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종소리

최송연의 신앙칼럼 2018. 11. 5. 05:55

 



“아니,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저런 거짓 예언에 미혹되어 사람들이 저토록 흔들리고 있나, 그래...?” 저녁 식사 후, 녹차 한 잔을 들고 거실에 앉아서 신문을 보던 남편이 보고 있던 신문은 내팽개치고 TV에 눈길을 준 채, 참으로 어이없다는 듯 혀를 끌끌 차는 소리에 궁금증이 발동한 필자도 설거지하던 손을 대충 닦고 얼른 들어가 저녁 뉴스를 보는 내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는 그만큼 황당한 이야기인데, 그것이 fiction이 아닌, 저녁 뉴스, 그것도 우리나라 두메산골에서 일어난 일이 아닌, 서구문명이 발달할 대로 발달했다는 프랑스 한 작은 소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기에 더욱 어이가 없었던 것 같다. 뉴스 진행자 역시 재밌다는듯 연신 방글방글 그의 눈에는 장난기마저 섞여 있었다.
 
내용인즉, 지금 프랑스의 한 작은 도시로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고 있다는 것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들고 있었던지, 행여, 대형참사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전전긍긍, 조심해 달라고 당부하는 관할 시장님의 당혹스러운 모습이 크게 클로즈업되기도 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많은 군중들 속에 자신은 신(神)과 깊은 내통(?)이라도 하고 있기에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하여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는 흰옷을 입은 한 여인이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눈을 감은 채 깊은 경지로 몰입(?)하는 듯, 묵상을 하고 있었다.(에휴~ 혼자만 하나님 바로 밑, 몬 특별보좌간 당상이나 따논 듯... 저런 얌체족은 어디에나 있다니까, ㅎ 흰옷을 입고 명상을 한다고 해서 과연 그동안 지은 죄악이 해결될 수 있을까? 글쎄다. ㅠㅠ)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우왕좌왕 어디를 가야 조금이라도 더 안전할 수 있을까? 두려움과 호기심이 엇갈린 표정으로 두리번두리번 놀란 눈을 하고 헤매며 술렁인다. 그렇다면 조용하던 프랑스의 한 조그마한 소도시가 무엇 때문에 갑자기 저토록 술렁거리게 되었는가? 그것은 고대 '마야' 달력에 따른 예언 때문이란다. 고대 '마야' 달력은 2012년을 끝으로 더는 기록이 없고, 그것이 세상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일부 학자들의 호도로 '마야' 달력의 종말론은 세계 속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던 것이다.

‘마야’의 종말론에 겁을 먹은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재난을 피해서 살아보겠다고 그렇게 해서 ‘프랑스’의 한 작은 도시로 몰려들고 있다는데, 그렇다면 왜 구태여 프랑스의 그 작은 도시인가? 그곳은 오래된 ‘피라미드’ 한 개가 있고 그 ‘피라미드’가 신성하단다. 신성한 ‘피라미드’ 아래 있으면 종말의 무서운 대재난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참으로 황당한 이야기가 아닐 수없다. (가여운 인생들..오래 살고는 싶어서…ㅠㅠ)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기존에 알려진 바로는 마야인들은 2012년 12월 21일에 종말이 올 것이라고 예언하였고, 그 시간에 달력이 멈추어져(끊겨)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얼마 전 워싱턴포스트지에 의하면 최근에, 한 젊은 고고학자가 고대 마야인의 “엑절턴”이란 도시의 작은 건물에서 2012년 이후에도 계속되는 달력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 새로 발견한 마야 달력엔 무려 7000년이 추가로 더 기록되어 있다고 하니, 그럼 지금까지 만들다가 만 미완성의 달력을 가지고 종말론 운운하면서 촌극을 벌렸더란 말인가? 경종을 울려주는 종소리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두 번째 종소리
예언이란 종치기가 종을 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어릴 적, 교회 종소리를 들어보면, 첫 번 종을 치고 난 후, 약 30여 분의 간격을 둔 다음 두 번째 종소리가 울린다. 첫 번째 종소리가 그날이 주일임을 알리는 정도의 것이라면 두 번째 종소리는 곧 예배가 시작될 것을 알리는 소리다. 두 번의 종소리를 끝으로 종은 더 울리지 않는다. 그 두 번째 종소리로 교회의 문은 닫히고 예배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종소리의 뜻을 아는 사람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다. 물론, 이방인들도 대충 짐작은 하겠지만서도…

