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뜻 - 1800 년의 인내심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행 16,  7)
 


    성령이 우리의 정열적인 각종 계획들에 직접 연출하시며 최종 결정권을 가졌다는 사실은 흥미진진한 일이다. 두번째 전도 여행에서 사도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에게 이런 일이 또 일어났던 것이다.
    물론 사도 바울은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계속 여행할 수 만은 없었다. 하지만 모든 정략적인 계획 안에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 인도받을 수 있도록 온전히 종속시킨다. 그런데 성령은 두번씩이나 사도 바울의 애초의 여행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한다.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사도행전은 우리에게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문을 열어주실 때까지, 지금 바로 인내와 기다림이 선포된 것이다'는 사실이 사도 바울에게는 명확했었다. 이 인내는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꿈을 통해 바울은 순간적으로 '어디로 계속 여행해야 할지' 분명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복음이 성령의 연출에 힘입어 유럽으로 먼저 전해지게 된다. 결정적인 것은 우리 삶 속에서 모든 것이 계획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밀한 목적지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해가 떠오르는 동방의 끝이라고 믿었던 한반도에 사는 우리 민족이 1800 여년간이나 복음이 전해지기를 인내로 기다려야만 하는 순간이 결정되는 복음사에 있어서 역사적인 순간을 마주 대하게 됩니다. 우랄 알타이어족의 조상인 셈족들이 먼저 걸어 갔던 그 길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흑해 남단인 비두니아에서 동쪽으로  더 나아가는 것을 중단시키시고 우선적으로 그 반대의 길을 택하시고 그 당시 로마제국 아래 있는 각 이방민족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당장은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파악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긴 안목으로 보면 하나님의 귀한 뜻대로 하나하나 복음의 역사가 진행된 길고 긴 역사인 것입니다. 모든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뜻을 굽히고, 하나님의 선한 뜻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롬


행  16, 6 - 15   느  9,  1 - 36    


배경 찬송은 "주의 사랑을 주의 선하심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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