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프리카 선교사의 외침

“말하지 말라고? 나는 진실을 말해야겠다”


김동국 우간다 선교사 / 출처 = 김동국 페이스북


나는 아프리카에서 24년째 어린 아이들에게 교육을 하고 있는 아주 젊잖은 선교사다.


조국의 현실이 끔찍하게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조국을 이렇게도 망가뜨리는 세력들이 있다는 것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의 서툰 글재주나마 현재의 상황에 보탬이 될까 해서 글을 올린다.


호남의 어떤 목회자가 “아프리카에서 아무 것도 모르면서 가만히 있으라”라는 식의 억압을 해왔는데,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다.


내가 뭘 모르는가? 요즈음엔 (모바일로 세상이) 손바닥 안에 다 있는데도, 한글 24자만 알면 다 읽는데도, 게다가 난 영어로도 설교도 하고 대학교에서도 영어로도 강의했고, 그래서 영자신문에 영미방송도 청취할 수 있다.


쥐꼬리만큼 아는 것을 가지고 유난을 떨기에 내가 그간에 읽은 좌파인사들의 책과 제목 "유시민의 <나의 현대사>, 조정래의 <정글만리>, <태백산맥>, 장준하의 <민족혼. 민주혼. 자유혼>, <민족주의자의 길>, 함석헌의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김 구의 <백범일지>, 진중권의 <미학 오딧세이 전 3권>, 전남 완도 사람 김삼웅의 <친일파>, 고대총장 김준엽의 <장정 전 5권>, L. 스타브리아스의 <제3세계 역사와 제국주의> 이만열의 <한국 기독교 수용사> 노동시인 박노해의 <겨울이 꽃핀다>, 지금은 월북작가 홍명희의 <임꺽정 전 10 권> 중 2권을 보내면서 이것을 읽고 있는 중이다"하고 쭈욱 올렸더니 묵묵부답이다.


이런 책들을 대부분 내 호주머니를 털어서 구하여 선편으로 받았고, 내 서재실에서는 다음 타자를 기다리고 있다. 또 한 사람은 “사람들이 싫어하니 글을 올리지 말라”는 식의 협박을 해왔다.


그 말은 선교비를 짜르겠다는 것으로 이해되어 참 씁쓸했다. 그것도 동기라고, 호남 동기라고 하는 분들에게서 들은 말이다.


여기서 밝히지만 그 많은 총신 신학대학원 호남 동기들이 있지만, 나에게 아무도 24년 동안 후원한 사람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겁날 것 없다 하였다.


그런데 내가 아는 호남의 선교사는 은근히 대구와 경북 모교회의 후원을 받고 단기선교 팀까지 오는 모습에서 “맞아. 예수 안에 영호남의 벽이 어디 있나”하면서 위로를 받다가도 마음이 편치 않다. 또 한 사람은 “찌라시 언론, 즉 조갑제 닷컴, 일베 등을 믿지 말라”는 식의 주입식교육을 하려고 한다.


그런 예수 믿는다는 청년의 말에 어이없어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육십고개를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런데 주입식교육에 춤추는 사람으로 보았다면 아직도 멀었다. 대한민국을 저런 젊은 세대가 짊어지고 가려한다니 참으로 갑갑하기도 하여 이 글을 또 올린다.


또 한 사람은 “전라도의 아픔을 아느냐 광주를 와 봤느냐”는 식으로 기분 나쁘게 말했다. 난 그들의 아픔이 어떤건지는 몰라도, 5.18 광주사태 때 현역 일병으로서 국군통합병원에서 손발이 잘려나가 고통에 신음하면서 죽어나간 우리의 전우들의 아픔과 눈물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고, 내 두 귀로 들었고, 내 뜨거운 가슴으로 피터지게 느꼈노라고 했다.


그러면 누가 그들을 쏘아 팔목을 잘랐나? 누가 쏜 총탄에 저들의 살이 푸르쭉쭉하게 썩어가다 죽었나? 그러면서도 국군은 모두 죄인으로 몰고간 자들이 민주투사라는 말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나는 여기에 글을 올린다.


말하지 말라는 세상에 대하여 나는 진실을 말하여야 하겠다. 말하지 말라는 지인들에게, 나는 목놓아 울더라도, 단 한 사람이 읽더라도, 아니 단 한 사람이 수긍하더라도, 나는 전우들의 피와 땀과 죽음 앞에 죽는 그 날까지 이 진실을 띄워 그들을 위로해야겠다.


진실을 뭍어두고 그 위에 멍석 깔아놓고 술판 벌이는 세상에 대하여, 내가 믿는 진실과 그 진실을 지켜줄 동지들과 그들을 사랑하시어 우리를 구원해 주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붙들고 말하기를 꺼리지 않겠다.



- 천고 김동국 / 적도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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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서 '여성할례' 비밀리 확산…FBI 단속 나서

 

 

미국 내에서도 '여성 할례'가 은밀히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연방수사국(FBI)이 단속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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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에서 성형수술로 위장한 '여성 할례'가 성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연합뉴스  

 

성형수술로 위장, 점조직 형태로 확산

 

미국 폭스뉴스에 따르면 FBI는 여성 할례를 국제적 인권침해 범죄로 규정하고, 소녀들에게 할례를 시술하거나 이를 강요하는 행위에 대한 수사를 광범위하게 진행 중이다.

 

케리 스파크스 FBI 특별요원은 "미국 내에서 어린 소녀들에 대한 할례 시술이 은밀히 자행되고 있다"며 "일부 소녀는 방학을 맞아 할례 시술을 하는 외국으로 나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여성 50만 명 이상이 할례 시술을 이미 받았거나 받을 위험에 처해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1990년 조사 때보다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미국 내에서 여성 할례는 아프리카와 중동 등 이슬람 국가에서 이민 온 가정에서 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 할례 반대 단체인 '소녀를 위한 안전'의 자하 두쿠레는 "미국에서 할례로 고통을 받은 소녀를 만나지 않는 날이 없다"면서 "여성 할례는 성형수술이나 질성형으로 위장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집트 출신의 전 방송인 와히드 복토는 "미국에서는 자신의 딸과 손녀에게 할례 시술하려는 여성들이 대부분"이라면서 "할례 시술은 비밀스럽게 이뤄지며 점조직 형태를 띠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50개 주 중 24개 주, 할례 '금지'

 

실제로 미국에서는 현재 여성 할례를 위해 소녀들을 해외로 보내거나 시술하는 행위가 연방범죄로 규정돼 있다. 연방 의회가 지난 2013년 '여성 할례 이동 금지법'을 제정했기 때문이다.

