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에서 나온 자들

 

1년이라는 시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입니다.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2월 10일에 노아와 일곱 식구는 방주로 들어갔고 7일 후인 2월 17일에 홍수가 땅에 덮였습니다. 비는 40 주야를 내렸고 물이 더 많아져 150일 동안 창일하여 천하의 높은 산들이 다 덮였고 땅위의 모든 생물들이 죽었습니다. 홍수 5개월 후인 7월 17일(제헌절?)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10월 1일(국군의 날?)에 이르러서야 물에 잠겼던 산봉우리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40일이 지난 다음이라니까 11월 10일 쯤(추수감사절 무렵?) 노아가 방주의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보냈으며 다시 비둘기를 내보내었더니 앉을 곳이 없어 되돌아왔고, 다시 7일 후에 비둘기를 내보냈더니 감람 잎사귀를 물고 왔고, 다시 7일 뒤에 내보냈더니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다시 여러 날들을 보내고 이듬해의 첫날, 곧 노아가 601세 되는 해 정월 초하루(설날)에 방주 뚜껑을 열고 보니 땅위의 물이 걷혔고, 다시 두 달 가까이 지난 2월 27일에 이르러서야 땅이 말랐고, 하나님께서는 드디어 노아의 가족과 방주의 모든 생물들에게 상륙을 허락하셨습니다. 참으로 길고도 긴 1년 하고도 17일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노아네 여덟 식구와 방주에 탄 모든 생물들에게 그 1년 17일의 시간은 어땠을까요? 온 세상이 홍수로 뒤덮인 가운데 그들만 구원을 얻었으니 기쁘고 감격스러웠을까요? 넘실거리는 물결 위에 두둥실 떠다니는 방주 안에서 그들은 구원감사 선상파티를 하면서 즐거워했을까요? 위로부터 한 규빗에 낸 창으로 들어오는 빛으로 방주 안이 밝았을까요? 방주 안에 기름과 향유로 등불을 밝히고 좋은 음식과 식사와 편안한 생활을 했을까요? 새들과 짐승들이 넓은 방주 안을 마음대로 다니며 놀았을까요? 식량은 충분하였을까요? 맛은 있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밖을 내다볼 수도 없고,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낮과 밤도 구분하기조차 어려운 어두운 방주 안, 잣나무를 깎아 만든, 역청이 안팎으로 칠해진, 삼층(삼층천?)으로 나누어지고 간으로 막힌 방주 안의 좁은 공간에 갇혀서 그들은 갑갑함과 공포와 고통과 배고픔과 온갖 악취를 견디며 1년을 보내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들과 모든 생물들은 마치 곰이 동면(겨울잠)하듯이 그 안에서 죽은 듯이 지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방주 안이 난리법석이었을 테니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죽음과도 같은 1년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죽음을 통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방주에서 나오는 날, 그들은 1년 17일의 죽음과도 같은 시간을 통과하여 마침내 새 생명을 얻은 것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가능하였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1년 17일 동안 방주 안에서 견뎌내지 못 하고 다 죽었을 것입니다.

모든 죄인은 죽어야 합니다. 죄의 삯인 죽음을 피할 길은 없습니다. 구원은 죽음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의 우리 대신 죽으심, 곧 참혹한 고통의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노아의 방주는 나무로 만들어 석청을 발랐습니다. 십자가도 나무로 만들어졌고 거기에 주님의 피가 발라졌습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 안에서, 예수님 안에서 죽고 새 생명을 얻어 거듭났습니다. 그렇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예수님의 모형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방주 안에 있던 그들을 홍수가 씻어간 새 땅으로 나오게 하셨습니다. 다시금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시며 복을 주셨습니다. 새 창조요, 새 피조물이요, 새 하늘과 새 땅과도 같습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단을 쌓고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습니다. 주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성도가 하나님 앞에 감격과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드린 번제를 흠향하시고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한 것을 아시면서도 심판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아니 하시겠다 약속하신 것은 그들이 새로워지고 달라져서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거나 변화하지는 않았습니다. 달라진 그것은 그들이 방주에 들어갔다가 방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믿었다고 인간성이 달라지고 성품이 거룩하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믿어도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확실한 달라진 것은 예수 믿었다는 사실 하나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그렇게 옮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한 번 죄로 인하여 홍수를 당한 땅이 에덴동산 시절과 같이 온전히 회복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죄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씻김 받고 거듭났다 할지라도, 새로운 피조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해도 온전한 성품과 완전한 거룩함을 회복할 수는 없는 것과 같이 예수 믿었다 하여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 땅에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않음 같이 성도의 앞길도 광야와 같은 연단과 환난이 계속될 것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쉬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산 자들입니다.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않음 같이 이어지는 광야와 같은 연단과 환난의 길을 우리는 주와 함께 걸으며 그 앞에 서기까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응한 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무지 믿음 없는 자에게  (0) 2016.02.29
아브람의 쌓은 단  (1) 2016.02.17
방주에서 나온 자들  (0) 2016.01.26
믿을 것인가, 아니 믿을 것인가?  (0) 2016.01.22
세상이 비웃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  (0) 2016.01.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