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6) 네가 내 심판을 폐하려느냐?

대장쟁이

산염소나 사슴의 새끼들은 태어나 금방 뛰어다니며 곧 어미를 떠납니다. 들나귀 새끼는 제가 알아서 들판에서 살아갑니다. 타조는 모래에다 알을 낳고는 잊어버리지만 그 알은 태양으로 따뜻하게 데워지는 모래에서 부화됩니다. 어미가 돌보지 않아도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지으신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기르시는 것입니다. 동물들 가운데는 용맹스럽고 날랜 말이나 하늘높이 날아오르는 독수리같이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놀라은 용기와 능력을 가진 것들도 있습니다. 수천리를 회귀하여 알을 낳고 죽는 연어나 수천, 수만리를 날아가는 철새나 멕시코만을 건너 날아가 알을 낳는 나비, 바다속의 기이한 동식물까지 보면 볼수록 오묘하고 신기한 하나님의 세계는 신비하고 오묘하며 그 모든 것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와 능력과 손길이 핑계할 수 없도록 나타납니다(롬1:20). 하나님께서 욥과 친구들에게 오셔서 하나님의 세계, 천지창조와 온갖 들짐승의 이야기를 이렇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영원하시고 거룩하실 뿐 아니라 실수나 잘못이 없으시고 완전하시고 전능하시며 피조세계를 빠짐없이 지켜보시고 주관하시고 기르시고 계신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하시려는 것일 것입니다. 참새 한 마리도 허락 없이 떨어지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이 참새보다 더 귀한 욥을 외면하고 욥의 고난을 내버려두실 리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우치시는 것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욥에게 물으셨습니다. “변박하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과 변론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 ‘변박하는 자’라고 되어 있는데, 원문은 ‘잇소르’, ‘비난하는’ 자입니다. ‘변론하는’이라고 되어 있는데 영어성경은 ‘검사가 피고를 논죄(論罪)한다.’ 할 때 쓰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인간이 완전하신 하나님을 감히 비난하고 논죄하다니요. 말도 안 되는 것이요, 황공하고 두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욥은 세 친구들과 논쟁을 하면서 스스로 ‘누가 하나님과 변론하겠느냐’라고 말하면서 ‘나는 순전하다. 하나님이 내 의를 빼앗아가셨다.’고 자신의 무죄를 주장함으로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이 자신에게 까닭 없이 고난을 당하게 하시거나 자신이 이유없이 고난당하고 있는 것을 못 보고 계시거나, 혹은 모르고 계시거나, 혹은 외면하고 계시거나, 혹은 부당하게 자신을 징벌하고 계신 것이라고 함으로써 하나님을 비난하고 논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이 황공한 말씀 앞에 “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내가 한두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하지도 아니하겠고 대답지도 아니하겠나이다.” 하고 납작 엎드립니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인간이 말을 더하면 죄밖에 더해지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서 욥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네가 내 심판을 폐하려느냐? 스스로 의롭다 하려 하여 나를 불의하다 하느냐?” 하나님의 이 말씀은 욥이 지금까지 해온 생각과 말과 행동이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심판하지 않으실 수 없으며 심판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을 믿고 기다리지 못 하고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징벌이 잘못 된 것이라고 미리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을 심판자의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심판을 하는, 하나님을 향하여 결론을 내리는 꼴이었다는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하여 질문하십니다. “네가 하나님처럼 팔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우렁차게 울리는 소리를 내겠느냐? 너는 위엄과 존귀로 스스로 꾸미며 영광과 화미를 스스로 입을지니라. 너의 넘치는 노를 쏟아서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낱낱이 낮추고, 밟고, 얼굴을 싸서 두고....” 인간은 하나님처럼 모든 것을 알지도 못 하며 판단하여 판결을 내릴 수 없으며 징벌을 할 능력은 더더구나 없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위엄과 존귀와 영광을 옷 입으시며 찬란한 광채를 발하시지만 인간은 스스로를 존귀케 할 능력도 전혀 없습니다. 들의 백합화처럼 하나님께서 입혀주셔야 하며 까마귀 새끼처럼 하나님께서 먹여주셔야 하는 연약한 존재요 불쌍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단 하나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이런 인간들이 이 세상을 유토피아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것처럼 나대는 오늘날의 이 세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한심스럽고 가소로울까요.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아니하며 죄악의 길을 달려가는 이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안타까움은 또 어떠할까요. 지금 이 시간에도 천지만물을 기르시며 우리를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는 하나님, 끝날 심판으로 공의를 행하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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