 

50개 주 가운데 24개 주는 할례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지만, 나머지 26개 주에서는 불법이 아니다. 이에 따라 여성·인권단체들은 26개 주에서도 할례가 불법으로 규정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할례 금지' 주에서도 처벌 수위는 제각각이다. 버지니아 주는 지난달 여성 할례를 1급 경범죄로 규정하고 위반 시 최대 징역 1년에 처하도록 하는 법안을 의결했다. 반면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징역형뿐만 아니라 벌금형까지 부과하고 있다

 

이에 인권단체들은 "여성 할례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단속과 함께 처벌이 필요하다"면서 "할례가 성행하는 지역에서 온 이민자를 상대로 한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 할례를 강요했다가 추방당한 사례도 늘고 있다. 연방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최근 에티오피아 남성 1명을 본국으로 추방했다.

 

이 남성은 지난 2006년 자신의 2살 난 딸에게 할례를 시술하다가 적발돼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풀려났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반(反)이민 정책에 휩쓸려 추방까지 당했다.

 

여성 할례는 성기 일부를 절제하거나 절개하는 의례다. 주로 아프리카와 중동, 폴리네시아 등 일부 지역에서 성행하고 있으며 소녀의 순결성과 결혼 자격 등 다양한 이유로 이뤄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아프리카, 중동 29개국의 여성 1억 3천300만 명 이상이 할례를 경험했으며 매일 9천800명, 매년 3천600만 명이 할례를 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주련 ⓒ 데일리굿뉴스

가져온 곳: USA 아멘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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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의 쇼핑

 

천국에 가서 쇼핑을 했다.

 

 

세상에 나가 살려고 하면
필요한 것들이 많아서 쇼핑을 하는데,
우선은 사랑이 필요한 것 같았다.

 


 

천국백화점 1층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사랑을 카트에 실었다.

기쁘고 평화롭게 이웃들과 사는 것이 중요해서
코너 옆쪽에 있는
평화와 화해도 실었다.

때로는 참지 못할 일도 있을 것 같아
차곡차곡 쌓여있는 오래참음도 하나 올렸다.

 


 

너무 강팍하지 않게
자비를 베풀 일도 있을 것 같고,
착하고 충성되게 살아야 할 것 같아,
자비와 양선과 충성도 충분하게 담았다.

부드러우면서 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 온유는 꼭 필요했다.


온유도 싣고 나오는데,
아무래도 욕심이 생기면
스스로 절제하는 것도 꼭 필요하겠다 싶어
마지막으로 절제도 한 묶음 실었다.

이제는 세상에서
얼마든지 행복하고 넉넉하게
만족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산대로 가서 너무 비싸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계산하는 천사에게 얼마냐고 물어보았다.

천사가 하는 말이 모두가 공짜라고 한다.

아니 이 귀한 모든 것이 어떻게 공짜냐고 했더니
천사가 하는말,


"이미 예수님께서 다 지불하셨어요

 

옮긴 글

 

..

 
출처: 사모님사모님/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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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국무장관 "하나님 부르심이라 믿고 공직 수락"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공직을 수락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공개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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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렉스 틸러슨 美 국무장관


틸러슨 장관은 <인디펜던트 저널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도덜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무장관직을 제안했을 때는 수락할 생각이 없었다”고 밝혔다.
 
올해 65세인 장관은 올초 세계 최대 정유회사인 엑손모빌의 최고경영자직에서 물러나 자신의 목장에서 손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장관의 생각을 바꾼 것은 그의 아내 렌다 여사였다. 렌다 여사는 “국무장관직은 ‘하나님의 신성한 부르심이다”며 틸러슨 장관을 설득했다.
 
여사는 “장관직은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다는 증거”라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한다”고 강력히 권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틸러슨 장관은 정치 경험이 전무한 인물로 장관직에 오른 직후부터 장관의 업무수행능력은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이번 주 초 틸러슨 장관은 “오는 4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미국에게 가장 중요한 우방국들에게 등을 돌리는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란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밖에도 “국무장관의 역할 전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무장관직을 수락하기 전 트럼프 대통령과 단 한번의 만남을 가진 틸러슨 장관이 트럼프 정부의 외교 정책에 대한 이해가 있을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에 틸러슨 장관은 “트럼프 정부의 ‘미국 제일주의’ 외교정책의 복잡한 퍼즐을 이해할 수 있을 때 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유현 ⓒ 데일리굿뉴스

가져온 곳: USA 아멘넷 

 

 

십일조, 반드시 해야만 하는가?

요즈음 십일조는 반드시 내어야만 한다, 낼 필요가 없다. 양분론되어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한쪽은 ‘십일조는 율법의 산물이며 신약과는 무관할 뿐 아니라 십일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급하신 적도 없다고 말한다. 다른 한쪽은 ‘십일조는 반드시 내어야만 한다, 아니면 도둑이다’ 라고 말라기3장의 한 구절을 인용, 은근히 협박성 강조를 함으로써,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이 구속 주이신 예수님을 채 만나기도 전에 포기를 해버리도록 무거운 짐의 걸림돌을 그들의 어깨 위에 올려놓는 사람들도 있다. 또 어떤 이는 십일조를 내어야만 복을 받는다고 하여, 십일조가 모든 축복의 바로미터라도 되는 양, 성도들을 기복사상으로 유도하는 분들도 많이 있다. 이런 주장 역시 주님의 구원하심(영과 육의)의 축복을 흐리게 하는 주장일 뿐, 사실 이 모두가 다 십일조에 대한 올바른 성서적 견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필자가 본 성서적 입장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축복은 죄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것이다.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과 육체가 자유함을 누리게 되는 것,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 그다음에 다른 축복은 주님을 믿고 사랑하는 자가 누리는 축복으로서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며, 우리가 축복받기 위해서 십일조를 내어서도 안 되고 도둑이 되지 않기 위해서 십일조를 의무적이거나 억지로 내어야만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십일조를 내는 마음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며,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십일조를 내는 마음의 자세는 ‘물질보다 주님을 더 사랑합니다.’ 하는 마음, 내게 베풀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 영 죽을 죄악에서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도 크고 감사하다는 고백, 내가 누리는 이 구원의 복음이 널리 전파되고 확산 되어지도록 하기 위해 내가 가진 것 중에서 극히 적은 부분, 십 분의 일을 사랑하는 주님께 드리되 자원하는 심령으로 모든 헌물(십일조 포함)은 드려져야만 한다.

