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를 찾으시는 주님
최송연의 신앙칼럼 2018. 10. 21. 09:51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글자 그대로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며 오곡백과 무르익어 풍성한 계절, 추수감사절이 눈 앞에 성큼 다가온 것이다. 모처럼 한국 가게를 나가보니, 여름에는 볼 수도 없던 각종 과일들, 고국에서 갓 들여온 듯한, 새빨간 연시(홍시)며, 토실토실한 알밤과 탐스럽게 익은 노란 배가 진열장마다 수북수북 보기만 하여도 흐뭇해지며 군침도는 요즈음이다. 이렇듯, 풍성한 가을의 열매들은 바라보는 이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것이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보면 풍성이란 것도 상대적이어서 우리가 풍성함을 누리고 기뻐하는 동안, 행여, 자연재해로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느낌을 주게 되는 것은 아닐까? 가을의 풍요를 노래하기가 조금 죄송스러운 것은, 우리의 이웃, 필리핀이 역사상 최악의 태풍 "하이옌"의 강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기 때문이다.
풍속으로만 따지면, 380km/h로 슈퍼를 넘어서 하이퍼 단계까지 불렸던 태풍으로, 상륙당시 허리케인 카트리나, 태풍 매미의 2~3.5배 로 강력했던 태풍이라고 하며, 모든폭풍(허리케인, 사이클론, 태풍)다 합쳐서 최강이라고 하니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던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듯, 태풍 하이옌은 눈 깜짝할 사이에 수많은 이재민과 사상자를 내었고, 하루 아침에 집을 잃은 그들은 지금 아직도 처리하지 못한 시신이 뒹구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 먹을 것마저 없어서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필리핀의 중부 도시 타클로반은 무정부 상태로 혼란을 겪고 있는 등 신속한 구호 활동이 요청되고 있고 정부는 국가 재난사태를 선포하기에 이르렀고 더 많은 고무보트를 확보해 마닐라의 저지대 지역의 시체를 수습하기에 급급한데 가족과 삶의 터전을 한꺼번에 잃게되어 낙심하는 가족들의 마음은 얼마나 슬플 것인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아린다.
그러나 이런 천재지변도 알고 보면 모두 인간들이 잘못 뿌린 씨앗의 쓰디쓴 열매를 엉뚱한 곳에서 거두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 전문가들의 견해를 토대로한 견해다. "필리핀 하이옌 피해, 천재보단 인재"…전문가들, 필리핀에서 태풍 '하이옌'으로 만여명 숨지는 등 큰 피해가 발생한 건 부실 건물과 과한 인구밀집, 지구온난화 등으로 피해규모 커졌다는 점에서 '인재'라고 설명했다. –CBS 뉴스
이런 참담한 지구촌의 소식들은 가을의 풍요로움을 노래하고 싶은 여유로운 마음마저 움츠러들게 하지만,이런 아픔을 뒤로하고, 어찌되었거나 가을은 열매가 있어 좋고 하늘이 더 높아서 좋다. 가을은 점점 깊어가고 추수감사절도 며칠 남지 않은 이때, 풍성한 열매를 주신 분께 감사하는 마음도 필요하겠으나 이런 때는 내 인생의 열매를 찾으시는 주님의 마음을 한 번쯤 헤아려보는 것도 중요할 것이란 생각이들기에 기도 중에 정리를 해보았다. 성령님의 조명하심이 우리 가운데 운행하시고 깨달음 주시기를 간곡히 바라면서...
1) 열매가 있기 전 농부의 수고가 먼저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한 그루의 포도나무에 아름다운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풍요로운 가을을 결과로 기대하기에 농부는 한여름 땡볕의 수고를 아끼지 않고, 그들의 고달픈 수고는 가을에 아름답게 열린 과일을 보는 기쁨으로 모든 것이 다 만회된다고 한다. 그렇기에, 농부에게 있어서 열매란 자식과 같다고 한다. 부모가 자식을 낳아 기를 때 그 자식이 잘되기만 바라고 소망하면서 온갖 수고와 어려움을 감내하면서도 수고가 수고로 느껴지지 않듯, 농부는 오직 가을에 거둘 열매를 바라는 소망 하나로 이른 봄부터 늦은 여름까지 뜨거운 햇살과 씨름하고 땀 흘리는 수고를 하면서도 힘든 줄도 모른다고 한다.