마찬가지다. 성경에서 메시야가 오실 것을 예고한 첫 번째 성탄절, 선지자들의 첫 번 종소리는 일 점일 획도 틀리지 않았고 때를 맞추어 정확히 울려 퍼졌으며 그 힘찬 종소리를 따라서 메시아는 성육신 하셨다. 이처럼 주님이 재림하실 두 번째 종소리도 명백(Crystal Clrear)한 소리로 울려야 한다. 그때는 세상 종말이 될 것이다. 제대로 경고한 예언서, 진리의 종소리는 성경말씀 뿐이다. 그렇다면, 주님이 재림하심을 알려주어야 할 두 번째 종소리, 분명한 소리를 내어야 할 종소리가 무엇 때문에 현대는 이토록 혼탁하며 혼란스럽게만 느껴지고 있는가?

문제는 사람들이 진리의 종소리, 바른 종소리를 듣고도 그 종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유사 종소리에 더 많이 귀를 기울여 듣는다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약점을 이용하여 온갖 사이비, 극단적 종말론 자들의 횡포는 날이 갈수록 그 강도를 높여간다. 너도나도 종말을 예고한다면서 진리의 종소리가 아닌, 유사 종, 꽹과리를 마구 두들겨대어 사람의 혼을 쏙 빼간다.

우리가 정신 바짝 차리지 아니하면 휩쓸려 넘어지기 십상이다. 성경에 입각한 올바른 종말론을 잘 정립하여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너나 할 것 없이 이런 헤프닝(촌극)에 휘말려서 프랑스건, 산속이건, 어디든지 달려가 우습게 되지 말란 법이 없는 것이다. 요즘은 대한민국에 가야만 십사만 사천명 속에 들 수가 있다고도 하고…사단은 유사 종소리를 요란하게 흔들어 사람들을 농락한다. “그렇게 해야, 정작 하늘 종소리가 들릴 때. 사람들이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라면서 조롱하며 믿지 못하도록 사단이 술수를 쓰는 것 아닐까요?” 우리 집사님의 총명한 따님 한 분이 그 예쁜 눈을 초롱거리면서 말했다. 그럴 수도 있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이토록 혼란스러운 때인데…

종말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가져라
우리가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성경에는 반드시 종말이 있다고 예언되었으며, 종말의 징조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주께서 그 제자들에게 친히 일러주신 종말론 적 ‘두 번 째 종소리’는 이미 울리기 시작한 지 오래다. 각종 재난, 이스라엘의 회복, 무화과나무에 꽃이 핀 사건, 이 모든 징조가 주께서 다시 오심을 알리는 두 번째 종소리, 경고의 나팔 소리인 것이다! 첫 번 성탄절을 알리는 첫 번째 종소리는 사랑의 종소리였다면, 두 번째 울리는 종소리는 심판의 종소리가 될 것이다! 그때는 지옥과 천국을 갈라놓는 엄청난 백보좌 심판대가 우리 눈앞에 하늘을 가로질러 쫙 펼쳐질 것이다!

성경은 이 세상이 절대로 영원하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종말이 오고 있는 것이다.(살전 5: 2, 마 24: 44, 히 10: 36-37 벧후 3: 1-14) 이런 사실을 전제로, 주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에 관하여 신약에서 사용된 헬라어를 살펴보면, 다음 세 가지 뜻을 지닌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1) Parousia(파루시아): 이뜻은 (Physical presence, arrival – The main use is the physical presence of a person) 그리스도의 인격적 실체,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서 실제적인 인격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는 뜻이다.

