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에게 집행된 십자가형은 범법자에 대한 형벌이라기보다 교묘하게 꾸며진 살해라는 견해가 우세하며 또 십자가형 집행의 내용을 알게 되면 잔인무도하기 그지 없어 인류역사상 가장 가혹하고도 혹독한 살해 방법임에 치를 떨게 된다.

당시 로마 제국에서도 십자가형은 죄질이 무거운 범법자로 도망친 노예, 혁명지도자, 탈영병 등에 적용되었으며 시민에는 적용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십자가형의 방법은 특별히 정해진 것이 아니라 형 집행인에게 위임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집행인의 경험에 따라 그 방법에는 많은 차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은 팔과 다리를 로프로 십자가에 묶어 고정하는데 양 손목과 팔은 십자가 횡목(橫木)의 뒤에다 고정하는 방법과 손을 횡목에 밀착시키고 손바닥에 굵은 못을 쳐 고정하는 방법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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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TEGNA, Andrea, Crucifixion, 1457-59, Tempera on panel, 67 x 93 cm, Musee du Louvre, Paris

만테냐(Andrea Mantegna 1431-1506)가 그린 “책형”(1460)이라는 그림을 보면 중앙에 있는 예수의 양쪽에서 십자가형을 받고 있는 두 사람은 손목과 팔이 십자가의 뒤에다 고정했으며 예수의 경우는 횡목의 앞에다 못으로 고정했다.


또 손을 횡목에 고정하는데 있어서도 대부분의 그리스도 책형의 그림에는 손바닥에 못질을 한 것으로 그려졌는데 트리노에서 발견된 그리스도의 유해를 쌌던 시트의 손 부위에 해당되었던 부분을 면밀히 검사한 결과 손바닥보다는 손목관절에 못이 박혔던 것으로 해석됐고 또 의학적인 견지에서도 손바닥보다는 손목관절을 못으로 고정하는 것이 십자가에 몸을 지탱하는 데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그 방법은 정해져 있는 것이 없고 전적으로 형 집행인에게 맡겨졌던 것이기에 사람에 따라 많은 차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발에 못질하는 것도 어떤 그림에는 좌우 발에 각각 따로 못질한 것으로 표현된 것이 있는가 하면 좌우 발을 겹쳐서 못 하나로 고정한 것도 있다. 십자가의 세로목에는 엉덩이 높이에 항대(杭臺)를 만들어 상체가 지지되게 한 것과 발 부위에 족대(足臺)를 만들어 전신이 지지되게 한 것이 있다.

독일의 화가 그뢰네발트(Matthias Grunewald 1460-1528)가 그린 이제하임 제단화의 ‘그리스도 책형’은 손바닥을 못으로 고정하고 발에는 족대가 있고 발은 겹쳐 못질을 한 것으로 그려졌다. 가시 면류관을 쓴 예수가 고통을 이기다 못해 고개를 가슴 쪽으로 숙이고 있다. 가슴의 밑 부분이 잘록하게 파여 들어가고 흉벽에는 늑골 모양이 무늬를 이루고 있는 것은 호흡곤란이 오다 지쳐서 탈진상태에 들어간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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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UNEWALD, Matthias, The Crucifixion, 1523-24, Oil on wood, 193 x 152,5 cm, Kunsthalle, Karlsruhe

못이 박힌 손바닥 부위를 보면 손가락은 부채 살처럼 퍼져있는데 이것은 손바닥에 못이 박힐 때의 아픔 때문에 손목과 손가락에 경련을 일으켰을 때 보는 모양이다. 발 부위는 두발이 겹쳐 못이 박혔으며 발가락의 인대들이 줄무늬처럼 일어선 것 역시 아픔 때문에 일어나는 발가락의 경련으로 보는 현상이며 못 박힌 두 발을 족대에 대지 못하고 공중에 뜬 것 역시 아픔과 경련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이나 하듯 못으로 인한 상처에서 피만이 아니라 체액까지 흐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예수의 고통이 얼마나 참기 어려운 것이었는가를 여실히 표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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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몸이 장시간에 걸친 수직자세의 강요를 위해 설계된 것이 십자가형이다. 그렇기 때문에 몸의 하반신에는 체위성 혈관장애가 반드시 오게 돼있으며, 심장으로 혈액이 되돌아오기 위해서는 팔다리의 근육의 활동을 필요로 하는데 십자가에 매달린 상태에서는 팔다리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전혀 할 수 없기 때문에 혈액의 순환장애가 와 사람은 허탈상태에 빠지게 된다.


