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표지란 무엇인가?-박일민 교수

교회론 2016. 1. 16. 21:06

교회의 표지란 무엇인가?

 

박일민 교수(칼빈신학대학원)

 

 

지상에는 많은 교회들이 있다. 그 중에는 천주교회도 있고, 성공회도 있으며, 개신교회도 있다. 개신교회 안에는 장로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오순절교회, 그리스도의교회, 루터교회 등 많은 교회가 있다. 또 그 안에는 각기 많은 교단들이 나뉘어 있다. 그래서 어느 교회가 과연 참된 교회인지를 분별하기조차 쉽지 않다. 이러한 어려움은 특히 종교개혁 시대에 심했었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들은 많은 교회들 중에서 참된 교회를 구별해 주는 기준을 마련하였다. 우리는 그 기준을 가리켜서 교회의 표지라고 한다. 교회의 표지는 다음 세 가지로 설명되어진다.

 

말씀과 참된 전파

 

참 교회를 분별케 해주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파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말씀의 기초 위에 세워졌고, 또 말씀을 수호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참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미 여러 선지자와 사도들을 통해서 주신 말씀만을 전파해야 한다. 이 말은 교회가 기록되어진 성경 말씀만을 전파해야 함을 의미한다. 성경에 없는 계시를 새롭게 받아 전하려 하는 교회는 참된 교회가 아니다. 역사적인 전통이나 학설들을 전파하려는 교회도 참된 교회가 아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말씀을 주시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을 수도 있음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말씀이 모든 성도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또 그 말씀은 반드시 성경에 의해서 그 진위 여부에 대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설사 하나님의 말씀임에 틀림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성경을 이해하고 실천함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만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경 이외의 것을 전해서는 안 된다. 이에 벗어나는 것은 참된 교회가 아니다.

 

그리고 교회는 성경이 가르치는 교훈을 가감이 없이 그대로 전파해야 한다. 또 좋던 싫던 자신의 느낌과는 관계없이 성경말씀을 그대로 전파해야 한다. 자기의 이해 관계에 따라 성경 말씀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어렵다고 피해 지나가서도 안 된다.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 성경 말씀을 수단화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성경을 사사로이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거나, 억지로 풀려고 하는 교회는 참 교회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이 참되게 전파되는 기준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사도신경에 고백된 내용을 그대로 믿고 전파해야 한다. 우리가 믿어야 할 기본적인 내용들을 가장 단순한 형태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 사도신경이다. 왜냐하면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믿고 가르치셨던 그대로 삼위일체 하나님, 천지창조,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 그리스도의 하나님과 사람되심, 동정녀 탄생,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과 부활,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죄의 용서, 성도의 육체적 부활, 영생, 최후심판 등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된 교회는 이러한 내용들을 그대로 믿고 전파해야 한다.

 

둘째, 성경에 무엇을 더한다거나 빼는 일이 없어야 한다. 성경은 조그마한 가감도 허락하지 않는 책이다. 죄인의 구원과 거룩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일점이나 일획을 더하게 되면, 재앙을 받게 된다. 성경에서 일점이나 일획을 빼게 되면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예 함에서 제하여 버림을 당하게 된다(계 22;18-19). 이해하기가 어렵다거나 현대 과학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서, 성경에서 어떤 부분을 삭제하는 일이 있다면, 참된 교회가 될 수 없다. 궁금하다거나 꼭 필요하다고 하여 새로운 계시를 추가하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셋째, 성경 전체를 편협 됨이 없이 균형 있게 전파해야 한다. 성경 말씀에는 구약이 있고 신약이 있다. 죄를 책망하고 저주를 경고하는 부분이 있고, 위로와 내일의 소망을 가르치는 부분이 있다. 내세를 말하는 부분이 있고, 현실의 책임을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가르치는 부분이 있고, 가이사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하지 말 것을 가르치는 부분이 있다. 참된 교회는 이 모든 것들을 어느 한 쪽에 치우침이 없이 균형있게 전파해야 한다.