그러기에 이 사실을 바로 깨달은 어떤 이들은 십 분의 일이 아니라 십 분의 이나 삼, 더 나아가서 십 분의 구까지도 기꺼이 드리는 성도가 있고,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자기들의 전 재산을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놓을 수가 있었다고 본다. 우리 주님은 즐겨 내는 자를 기뻐 받으시지, 의무나 인색함으로 하는 예물은 그것이 어떤 것이 되었든지 흠향하지 않으신다. 주님이 받지도 않으시는 예물을 바쳐야 할 필요가 어디있는가?(고후 9:7절 참조)정말 주님을 향한 사랑이 마음에서 뜨겁게 올라온다면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하는 것이 무엇이 그리도 아까울 것인가?

1. 구약의 모든 율법은 폐하였고 십일조를 낼 필요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어진 것이지 결코 폐지되지 않았다(마5:17-19!!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 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완전(to fulfill)케 하심의 뜻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예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기 위해서 오셨고, 또 십자가 위에서 온전케 하셨다. 요한복음 19: 30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 운명하셨다. 그렇다면 십자가 위에서 무엇을 다 이루셨는가?

그것은,
첫째: 구속사역을 다 이루심(믿음으로 구원을 받음)
둘째: 율법을 온전케 하심(사랑 안에서 온전케 됨)
구속사역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것을 전제로 여기에서 언급할 필요가 없고,

율법을 온전케 하심이란:
마태복음 22: 37-39절 말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요약하여 율법은 사랑 안에서 완성됐다.
1. 위로는 하나님 사랑 2. 아래로는 이웃(사람)을 사랑.
따라서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합니다’ 하는 고백이자 믿음의 행위이다. 하나님 보다 돈을 더 사랑함이 곧 우상숭배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성도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께 반드시 십 분의 일을 드림이 마땅하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십일조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읽지 않은 무지에서 온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분명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궁금한가? 그렇다면 마태복음 23: 23-24절을 펴서 읽어 보시기 바란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와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여기에서 이것이란: 십일조를 말씀하심이고, 저것이란 의와 인과 신을 말씀하심이다. 곧 양자택일이 아니라 양자성립이며, 두가지(both) 모두 다 행해야 한다고 강조하신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2. 십일조가 성도의 의무이기에 반드시 해야만 한다고 하는 사람들:

십일조를 내는 것은 국민이 국가에 세금을 바치는 것과 같다고 하며, 십일조는 성도의 의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막12:17절,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하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십일조는 성도의 의무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믿음이 먼저 들어간 후에 의무는 이행가능한 것이다. 쉬운 예로, 한 국가를 보면, 아이가 어릴 때에는 보호를 받고, 18살 인가, 20살인가?, 성인식이 끝난 후에 국민의 의무를 준행 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런데 아직도 어린 아이에게 국민의 의무 운운 하면... 그 아이가 그 나라의 국민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아직 어린 관계로 그 의무가 무거운 짐이 되어 제대로 성장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

영적인 세계에도 젖을 먹어야 할 만큼 어린 아이가 있고, 단단한 식물을 먹을 수 있는 장성한 사람이 있다고 바울사도를 통해서 주께서 말씀하셨다. (히5:12-14)

3. 축복받기 위해서 십분의 일을 바쳐야 한다는 사람들:

“~하기 위해서 ~한다.”고 하는 것은 조건적이다. 믿음은 결코 조건적일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을 향해서 주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 나라의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절 말씀)” 고 말씀하신다.

결론적으로,
십일조는 구약의 산물이요, 율법준행 자들의 케케묵은 소리라고 말하는 자들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우상숭배자일 뿐, 예수님의 은혜의 복음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성도)는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내가 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합니다”하는 신앙고백 행위가 되어야 한다.

결코 의무나 억지로 해서도 안 되고 또 복을 받기(기복사상)위해서 행해서도 안 된다.

고로, 십일조는 내어야(성숙한 성도라면) 되고, 내지 않아(신앙이 어릴 때)도 되지만,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전 재산은 드리지 못해도 내 수입의 십 분의 일이라도 받아주십시오, 이 적은 재물이 사용되어지는 곳에서 잃어진 영혼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구속의 사역이 널리 전파되기를 원합니다. 하는 마음 자세를 가지는 것이 구원함을 받은 성도가 십일조를 대하는 올바른 마음자세라고 나는 확신한다. 물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행하는 모든 선한 일은 반드시 넘치는 보상이 기다리고 있으며, 농사의 원리처럼 모든 헌금에도 ‘증수의 원칙’이 성립된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하는 말로써 고후9:6절에서 밝히고 있는 말씀의 요지이다. 단 억지로 하지 않을 때, 이 말씀이 적용이 된다.

“각각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는니라. (고후9:7절 말씀)”

 

글: 별똥별/최송연의 신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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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걸 목사 ③ 바울의 목회 “목회자가 조심해야 할 돈·명예·이성 문제”

 

 

지난해 10월, 한국에서 5년 미국에서 36년의 목회를 마치고 은퇴한 이용걸 목사(필라영생장로교회 원로목사)가 “실천적 이민목회의 철학과 교회부흥”라는 주제로 2월 20일(월) 뉴욕교협 회의실에서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했다. 이용걸 목사는 △바울의 목회철학 △목회 위기관리 △레위기에서 본 목회자상 이라는 제목의 3가지 목회철학을 나누었다.

다음은 “바울의 목회철학”에 대한 마지막 세 번째 강의내용이다. 목회자를 위한 세미나이므로 성도들이 읽고 혹시 시험에 드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다음은 강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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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사를 하는 이용걸 목사. 은퇴사에서 못했던 목회경험을 세미나를 통해 “바울의 목회”라는 제목으로 후배 목회자들과 나누었다.

5. 그의 경계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사도행전 20:28~29)

바울은 목회하면서 항상 마음속에 “삼가라”는 경계심이 있었다. “삼가라”는 말을 누가복음 17:3(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을 보니 “조심하라”고 번역했다. 목회자는 매사에 조심하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 목회는 심방을 가서 말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민 목회는 심방을 가서 들어주어야 한다.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은 굉장한 차이이다. 이민교회 교인들은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항상 불만이다. 그래서 이민교회 목사는 듣기만 하면 된다.

