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이 성도들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기쁨과 모든 선(善)의 원천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큰 상급”(창15:1)이시다.하나님이 자신을 선물로 내주신다면 모든 고통을 다 보상하고도 남는다. 하나님이 자신을 내주시는데 그보다 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2 고난이 선을 베푸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 시인은 “형통한 것이 유익이라” 하지 않고 “고난 당한 것이 유익”이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고난을 통해 선을 베푸신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고난을 통해 더 지혜로와진다. 고난은 진리를 가르치는 학교와 같다. 고난은 깨달음을 준다. 고난은 교만, 정욕, 세속주의가 우리 마음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고난은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준다. 고난은 성도를 더욱 거룩하게 만든다. 다이아몬드는 깎을수록 더 찬란한 광채를 발한다. 고난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더욱 닮게 해준다. 고난이라는 혹독한 겨울은 은혜라는 봄꽃을 피워낸다.

 

 

 

3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알고 계신다. 우리가 감당 못할 시험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어린아이의 등에 거인이 짊어져야 할 짐을 지우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바이올린의 현이 끊어질 만큼 지나치게 세게 잡아당기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한 손으로 징계를 내리시면서도 다른 손으로 위로를 건네신다(아8:3).

 

 

 

4 고난이 죄를 예방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를 주셨다”(고후12:7)고 했다. 번영은 아편처럼 우리를 죄악의 깊은 잠에 빠지게 만든다. 하나님께서는 회초리를 들어 영적 게으름에 빠지지 않도록 경각심을 심어주신다. 고난은 지옥의 형벌을 예방한다. 경건한 사람이 맛보는 한 조각의 슬픔은 죄인이 마셔야 할 바다 같은 진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5 모든 것을 사랑으로 행하시기 때문이다.

 

고난은 날카로운 화살과 같다. 하지만 그 화살을 쏘는 분은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징계가 없는 것은 가장 큰 징계에 해당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대한 징계는 사랑의 시작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책망하시면서도 아버지의 마음을 잃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우리를 징계하신다면 그것은 곧 우리에게 선을 베푸시는 것과 같다.

 

 

 

6 징계를 내리시지만 긍휼을 잃지 않으신다.

 

“내가 공도로 너를 징책할 것이요”(렘30:11). 그분은 가혹한 징계를 자제하시고 부드럽게 징계하신다. 즉, 호된 벌을 주실 수도 있지만 가급적 매를 아끼신다. 우리 죄값을 남김없이 치르게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진노의 잔을 모조리 들이켜도 마땅한 우리에게 약간의 고난을 허락하시고, 생명을 취해도 부족한 상황에서 육체를 잠시 연약하게 만드시며, 고난의 홍수를 뒤집어써야 할 상황인데도 발목까지 잠기게 하시는 것으로 만족하신다(겔47:3).

 

 

 

7 고난이 죄를 피할 수 있게 해준다.

 

아론은 두 아들이 불에 타 죽는 혹독한 시련에 직면했다. 하지만 그는 잠잠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입을 다물고 징계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들은 하나님을 거슬러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불의의 수단을 써서 고난을 모면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백성은 고난의 용광로에서 온전히 정화되어 나오기까지 인내한다. 그들은 자유를 얻기 위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행하지 않는다. 고난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선과도 같다. 고난을 받으면 죄를 피할 수 있다. 고난은 겉옷이 조금 찢어지는 정도로 끝나지만 죄는 생살이 찢어지는 아픔을 준다. 고난은 재산을 조금 잃는 것으로 끝나지만 죄는 하나님을 잃는 결과를 초래한다.

 

 

 

8 성도의 잘못을 일깨우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성도를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방법은 변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목적은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태도는 바뀌더라도 그분의 진정한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혹독하게 꾸짖으실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의절을 선언하지 않으신다.

