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란 무엇인가?

-성경공부를 간절히 권하며-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고, 다양한 인본주의적인 사상들이 인간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존재해 왔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도 다른 많은 종교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세상 종교들처럼 단지 몇 가지 아름 다운 사상이나 고상한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는 평범한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란 한마디로 “복음”, 즉 “기쁜 소식”입니다. 이는 사람들에게 가장 복된 소식이라는 의 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을 알 려주는 최고의 복된 소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입니까?

세상 사람들의 예수님에 대한 평가와 생각들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2000년 전에 태어나신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의 삶을 타인을 위해 살다간 세계 4대 성인 중의 한 사람?

▶이스라엘 백성들을 로마제국의 압제에서 해방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대제국으로 만들어줄 왕인 줄로 알았으나, 평화적인 방법만을 사용하다가 당시 기득권 세력들 에게 반격당해 죽은 실패한 반역자?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선한 삶을 살다가(산타크로스처럼) 그들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회개혁을 외쳤으나, 기득권세력과 대적 자들의 공격을 받고 십자가 의 형벌을 받아 죽은 비운의 민중 혁명가?

▶세상에서 가장 완전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가르침을 실제로 살면서 가르치심으 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준 도덕 선생님이나 사상가?

▶그에게만 가면(또는 그에게 기도만 하면) 세상 축복을 한 없이 부어주는 만사형 통을 이루어주시는 형통의 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누구라고 하십니까?

세상 사람들의 이러한 평가는 자신들의 협소한 관점에서 본 것이기에 진실이 아 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신약성경의 저자들 도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 예수 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나사렛 작은 시골 마을의 목 수가 하나님의 독생자라니? 과연 믿을 수 있을까요? 정말 증거가 있는 것일까요?

이에 관한 증거는 너무나 확실하여 부인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성경의 내적 증거와 세상 역사 기록들의 외적인 증거를 다 동원해서 살펴본다면, 그 증거는 가장 역사적이며, 명백한 사실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 역사가 요세푸 스는 믿지 않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에 대해서 확실한 증거를 기록으로 남겼습니다.(‘그가 보여주신 수많은 기적들과 선한 일들은 그 분이 사람이라고 말해 야 될지 모르겠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대적하여 죽게 했던 유 대인들의 후손이 기록한 탈무드마저도 예수님께서 ‘수많은 기적(마술)을 행하고 이 스라엘을 배교하도록 했기 때문에 처형당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 은 지난 2천년 동안 교회가 이것을 일관되게 증거하고 고백하고 있다는 사실입니 다. 절대 권력과 권세 자들이 교회의 이 신앙고백을 없애려고 온갖 참혹한 박해를 가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난 중에도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과 구주이심을 고백하는 것으로 기뻐했습니다. 많은 순교자들이 ‘예수님은 하나 님의 아들이시다’라는 신앙 고백을 지키기 위해 화형과 같은 참혹한 형벌을 당하면 서도, 그들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축복하였습니다. 또한 교회사 가 운데 수없이 많은 탁월한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믿음을 고백하면서 삶이 놀랍게 변화되었으며, 이웃과 사회를 위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일들을 이루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제자들이 그 선생님을 너무나 존경한 나머지 하나님이라고 신 격화한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아들이 역사의 시간 속으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고난당하시고 부활하신 명백한 역사 적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기독 교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믿음 위에 기독교가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적인 자살(?)을 하지 않 고도 우리의 합리적인 지성을 사용하여 성경을 공부하고 역사를 공부해 보면 예수 님께서 참 인간이면서 참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언제나 담대 하시면서도 겸손했습니다. 그의 인격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완벽했습니다. 그는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방문자처럼 행동했습니 다. 그의 굳셈과 온유함, 타협을 모르는 의와 부드러운 자비, 어린이에 대한 관심과 버림받은 자들에 대한 사랑, 자제력과 자기희생 등 세상은 그와 같은 사람을 본적 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참혹한 십자가의 죽음이 그의 마지막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죽음에서 부활했으며, 그의 부활의 증거는 너 무나 명백하여 아무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그가 “죄인을 구원하려고 세상에 왔다”고 대답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 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죄는 멸망(사망)을 가져왔고, 더 무서운 영원한 멸망으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상에게 가장 큰 필요와 시급한 문제가 있다면, 바로 이 멸망에서 벗어나 는 것입니다. 이 멸망은 영적인 사망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도 피할 수 없는 육신 사망과 영원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최우선적인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단순히 멸망을 면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영생의 지 복(至福)을 얻도록 하는 것입니다. 영생이란 요한복음 17장 3절에 “영생은 곧 유일 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했습니 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란,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려면, 하나님과 같은 생명에 참여해 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과 같은 속성의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 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멸망에서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원토록 복된 삶을 살 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것을 새 창조의 측면에서 말한다면, 첫째는 사람이 처음 창조될 때 가졌던 하 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하나님과 말할 수 없는 사랑의 교제 누리는 예배자로 세우 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러한 예배자는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게 되 고 기쁨과 사랑이 충만한 새 인류로 하나가 되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주신 다양한 은사와 자원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 리고 누리면서 왕적인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이런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은 이러한 진리를 단지 지적으로 동의 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아셨을 것입니다. 기독교는 단지 교리에 동의하 고, 그 교리에 감탄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우리의 마음, 우리 의 인격전체의 변화를 수반하여 진정한 자유와 평강을 누리도록 하는 사랑의 종교 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배운바 진리에 대해 지적으로 동의하고, 그 진리를 따라 정 서가 고양되고, 그 진리를 따라 의지적인 삶을 사는 것을 통해서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유와 안식을 누리도록 하는 진정한 종교인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인격 과 가정과 학교와 직장, 그 어디에서나 우리의 삶으로 표현됨으로 인해 확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과 교회와 사회는 그 진정한 믿음이 표현되는 기쁨과 능력의 현장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입니다.