목사들 중에는 교회에서 위기가 올 때 조기은퇴라는 마지막 카드를 내민다. 그런데 65세가 금방 온다. 후암제일교회 담임목사였을 때 장로들이 대표기도하면서 “어린 종”이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니 어린 종이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어느 날 부흥회를 인도하는데 대표기도를 하는 장로가 “노종”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정신이 바짝 들었다. 세월이 금방 가니 그런 말을 하면 안된다.

목회하면서 몇 목사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교회가 위기가 왔을 때 조기은퇴 이야기를 했는데 위기의 순간이 지나고 더하려고 하니 장로님이 수첩을 내밀고 언제 강단에서 65세에 그만두겠다 말했다고 하여 할 수 없어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인들이 잊어버려야 하는데 수첩에 적는다. 그러니 은퇴를 할 때 하더라도 절대 조기은퇴한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

항상 목사들은 조심해야 한다. 무엇보다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정말 부탁하는데 말을 삼가하는 것이 좋다. 듣는 입장에서 좋지 않은 말을 절대 많이 하지 말라. 말을 많이 하여 유익한 것이 없다. 오히려 듣는 것이 좋다. 여러 목사분들은 항상 주의해야 한다. 여러분들을 보는 시선들이 있다.

교인들 중에서도 골프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목회하면서 평일이 아니라 주일에 골프장 가는 사람을 책망했다. 영생교회는 골프대회를 전혀 안한다. 그 이유는 흑인가에서 생명을 내놓고 사업하는 사람들이 위축될까 봐 절대 안한 것이다. 필라지역 어느 장로가 저를 찾아와서 “목사님이 시니어이고 필라에서 존경받는 목사이니 목사님들에게 이야기 좀 해 달라”고 하면서 “목사님들이 골프장에 안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기 의견이 아니라 다른 여러 장로들과 평신도들의 의견이라는 것. 한마디로 목사가 골프를 치는 것이 보기 싫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가 큰일 나기에 이야기를 못한다고 대답했다.

여러 목사분들은 시선을 주의해야 한다. 필라지역에도 한국영화가 들어와 상영되었는데 장로님들이 가서 영화를 보고 “영화관에 가 보니 필라 목사님들이 다 왔는데 목사님만 안왔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은 목사님들이 영화구경 가는 것을 평신도들이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들이 한번은 영화구경을 가자고 했다. 원하지 않는다고 하니 가족이 가서 보는 패밀리 영화라고 가자고 재촉했지만 거절했다. 그러자 아들이 다시는 부탁을 안했다. 저는 영화 구경을 한 번도 안갔다. 혹시 목사 가족끼리 가서 영화 보는 것이 다른 교인들에게 상처가 될까 봐 일체 안갔다. 하지만 저도 영화를 보는 것, 골프를 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나도 하고 싶었다. 목회를 하면서 골프를 안치고 영화구경을 안 한 것은 조심하고 주의하느라고 그렇게 한 것이다. 목사는 이것이 참 중요하다.

어떤 분은 저한테 “목사님들이 대낮부터 식당에서 밥 먹는 것이 보기에 안좋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 목사는 목회지에서 교회를 섬겨야지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것이 보기에 안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가능한 교인들이 많이 가는 한국식당을 안간다. 만약 가야할때면 미국 식당에 간다. 이것은 매사를 조심하기 때문이다. 목사는 매사에 주의해야 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매우 중요하다.

목사는 이성문제를 주의해야 한다. 다른 것은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된다. 그런데 이성문제는 사과가 소용이 없다. 그래서 이성문제를 더욱 조심해야 한다. 어느 교회에서는 목사가 성도에게 언제 만나자고 메모를 적었는데, 여집사가 목사가 준 메모가 귀해서 성경책에 집어넣었다가 남편이 그것을 보게 되었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남편은 상상을 했다. 문제는 언론에 오르내리는 오늘날의 현실이 그런 것은 사실이다. 결국 그 목사는 메모 하나 때문에 교회를 사임했다. 또 어느 목사는 채팅을 하며 교인과 진한 말을 했다가 컴퓨터가 고장나서 수리를 맡겼는데 그 내용이 알려지게 되었다. 목사는 하나님 앞에서 바로 해야 한다. 근거는 내가 없애도 상대편은 그대로 남아있다. 좋을 때는 좋지만 나쁠 때는 문제가 된다.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다. 하나님만 믿어야 한다. 정말 아주 중요한 이야기이다. 목사는 이성 문제를 조심해야 한다. 지금은 은퇴했으니 여성도들이 악수도 하는데, 목회할 때는 여성도들과 악수를 안했다. 교인이 목사들을 신뢰하는 것 같지만 사건만 터지면 돌아선다. 선배로서 말하는데 이성문제를 조심해야 한다.

목사는 돈 문제를 조심해야 한다. 돈에 대해 깨끗해야 한다. 은퇴를 앞두고 비자금을 챙겼다고 돈을 걸고 넘어졌다. 은퇴한 목사님들이 은퇴시기에 사람들이 달라지고 쉽지 않다고 했는데 그렇게 되었다. 제가 비자금 가졌다고 하는데 재정부원이 8명이나 되고 난 사인도 못하는데 어떻게 재정을 건드릴 수 있겠는가. 목회를 마치면서 빚없이 돈을 남겨놓은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되었다. 하나님 외에 믿을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하나하나 반박을 안했다. 이미 말씀드린대로 계시록 22장 11절 말씀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를 목회철학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목사는 명예를 조심해야 한다. 한국에서 집회하면서 장로와 이야기했는데 자기들은 담임목사를 청빙할 때 박사학위가 없는 사람을 구했다고 했다. 그런 기사가 신문에도 한번 났다. 중요하다. 한국에서 찬양대 가운을 하기위해 갔는데 목사들이 와서 후드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 목사들은 철학박사 학위를 진한 빨간색에 폭이 넓게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 비즈니스를 하는 장로는 철학박사는 파란색이고 폭도 정해져 있다고 설명하는데도 무조건 그대로 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 장로는 그렇게 해 달라면 해 줄 수는 있지만 욕을 먹으니 어디서 했는지는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목사 일행이 간 후 장로는 “저것들이 목사인가?”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목사는 명예를 조심해야 한다. 박사학위를 받으려면 받아야 하지만, 안 받는 것이 더 유익된다. 목회학 석사 학위로 충분하다. 오히려 박사학위를 받아서 문제가 된 사람이 많다. 하나님 앞에서 무슨 박사학위가 중요하겠는가? 그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면 된다. 목사는 명예에 대해 조심해야 한다. 한국교회 목사들이 너무 박사학위에 매달리는데 학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필도 목사가 세미나하면서 한 이야기인데, 어느 목회자가 유학대신 2년 동안 목회를 배우겠다고 한국 전국의 성장한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자기의 경험을 나누는데 성장하는 교회의 목사들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하나는 보기에 어리석고 다른 하나는 박사학위가 없다는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김삼환 목사는 중학교부터 시작하여 문교부에서 정식으로 나온 증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가장 파워풀하며 존경받으며 목회를 했다. 명예를 조심하기 바란다.