2) Epiphaneia (에피파네이아): 나타나심(커튼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서 그로 말미암아 주님의 얼굴을 뵙는다. 그런 뜻이 있다. (딤전6:14; 딤후1:10; 4:1; 8; 딛2:13; 살후2:8)
 
3)Apokalupsis(아포칼립시스)” “계시” “수건을 벗김” “가렸던 것을 벗김” 그런 뜻이다. 헬라어로 아포칼립시스(apokalupsis), 이 말에서 '묵시(apocalypse)'라는 말이 파생되었다. (계 1:3, 22:7, 10, 18, 19).

이 세 단어를 종합, 유추해 볼 때, 재림의 현상은 (수건으로 벗긴 듯, 커튼을 거두고 밝히 보여주듯 그리스도의 실체가 우리 눈앞에 나타나실 것) 반드시 사실적이어야만 한다! 분명한 것은 재림하실 그리스도께서도 심판 주로서, 영광의 주로서 그 모습을 만인 앞에 그 실체를 들어내실 것이란 점이다! 첫 번 크리스마스 때 아기 예수님이 인간의 육안으로 볼 수 있게 오셨듯 재림 때에도 예수님은 모든 눈이 그를 볼 수 있게 오실 것이다! 영적으로나, 환상적으로나, 피상적이 아닌, 너와 나, 우리 모두의 육안으로 볼 수 있게 하늘 구름(여기서, 구름이란 큰 영광의 광채를 의미할 수도 있음)을 타고 하늘을 쫓아서 강림하신다는 것이다!

한 가지 확실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시한부 종말론, 즉 날짜를 정해놓고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가짜란 것이다. 그런 사람의 말은 하나님 말씀에 의한 것이 아니니까, 믿으면 절대로 안 된다. 언제 세상의 종말과 심판이 있을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먼저 믿는 성도들의 맹활약을 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번 필리핀의 해일, 일본의 대지진 때문에 해일과 무시무시한 원전 사고, 그와 같은 재앙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사람들이 모두 대피하여 살 수 있지 않았겠는가? 그러므로 세상의 종말이 도적과 같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때 온다.살전 이것이 문제다. 주님께서 세상의 종말에 대한 구체적인 날짜는 숨기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종말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 역시 가짜라는 것이다!사람들은 지옥에 대한 설교와 종말에 대한 설교를 듣기 싫어한다. 하지만 지옥과 종말에 대해서는 성경이 분명히 말씀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설교하지 않는다면 설교자들이 잘못하는 것이다. 인기를 위해서 시시한 소리, 웃기는 소리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시대다. 그러나 인간에게서 받는 박수갈채는 한때 뿐이고 그분의 진노는 영원하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심히 안타깝다.

우리는 종말에 대해 두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로 “종말은 반드시 온다, 그러나 그 날짜와 시간은 알 수없다.”고 하는 것,. 이 사실을 모르면, 그 틈을 노리는 시한부 종말론자들로부터 영적 테러를 당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이 내 속에서 역사 하시도록 철저하게 무장되어야만 한다.

종말이란 꼭 세상 종말만 종말이 아니질 않은가? 개인적인 종말, 죽음도 분명히 찾아온다. 그러나 그 또한 그날과 그때는 언제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종말이나, 지구 종말의 구체적인 날짜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으셨지만, 종말에 대한 징조들을 말씀해 주셨고 그런 징조들을 보거든 대비하라고 하셨다. 지구의 종말도 개인의 종말도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는 것이 준비 잘하는 것이요, 그 사람이 바로 '준비를 잘하는'성도일 것이다.하나님의 말씀 속에 영원히 사는 길이 있다.