계시란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 보여주심’이라는 의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는 계시해야만 하셨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죄로 인해서 하나님을 떠나게 되어 영적 인 무지, 어두움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눈이 밝고 시력이 좋아도 외부세계에 빛이 없으면 사물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외부세계에 찬란한 햇빛이 비친다고 해도 우리가 눈이 어둡다면 역시 사물을 분별할 수 없을 것입니 다. 바로 이런 내적인 어둠과 외적인 어둠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계시는 우리의 내 부와 외부에 참된 빛을 비추어 주는 것과 같습니다.

계시의 종류에는 일반계시(자연계시)와 특별계시(초자연계시)가 있습니다. 일반 계시는 하나님께서 창조한 자연과 역사 섭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시편 19편 1절에서 이렇게 찬양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로마서 1장 19-20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 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 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은 그 자신이 만드신 만물과 사람 속에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알도록 새겨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위한 특별계시를 주셨습니다. 이 특별계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과 하나 님의 말씀과 행동을 보여주셔서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바로 그 특별계시가 기록되었는 데, 그것이 성경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공부하지 않고서는 구원에 이르는 길 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삶의 길을 발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죄와 사망 가운데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복락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를 찾아오신 생명과 구원의 종교입니다. “예 수”라는 이름에서도 이것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태복음 1:21)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마저 아끼지 않고 주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찾으셨고,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찾 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는 것입니 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근원부터 치료할 처방과 약을 다 갖고 계시 는데, 그에게 가셔 그 처방에 따라 약을 먹기만 하면 낳는데, 그를 찾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이런 면에서 복음전도란 불치병으로 죽어가던 한 사람이 탁월한 의사를 만나 그 질병을 완벽하게 치료 받고서, 그와 똑같은 질병으로 고생 하고 있는 환자에게 그 의사를 소개해 주고, 그 의사의 처방전과 약을 소개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지런히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의 질병을 치료하고, 우리에게 영원한 복락을 주시기 위해 만들어 놓으신 하나님의 처방전은, 어느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나,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 언제 나 가장 확실한 처방입니다. 우리가 부지런히 하나님을 찾기만 하면 하나님은 두 손을 활짝 열고 우리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는 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히 11:6). 그러나 하나님은 게으른 자들을 동정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교만은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큰 장애물입니다. 우리의 기존의 생각과 사상에 고 정된 채 하나님을 판단하려고 하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성과 이성을 사용하되, 그 이성을 최고의 권위에 두면 안 됩니다. 즉 우리는 이성 이 만능이 아니라,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내 고정된 생각을 근거로 판단하 는 것을 보류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1장 2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 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은 겸손 한 사람에게만 보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정직하게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갖고 있던 기독교에 대한 편견, 하나님께 대한 편견을 벗어 버려 야 합니다. 개방적이고 배우고자 하는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의사에게 환자가 자신의 증상을 숨기거나, 정확히 알리지 않고 정직하지 못하다면, 의사가 그 질병을 고치는데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29장 13절 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만나리라” 우리가 만약 그동안의 편견을 버리고 기독교가 진정 참된 진리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 하고 그 가르침에 듣기 위해 찾고 찾으면, 하나님께서 만나주실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참된 자유와 안식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순종하는 자세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단지 지적인 호기심을 만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생각을 바꾸고, 나의 삶 을 바꾸고, 인생을 바꾸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성경공부에 임해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의 지식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제 삶 속에 적용하도 록 주어진 것입니다.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기를 원한다면, 성경을 공부하십시오. 성 경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는 행복과 평강이 주어진다는 것 을 체험해 보십시오.