6. 그의 삶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사도행전 20:35)

목회자는 자기를 죽여야 한다. 그리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설교를 해야 한다. 런던에 가면 스폴전이 설교하던 강단이 있다. 스폴전은 강단보다 강단에 올라가는 계단을 붙잡고 설교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제가 그곳에서 강단 뒤의 자리와 계단도 붙잡고 기도한 적이 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설교는 삶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설교가 왜 어렵는가? 내가 말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것만큼 설교해야 하기 때문이다. 목사가 할 수 없는 것을 설교하면 안된다. 교인들이 목사가 설교한 것을 다 기억하고 있다. 목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큼 설교해야 하니 설교가 힘든 것이다. 그냥 말하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 목사는 행할 수 있는 만큼 설교해야 한다. 목사는 설교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그래서 솔선수범하여 앞장서야 한다.

어떤 분이 이스라엘 기행문을 썼는데, 목자가 양떼를 거느리고 가는데 앞에 물을 건너야 했다. 목자가 어린 양을 안고서 지나가니 양떼들이 따라갔다. 우리 목사가 앞장서서 가야 교인들이 따라온다. 교인들에게 기도하라고 하면서 목사가 앞장서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이민 목회자는 도움을 주어야 하기에 힘들다. 목회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도움을 청한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힘들고 답답한 것이 많다. 성경을 보면 보증서지 말라고 하는데 보증도 서야 한다. 아파트에 들어갈 때 보증을 서주어야 들어간다. 그러다 보면 떼먹고 도망도 간다. 별의별 사람들이 많다. 작은 액수가 아니라 큰 액수를 보증서면 안된다.

크레딧이 좋으면 은행에서 오는 수표들이 있다. 그 수표들에 사인해서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한 교인들에게 많이 나누어 주었다. 목회하면서 교인들을 도와준 것을 합하면 상당한 액수가 될 것이다.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 감당하게 하신다. 후암제일교회에서 목회할 때도 많이 도와주었다. 당시 후암제일교회는 서울역에서 내리면 보였는데 선후배들이 많이 찾아 왔다. 찾아온 한사람도 제가 도움을 거절한 사람이 없었다. 성도님들의 도움으로 긴급한 전세비, 병원비 등을 도울 수 있었다. 내가 도우려고 하는 마음만 있으면 하나님이 감당하게 하신다. 그래서 이민교회 목사는 많이 도와주어야 한다. 보통 주는 것 보다 받는 것을 더 좋아하는데 주는 생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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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며 장로들의 눈물의 배웅을 받는 이용걸 목사 부부


7. 그의 작별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사도행전 20:36-38)

바울목회 철학을 가지며 마지막으로 기도제목과 소원은 눈물로 장로들과 헤어지기 원했다. 마지막 헤어지면서 장로들과 함께 목을 안고 울 수 있었다면 바울은 목회의 성공자이다. 그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다. 제 소원이 그것이었다. 제가 마지막 이임사를 하고 온 성도들의 기립박수를 받고 떠날때 장로들이 나가는 길 양쪽으로 서서 마지막 소원대로 허그를 해주었다. 당시 우시는 장로들도 많았다. 저는 마지막을 그렇게 보내고 싶었다. 그렇게 저의 목회는 끝났다. 정말 여러분들도 마지막을 눈물로 헤어질 수 있다면 훌륭한 목회자라 생각한다.

결론

2003년 10월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북쪽에 거대한 철제다리가 완성되었을 때 다리의 이름을 “알프레드 잠파”라고 정했다. 잠파는 1905년 이민와서 평생 다리건설을 한 용접공이었다. 한때는 금문교를 건설하다 떨어져 부상을 당한 적이 있다. 두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용접공을 했다. 그리고 다시 손자 4명이 용접공을 했다. 보통 다리의 이름은 대통령 이름을 사용하는데 주정부는 다리 이름을 이민자의 이름을 넣었다.

제가 80년대에 미국에 왔을 때, 한인교회 목사들이 모여 자기 자녀들을 자랑했다. 변호사, 의사, 교수가 된 자녀들을 자랑하는데 한 분의 이야기를 잊을 수 없다. 그 목사가 하는 “나는 하나님 앞에 가서 부끄럽습니다. 왜냐하면 얼마나 목회를 잘못했으면 내 자녀가 한사람도 목회자의 길을 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정말 죄송하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든 생각이 있다. 용접공의 아들들이 용접공이 된 것 같이 의사의 아들은 의사가 되고, 변호사의 아들이 변호사가 되고, 기업하는 사람은 기업을 하고, 목사의 아들은 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분들은 지금 목회자가 된 것을 즐기고 감격하고 감사해야 한다. 억지로 어떻게 해서 목회자가 되었다고 보여서는 안된다. 정말 목회자의 길을 가는 것은 교회가 크고 작은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목회자의 길이 감격스럽고 다시 태어나도 나는 이 길을 가겠다는 감격을 가지고 목회를 하면 어떻게 이 길을 나만 가겠는가? 자녀들이 또 손자들이 주님오시는 그날까지 이 길을 가야 한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자녀들 앞에서 감격하고 행복하게 목회하라.

