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

이응한 목사 2015. 11. 29. 08:01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


[히브리서 6: 7-8]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더러 교회들이 지키는 절기들이 참 많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신년예배부터 시작하여 설날(구정), 부활절이 다가오면 사순절이라 하여 40일 금식기도, 종려주일, 고난주간, 그리고 부활절, 부활절이 끝나면 오순절, 어린이날, 어머니날, 아버지날, 초막절, 맥추절, 여름성경학교, 야외예배, 전교인 수련회, 부흥회, 사경회, 바자회까지, 가을에는 추석에다 추수감사절, 그리고 성탄절이 다가오면 대림절인지 대강절, 그리고 성탄절, 그리고 송구영신예배.... 이렇게 참 절기와 행사가 많습니다. 언젠가 일년 내내 이러한 절기와 행사를 이어가면서 목회자의 목회 프로그램과 설교원고를 아예 붕어빵 식으로 만들어서 나누어주는 목회자 모임이 있는 것도 보았습니다. 여기 우리가 빌려 쓰는 이 미국교회도 행사들이 일 년 내내 줄줄이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추수감사절은 지금으로부터 400 여 년 전, 1622년 11월 11일 영국에서 박해를 피해 메이플라워호라는 배를 타고 신대륙으로 온 102 명의 청교도들, 그 해 겨울을 넘기면서 절반이나 추위와 굶주림, 질병으로 죽고 살아남은 그들이 2년 후엔가 자기들을 도와준 인디언들을 초청하고 하나님 앞에 추수감사예배를 드린 것이 나중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추수감사절로 제정함으로써 정착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130 여 년 전 들어온 미국인 선교사들이 이 추수감사절을 한국에 보급하였고, 이것이 추석을 지키는 농경사회이던 한국인들의 정서에 맞아 한국교회에도 뿌리내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도시화, 산업화로 인하여 더 이상 농경사회도 아닌 한국에서 무슨 추수감사냐, 추수감사절이 축복 좋아하는 교인들로부터 헌금을 우려내는 방편으로 악용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도 있고 폐지하자는 이야기도 있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성경은 추수감사에 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요? 추수감사절이라는 명칭은 없지만 성경은 명백히 하나님 앞에서 추수 절기를 지킬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 출애굽기 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한 해의 마지막)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신명기 16: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 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이 말씀들을 보면 추수절기를 하나님 앞에서 즐겁게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명하신 구약시대의 계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구약의 절기를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말씀과 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잇대어 재해석하고 이를 기쁨으로 지키고 누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 위에 파종을 하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햇빛과 이른 비, 늦은 비로 열매 맺게 하시어 우리로 거두게 하신 은혜를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추수는 땅에서 나는 곡식이나 열매, 그것을 하나님의 백성이 거두고 누리고 즐거워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추수는 이 땅에서 마지막 때에 거두실 영원한 영혼의 추수일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주님을 만나고 기뻐 뛰며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간 다음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양식은 따로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고 하시며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는 추수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알곡을 천국창고에 모아들이고 가라지는 불에 태울 것이라 하셨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옥토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원수가 덧뿌린 가라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는 농부라’ 하시고 포도나무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이한(예리한) 낫을 휘두르는 추수군 천사도 등장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히브리서 6장 말씀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밭 가는 자들에게 합당한 작물을 내는 복 된 밭을 말씀하며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타락한 밭이 버림당하며 불사름 당할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밭 가는 자들이 누구이겠습니까? 밭 가는 자들에게 합당한 작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혼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추수감사절 풍성한 가을걷이를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지만 밭 가는 자 되신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거두시고 기뻐하시는 것은 알곡과 같은 성도,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열매와 같은 성령의 열매들, 궁창에서 영원히 빛날 천국의 영혼들로 인하여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뿌리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아들의 피, 독생자의 생명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찢어 뿌리신 처절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밭 가는 자 되신 하나님이 거두시고 기뻐하시는 채소와 알곡이 되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요 1:12). 그리스도의 살과 피, 그 처절한 고통의 사랑을 우리 가슴에 심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고 그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른 비, 늦은 비와 같이 내려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초보에 머무르지 않고 단단한 식물을 소화하며,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것" 같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쉬임없이 흡수하여, 무럭무럭 자라는 밭의 작물과 같이, 배움의 정진(精進: 힘을 다 하여 그리스도의 나아감)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으르도록 나아다는 것입니다. 뜨거운 햇살과 폭풍우를 이겨내는 것 같이 고난과 연단을 이겨내는 인내요 믿음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이 마지막 때에 '받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작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알곡 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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