음과 인간관계에서 바울만큼은 복음을 택하는 것이 나의 예상이었기 때문이다그러나 바울은 아끼는 형제가 보이지 않아서 염려하는 그런 가운데 그 사역을 고집하지 않았다특히 사역하다 보면 사역에 대한 열정이 더 요구될 때가 있다. 그리고 심지어 하나님께서 그 사역을 더 하기 원하시는 것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여기 바울의 삶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뭐랄까… “우선순위라고 하기는 좀 위험하지만, 조심스럽게순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비행기에 탑승해서 승무원이 비상시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시범을 보여주고 간단한 비디오로 산소마스크 등을 어떻게 사용하라든지 가르쳐준다거기에서 항상 이렇게 말한다어린아이와 함께 있을 때에는 본인이 먼저 산소마스크를 쓰고, 그다음에 아이를 도우라고다시 말해서, 복음은 사람을 살리는 기쁜 소식이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사역자는 먼저 본인의 삶 안에 은혜와 평안이 넘쳐야 한다그렇지 않고 일만 고집하다 보면 본인에게도 남에게도 결국 도움을 못 준다바울의 경우, 꼭 그런 원리인지 아닌지 100% 알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이것 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바울은 자기 마음이 편하지 못한 가운데서 복음전파 사역을 고집하지 않고 사역을 잠시나마 접었다바울정말 배울 것이 많은 것 같다나도 가르치는 (사역자의) 입장에서 자주 서 있게 되는데, 내 마음 가운데 과연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여유와, 충만함, 그리고 인간적인 모습이 있는지 없는지 다시 살펴봐야겠다결국, 복음은이 아니라사람을 살리는것이기 때문이다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의 일환이 아닌가 싶다.

 

얼마나 많은 사역자가 자신의 사역을 보호한다는 핑계로 동역자들, 부교역자나 곁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상처를 입히고도 나는 거룩하고 나는 신령하고 내가 가장 많이 알고등등의 자고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리더쉽을 따르라 강요하고 있는가? 또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도 더욱 효율적인 사역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버리고 있는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사역이란 말인가? 사역이 우상화된 사례다. 이 시점에 와서 우리는 바울사도의 사역방법을 다시 한 번 배워보고 우리들의 사역자세도 재검토해 보아야만 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셔서 감당하신 사역이 무엇인가 예수님의 구속 사역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이지 사람을 희생시키며 그들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입히고 죽이려 함이 아니였다는 그 중요한 사실을 우리는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글은 제 아들 QT일기장에 쓴 것을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별똥별/최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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