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론에 대한 오해들


아직도 칼빈의 예정론은 많은 오해를 받고 있습니다. 칼빈에 의해서 예정론이 바르게 정립된 것은 사실이지만 칼빈의 신학이 예정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칼빈의 예정론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칼빈이 강조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작정과 섭리의 사상을 이해해야 합니다.


칼빈의 신학 사상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섭리의 사상이라 할 만 합니다. 칼빈은 1545년의 <자유사상가들에 대한 논박>을 통해 세 가지 차원의 섭리를 논합니다. 첫째, 자연적 질서를 주관하시는 우주적 차원의 일반섭리가 있고, 둘째,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고 보응하는 특별한 섭리와 셋째, 성령으로 믿는 자들을 부르시고 다스리시는 구원을 위한 독특한 섭리가 그것입니다.


특히 칼빈은 <기독교강요> 116~28장에 걸쳐 섭리를 강조합니다. 칼빈의 예정론은 이 하나님의 섭리 중 매우 특별한 섭리에 속하는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입니다. 이 특별한 섭리는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머리카락도 세신 바 되었다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그 목적을 향해 보다 멀리 바라볼 수 있으며 그들이 어떠한 인간이든지간에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은밀한 계획 속에서 다스려진다는 것을 스스로 확신하게 될 것이다”(기독교강요 116-4, 9)


예정론을 이해하려 할 때 다음 두 가지의 이론과 주장에 대해 명확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 운명론(fatalism)입니다. 이는 누군가 결정하는 존재를 전제하지 않은 채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운이 좋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운이 나쁘다고 하는 우연성의 산물입니다. 이런 사상은 인격적으로 계획을 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는 거리가 먼 비인격적인 사상입니다. 비슷한 용어로 숙명론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동양철학에서 사람의 미래가 사주팔자에 의해 미리 결정되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인생의 다양성과 복잡 미묘함과 절묘한 조화와 신비를 사주팔자라는 틀에 집어넣어 생각하고 판단하는 그 자체가 너무 형이하학적인 발상입니다. 둘째, 예정론과 유사한 사상 중 하나가 결정론(determinism)입니다. 이는 인간의 앞날을 사전에 입력된 컴퓨터 프로그램에 따라 결정되어 움직인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상입니다. 한 마디로 모든 인간의 행위들이 행위자 밖에서 주어진 결정된 프로그램에 의해 발생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하나님은 자적하시고 계획하시고 예정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죄인의 구원을 위해 죄인으로 하여금 뉘우치게 하시고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시며 진노와 심판을 거두시기도 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예정론을 운명론이나 결정론 혹은 기계론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눈을 깜빡이고 손가락을 움직이고 발걸음을 하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예정하셨단 말인가?” 이런 오해들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사전 지식의 결여로 나타나는 무지입니다. 칼빈주의가 내세우는 예정론은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높이시고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시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보장하십니다. 내가 움직이는 것은 나의 자유로움입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자유를 자연스럽게 사용할 권리가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나의 재량권에 속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자연스러운 행동이나 자유로움을 억압하거나 제약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몇 시에 일어나고 아침에 무엇을 먹고 어떤 옷을 입을지 내가 결정하고 판단하도록 허용하십니다. 다만 그 결과에 대해 나에게 책임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이 되는 선한 선택에는 보상을 하시고 악한 선택에는 징계와 진노와 심판을 단행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비에 속한 일이기도 합니다. AR.


참고서적: 1. <개혁신학의 전통과 유산>, 김재성 저, 킹덤북스 2. <교리와 신앙>, 칼 트루먼, 지평서원

 

가져온 곳 : 
블로그 >생명나무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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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한아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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