 

성경공부를 막는 최대의 적(敵)은 우리 내부의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게으름과 교만, 편견과 죄를 버리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찾아야 합니다. 우리의 지적인 편견과 도덕적인 자기 의(義)가 가장 극복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결국 두려움으로 나타나는데, 바로 이 두려움이 성경진리를 깨닫는데 가장 큰 적입니다. 두려움은 탐구의 정신을 마비시킵니다. 하나님을 만나 고, 성경의 진리를 대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매우 불편한 진실을 대하는 것이고, 힘겨운 일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가지고 살았던 세계관과 인생관 전체에 도전을 가할 수 있고, 우리의 생활방식 전체를 개혁해야 할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이러 한 요구가 우리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와서 우리를 망설이며 주저하게 만드는 것입니 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할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은 지금 현재 여러분이 갖고 있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유와 평강을 주시려고 여러분을 부르 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그런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찾지 않기 때문이고, 찾지 않는 것은 발견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 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탁월한 의사가 있다고 해도, 그를 찾지 않 는다면 치료를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백퍼센트 효과가 입증된 약이 있다 고 해도 그 약을 먹는 것을 두려워해서 약을 먹지 않으면 결코 질병을 고칠 수 없 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두려움을 버리고 일어나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가졌던 사 상과 생활 방식이 우리에게 참된 행복을 주었는지를 솔직히 점검해 봅시다. 여러분 이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것들이 틀릴 수도 있고, 예수님의 방식이 옳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마음을 열고 성경 공부에 참여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진지하고도 열정적으로 성경을 공부한다면, 여러분은 지금까지 생각해 보지도 못했고, 그 존재가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여겨지던 영적인 실상과 영생 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 였다.”(고린도전서 2:9) 성경을 공부하고 그 진리를 적용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진정한 생명을 누리며 사람다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영생을 소유한 사람은 현재 삶에 대해 무기력하고 “딴 세상 사람인 듯한” 태도를 취하지 않습니 다. 오히려 하늘에서 누릴 영원한 즐거움을 지금 여기서 누리면서 능동적이고 진취 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진리를 탐구하는 구도자(求道者)가 되시라고 간곡히 부탁합니다. 부지런하고 겸손하게, 정직하고 순종하는 자세로 하나 님을 찾기 위해 성경공부에 참여하시길 사랑과 눈물로써 간절히 권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평강이 여러분에게 풍성히 임하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세계관학교장 노천상 목사


가져온 곳 : 
블로그 >생명나무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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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둥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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