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땅에 이슬람의 공포가 밀려온다!
자료실 2015. 12. 26. 21:13한국 땅에 이슬람의 공포가 밀려온다!
속지 마라! 이것이 이슬람의 실체다!
매스컴은 순식간에 대중의 인식을 바꾸는 역할을 손쉽게 할 수 있다. 이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대중을 속여 큰 피해를 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가까운 예로 세월호의 선내 방송을 들 수 있겠다. 세월호가 중심을 잃고 기울었을 때 “당황하지 말고 방에서 기다리라”는 선내 방송을 여러 차례 내보냈다고 한다. 이 때 만일 “선실에 있으면 위험하니 모두 갑판으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방송을 했다면 한 명의 피해자도 없이 모두 구출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슬람에 관한 정보도 이와 같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이슬람의 테러 사건들이 온 세계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데도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고 가르치고 있으면 세월호 참사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큰 규모의 국가적인 재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혹자는 이슬람에는 온건한 이슬람도 있고 급진적이거나 폭력적인 이슬람도 있기 때문에 모두 같은 기준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한다.
온건한 무슬림들은 우리가 사회복지를 통해서 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모든 혜택을 주고 권리와 활동을 보장해주면 전혀 문제없이 그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조지 부시 대통령도 선량한 미국시민 3,000 여명이 목숨을 잃은 9.11 테러라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슬람과의 전쟁”이 아니라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그런데 온건하고 선량한 무슬림이라는 말이 과연 제대로 된 표현인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온건하고 선량한 무슬림들은 우리의 친구요 이웃이지만 테러를 저지르는 무리들은 철저히 응징하고 그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19명의 테러범들이 모두 무슬림들이었으며 이것은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철저히 계획된 의도적인 테러였다는 것이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테러가 문제이지 이슬람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물론 우리 주변에 소위 온건한 무슬림들이 존재한다는 것과 오히려 온건한 무슬림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슬람의 교리에 의하면 진정한 무슬림은 온건할 수 없으며 온건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너희가 얼마나 잔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네 이웃의 불신자들과 싸우라." (꾸란 9:123)
여기서 싸우라는 말은 아랍어 원문에 까틸루(Qatiloo)고 쓰여있는데 그 어원은 까탈라(Qatala)이다. 이는 “죽이다, 자르다”라는 말이다. 따라서 이웃의 불신자들과 싸우라는 말은 서로 얼굴을 붉히며 욕설을 하거나 뺨을 때리는 정도의 싸움이 아니라 이웃을 죽이는 싸움을 말하는 것이다.
싸워야 할 이유는 그들이 이슬람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이 꾸란의 명령이며 모든 무슬림들의 행동지침이라면, 그런 지침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비무슬림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겠는가?
이슬람의 입장을 옹호하려는 사람들은 꾸란의 그 구절은 전쟁 시의 지침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꾸란 9장은 전쟁 시의 지침이 아니다. 1절에 이웃과의 평화조약을 취소하는 명령이 내려왔다고 기록하고 있고, 2절에는 4개월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유예기간을 준다고 했다. 그런데 4개월이 지났어도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은 불신자들은 어디서 발견하든지 살해하라는 것이 5절의 내용이다.
이슬람에서 불신자들을 죽이는 전쟁을 ‘지하드’라고 하며 이는 알라(Allah)의 뜻을 수행하는 일이기 때문에 ‘거룩한 전쟁(聖戰)’이라고 부른다.
무함마드가 메디나의 통치자가 되어 군사적인 힘이 생기자 주후 624년부터 평화롭게 공존하던 이웃 마을 사람들이라도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공격하여 남자들은 잔인하게 죽이고 그 아내들과 자녀들을 포로로 잡아 노예로 삼든지 팔거나 물물교환을 했다는 것은 이슬람 역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웃 사람들은 이슬람이 뭔지도 모르고 자신들이 “귀의했다”고 했다. 그러나 무함마드는 이들이 무슬림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고(꾸란49:14), 진정한 무슬림에 대한 정의를 내려주었다. 진정한 무슬림이란 아래 3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꾸란49:15)
첫째: 알라와 무함마드를 믿어야 한다.
둘째: 절대로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생명과 재산을 바쳐 지하드(전쟁)해야 한다.
거부하면 죽이겠다는 위협에 마지못해 이슬람을 받아들인 이웃 사람들은 다른 이웃도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죽이러 가는 전쟁에는 참여를 꺼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무함마드는 이웃과의 전쟁은 싸우기 싫어도 싸워야 하는 의무사항이라는 계시가 내려왔단다(꾸란 2:216). 전쟁을 해본 일도 없고 싸우는 방법도 모르는 사람들이 전쟁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하자 무함마드는이들을 위선자라고 정죄하였다. 이들을 '신자인 체 하는 자들일 뿐 사실은 불신자(Kafir)들'이라고 선언한 것이다(꾸란3:167). 무함마드가 불신자라고 불렀다는 것은 이슬람의 적으로서 살해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하겠다는 무서운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오늘날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무슬림들은 평화를 말하고 있고 그들과는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이슬람의 실체를 숨기고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또는 속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꾸란이 폭력을 정당화할 뿐 아니라 테러나 폭력을 의무사항으로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라고 하는 것은 매스컴을 통해서 왜곡된 정보일 뿐, 사실은 온 세상이 이슬람으로 통일될 때까지 비무슬림들과 싸워 세상을 이슬람화 시키는 것이 저들의 지상목표다. 그것은 아래 꾸란 구절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소동이 사라지고 종교가 오직 알라의 것이 될 때까지 싸우라 그러나 그들이 단념한다면 알라는 그들의 모든 행위를 보고 계시느니라" (꾸란 8:39)
이슬람 신학자들은 이 구절에 대해서 “세상에 무슬림 아닌 사람이 한 사람도 남지 않을 때까지 계속 싸우라.”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한국의 최영길 역 꾸란 각주에도 그렇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헌신된 무슬림이라면 비무슬림들을 향해 테러를 가하는 것은 거룩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밖에 없다.