농부들은 이른 아침 새벽 동이 터기도 전에 일어나서 밭에 나가 기심을 매고 물도 대어주고 비료도 준다. 이뿐 아니다. 병충해를 막기 위해 농약도 쳐주어야 한다. 그리고 손에는 언제나 가위를 들고 다닌다.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쓸데없는 불량 가지, 영양분만 빨아먹고 열매는 하나도 없는 가지를 잘라버리기 위함이다.
우리가 여기서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도록 하자. 농부가 들고 다니는 가위로 가지를 자르는 것이 심판인가? 아니면 은혜인가? 얼핏 들으면 심판 같이 들린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은혜”다. 주인이 나무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열매다. 그렇다면, 가지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열매를 맺기 위함이다. 그런 가지가 병들어 있거나 아니면, 너무 무성하게 쓸데없이 옆으로 퍼져 있다면 열매가 맺히는가? 열매로 가야될 자양분이 쓸데없는 곳으로 가기에 그런 가지를 그대로 두면 열매가 아주 빈약해진다.
주인이 창고에 넣어야 할 것은 가지가 아니고 열매인데, 열매가 열매답지 못하고 아무 쓸데없는 “들포도”를 조금 맺었다고 하자 그 주인이 쓸데 없는 들포도를 창고에 들이겠는가? 세 살 먹은 어린애라고 하여도 그 대답은 “NO!, 아니요.” 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 인간은 대개 결과만 보고 불평불만을 쏟아놓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결과가 있기 전 먼저 원인이 있었다고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풍성한 열매가 결과라고 한다면, 농부의 사랑과 수고는 원인이다. 농부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때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고 도와주어야만 가지도, 나무도 제구실을 하고 아름답고 실한 열매를 맺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 인생에 작은 열매라도 맺혔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직 농부의 수고와 사랑이 원인이란 사실을 잊지말아야 한다.
가지가 열매를 맺었다고 하여서 자랑하거나 교만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원리를 제대로 이해한 때문이다. 가지에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다고 하여서 가지가 스스로 잘한 것이 아니라 농부의 뜨거운 사랑과 열정이 이것을 이루신 것을 믿는 것이 바로 믿음의 원리인 것이다.
다른 한편, 가을이 되어도 가져올 열매가 하나도 없는 농부라고 한다면 그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참으로 낙심이 될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농부요,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성도)는 그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다.(요 15: 1-2절 참조) 그 뜻은 우리 인생의 일생 속에서도 열매가 있기를 기대하고 계신다는 말씀일 것이다.
2)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좋은 씨를 심어야 한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우리나라 속담이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 7).” 이 말씀은 진리다. 인생 전반에 걸쳐서 적용되는 질서와 창조의 원리다. 가을 추수를 바라는 농부는 반드시 봄에 그가 원하는 품종을 밭에다 심어야 한다. 콩을 거두려고 하면 콩을 심어야지 팥을 심어놓고 콩 수확을 기대하고 있다면 이런 사람을 온전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악을 밭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욥 4: 8).” 라는 말씀이 있다. 또 “ 저희가 바람을 심과 광풍을 거둘 것이라(호 8: 7 上).” 말씀하신다. 지금 교회라고 하는 곳에서도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 가라지와 알곡이 있다는 것이다. 알곡과 가라지의 차이는 뭔가?
a. 아무리 험하고 힘들어도 순수한 믿음의 영혼을 소유한 영혼들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
성경은 이런 사람들만 "구원의 후사" 즉, “알곡”이라고 하신다.
