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의 은사를 활용하라

최송연의 신앙칼럼 2014. 7. 29. 11:02


분별의 은사를 활용하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인 것을 객관적으로 어떻게 알 수 있느냐?라고 묻는 분이 계신다. "너는 이스라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요 3: 10) 니고데모를 향한 우리 주님의 안타까움 섞인 책망의 음성이 생각난다.

"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 3: 27)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요 10: 26) 모든 말씀이 살아 역사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건만, 성경 속에 가두어만 두니 내 실생활에 아무런 유익을 가져다줄 수가 없다.

하나님의 음성을 인위적으로 듣자며 충동질하는 "은사 주의"는 분명히 문제다. 성령님의 은사(gift)는 선하고 거룩한 것이나 "은사 주의"를 추구하거나 치닫는 것은 위험하다. 개혁주의가 안전하고 건전해서 좋으나 "하이퍼 칼비니스트", 역시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치우쳐 하나님의 능력마저 제한하기에 위험하다. 성경으로 돌아갈 순 없을까?

억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인위적인 장소를 마련하고 광고하고 떠벌리는 이단적 행위는 근절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현 세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도 없고 들려오는 모든 소리는 다 사단의 음성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성경을 뛰어넘는 것이기에 문제가 된다. 거짓 영을 분별하도록 가르치지 않고 목사님들 자신이 확실하게 알지 못하여 넘어지고 자빠지는 마지막 때를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스스로 성경을 읽도록 하여야 한다. 성경을 읽으면 주께서 은혜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

누가 방언으로 기도할 때나 무시로 기도할 때, 혹은 성경을 읽을 때, 주님께서 내게 직접 말씀을 주실 때가 있다. 어느 한 구절이나 몇 구절이 내게 큰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그 말씀이 뚜렷이 각인되기도 한다. 이것을 가리켜, 신학적 용어로는 "성령의 조명 하심"이라고 표현된다. 성령의 조명하심은 기록된 말씀을 넘어가거나 말씀과 충돌되거나 상충하는 일이 결코 없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기록된 말씀 안에서 성도를 견인하시고 인도하심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음성을 분별/판별하지 못해서 많은 주의 종들이 사탄의 덫에 걸려 넘어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젊었을 적부터 하나님께서 온갖 고생 중에서 당신의 음성을 가려내는 훈련을 시키셨고, 성령님께서 말씀을 주시면, 아래와 같이 말씀의 잣대로 검증된 대언은, 그 정확성에 있어 단 한 번도 그 말씀이 빗나가거나 틀려본 적이 없다. 고로, 하나님의 음성은 반드시 다음과 같은 잣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검증돼야만 한다. 객관적 증명이 말씀에 있음을 알자.

1. 자기가 기도하거나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정 반대의 생각이 머리에 주입된다. 도덕적으로 흠이 없어야 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 : 23절 하반절)".

2. 그 생각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어야 하며 레마/로고스로 머리에 정확히 떠오르거나 입술에서 터져 나온다. 성령님께서 예수님, 곧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기 때문이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 26) 예수님께서 약속하셨고 그 약속대로 오신 분이 성령 하나님이시다.

3. 그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뜨겁다(때론 너무나 뜨거워서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통곡하지만, 마음은 오히려 큰 감동으로 행복하다.)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눅24:32절 말씀 )”.

4. 다른 이가 예언 은사적 말씀을 받았을 때에도 예언 은사를 받은 사람이면 그 말씀을 들을 때에 같이 마음이 뜨거워진다. (눅 1 : 41-45절) 여기서 예언의 은사란 것도 족집게 식의 예언을 말함이 아니다. 이미 기록된 말씀이 완전 무오한, 흠 없는 예언서다. 그 말씀 중 어느 한 구절이 생각나고 떠오르는 것을 의미한다.

5.항상 선한 말씀이 아니고 때론 책망함과 바르게 함으로 탄식하신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 : 16-17절)”.

양에게 있어서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하듯, 성도가 성령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건만 ‘현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대는 끝났다’ 라고 가르침으로써 성령님의 역할마저 제한시키려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신학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과 목회자들에게 만연하게 된 것은 ‘신비주의자들’의 1류급 신자의식이나, 직통 계시 파들의 이단적 행위가 성도들의 삶을 좀먹는 것을 자주 보아온 까닭이기도 하고 또 자신이 성경을 많이 읽지 않고 들은풍월, 혹은 배운 신학 사조만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돈독히 함으로써 항상 살아 있는 말씀이 내 속에서 역사 하시도록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또 읽어야 하며, 성령 하나님께서 나의 영혼과 육체를 온전히 주장하시도록 겸손하게 내 마음의 보좌를 내어 드려야 한다. 그리고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말고, 주시는 말씀이 힘들더라도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결단을 보여야만 한다. 신앙은 결단이요, 순종이며 헌신이다. 이렇게 될 때 현대에도 양은 목자 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으며 그분의 사랑과 보호하심 속에서 예수그리스도의 날까지 안전하게 인도하심을 받게 된다.

이렇게 정확히 말씀을 알고 그 말씀에 굳게 서 있게 되면, 데이빗 오워가 거짓 영에 사로잡힌 것을 분별할 수 있다. How?(어떻게?) 그가 하는 말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령님의 사역을 정확하게 알고 대처한다면, 무엇 때문에 옹알이하는 이단자들의 랄랄거리는 소리에 현혹될 것인가? 물이 없어 기갈이 아니요, 양식이 없어 굶주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 기갈인 세대가 바로 지금 이 세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암 8: 11-13)


"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마 24: 11),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 마  24: 24),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신명기18:21)

출처: 목양연가 별똥별/최송연의 영성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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