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믿음 없는 자에게

이응한 목사 2016. 2. 29. 21:29

도무지 믿음 없는 자에게

애굽으로 내려갈 때는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할 만큼 비겁하고 연약하던 아브람이 318명의 가신들과 동지들로 적을 파하고 조카 롯과 인민들을 구출하고 빼앗겼던 모든 재물을 되찾아 왔습니다. 겁쟁이 아브람이 믿음과 용기로 나설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멜기세덱을 예수님의 예표로, 소돔왕을 세상임금의 예표로, 그리고 아브람을 그들 앞에 개선장군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이 후에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이상 중에 임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니,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람이 왜, 무엇을 두려워했단 말입니까? 아브람이 얼마나 두려워했기에 하나님께서 오셔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셔야 했을까요?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은 하나님께 자신에게 후사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아브람이 두려워한 것은 바로 후사가 없다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후사가 없는 것이 왜 그렇게 큰 두려움이 되는 것일까요? 인간은 누구나 죽습니다. 인간 뿐 아니라 짐승도, 벌레도, 나무도, 꽃도, 모든 동식물도...., 산 것들은 다 죽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씨를 퍼뜨리고 새끼를 낳습니다. 그렇게 생명이 이어져 내려갑니다. 하나님을 모르던 때, 모든 사람들은 사람도 그렇게 후사를 남겨야 자신의 생명이 이어져 내려간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후사가 없는 것, 대가 끊어지는 것이 죽음 보다 더 두려웠는지도 모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불러내셔서 함께 하시는데도, 그 하나님이 “얘, 너는 이제부터 나와 영원히 함께 있는 거야.” 하시는데도, “얘, 그런 게 이젠 문제가 아냐. 내가 있으면 다 해결 돼. 너에게 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아니? 얼마나 굉장한 일인지 아니? 내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란다.” 하고 말씀하시는데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 하는 아브람은 눈앞에 닥친 문제, 후사가 없이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 앞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있으면 다른 아무것도 더 필요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외에는 아무것도 우리를 만족하게 할 수 없습니다. 주님만 있으면 어떤 고난도, 환난도, 죽음까지도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이 전부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아브람에게 화를 내시지도 아니하시고 꾸지람하지도 아니하십니다. “아브람아, 그런 거 걱정 마라. 네 몸에서 후사가 난다니까.” 여전히 이해하지 못 하고 믿지 못 하는 아브람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이끌어 밖으로 나가 별을 보여주십니다. “저 별들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절을 보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도무지 믿지 못 하고 두려워하는 아브람, 답답하고 속 터지는 아브람을 찾아오셔서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상급이다. 네 몸에서 후사가 날 거야, 저 별들 봐라, 저렇게 된다니까......” 어르고 달래고 가르치고 보여주시며 일일이 설명한 끝에 아브람이 믿으니 그 작은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억지로 믿음을 집어넣어주시고 이끌어주시고 나서 그 겨자씨처럼 작은 믿음을 기뻐하시며 의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억지춘향’이요 ‘엎드려 절 받기’입니다.

아브람더러 뭐랄 거 없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믿음 있었습니까? 우리가 아브람보다 나은 게 있었습니까? 우리는 복음을 듣고 성경말씀들과 수많은 선지자와 전도자의 가르침을 받고 수많은 순교자들의 흘린 피를 보면서도, 또 하나님의 먹이시고 입히시고 공급하시는 기이한 일들을 보면서도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와 동행하시며 수없이 말씀하시며 가르치시며 "두려워 말라. 내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믿음으로 세우고 계시는데도 말입니다. 아, 우리의 믿음 없음을 용서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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