b. 가라지가 있다. 사단에게 그 마음을 빼앗기고 세상적 초등 학문이나 이치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기도 하고 하나님의 일을 교묘한 방법을 동원하여 훼방하는 자들이다. 성경은 이런 자들을 "사단의 회"라고 하신다. (계 2: 7) 가라지는 처음부터 가라지 씨앗이다. 이렇게 성경은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분명하게 말씀해주고 있다.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어디에 속하던지 자유겠으나, 주께서 우리의 영혼을 건지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음을 기억하고 사단에게 사로잡힌 자들의 훼방이나 미혹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단에 속했었다가 지금은 돌이켰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다시금 이단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많고 게중에는 이단들의 횡포를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인양 오해하고 자신의 믿음을 저버리고 이전보다 더 악한 길에 빠진 ‘후메네오’와 '알렉산더' 같은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딤전 1: 19-20)" 안타까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3) 생명의 열매를 맺으라
B 플러스 D인생을 뛰어넘어 C인생을 남기도록 해야 한다. 무슨 소리인가? 오래전 한 번 나눈 적이 있는 말이기도 한데, 우리가 긍국적으로 다루어야 할 생명의 열매는 무엇인가 알기 위하여 다시 재고하자면 다음과 같다. 인생은 B(Birth)로 시작해서 D(Death)로 끝난다” 프랑스의 실존철학자 싸르트르(1905-1980)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굳이 철학자의 말을 빌리지 않드라도 인간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한 시도 멈추지 않고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인생은 과연 B (Birth) 플러스 D(Death)로 끝날 것뿐인가? 매우 흥미로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 존경받는 어느 학자가 말하기를 싸르트르의 주장대로, 우리 인생은 B (Birth)로 시작해서 D(Death)으로 끝나는 인생이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神은 우리에게 B와 D사이에 C를 주셨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C란:
1. 선택(Choice)
2. 변화 (Change)
3. 기회 (Chance)
4. 도전 (Challenge)다
요약하면, 1. 우리가 선택을 잘해야 하고 그 선택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가 결정이 된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2.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변화하지 않으면 자기가 세상에 변화를 당한다. 좋은 말이다. 3. 기회를 선용하란 것이다. 4. 마지막으로 역경을 기회로 삼는 도전정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너무나 멋진 말이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인생은 B에서 D로 끝난다고 하지만, 그 D도 (Death)이냐 하는 것과 꿈(Dream)이냐 하는 것은 도전 정신에 달렸으니, 나이 핑계하지 말고 환경 이유 대지 말고 더 크고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도전하는 용기있는 인생이 되라는 것이다. 정말 멋진 교훈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그런데, 문제는 위의 네 가지 C만 가지고서는, 삶의 질을 약간 향상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근본 문제 B(Birth) + D(Death)인생의 궁극적인 문제가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견해다. 물론, 사람이 젊고 건강할 때는 그것만 있어도 가능하다, 그러나 늙고 병든 사람에게는 선택도, 변화도, 기회도, 도전도 통하지 않는 말이다. 당장 눈 앞에 다가온 죽음과 죽음 저편, 곧 사후의 세계를 알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 이런 말들이 어떤 영향력을 끼칠 수가 있겠는가?
나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하고 궁극적 목적을 해결해 줄 수 있는 C는 단 하나뿐이다” 라고 감히 역설한다. 어떤 것인가? 그것은 그리스도, C (Christ)이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평등하다. 그러나 사후 세계에서는 분명 다르다. 사후 세계에서는 죄인들을 대신해서 죽어주신 대속주, 그리스도, C (Christ)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엄연히 다르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1 5: 12).”
”
사후세계는 영원한 지옥이냐, 영원한 천국이냐…가는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있는 사람은 ‘산 생명을 소유한 알곡’이기에 영원한 생명으로,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는 ‘가라지’로서 영원한 백보좌 심판, 형벌의 지옥으로 나갈 것뿐이다. 이것이 바로 알곡은 곡간에,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넣는다.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이것이 가을이 우리에게 주는 성경적 교훈임을 명심하며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함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 15-20)"
출처: 목양연가/최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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