 

넷째, 성경 말씀을 최고의 권위로 여겨야 한다.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는 권위가 있다. 그러나 그 권위는 그 자신의 권위가 아니다. 그것은 그가 전하는 말씀이 가진 권위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는 말씀의 전파자를 말씀과 같은, 또는 말씀보다 높은 권위에 올려놓지 않는다. 종이 아들한테 하다가는 버림을 당하게 된다. 헤롯은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가로채다가 충이 먹어 죽었다(행 12:23). 말씀의 전파자가 말씀의 권위를 가로채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당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말씀의 전파자가 아니라, 그가 주장하는 사상의 교주에 불과하다. 참 교회에는 이런 일이 없다.

 

정당한 성례의 거행

 

성례(聖禮)란 거룩한 의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문자적인 의미로만 본다면, 교회에서는 여러 가지 거룩한 의식들이 행해진다. 예배, 기도, 안수, 결혼, 임직 등 모든 의식물들이 다 거룩하게 행해진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들이 모두다 참교회를 구분하게 해 주는 성례라고 보지 않는다.

 

로마교회는 성례의 종류가 7가지나 된다고 말한다. 영세성사, 성체성사, 고백성사, 견진성사, 혼인성사, 신품성사, 종부성사가 그것이다. 그러나 개신교회는 로마교회와 달리, 세례와 성찬만을 성례로 인정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행하도록 명령하신 성례는 세례와 성찬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약에서 신약 교회를 위해 보여준 예표도 하례와 유월절 잔치 의식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9)고 하셨다. 그리고 마지막 유월절 잔치에서는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 받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6-28)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 22:19)고 하셨다. 주님께서 명하신 성례는 확대나 축소를 할 수가 없다. 선서식 같은 것으로 대치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처럼 명령하신 성례를 반드시 말씀 그대로 거행하여야만 참된 교회라고 할 수가 있다.

 

주님께서 교회에 성례를 행하도록 명령하신 것은, 성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해주는 효과적인 수단을 삼으시기 위함이었다. 성례를 주님의 말씀대로 정당하게 거행하면, 교회는 이를 통해 많은 은혜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성례가 그 자체만으로 은혜가 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례는 다음의 기준에 따라 행해질 때라야, 은혜의 수단이 되어지고 또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어진다.

첫째,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행해야 한다. 정확한 의미를 분별하지 못하고 행해지는 성례는 성례라 할 수 없다. 그것은 이방 종교에서 행해지고 있는 주술적인 의식과 다를 것이 없다. 따라서 성례를 행하기 전에는 반드시 성경 말씀을 통한 그 의미에 대한 설명과 확인이 우선되어야 한다.

 

세례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가 씻어짐을 의미한다. 죄인이 의인으로 인쳐짐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 즉 하나님의 후사가 되어짐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님의 자녀들과 더불어 형제와 자매가 되어짐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하게 살 것에 대한 서약을 의미한다.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기 위하여 그 몸과 피를 내어 주셨음을 의한다.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임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이 영양을 공급받게 됨을 의미한다. 그의 죽으심을 땅끝까지 전할 것에 대한 우리의 다짐을 의미한다. 동일한 음식을 나누어 먹은 사람들이 피차 한 지체들임을 의미한다.

 

둘째,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정당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서 행해야 한다. 세례는 먼저 자신의 죄인임과 그리스도께서 구주가 되심에 대한 분명한 고백이 있은 후에 행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세례 그 자체가 죄를 용서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례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죄가 용서받아졌음을 인치는 표에 불과하다. 그리고 세례는 반드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이름으로 행해져야 한다. 고백이 없이 베풀어진 세례나, 삼위의 이름으로 베풀어지지 않은 세례는 정당한 세례가 아니다.

 

성찬은 먼저 말씀을 통한 의미의 설명이 있은 후에 행해져야 한다. 오해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먼저 떡을 들고 사례한 후에, 나누어 먹어야 한다. 그 다음에 잔을 나누어 마신다. 잔을 나누지 않거나 그 순서가 바뀌면 정당한 성찬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성찬에서 가져야 할 결의를 다짐하며, 찬송으로 마친다.