부부와의 관계도 중요하다. 아내에게 목사의 아내가 된 것이 어떤가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다시 태어나도 목사의 아내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아내는 개척교회 목사의 딸이었다. 장인은 힘든 개척만 하는 목회자의 길을 걸어 오셨다. 그런데 아내는 그 어려운 길이지만 기쁨으로 교회를 개척하고 섬기는 부모님들을 보고 자신도 그 길을 가겠다고 목사의 아내가 되었다. 여러분과 아내가 같이 한쪽을 바라볼 수 있으면 행복한 것이다. 정말이다. 돈이나 다른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부부는 한쪽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면 최고로 행복한 것이다. 그 이상 바라 볼 것이 없다. 큰 교회 목사라고 밥을 4끼 먹는가? 그저 목회자의 생활은 만나이다. 목회자가 된 것은 너무 훌륭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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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넷 뉴스(USAamen.net)

 

우리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균형감각이
필요합니다
노래가 점점더 우위를 차지하는 모습이 보이십니까 ?
범죄와 폭력과 죄와 성도착이 난무하는 시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고 거룩한 것에 침을
뱉는 무서운 시대에 세상의 상태를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이 노래할때가 아니라

설교할때임을 확실히 알 것입니다
우리는 노래만 하고 있습니다
마냥 행복한 분위기에 젖어 있습니다

지금은 노래할때가 아니라 생각할 때이며

설교할때이고 죄를 깨우쳐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할 때이며 악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우리의 온갖 어리석은 탈선을
선포할 때입니다
노래할때는 나중에 찾아올 것입니다
위대한 부흥이 먼저 임하게 합시다
하늘의 창문이 열리게 합시다
수천명의 남녀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는
모습을 목격합시다
그후에는 노래할 때가 찾아올 것입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이 미묘한 유혹
그럼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려는 유혹을 경계합시다

부흥 ㅡ마틴로이드존스

 

출처: 사모님사모님/나의기쁨


촛불이 인공기가 될 수 있습니다

조광동 /재미 언론인


저는 27년 전 북한을 방문하고 “더디 가도 사람 생각하지요’라는 책을 썼습니다. 
북한의 의식과 사고와 감정을 전하려 했던 이 책은 친북적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글을 쓰고 강연을 했을 때 
“그 생각은 당신의 희망 사항”이라는 공격을 받으면서 저는 “친북 인사"가 되었고 
북한에서는 저를 “민족의 기자”라고 추켜세웠습니다.

제가 북한을 2번 취재 방문하고 2권의 책을 쓴 뒤 얻은 결론은 북한은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남한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후 미국의 CIA 보고서는 북한의 붕괴를 
예견했고 미국과 남한의 학자와 언론인은 북한 붕괴는 시간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아직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지 않았고, 북한의 핵 개발 가능성을 거의 모든 사람은 
잠꼬대 같은 소리라고 일축할 때였습니다.


그 당시 북한의 모습은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독과 소련의 붕괴로 사회주의가 무너진 뒤 경제가 흔들리고 대기근이 덮쳐서 
수많은 백성이 굶어 죽는 북한 모습을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잣대로 보면 
북한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자유 민주주의 잣대로 
북한을 진단한 것이 큰 결함이었습니다. 북한의 체질과 특질을 간과했습니다.

저는 이번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보면서 수십 년 전에 했던 생각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치명적이고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마저 들면서 남한에 대한 불안감이 제 가슴으로 달음질쳐오고 있습니다.

제가 수십 년 전에 북이 남을 앞지를 수 있다고 말했던 것은 북한의 정신력과 일사불란한 체제와 북한 동포들의 우수한 노동력과 자기 체제에 대한 헌신적인 충성심에 역점을 둔 것이었습니다. 
그때 북한은 미국과 국교 정상화로 갈 가능성이 큰 상황이었습니다. 
북한이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한 뒤 서방 자본이 투입되어 북한의 질 높은 노동력과 집단주의 
문화와 결합될 때 북한은 남한이 이룬 한강의 기적 못지않은 대동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하는 대신 핵과 미사일 개발로 전략을 바꾸었고 그 전략이 성공했습니다. 이제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 성공으로 수십 년 전 북한 스스로가 걱정했던 
“미국 침략”에 대한 걱정을 해소시켰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떤 방법으로 미국과 협상하고 
관계를 정립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보유함으로써 북한은 수십 년 전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에 있습니다. 
막강한 협상 지렛대를 마련했습니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설을 
선제공격하는 시나리오도 거론되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미국은 클린턴과 부시 정부 때 타이밍을 놓쳤습니다. 북한과 협상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협상이 성공해 미국 자본이 북에 들어가면 북은 수십 년 전에 놓쳤던 경제 발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북한은 핵을 보유했지만 사용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용할 수가 없다고 해서 남한 국민이 북한의 핵 보유에 불감증을 느낄 정도로 방심하는 것은 극심한 오만이거나 비애국적입니다. 
대결에서는 물론이고 협상에서도 핵과 미사일을 보유한 것과 빈손은 하늘과 땅입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핵 카드가 있느냐 없느냐는 먹느냐 먹히느냐 하는 운명을 갈라놓습니다.

바늘 끝만큼의 구멍이 있어도 허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 국가 안보일진데 송곳 구멍보다 커서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의 구멍이 나 있는데도 남한 국민은 무사태평이고 최소한의 수비책인 사드까지 반대합니다. 오히려 흡수통일, 통일 대박이라는 허상과 평화 통일, 햇볕 정책이라는 몽상으로 
기고만장하고 있습니다. 흡수 통일은 가당치도 않고 연방제 통일론은 북한에 집문서를 넘기는 행위입니다.

남한의 허술한 안보 의식에 한국의 좌파 이념이 남한 체제의 둑을 허물고 있습니다. 
이번 박근혜 탄핵은 그 전초전일 수 있습니다. 남한이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남한 체제와 의식, 정신력, 애국심이 위기의 바닥으로 가고 좌경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탄핵은 위대한 ‘국민 승리’ ‘시민 혁명’이 아니라 자유 민주주의 발등을 스스로 찍고, 
남한을 분열로 파열시킨 것입니다. 박근혜 탄핵은 절차와 과정을 밟지 않고, 조사를 하지 않은 채 벌부터 주었고, 최순실과 박근혜를 “경제 공동체”라는 개념을 만들어 최순실 죄를 박근혜 죄로 
만들었고, 집행유예로 끝날 수 있는 죄에 정치적 사형을 선고한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정치 수준이나 썩은 풍토로 볼 때 박근혜 대통령에게 예외적이고 무리한 적용을 했습니다. 촛불로 시작된 혁명의 축제는 극단주의자들이 홍위병이 되고, 국민이 부화뇌동하고, 국회가 날뛰고, 언론이 부채질하고, 검찰이 칼질하고, 헌법재판소가 춤을 춘,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거대한 집단 굿판이었습니다.


박근혜 탄핵에는 한국의 실상과 의식문화가 극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감정주의, 극단주의, 졸속, 억지, 집단 문화가 있고 분열성과 증오심이 있습니다. 
박근혜가 밉다고 법치주의를 불태웠습니다. 
극단주의 감정이 증오심과 좌파 이념과 결합해서 성취된 ‘촛불 혁명’은 민주주의 근간인 법치주의와 공정성을 정의의 이름으로 유린시켰습니다.

