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마귀의 얼굴
박영돈 목사 2014. 9. 23. 00:06경건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마귀의 얼굴
더 큰 은혜와 능력을 받은 사람일수록 더 무서운 죄에 빠질 위험이 있다. 큰 은혜를 받은 것으로 인해 인간의 부패성이 자극되어 헛바람이 부풀어 오르게 되면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교만의 죄에 휘말리게 된다. 그래서 간혹 영적인 은혜를 많이 체험한 이들에게서 마귀의 얼굴이 드러나는 것을 보며 흠칫 놀라게 된다.
우리는 은혜로 충만해지고 거룩해질수록 더 사악한 죄, 즉 자신의 은혜로움과 거룩함으로 인한 영적인 우월의식과 교만에 사로잡히기 쉽다. 영적으로 우쭐해져 자신과 같지 않은 이들을 무시하고 쉽게 판단하는 영적인 폭력을 휘두른다. 은혜와 능력을 충만히 받을 때가 가장 위험한 때이다. 큰 은혜를 받음으로 자고하지 않기는 바울 같이 위대한 사도도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바울을 도와주셔야만 했다. 하나님이 바울을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기 위해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고 했다.
바울에게 있었던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는 바울이 스스로를 높이고 싶어 하는 욕망, 충동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그를 쳐서 때려눕히는 역할을 한 동시에, 사람들이 바울을 지나치게 높은 자리에 올려놓고 그를 추앙하는 것을 막아주는 기능을 했다. 이 가시 자체는 고통이고 악이며 사탄이 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악을 허용하시므로 당신의 종이 더 큰 악과 파멸에 빠지지 않게 그를 보호하신 것이다. 그 악을 허용하시므로 바울이 받은 큰 은혜가 교만으로 인해 변질되지 않고 그 안에 온전히 보존되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하셨다. 육체의 가시로 인한 바울의 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이 바울에게 충만히 거하는데 전혀 방해나 거침돌이 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사탄의 가시가 은혜의 통로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이 바울 안에 안전하게 거하게 하는 장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바울에게 있었던 육신의 가시와 똑같지는 않지만 그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고난이나 약함이 있다. 우리를 자고하지 못하게 하는 그 어떤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각 사람마다 다르다. 우리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높이려는 교만이 머리를 들고 올라올 때마다 그것을 꾹 눌러주는 무언가가 자동제어장치처럼 우리 안에 설치되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그것이 없었다면 우리는 천방지축으로 날뛰다가 벌써 망했을 것이다. 그래서 은혜를 받을수록 이 가시의 역할은 중요하다. 이 가시가 우리를 은혜로 인해 자만해지지 않게 하고 더 겸손하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만을 전적으로 의존하게 한다.
바울사도가 이 가시의 비밀을 깨닫고 더 이상 그로 인해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크게 기뻐할 수 있게 된 것은 고통스러운 가시가 주는 엄청난 유익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바울이 처음에는 그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으나 이제는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게 하는데 필요한 안전장치라는 사실을 알고 그 고통을 그대로 받아드리며 감사하게 되었다. 우리도 우리에게 있는 가시와 같은 약함과 고통에 깃든 하나님의 은혜로운 섭리를 깨닫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주님의 말씀에 “정말 그렇습니다”라고 화답할 수 있다면 그 가시는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 축복의 사자가 될 것이다. (주일 설교 중에서)
-박영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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