서양에서는 공영방송을 통해서 이슬람이 얼마나 평화스런 종교인지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한다. 독자적인 이슬람 방송국을 설립해 운영하는 경우도 있고, 기존 방송망의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방송을 들어보면 이슬람이 얼마나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인가를 설득당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 방송의 담당자는 물론 가장 헌신된 무슬림들로서, 인류 최고의 행복의 비결은 모두 이슬람을 믿어야 하는 것인 양 아름다운 말로 이슬람을 소개한다.
▲ 심각한 아내 구타 혐의로 체포된 독일의 이맘 쉐이크 아부 아담
그런데 2010년 독일 뮌헨 모스크의 이맘인 쉐이크 아부 아담이 심각한 아내 구타 혐의로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그는 공식석상에서 항상 이슬람이 얼마나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인지를 설교해 ?고, 모든 폭력을 반대하는 독일의 대표적인 이슬람 지도자였다. 또한 독일 정부와 함께 종교 간의 화해 문제를 위한 사역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자기 아내를 때려서 코와 어깨뼈를 부러뜨리고 온몸이 군데군데 멍들고 여러 군데 잘라져 나가게 만든 것이다. 구타 이유는 31세 된 아내가 감히 서양사람 스타일로 산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슬람 성직자답게 자신의 아내를 구타할 때 꾸란의 구절을 암송했다고 한다. 이 일이 일어나기 바로 일주일 전에도 그는 뮌헨의 한 카톨릭 대학에서 “폭력과는 거리가 먼 이슬람”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이 어쩌다 한 사람 정도에게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이슬람의 율법은 아내 구타를 정당화 한다(꾸란4:34). 이슬람 성직자들이 아랍어 공영방송에 나와 아내를 구타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설교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이슬람은 폭력을 반대하는 평화의 종교라고 설교한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행위와 같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 보자.
파키스탄 출신의 무슬림 ‘무자밀 모 하산(46)’이라는 사람은 9.11 테러 이후 이슬람의 폭력적 이미지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 평화로운 이슬람을 소개하여 미국과 이슬람의 가교 역할을 한다는 취지로 2004년 뉴욕의 버팔로에 “Bridges TV”라는 방송국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엇다.
그는 2009년 2월, 4살과 6살 되는 두 아이의 어머니이며 방송국의 공동 설립자인 자기 아내의 목을 잘라 살해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아내가 죽었다고 신고했으나 방송국 CCTV를 통해서 아내를 칼로 찌르고 목을 자르는 장면이 녹화된 것이 발견되어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고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두 사건은 서양에서 발생했기에 언론의 주목을 받았을 뿐이다.
이슬람권에서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지만 주변에서 쉬쉬하면서 화제를 삼지 않고 언론에서 다루어주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묻혀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이슬람은 넘쳐나는 오일 달러를 이용하여 방송을 통해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고 설득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별 생각 없이 방송 내용을 수용한 결과 지금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이슬람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가 만일 이슬람이 평화의 종교라고 주장하는 매스컴의 주장을 확인해 보지도 않고 믿어버리면 우리 후손들에게 평화로운 미래를 물려줄 수 없을 것이다.
정치인들은 급격히 늘어나는 무슬림들의 투표권에 눈독을 들이며 이슬람의 거짓말을 대변해 주고 있고, 매스컴들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거액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 오일 머니가 필요하기에 아첨을 하는 수준이다. 우리나라 매스컴은 유럽에서 이미 이슬람 때문에 실패했다고 공언된 다문화 정책 등이 선진국 국민으로서의 성숙한 자세라고 적극 홍보해주고 있다.
온건한 이슬람이란 실제로는 없는 것이다. 비무슬림과의 전쟁을 거부하는 무슬림은 위선자로 분류되며(꾸란3:167) 비무슬림들은 사악한 짐승들이기에(꾸란8:55) 절대로 친구로 사귀어서는 안 된다(꾸란3:28)고 하는 것이 이슬람의 경전 꾸란의 가르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무슬림들과 평화롭게 공존하고 싶어 하는 무슬림들은 이슬람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자하는 헌신된 무슬림들의 명예살인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사실 온건한 무슬림은 꾸란의 정의에 의하면 이미 무슬림이 아니고 무슬림인 척하는 위선자다. 생명과 재산을 바쳐 지하드 하는 자만 진정한 무슬림이라고 꾸란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꾸란 49:15) 온건한 무슬림들은 오히려 준비된 기독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의 눈을 떠서 참 주님이신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여 만나게 함으로 그들도 십자가의 보혈로 죄 사함 받고 함께 천국에서 영광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것이다.
출처: http://www.newswinkorea.com/news/article.html?no=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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