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의 별을 보고
이응한 목사 2014. 6. 30. 05:09밤하늘의 별을 보고
대장쟁이 ㆍ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처음 불러내셨을 때, 아브라함에게 믿음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아비집을 떠나기는 했는데 아버지 데라를 모시고 하란으로 갔다가 다시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가기는 했는데
기근이 들자 굶어죽을까봐 그만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곳에서는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까봐 두려워 아내를 누이라고 했습니다.
도저히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의 행동이라 할 수 없습니다.
비겁하고 가련하고 한심한 사내의 모습입니다.
아내를 빼앗겼습니다. 아내 사라가 바로왕에게 시집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로의 집에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 재앙이 얼마나 크고 무서웠던지 바로가 놀라서 사라를 돌려주고
그들을 빨리 떠나보내려고 금과 은, 육축과 노비를 아브라함에게 잔뜩 지워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하나님은 이 믿음 없는 아브라함에게 한 마디 꾸중도 안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믿음이 없는 것을 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하여 아브라함의 믿음이 조금 자랍니다.
그래서 조카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리라,' 하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조카 롯이 붙잡혀갔을 때 318인 거느리고 쫓아가 찾아오는 대단한 용감성도 발휘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 믿음은 연약하기만 하였습니다.
15장을 보십시오. 그돌라오멜을 쳐부수고도 아브라함이 두려워합니다.
두려워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만 내게 있으면 무엇이 부족하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여전히 두려워하였습니다.
자식이 없이 죽는 것이 더욱 두려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제게 씨를 안 주셨습니다. 이 하인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저의 후사입니다, 씨를 안 주시니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 믿음 없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한 마디도 꾸지람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밤하늘의 별을 보여 주셨습니다.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그런데 여기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것 참 희한한 일입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여주니까 그것을 믿었다니 말입니다.
그리고 더 희한한 것은 밤하늘의 별을 보고 믿은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왜 밤하늘 별을 보고 믿은 것이 의가 되는 것일까요?
갈라디아서 3장을 찾아봅시다.
(갈3: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이 약속의 자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지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요8:56)
하나님께서 그 날 밤 밤하늘 별을 보여 주실 때 하나님은 "네 자손들"이라고 복수형으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네 자손"이라고 단수형으로 말씀하셨답니다.
아브라함은 "아니, 하나님. 후손들이라고 하셔야 맞잖아요. 하나님은 문법도 모르십니까?" 하고 따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히브리어 문법을 잘 모르셔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아닙니다.
그 날 밤 아브라함에게 밤하늘 별을 가리키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 가운데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신 것이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하늘 가득히 낭자히 흩어진 모습 말입니다.
그 살과 피를 믿음으로 먹고 영생을 얻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온 세상 가득할 것을 말입니다. 그들이 궁창의 빛나는 별들이 될 것을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잘은 모르지만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 말씀하시는 것을 그냥 그대로 거저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신 것입니다.
예수 믿는 믿음 말고는 의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참 이상하다 싶습니다. 아니, 웃긴다 싶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시는 것을 보면 믿음 없는 아브라함을 불러내셔서 믿음 없는 아브라함에게 억지로 보여주시고 믿으라 하시고 믿으니 억지춘향으로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니 말입니다. 아무 자격 없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려고 작정하시고 나서 억지로 그를 이끌어내어 입을 벌려 복을 먹이시는 것처럼 하시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러고보니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어 마땅한 죄인이 억지춘향으로 이끌려 나와 하늘의 별을 보고 억지로 먹이시는 믿음을 받아먹고 영광의 자녀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대장쟁이 ㆍ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처음 불러내셨을 때, 아브라함에게 믿음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아비집을 떠나기는 했는데 아버지 데라를 모시고 하란으로 갔다가 다시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가기는 했는데
기근이 들자 굶어죽을까봐 그만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곳에서는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까봐 두려워 아내를 누이라고 했습니다.
도저히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의 행동이라 할 수 없습니다.
비겁하고 가련하고 한심한 사내의 모습입니다.
아내를 빼앗겼습니다. 아내 사라가 바로왕에게 시집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로의 집에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 재앙이 얼마나 크고 무서웠던지 바로가 놀라서 사라를 돌려주고
그들을 빨리 떠나보내려고 금과 은, 육축과 노비를 아브라함에게 잔뜩 지워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하나님은 이 믿음 없는 아브라함에게 한 마디 꾸중도 안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믿음이 없는 것을 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하여 아브라함의 믿음이 조금 자랍니다.
그래서 조카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리라,' 하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조카 롯이 붙잡혀갔을 때 318인 거느리고 쫓아가 찾아오는 대단한 용감성도 발휘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 믿음은 연약하기만 하였습니다.
15장을 보십시오. 그돌라오멜을 쳐부수고도 아브라함이 두려워합니다.
두려워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만 내게 있으면 무엇이 부족하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여전히 두려워하였습니다.
자식이 없이 죽는 것이 더욱 두려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제게 씨를 안 주셨습니다. 이 하인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저의 후사입니다, 씨를 안 주시니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 믿음 없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한 마디도 꾸지람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밤하늘의 별을 보여 주셨습니다.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그런데 여기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것 참 희한한 일입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여주니까 그것을 믿었다니 말입니다.
그리고 더 희한한 것은 밤하늘의 별을 보고 믿은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왜 밤하늘 별을 보고 믿은 것이 의가 되는 것일까요?
갈라디아서 3장을 찾아봅시다.
(갈3: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이 약속의 자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지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요8:56)
하나님께서 그 날 밤 밤하늘 별을 보여 주실 때 하나님은 "네 자손들"이라고 복수형으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네 자손"이라고 단수형으로 말씀하셨답니다.
아브라함은 "아니, 하나님. 후손들이라고 하셔야 맞잖아요. 하나님은 문법도 모르십니까?" 하고 따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히브리어 문법을 잘 모르셔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아닙니다.
그 날 밤 아브라함에게 밤하늘 별을 가리키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 가운데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신 것이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하늘 가득히 낭자히 흩어진 모습 말입니다.
그 살과 피를 믿음으로 먹고 영생을 얻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온 세상 가득할 것을 말입니다. 그들이 궁창의 빛나는 별들이 될 것을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잘은 모르지만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 말씀하시는 것을 그냥 그대로 거저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신 것입니다.
예수 믿는 믿음 말고는 의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참 이상하다 싶습니다. 아니, 웃긴다 싶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시는 것을 보면 믿음 없는 아브라함을 불러내셔서 믿음 없는 아브라함에게 억지로 보여주시고 믿으라 하시고 믿으니 억지춘향으로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니 말입니다. 아무 자격 없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려고 작정하시고 나서 억지로 그를 이끌어내어 입을 벌려 복을 먹이시는 것처럼 하시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러고보니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어 마땅한 죄인이 억지춘향으로 이끌려 나와 하늘의 별을 보고 억지로 먹이시는 믿음을 받아먹고 영광의 자녀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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