항대나 족대 같은 받침대는 극히 한정된 범위 내에서의 팔다리의 근육을 조금씩이나마 움직일 수 있게 하여 실신하지 못하게 하지만, 결국 오히려 죽음과의 싸움을 연장시켜 고통을 오래 받게 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십자가에 매달린 자세에서 흉곽을 움직이기 위한 호흡근에는 최대한의 부담을 받게 됨으로 단시간 내에 마비가 야기되고 어깨의 호흡 보조근은 양 팔이 밑으로 늘어지기 때문에 완전히 움직일 수 없게 되며, 복부는 밑으로 땅겨지기 때문에 복식호흡은 불가능하게 되어 흉곽은 숨을 내쉬는 것과 들어 쉬는 것의 중간에 고정돼 움직일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양의 혈액이 고정된 사지에 체류되는 결과로 순환은 장애 되어 맥박은 빠른 속도로 증가되고 혈압은 저하된다. 피부는 창백해지고 식은 땀을 흘리며 동공은 산대되고 이명과 어지러움이 일어난다. 이러한 허탈상태가 지속되면서 서서히 쇼크에 빠지게 된다. 즉 호흡장애와 순환장애가 서로 상승적으로 작용해 쇼크에 빠지게 되며 결국은 이것으로 사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형의 집행으로 죽음의 고통과의 사투는 2일 내지 3일 계속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예수의 경우는 6-9시간으로 기술되어 있다(마르 15,25.33.44). 예수의 경우는 십자가형에 처하기 전에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 인해 체력의 소모가 컸던 것이 상승적으로 작용해 죽음이 빨리 왔던 것으로 생각된다.

형벌로서의 사형은 어디까지나 고통을 덜 당하고 사망하는 방법을 택해야 할 것이며, 십자가형의 경우는 일부러 극심한 고통을 주며 그것도 고통을 오랫동안 당하다 죽게끔 꾸며진 것이기 때문에 형벌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죄악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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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TEGNA, Andrea, Crucifixion, 1457-59, Tempera on panel, 67 x 93 cm, Musee du Louvre, Paris>


예수 십자가에 못 박히심. 북러시아 화파. 16세기. 파리 국립미술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장면의 묘사는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는 곳마다 각기 다른 모양으로 조각되거나 그려졌다.


서방교회는 주로 요한 복음의 수난사에 따라 그린 반면 동방교회에서는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마태오 복음의 수난사에 대한 강론에서 영감을 받아 조직적이고 상징적으로 그렸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중심으로 양옆에는 마리아와 사도 요한이 서있으며, 그들 뒤에는 거룩한 부녀들과 백부장, 군인들,그리고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군중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마리아를 향해 숙여진 예수의 얼굴은 지극한 고통중에도 고귀한 위엄과 평화를 지닌 표정을 짓고 계신다.
이는 하나님이시며 인간이신 그분의 몸은 죽음 안에서도 부패되지 않은 채 남아 있기 때문디다.
십자가 아래에는 골고타 동굴이 열려 있는데 이는 죽음과 지옥에 대한 예수의 승리를 상징한다.
이 동굴에는 아담의 해골이 보인다.
전승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가 구원해야 될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무덤위에 세워졌다고 전한다. 이것은 구약의 아담과 신약의 아담이 연결됨으로써,  죽음을 불러온 첫 아담이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 된것을 표현한 것이다.

십자가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건축물은 예루살렘 성벽이다.
당시의 모든 죄인들과 마찬가지로 예수 역시 성벽 바깥쪽에서 고통을 받았다.
즉, 예수의 시신이 도시, 성전 그리고 박해자들을 불결하게 만들지 않도록 도시 밖에서 사형이 집행된 것이다.

이러한 묘사는 또한 영성적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
6세기 경부터 이런 그림을 그렸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밖에서 수난하신 것처럼 이 땅 위에는 차지할 도성이 없고, 다만 앞으로 올 도성을 바라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의 벽을 헐고 나아가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히브리 13,12-13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도 당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문 밖으로 그분께 나아가 그분의 치욕을 겪읍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팔이 달려 있는 횡목은 하늘을 배경삼고 있다
이렇게 창공에 놓인 십자가는 악의 세력에서 온 우주을 해방시킨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우주론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성모는 왼손으로는 망토를 쥐고 오른손은 그리스도를 향하여 내밀고 있다.
그녀는 비탄의 표정을 짓고 있다.
그 반대편의 요한은 영적인 공포와 번민으로 가득차 오른손으로 얼굴을 쥐고  왼손은 십자가를 향하여 내밀고 있다.
성모의 뒤의 여인은 왼손으로 자기뺨을 만지며 통곡하고 있다.
요한 뒤의 터반을 쓴 사람은 백부장 론지노스이다.
이렇게 ’십자가에 못박히심의 이콘’은 천상에로의 창문이 되며,  우리를 그 당시의 사건에 참여하도록 초대하며 구원의 신비와 결합하도록 이끌어 주고 있다.

주여,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주의 후사에게 강복하시고
믿는 자에게 원수에 대한 승리를 주시고
십자가로 보호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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