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프로바이더
최송연의 신앙칼럼 2019. 7. 25. 14:41
신약시대에 와서 예언자나 선견자는 성서적으로 볼 때 성도에게 붙일 수 있는 합당한 호칭이 아니다. 선견자(先見者, Seer, 로에라, 하지), 선지자( 나비)는 모두 비슷한 역할로써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백성에게 전해주는 특별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신약시대에 와서, 선견자와 선지자는 필요하지 않다. 다시 말해서,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그 누구도 구약시대의 선견자(先見者, Seer) ... 선지자들과 같은 개념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해서 선견자들을 통해서 전달되어졌다. 그런 점에서 선견자가 필요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선견된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이 이미 한 권의 책으로 엮어져 우리 손에 들려져 있다.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딤전3:15절 참조) 성경을 읽고, 그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는 의지만 있다면, 우리들의 속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보혜사 성령님께서 그 말씀이 주는 깊은 뜻을 깨닫게도 해 주시고 개인에게 친히 말씀해 주시기 때문이다.
신약시대에 와서 성도가 특별한 사명 자로서, 굳이 따로이 이름을 가지려고 한다면, 그것은 ‘프로바이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로바이더(Provider), 사전적 의미로는 ‘공급자, 준비자’ 그런 뜻이다. 가족에게 의식주를 공급하는 사람, 가족의 모든 생계, 미래를 책임지고 준비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이다. 이런 점에서 성도는 세상보다 한걸음 앞서 가는 사람이요, 주님의 말씀으로 미래에 닥칠 재앙을 대비해 착실히 준비하는 '프로바이더', 다른 말로 하면 "청지기"이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미래에 대해서 예측할 수도 없어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들, 어린 아이들과 같은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만난 그리스도를 전해야 하고 앞으로 일어날 대재앙, 지구 종말을 전해 주어야 할 책임을 진 사람들이 바로 선견자적 사명을 가진 프로바이더들이다. 세상이 알지 못하고 듣지 못한 것을 먼저 듣고 먼저 아는 우리가 종말에 대한 준비는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해야만 하는가 하는 그 방법론도 확실히 전해 주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
有備無患(유비무환) 사전에 준비를 잘 하면 뒤에 근심 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열명(說命)은 은(殷)나라 고종이 부열이란 어진 재상을 얻게 되는 경위와 부열의 어진 정사를 기록한 글이다. 그가 고종에게 말했다고 한다. “생각이 옳으면 이를 행동으로 옮기되, 그 옮기는 것을 시기에 맞게 하십시오(處善人 動惟厥時). 그 능한 것을 자랑하면 그 공을 잃게 됩니다(矜其能 喪厥功). 오직 모든 일에는 다 갖춘 것이 있는 법이니 갖추어야만 근심이 없게 될 것입니다(惟事事乃其有備 有備無患).” 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이런 기록도 있다. 진나라 도승이 정나라에 값진 보물과 가희들을 화친(和親)의 선물로 보내오자 이것을 위강에게 보냈다. 위강은 이를 완강히 거부하면서 말했다고 한다. “편안히 지낼 때는 항상 위태로움을 생각해야 하고 위태로움을 생각하면 항상 준비가 있어야 하며 충분히 준비되어 있으면 근심과 재난이 없을 것이다(居安思危思則有備 有備則無患).”
현대 과학자들도 이 세상이 영원히 존속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주범으로 ‘지구 온난화’를 든다. 지구 온난화(地球溫暖化, global warming) 또는 온난화(溫暖化)는 지표 부근의 대기와 바다의 평균 온도가 장기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이다. 최근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꾸준히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지구 온난화가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비관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고, 기후변화위원회가 참조한 기후모델에서는 1990년에서 2100년 사이에 1.1 ~ 6.4 ℃의 온도 상승이 예측되었다고 한다.
지구 표면의 온도상승은 해수면 상승을 초래하고, 이는 다시 강수량의 양과 패턴을 변화시켜, 가뭄, 홍수 등의 기상이변을 일으킨다고 한다. 빙하의 후퇴와 기후의 변화는 생태계를 변화시키는 등 인류를 포함한 지구상 생물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새로운 빙하기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주장도 있고,. 앞으로 얼마만큼의 온난화가 진행되며 지역에 따라 어떻게 차이가 있을 것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미 온실 가스에 대처하기 위한 교토의정서에 서명하였다고 한다. (위키백과사전 참조)
이 모든 것은 2,000여 년 전에 주님께서 이미 예언해 주신 것이 현실화되어 가고 있는 것일 뿐, 우리에게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 일이 되었으나 일본 열도를 뒤흔든 무서운 해일, 중국의 지진피해, 요즘은 아프리카의 ‘에볼라’까지…, 앞으로 더욱 무서운 신종바이러스의 공격도 있을 것이라고 계시록은 경고해 주고 있다. 사람들은 세상이 이런 곤경을 당할 때 어렴풋하게나마 지구의 종말을 생각하게 된다. 종말에 대한 아무런 의식 없이 살다가도 이런 재앙을 만날 때만이라도 종말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반드시 종말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사실을 먼저 알고 있는 우리가 입을 다물고 있다면, 그는 이미 제대로 된 ‘ 프로바이더’라고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종말에 대한 바른 인식
종말에 있어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시한부 종말론, 즉 날짜를 정해놓고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가짜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의 말은 하나님 말씀에 의한 것이 아니니까, 절대로 믿으면 안 된다. 언제 세상의 종말과 심판이 있을지 알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바이더들의 맹활약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지난번 일본 열도를 강타한 해일과 같은 재앙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았다면 사람들이 다 대피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므로 세상의 종말이 도적과 같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때 임한다. 이것이 문제다. 주님께서 세상의 종말에 대한 구체적인 날짜는 숨기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종말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 역시 가짜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옥에 대한 설교와 종말에 대한 설교를 듣기 싫어한다. 하지만 지옥과 종말에 대해서 성경이 분명히 말씀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설교하지 않는다면 설교자들이 잘 못하는 것이다. 자기 인기를 위해서 시시한 소리, 웃기는 소리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에게서 받는 박수갈채는 한때뿐이고 그분의 진노는 영원하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는 종말에 대해 두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로 “종말은 반드시 온다, 그러나 그 날자와 시간은 알 수 없다.” 이다. 이 사실을 모르면, 그 틈을 노리는 시한부 종말론 자들로부터 영적테러를 당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이 내 속에서 역사하시도록 무장되어야만 한다.
종말이 꼭 세상 종말만 종말이 아니다, 개인적인 종말, 죽음도 분명히 찾아온다. 그러나 그 역시 그날과 그때는 언제인지 알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종말이나, 지구 종말의 구체적인 날짜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으셨지만, 종말에 대한 징조들을 말씀해 주셨고 그런 징조들을 보거든 대비하라고 하신다. 지구의 종말도 개인의 종말도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는 것이 준비 잘 하는 것이며, 그 사람이 바로 '굿 프로바이더', 즉 좋은 준비자가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 속에 영원히 사는 길이 있다.
이런 사실을 먼저 아는 우리들이 좋은 준비자(Good Provider)가 되어야만 하고, 다른 이에게도 좋은 준비자(Good Provider)가 되라고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긴박한 때, 말도 되지 않는 억지성 주장, 예민한 이슈가 될 신학적 논쟁으로 자긍하며 형제와의 사이를 이간질하고 마음을 갈라놓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 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마2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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