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잔치
최송연의 신앙칼럼 2014. 6. 21. 23:40
잔치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면, 잔치가 대연(大宴) 이건 소연(小宴)이건 한 가지 통일성이 있는데 그것은 그 잔치를 배설하고 손님을 청하는 데는 그만큼 기쁜 일이 그 집에 생겼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이나 딸이 결혼한다든지, 사랑하는 가족 중에서 생일을 맞아도 기뻐서 잔치를 베푼다. 회갑연이나 돌잔치가 그런 것이다. 어떤 이유가 되었거나 잔치를 배설하는 집에서 볼 때, 잔치란 기쁨의 극치를 표하는 것이며, 즐거운 날이다.
옛날 우리나라 부인네들은 그 하루를 위해서 몇 날 며칠 동안 밤을 지새우면서 온갖 정성을 들여서 각종 맛있는 음식도 만들고 예쁘게 집 안팎을 치장도 한다. 그리고 그동안에 정든 이웃과 지인들을 초청한다. 초청을 받은 사람들은 개인의 바쁜 일, 슬픈 일, 언짢은 일들을 모두 잠시 뒤로 접어두고 힘들지만 시간을 쪼개어서라도 이 잔치에 참석하여 그집의 기쁨이 나의 기쁨인양 웃어주기도 하고 앞에 차려놓은 음식을 맛있게 먹고 마시며 함께 즐거워 하기도 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잔치에 초청받은 사람은 잔치를 베푼 사람을 즐겁게 해 주려고 가는 것이다. 잔치에 참석해서 그 집사람의 기쁨이 나의 기쁨인 듯, 즐거워도 해주고 축하도 해주고 그러다 보면 이상하게도 저절로 같이 즐겁고 함께 기쁜 마음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반면에 꼭 좀 와 주십시오 하고 초청장을 드렸건만 시간이 되어도 무슨 일인지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얼굴도 내밀지를 않는다면 어떤가? 모르긴 몰라도 참 많이 섭섭할 것이다. 초청과 그 집의 명예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초청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불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천지를 만드신 우주의 주인이시다. 그런데 이 고통의 역사를 끝내고 황금의 시대를 여시고 큰 잔치를 배설하실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다. 그날은 그동안 수고하고 눈물 흘린 당신의 종들에게 상을 주시고 영원한 기쁨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살게 되는 대연의 자리, 예수님께서 왕 중의 왕이 되심을 천하 만국 백성이 그 입술로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엄청난 날이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그러면 그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비웃고 조롱하던 간악한 무리가 우리 예수님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되는 통쾌한 날이 될 것이다.이렇게 통쾌하고 기분 좋은 날, 이 기쁜 날을 위해서 주님은 모든 준비를 다 완료하셨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의 피로 준비된 목욕물, 예복, 화려한 궁궐, 수종을 들 천군 천사, 모든 준비는 완벽하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초청장도 배부하셨다. 그런데 초청을 받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 하나 같이 모두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를 대면서 차갑게 거절하고 있다.
1.“내가 밭을 샀는데 가 보아야 겠으니 참석하지 못하겠다.”
2.“내가 소 다섯 겨리를 샀는데 그것들을 시험하러 가야 하니
참석지 못하겠다.”
3.“내가 내 아내를 맞이 했으니 가지 못하겠다.”
잔치에 참석하지 못하겠다는 이유가 얼핏 들으면 모두 제각기 다른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한가지이다. “내 기쁨이 충만한데 당신의 기쁨이 내게 무슨 상관이냐, 너의 잔치가 내게 무슨 소용인가?”하는 것이다. 철저한 자기 중심적이며, 초청한 자를 무시할 때만 가능한 태도이다. 이런 대우를 받고도 화를 내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분의 십자가 고통도 그분의 사랑도 너무 가볍게 받아 드리는 것 같다. 우리는 잔치에 모실 손님들을 위해 며칠 동안 밤을 지새워 음식을 장만해 놓았는데, 막상 잔칫날, 그 음식을 먹고 같이 기뻐해 줄 사람이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면 얼마나 섭섭할 것인가? 조금 잠을 자지 못한 수고를 했을 뿐임에도 그것이 애석하고 분해서 두 번 다시 상종하지 못할 인간(?)이라며 이를 갈기도 하고 분해서 방방 뛰기도 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이에 비해서, 우리 주님의 수고는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채찍질 당하고 얼굴에 침 뱉음 당하고 십자가 위에서 갈기갈기 찢기셨다. 가시로 만든 치욕의 면류관이 짓누르며 살 속 깊이 파고들었지만, 한 마디 말도 없이 주님은 그 고통을 묵묵히 참아 내셔야만 했다. 무엇 때문인가? 너와 나,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대연(大宴), 혼인 잔치에 참예할 수 있는 자격을 주기 위해서이다.
물론, 우리가 사업을 해야 하고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야만 한다. 그러나 주님이 베푸실 잔치자리에 나아갈 권리를 던져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면서까지 그곳에 깊이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며칠 동안, 주여, 내가 무엇이라 말씀하오리까? 기도하며 몸부림치는 내게, 성령님께서는 큰 감동으로 조명하여 주셨다. “잔치 준비는 모두 끝났다!" 성도라고 하면, 마25장의 열 처녀 비유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믿는 믿음만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있는 자격임을 모르는 사람 없을 것 같아 재론하지 않겠다. 다만 준비하지 않은 그 다섯 처녀의 가는 길과 준비를 잘한 다섯 처녀의 가는 길은 엄연히 다르다고 하는 것, 영원한 형벌이냐, 영원한 기쁨의 혼인 잔치 자리냐, 선택과 결단만 남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간곡하게 권하고 싶다.
주님의 혼인 잔치 준비는 이미 완벽하게 준비 완료되었음을 다시 한 번 깨우쳐 주라고 하시는 주님의 간절한 음성이, 경고의 나팔 소리 되어 크게 들려지는 복된 귀, 열려진 영의 귀들이 다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알렸고, 우리는 모두 들었다. 듣지 못해 준비하지 못했다, 핑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이 오심을 망각하고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넓은 길로 달려간다. 배신하고, 사고팔며, 음해하고, 주님의 이름이라며 온갖 악행을 다 저지르고 있다. 죄의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대연(大宴)은 이미 준비 완료되었다. 나팔소리는 울려퍼지고, 성도는 잠자고....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중략,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눅14: 15-, 23-24절 말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거늘(마 22:10-12절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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