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비웃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

하나님은 이 세상을 반드시 심판하셔야 합니다.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심판을 하지 않으신다면 악은 영원히 득세하고 마귀는 영원히 신나고 억울한 자는 영원히 억울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오지 아니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공간에 악이 존재하고 지속되도록 허용하거나 놔두신다면 하나님은 그 악을 위하여 우주의 일부를 창조하여 제공하신 꼴이 되어버리실 것입니다 악을 미워하시고 죄를 용납하지 못 하시는 하나님은 그래서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세계에서 악을 반드시 없애버리실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는 온 세상의 죄악을 말갛게 씻어버릴 마지막 날의 하나님의 심판을 미리 보여 주시는 예표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를 짓도록 명하셨습니다. 길이가 300 규빗, 너비가 50 규빗, 높이가 30 규빗인데 이를 미터단위로 환산하면 길이 135미터, 너비 22.5미터, 높이 13.5미터의 길고 조금 납작한 축구장보다 약간 더 큰 거대한 상자모양의 삼층 배가 됩니다. 잣나무로 지으라 하셨습니다. 역청으로 안팎을 칠하라 하셨습니다. 거친 잣나무를 베고 켜고 다듬어 배를 짓는 일이나 역청을 구해 와서 방주의 안팎을 칠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며칠이나 몇 달, 몇 해로 끝날 일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일평생을 몸 바쳐 일해야 하는 엄청난 일이었고 어느 한 부분, 한 구석이라도 빠뜨리거나 소홀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고, 대충 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방주를 지은 장소도 바닷가나 강가가 아닌 땅위였을 것이고 비도 아직 안 내리는 때였으니 당시의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들이 하는 일은 아까운 시간과 노력과 돈과 인생을 허비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미련하고 어리석고 미친 짓이었을 것이니, 어쩌면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에게는 그들의 조롱과 비웃음과 모멸을 이기는 일이 방주를 짓는 일보다 더욱 힘들었을 것입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일은 그렇게 험난하고 멀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간단하게 스티로폼 박스나 구명보트 하나씩 만들어서 타면 되는 그런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조롱 속에서 거칠고 무거운 잣나무를 베어 와서 고뱅이들을 잘라내고 다듬고 길이와 폭을 빈틈없이 맞추어 방주를 짓고 석청을 안팎으로 빈틈없이 바르는 일은 가시밭길, 죽음과도 같은 고난과 형극의 길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하필이면 멋진 백향목이나 적송이나 전나무 같은 좋은 목재 놔두고 거칠고 고뱅이 많은 잣나무로 방주를 지으라고 명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왜 역청으로 방주의 안팎을 칠하라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왜 하필이면 가시떨기 조각목으로 언약궤를 만들라고 명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왜 황금으로 언약궤를 싸라 하시고 또 그 위에 속죄소를 두고 피를 뿌리게 하셨을까요? 오늘날 우리는 노아처럼 잣나무를 베어다 역청을 발라가며 구원의 방주를 짓지는 않습니다. 가시떨기나무로 법궤를 만들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습니다. 방주의 재료로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거친 잣나무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메마른 가시나무 조각목은 바로 우리 죄인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쳐서 다듬고 맞추고 십자가의 보혈을 안팎에 발라야 합니다. 하루 이틀에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평생을 두고 해나가야 하는 일입니다.

그 방주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 노아 자신과 그의 처, 그리고 그 자녀들을 구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심판이 어디 있느냐고 비웃고 조롱하는 세상 속에서, 세상이 미련하고 어리석게 여기는 십자가를 지고, 세상이 이해하지 못 하는 일, 저들이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을 평생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삶도 이와 같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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