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쟁이


(욥기를 깊이 음미하면서 살펴보는 것도 좋겠지만 42장까지 계속되는 욥기를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주마간산이 되는 감이 있기는 합니다만 간단간단하게라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욥기 3:1-5]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욥이 말을 내어 가로되 나의 난 날이 멸망하였었더라면, 남아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었더라면, 그 날이 캄캄하였었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마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취지 말았었더라면, 유암과 사망의 그늘이 그 날을 자기 것이라 주장하였었더라면, 구름이 그 위에 덮였었더라면, 낮을 캄캄하게 하는 것이 그 날을 두렵게 하였었더라면,

어떤 인생이 가장 복된 인생일까요? 무병장수, 부귀영화, 평안한 삶이 복 된 삶일까요? 가난과 질병, 전쟁과 재앙으로 뒤덮인 이 험한 세상을 살면서 그런 재앙과 한난을 만나지 않고 안전하고 평탄하고 순적하며 부유하게 사는 것도 복 된 삶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한국인들은 고래(古來)로 ‘복(福)’자와 ‘희(囍)’자를 숟가락, 밥그릇, 베개, 장롱에까지 새겨 넣고 평안하고 풍족한 삶의 복을 빌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 평생 평안히 살다 가는 것이 복 된 인생일까요?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왜 생겨나서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지 알지 못 하는 채 그저 태어나서 한 평생 잘 먹고 잘 살다 가는 것이 복이라면 인생은 동물과 무엇이 다르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복 된 인생이란 진리를 알고 진리를 만나는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무엇이 진리입니까? 인생이 무엇인지, 내가 왜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우주만유는 우연히 존재하는 것인지 창조된 것인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계신가 아니 계신가와 나라는 인간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 못 한다면, 하나님을 만나지 못 한다면, 내가 무엇인지 누구인지를 알지 못 한다면 아무리 평안하고 잘 먹고 잘 살아도 그것은 의미 없고 가치 없는 삶이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만난다면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들더라도 복 된 삶이라 할 것입니다.  

욥기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복되고 귀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욥은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사단의 극악한 발톱에 할키우면서도 그것을 죽어도 빼앗기지 아니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복은 하나님입니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버린 에서처럼 작은 고통을 이기지 못 하고 생명보다 귀한 하나님을 바꾸어버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오늘 말씀을 보니 욥이 가졌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어버리는 엄청난 고난을 당해도 하나님을 놓지 아니하자 사단은 더욱 혹독한 시험을 하나님께 요구합니다.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언뜻 이해하기 쉽지 않은 속담입니다만 사단이 말하는 것은 “그 정도로는 포기하지 않겠지만 생명을 생명으로 바꾸어 보십시오. 생명이 죽음 같이 되게 해 보십시오. 사는 게 죽는 게 되게 해 보십시오. 그 살과 뼈를 쳐 보십시오. 그러면 그가 하나님을 저주할 것입니다.”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사단의 손에 욥을 붙이십니다. 사단은 욥의 전신에 악창이 나게 합니다. 그 악창이 단순히 지독한 종기였을까요? “욥이 재 가운데 앉아 기와조각을 가져다가 자기 몸을 긁고 있더니.......”라고 되어 있지만 그것은 단순히 극심한 가려움 정도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살과 뼈’를 쳤다면 견디기 어려운, 죽는 것이 나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욥의 아내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할 정도였으면, 욥의 세 친구가 그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참담하고 기막혀 칠일칠야(한 주일 꼬박) 동안 한 마디 말조차 할 수 없었을 정도였으면 욥의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사단이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저주하도록 하려고 작심하고 치는 것이었으므로 그것은 가혹한 고문보다 더 한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욥은 너무나도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자기의 난 생일을 저주합니다. 자신의 태어난 것을 한탄합니다. 죽음이 차라리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생명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뼈가 으스러지고 몸이 가루가 되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을 놓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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