 

셋째, 지정된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 성례에는 지정된 재료가 있다. 세례는 물로 베푼다. 물 속에 잠그는 방식으로 세례를 베풀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물 속에 잠겨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물을 찍어 바를 수도 있고, 뿌릴 수도 있다. 또 물을 부을 수도 있다. 또 물만 있다면, 특정한 장소를 고집할 필요도 없다.

 

성찬은 누룩이 없는 떡과 포도에서 난 음료가 지정된 재료이다. 우유나 포도와 관계없는 술을 사용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반드시 지정된 재료를 사용하여 성례를 거행해야 한다는 것은, 그 재료 자체가 어떤 특별한 효능을 지녔기 때문이 아니다. 또 그 재료가 성찬과 함께 특별한 형태로 변하기 때문도 아니다. 다만 주님께서 그 재료를 지정하셨기 때문이다.

 

넷째, 합당한 사람에게 베풀어져야 한다. 성례가 아무에게나 행해져서는 안 된다. 세례는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한 사람에게 행해져야 한다. 그러나 유아들의 경우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유아들은 아직 죄나 신앙을 고백할만한 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례를 예표하는 구약의 할례가 유아들에게도 행해졌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자들 중에 유아들이 포함되어 진다면, 유아들에게 세례를 베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성찬은 그 의미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만 받아야 한다. 또 자기를 살펴서 죄를 회개한 사람이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찬은 은혜의 수단이기보다, 오히려 죄를 먹고 마시는 행위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유아세례 후, 아직 스스로 믿음을 고백하지 않은 사람이나, 범죄로 인하여 징계 중에 있는 사람은 성찬을 받지 말아야 한다.

 

다섯째, 합당한 사람에 의해서 베풀어져야 한다. 성례는 개인적인 의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세례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와 자매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 성찬도 주위 몸을 함께 나눔으로서, 서로가 지체됨을 공적으로 확인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성례는 공적으로 그 자격을 인정받은 사람에 의해서 행해져야 한다. 부득이 하다거나 급하다고 하여, 아무나 성례를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빌립이 세례를 베풀었다고 해서 집사도 성례를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빌립은 공궤를 맡은 집사의 자격으로가 아니라, 전도자의 자격으로 세례를 베풀었기 때문이다(행 21:8).

 

신실한 권징의 실시

 

참된 교회를 분별케 해주는 또 하나의 기준은 권징이 신실하게 실시되는 것이다. 권징이란 선한 일은 권장하고, 악한 일에는 징계를 가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권징이 신실하게 시행된다는 것은 권징이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또는 교회의 순결을 유지하기 위하여 실행됨을 의미한다.

 

교회는 사랑을 내세워 범죄자를 동정하는 나머지 마침내 그 사람을 심각한 죄악에 이르게 하기가 쉽다. 또 작은 쓴 뿌리를 묵인하고 용납하다가 교회 안에 큰 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쉽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법과 질서를 내세우다가 오히려 심각한 상처를 낳게 할 수도 있다. 또 일부 힘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권징이 악용될 소지도 있다. 그래서 교회는 권징을 신실하게 시행해야 한다. 고린도교회는 이 일을 등한히 하고 당을 만들어 분란을 일삼다가 사도로부터 심한 책망을 들었다(고전 5:12). 그러나 에베소교회는 이 일을 잘함으로 칭찬을 받았다(계 2:23).

 

권징은 단지 교회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교회가 권징을 실시하는 것은 성경의 실예와 교훈을 따른 것이다. 성경에는 교회에 직원들을 뽑아 세운 기록이 있다(행 6:1-7). 감독자와 장로들로 양무리를 치게 했고(행 20:28, 벧전 5:1), 피차에 가르치고 권면을 하여 덕을 세우게 했으며,(골 3:16, 살전 5:11), 필요에 따라 규례들을 작성했다는 기록도 있다(행 16:4).