탄핵이 끝난 뒤 분열을 아물리고 화합을 하자고 언론과 지식인들이 말하고 박근혜는 승복해서 
마지막 애국을 하라고 말하고 있지만 역지사지를 모르는 위선과 억지입니다.

탄핵이 기각되면 혁명밖에 없다고 선동했던 사람들이 승복을 외치고, 증오심과 집단 몰매로 
비인격적으로 유린한 뒤 미소 짓는 신사숙녀가 되라 말하고 있습니다. 
승복은 필수적인 민주주의 요체이지만 한국의 승복문화는 이미 고장이 났습니다.

나라의 장래와 국민의 화합을 위해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지 말고 명예롭게 퇴진시키는 지혜를 가졌어야 했습니다. 이제 감옥까지 보내겠다고 합니다. 증오와 분열의 골은 메울 수 없을 만큼 깊어졌습니다. 노무현 자살은 진보와 좌파를 증오심으로 결집시켰고 박근혜 탄핵은 보수의 증오심을 끓어 오르게 했습니다. 정신과 의식의 내전으로 가고 있는 남한의 모습은 왜 한국이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지를 천착하게 합니다.


박근혜 탄핵은 한국의 좌파 역량이 엄청나고 동조 세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남한이 월남이 될 수도 있다는 무서운 환상을 뿌리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석기가 망상했던 남한 내의 자생적 테러 세력이 세를 형성하고, 여기에 외부 테러 세력이 투입되어 사회를 교란시킬 때 남한은 하루아침에 불안과 혼란의 수렁으로 빠져들 것입니다.

이 상황이 되면 또 촛불이 켜질 것입니다. 평화의 촛불, 통일의 촛불이 타오르고, 한 손에는 촛불, 다른 한 손에는 한반도기가 들려질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둘 인공기가 나타날 것이고 언론이 평화 통일의 북을 치면 붉은 깃발이 광장을 압도할 것입니다.

여기에 목숨을 걸고 싸울 국민이 얼마나 될까 하는 질문이 모욕적으로 들리겠지만 
그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태극기를 든 사람들은 너무 늙었고, 부패하고 무력한 보수는 좌파의 치열성 교활성 전술전략을 따라가질 못합니다. 보수를 지지하는 이기적인 가진자들은 미국으로 도피 보따리를 싸기에 급급할 것입니다.


박근혜 탄핵은 민족 재앙의 그림자를 더욱 짙게 만들었습니다. 
망상의 소설을 쓴다고 지탄하겠지만, 한풀이가 증오심의 배설장으로 추락하고 그것이 집단주의 광기로 배합될 때 망상의 소설은 재앙의 미래가 될 수 있습니다. 
미군 탱크에 압사된 효순 미선 사건이 촛불로 선동되어 대통령 선거 판도를 바꾸고, 광우병과 
세월호의 촛불이 이성을 마비시키고 박근혜 탄핵으로 발전했습니다.

박근혜 탄핵은 남한의 월남화 가능성에 물꼬를 텄습니다.

아주 오래전 한국을 방문해서 택시를 탔을 때 택시 기사는 제가 미국서 왔다는 것을 알고 안심하면서 한 말이겠지만 “이놈의 나라 확 망했으면 좋겠어요! 북한이라도 밀고 들어 왔으면 좋겠어요!”하고 내뱉았습니다. 그때 섬뜩했던 분노의 소리가 잊히질 않습니다. 이 택시 기사의 가슴에는 촛불이 이글거리고 여차하면 인공기를 휘날리수도 있을 것입니다.

박근혜를 무덤으로 보내고, 재벌의 초상을 몽둥이질하는 증오에 가득 찬 사람들에게 
인공기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김일성 김정일보다 이승만 박정희를 더 욕하고, 김정은보다 박근혜를 더 증오하고, 
북한 부조리보다 남한 부조리를 더 미워하는 사람들은 어떤 계기가 있으면 촛불을 인공기로 바꿀 가능성이 큽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자기를 지킬 열망이 없는 사람은 하늘도 지켜줄 수 없습니다.

탄핵이 끝나자 국민 관심이 대통령 선거로 쏠리고 있지만, 국민 의식이 달라지고 나라가 개조되지 않으면 새 정치는 요원합니다. 환골탈태의 자기 개혁 없이는 오늘, 한국이 택하고 있는 운명의 길, 역사의 미래는 어둠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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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모님사모님/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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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속히 이 땅에 임하게 하시옵소서" 
  
대한민국 제헌국회는 1948년 5월 31일 임시의장인 이승만 박사의 사회로 시작됐다. 
이승만 박사가 감리교 출신 목사인 이윤형 의원에게 기도해줄 것을 요청, 제헌국회는 기도로 개회됐다. 
다음은 1948년 5월 31일 오후 2시 제헌국회 개원식에서 기도를 올리게 된 정황과 기도문 전문이다.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제1차 회의는 당시 임시의장이었던 이승만 박사의 다음과 같은 개회사로 시작되었다. 

"대한민국 독립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 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늘을 당해 사람의 힘만으로 된것이라고 우리는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기도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동의와 제청) 

우리가 다 성심으로 일어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릴 터인데 
이윤영 의원 나오셔서 간단한 말씀으로 기도를 올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윤영 의원이 나올 때 일동 기립했다. 
                            
[1948년 5월31일 오후 2시 제헌국회 개원식 기도문 전문] 

우리에게 독립을 주신 하나님!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복을 내리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랜 세월 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고 
정의의 칼을 빼셔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셨으며 세계인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써 역사적인 환희의 날이 우리에게 오게 하시고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 만방에 드러나게 하셨음을 믿습니다. 

하나님, 아직까지 남북이 둘로 갈린 이 민족의 고통과 수치를 씻어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민생의 도탄이 오래 갈수록 이 땅에 악마의 권세만 확대될 것이오니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속히 이 땅에 임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독립을 주신 하나님, 이제는 남북의 통일을 주시고 
또한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 평화를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제헌국회 속기록)






탁지일 교수 "이단 대처, 정적 제거·마녀사냥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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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지일 교수(부산장신대 교회사·월간《현대종교》 편집인)  © 뉴스파워 윤지숙 기자 

 

“최근 교회의 연합활동이 오히려 이단대처 현장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우려가 이다. 한국교회의 대표적 연합기관인 한기총과 한교연이 이단문제를 명분으로 정치적인 이합집산과 내홍을 오랜 기간 겪고 있다. 연합기관이 이단대처의 중심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불건전한 개인과 단체들이 신분을 세탁하고 면죄부를 받는 장소로 악용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단대처는 정적제거와 교권장악을 위한 마녀사냥이 아니라 교회와 복음을 정결하게 수호하기 위한 선한 싸움이어야 한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탁지일 교수(부산장신대 교회사·월간《현대종교》 편집인)가 ‘한국교회, 개혁의 주체인가, 개혁의 대상인가: 교회를 향한 이단들의 도발적 질문들을 중심으로’라는 주제 발제에서 한 말이다.