 

 

 

9 악인들이 당하는 징벌만큼 혹독한 고난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화살 한 대를 날리시지만 악인에게는 화살을 소낙비처럼 날리신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고난을 당할 때는 불쌍히 여기시지만, 악인이 고난을 당할 때는 비웃으신다. 하나님의 백성은 악인들처럼 고난을 당하지 않는다. 악인들에게는 죄 값에 상응하는 모든 징벌과 고난이 주어진다.

 

 

 

10 위로를 잠시 거두시지만 더 큰 위로로 갚아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잠시 재산을 거두셨다가 다시 사람들 위에 높이시고, 보화 하나를 거두어가시면 나중에 더 많은 보화를 허락하시며, 사랑하는 자식을 취하시면 더 많은 자식을 허락하셔서 두 배의 위로를 받게 하신다.

 

 

 

11 아무것도 빼앗지 않으시고 더 나은 것을 주시기 때문이다.

 

동전 한 닢을 잃고 금을 받았다면 손해를 입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건강을 거두시고 거룩한 삶을 주셨다면 어떠한가? 자식의 생명을 취하시고 그리스도를 주셨다면 어떠한가? 꽃을 거두시고 보석을 주신다면 더 낫지 않은가?

 

 

 

12 하나님이 고난 받는 성도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없애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분은 고난을 당할 때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데 보좌에 앉아 있는 것보다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상태로 감옥에 있는 것이 더 낫다. 하나님의 임재는 용기를 준다. 폴리갑이 순교를 앞두고 원형극장으로 향할 때 하늘에서 “폴리갑아, 기뻐하라”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의 세 친구와 함께 불속으로 들어가셨다.

 

 

 

13 하나님께서 성도의 고난을 보상해주시기 때문이다.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요16:20). 성도는 때로 큰 위로를 받고 능히 고난을 극복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후1:5)라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마라의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시며 우리가 지쳐 쓰러져 있을 때 새 힘을 주신다. 성도는 가장 심한 고난을 받을수록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다. 주님이 고난을 복으로 바꿔주시기 때문이다.

 

 

 

14 성도의 고난이나 시련은 오래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흐린 뒤에 해가 비치듯 고난은 마침내 사라진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사랑하신다. 결코 영원히 괴롭게 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성도에게 안식을 주신다. 죄인이 잘되고 성도가 고난받는 상황은 오래가지 않는다. 성경은 고난을 “잔”으로 묘사한다. 악인은 진노의 바다를 들이키고 성도는 고난의 잔을 마신다. 고난은 고통스럽지만 언젠가는 바람처럼 사라진다.

 

 

 

15 고난이 천국으로 인도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4:17).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천국에 간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의 어두운 구름 사이로 영광의 빛을 드러내신다. 고난을 당하는 성도는 곧 복된 천국에 이를 것이다. 고된 순례의 길이 끝난 뒤에는 낙원이 기다리고 있다. 그때는 모든 소원이 이루어진다. 천국의 영광과 낙원의 꽃들로 만든 화환을 쓴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라.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보다 더 많은 영광의 보석들로 치장한 영혼의 모습을 생각해보라.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당한 모든 고난을 보상해 주실 것이다. 이런 복된 미래를 상상하면 고난을 잊을 수 있다. 영광의 빛줄기가 비치면 성도의 눈물은 모두 마를 것이다.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도 선대하시는 하나님을 항상 선하신 분으로 생각해야 한다. 환자는 의사가 쓴 약을 처방해준다고 해서 그에게 불만을 품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병을 치유하기 위한 처방으로 알고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고난은 원수의 창날이 아니라 아버지의 회초리와 같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의 쓴 약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우리를 축복해주신다. 하나님을 항상 선하신 분으로 생각하자.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법을 배우자.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 범사에는 고난도 포함된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우시게도 성도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징계하신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찬양하는 것은 은혜가 충만하다는 증거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성전에서 찬양이 울려 퍼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 토마스 왓슨,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pp 241-255

 

출처: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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