 

또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하셨다. 성령께서는 교회 안에 감독자를 세우시고, 하나님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다(행 20:28). 사도 바울께서는 어지러움이 아니라 오직 화평이 되시는 하나님의 교회를(고전 14:33) 질서대로 다스리라고 하셨다(고전 14:40). 사도 베드로께서는 교회의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양무리를 부득이 함으로가 아니라, 자원함으로 치라고 하셨다(벧전 5:2). 또 교회의 순결을 더럽히는 자들과 순종치 않는 자들에 대해서는 사귀지 말든지(살후 3:14), 내어 쫓으라고 하셨다(고전 5:2,13). 이러한 교훈은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 18:17)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른 것이다.

 

지금의 한국교회에는 과연 권징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교회의 혼란사의 원인 중 상당 부분은 권징의 부재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일부 권징이 시행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시비가 따르는 경우가 많다. 권징이 신실하게 시행되지 않았다고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현상일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권징을 신실하게 시행하는 것이겠는가.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기준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성경적 표준을 따라야 한다.

교회는 여러 사람들이 모인 집합체이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일정한 질서를 유지하여 혼란을 막아야 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피차 권면하고 덕을 세우기 위해서, 조직과 제도와 규범들을 만든다. 예배의 형식과 절차를 만든다. 믿음의 표준이 될만한 신앙고백이나 신조를 제정한다. 권징이나 교육, 또는 봉사를 담당할 직분자의 수, 그 임무와 자격 등을 재정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반드시 성경적 표준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교회는 이러한 것들을 한 번의 제정으로 손을 놓아서는 안된다. 어떻게 하면 질서를 잘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를 항상 연구하고 살펴야 한다. 그래서 오류가 있으면 바로 잡아야 한다. 시대와 환경에 따른 새로운 요구가 있으면 개선을 해야 한다.

 

둘째, 회개를 목적으로 해야 한다.

만일 교회 안에 질서를 어지럽게 하는 자가 있다면, 그리고 이단을 퍼뜨리거나 범죄를 하는 자가 있다면, 교회는 그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교회는 먼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죄인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일흔 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를 할 수 있는 아량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교회의 질서와 순결에 치명적인 영향이 있을 경우에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주님처럼, 채찍을 휘두르고 상을 뒤엎어서라도, 성전을 깨끗게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가 권징을 실시하는 목적은 교회의 순결과 질서를 바로 하기 위함이요, 범죄자를 회개하게 하기 위함이다. 권징은 결코 어떤 힘있는 사람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권징이 남용 또는 오용되고 있다면, 참된 교회라고 할 수가 없다.

 

셋째, 일정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교회는 권징의 실시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성경에 따른 일정한 절차를 지켜야 한다. 교회는 범죄자에게 공개적인 징계를 가하기 이전에 문제가 된 사실을 정확하게 분별하여서 오해나 실수가 생겨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범죄자에게는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두세 차례 회개를 촉구하여서 가급적 조용하게 해결되어지게 해야 한다. 그래도 회개하지 않을 경우에는 증인을 세워서 다시 한 번 조용하게 회개를 촉구한다. 그 다음에야 공적인 권면이나 책망을 고려한다. 이때는 범죄의 정도나 회개의 여부를 보아서 정직이나 면직을 시킨다. 또 성찬에 참여할 수 없도록 수찬을 정지시키기도 한다. 도저히 회개의 가망이 없을 경우에는 이방인과 세리처럼 여겨서 출교를 명하기도 한다(마 18:15-17).

 

이름이나 소속 교파와 같은 명분만으로 참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를 내걸고, 조직은 그럴싸하게 갖추었다고 해서 모두 참된 교회가 되는 것도 아니다. 참된 교회가 되려면 말씀을 참되게 전파하고, 성례를 정당하게 거행하고, 권징을 신실하게 실시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들이 이러한 표지를 가지고 있는가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표지를 분명히 드러내기 위한 연구와 노력을 쉬지않고 경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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