이것이 유사 종소리와 진리의 종소리가 다른 점이다! 피조물인 인간이 그 어떤 방법으로든 종말을 계산할 수도 없고 또 계산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주님의 주권을 도전하는 패역무도한 짓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
有備無患(유비무환) 사전에 준비를 잘 하면 뒤에 근심 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설명(說命)은 은(殷)나라 고종이 ‘부열’이란 어진 재상을 얻게 되는 경위와 ‘부열’의 어진 정사를 기록한 글이다. 그가 고종에게 말했다고 한다. “생각이 옳으면 이를 행동으로 옮기되, 그 옮기는 것을 시기에 맞게 하십시오. 그 능한 것을 자랑하면 그 공을 잃게 됩니다 오직 모든 일에는 다 갖춘 것이 있는 법이니 갖추어야만 근심이 없게 될 것입니다.” 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이런 기록도 있다. 진나라 도승이 정나라에 값진 보물과 가희들을 화친(和親)의 선물로 보내오자 이것을 위강에게 보냈다. 위강은 이를 완강히 거부하면서 말했다고 한다. “편안히 지낼 때는 항상 위태로움을 생각해야 하고 위태로움을 생각하면 항상 준비가 있어야하며 충분히 준비되어 있으면 근심과 재난이 없을 것이다.”

현대 과학자들도 이 세상이 영원히 존속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주범으로 ‘지구 온난화’를 든다.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 또는 온난화는 지표 부근의 대기와 바다의 평균 온도가 장기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이다. 최근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꾸준히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지구 온난화가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비관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고, 기후변화위원회가 참조한 기후모델에서는 1990년에서 2100년 사이에 1.1 ~ 6.4 ℃의 온도 상승이 예측되었다고 한다.

”지구 표면의 온도상승은 해수면 상승을 초래하고, 이는 다시 강수량의 양과 패턴을 변화시켜, 가뭄, 홍수 등의 기상이변을 일으킨다. 빙하의 후퇴와 기후의 변화는 생태계를 변화시키는 등 인류를 포함한 지구상 생물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새로운 빙하기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주장도 있고,. 앞으로 얼마 만큼의 온난화가 진행되며 지역에 따라 어떻게 차이가 있을 것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미 온실 가스에 대처하기 위한 교토의정서에 서명하였다고 한다.” (위키백과 사전 참조)

이 모든 것은 2,000여 년 전에 주님께서 이미 예언해 주신 것이 현실화되어 가고 있는 것일 뿐, 우리에게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얼마전에 일어났던 일본의 지진 , 원전 사고로 인한 대참사, 동남아 일대를 강타한 무서운 해일, 중국의 지진피해, 요즘은 멕시코의 스와인풀루엔자까지…, 앞으로 더욱 무서운 신종바이러스의 공격도 있을 것이라고 계시록은 경고해 주고 있다. 사람들은 세상이 이런 곤경을 당할 때 어렴풋하게나마 지구의 종말을 생각하게 된다. 종말에 대한 아무런 의식 없이 살다가도 이런 재앙을 만날 때만이라도 종말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2,000여 년 전, 첫 번째 들려온 종소리만 기뻐하고 아기 예수가 이 땅 위에 오셨음을 축하하노라 말하면서,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선물을 주고 받으면서 그 기이한 기사를 이미 뒤안길에 사라져버린 역사로 치부해 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유비무환(有備無患), 성도는 이미 오신 주님도 축하해야 하겠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하는 것이다! 일어나 허리를 동여야 한다. 혹독한 겨울, 시련의 겨울은 이미 시작되었다. 저 우렁차고 명백(Crystal Clear)한 두 번째 종소리, 심판의 종소리가 우리 귀에 들려오고 있지 않은가? 이제 우리는 고개를 들고 주를 바라보자. 우리 구속의 날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마라나 타!!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 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마24:6-8)”

출처: 목양연가 /최송연의 신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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