  

한국교회사학회(회장 김수한 회장),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회장 박용규), 한국장로교신학회(회장 이승구)가 공동주최한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종교개혁과 한국교회 개혁과 부흥'이라는 주제로 18일 오전 10시에 양재동 횃불회관 온누리교회 예배당과 트리니티신학대학원에서 개최됐다. 

 

오전 10시 개회 예배(설교: 새로남교회 오정호 목사)를 시작으로 외국 석학 논문 발표, 오후 분과 발표, 국내 논문 발표 등 순서로 진행됐다.

 

탁지일 교수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한국교회는 스스로 개혁되는(reformed) ‘개혁의 주체’이면서 개혁하기(reforming)를 요구받고 있는 ‘개혁의 대상’이기도 하다.”며, “이단에 대한 연구는 동시대 교회가 상실하고 있는 정체성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교회사 속의 이단들은 정통교회의 문제들을 비판하고, 자신을 그 대안으로 내세우며, 세력을 확장해 나아가기 때문에 이단대처와 교회개혁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서두를 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에 대해“최순실의 부친 최태민은 목사의 모습으로 활동한 사이비였다. 문제는, 다수의 진짜 목사들은 정치권력 핵심에 접근해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가짜 목사 최태민을 이용했고, 최태민 자신도 신분 세탁과 정치적 활동을 위해 이들 진짜 목사들을 적절하게 이용했다.”며, “선친이신 故 탁명환 소장은 그런 기성교회 목사들의 모습을 한탄했고 최태민과 그 측근들을 ‘부끄러운 권력의 시녀 목사들’이라고 불렀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 기독교는 스스로 파문의 피해자라고 주장하기의 앞서, 이번 파문의 원인을 제공한 가해자들 중 한국 교계 지도자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하나님과 역사와 민족 앞에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피력했다.

 

탁 교수는 이단문제에 대해서는 △가정도 포기하는 이단, 소유에 집착하는 교회에게 묻다, △여성 중심적 이단, 가부장적 교회에게 묻다, △신격화된 이단 교주, 비윤리적인 교회 지도자에게 묻다, △세대교체 중인 이단, 세습 중인 교회에 묻다, △종말을 파는 이단, 종말을 잊는 교회에게 묻다, △교회가 정죄한 이단, 사회가 외면한 교회에게 묻다, △리플리 증후군에 걸린 이단, 므두셀라 증후군을 앓는 교회에게 묻다, △모략과 모함에 익숙한 이단, 모순에 빠진 교회에게 묻다 등 이단과 기성교회와 비교한 8가지 질문들을 던지며 한국교회의 개혁방향을 구체화 했다.

 

특히 최근 주요 이단 단체의 후계자들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통일교의 ‘재림주’이자 ‘6천 년 만에 탄생한 독생녀’ 한학자, 하나님의교회의 ‘어머니 하나님’ 장길자, 신천지 보혜사 이만희의 ‘영적배필’ 김남희, 기독교복음선교회(JMS)의 2인자 정조은, 중국 이단인 전능하신하나님교회(동방번개)의 ‘재림 그리스도’ 양상빈 등.

 

남성 일색이었던 이단 교주들 사이에 여성 지도력이 급부상한 이유에 대해 탁 교수는 “국내외 대통령과 총리에 여성 정치 지도자들이 대거 등장하고 사회 핵심 지도력으로 급부상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관계있어 보이며, 이단 단체에 소속된 여성 신도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퍼포먼스적 성격도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김백문, 문선명, 박태선으로부터 이어진 한국 이단 교리의 성(性)적 특징과 연관돼 교리적 온전한 음양이 결합을 죄사함과 구원의 행위라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며, “이 때문에 JMS처럼 비윤리적 성적문제와 여성 신격화에 대한 자의적 성경 해석도 시도되고 있다.”고 전했다. 

 

탁 교수는 "세대교체 중인 이단 단체중 하나님의 교회는 자칭 재림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인 설립자 안상홍이 1985년 사망한 후, 어머니 하나님을 자처하는 장길자의 권한은 제한적으로 보이며, 그녀 곁에서 영구직 총회장 김주철이 실세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의 경우, “설립자 이만희가 측근인 김남희를 소위 ‘영적배필’ 후계자로 지명한 신격화에 초점을 맞춰가며 두 후계 구도를 구축하는 듯 보인다. 이만희 사망 혹은 통제력 약화시기에 유력 지파들을 중심으로 이합집산 혹은 분리 독립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탁 교수는 “최근 이단들에게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는 거짓말의 종교적 합리화다. 포교활동과 신도 통제를 위해 모략 혹은 거룩한 거짓말을 자유롭게 사용한다.”며, “거짓을 진실로 믿으며 사실을 왜곡(리플리 증후군)하는 이단에게는 자신이 믿는 진실이 거짓말일 수 있다는 의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의 좋은 모습만 취사선택하려는 교회에게는 역사가 증언하는 부정적인 교회의 모습(므두셀라 증후군)도 사랑하고 받아들이며 회개하는 진솔한 자세가 요구된다.”고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의 시급한 당면과제인 이단, 이슬람, 각종 비성경적 문화에 대해 교회가 목소리를 높이면, 교회 스스로의 개혁을 요구하는 반대자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되돌아오는 것이 오늘 교회의 직면한 현실”이라며, “연합적 이단대처는 중세교회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중요한 전통이 되었다. 특히 교파주의를 운명적 특징으로 하는 한국교회에서 연합적 이단대처는 운명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사리사욕을 위한 야합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연합이 절실하다. 이단대처 현장은 반드시 교단정치의 청정지역이 되어야 한다.”며, “이단대처는 정적제거와 교권장악을 위한 마녀사냥이 아니라 교회와 복음을 정결하게 수호하기 위한 선한 싸움이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 자신이 처한 현시을 부저하면서 자신이 꿈꾸고 동경하는 허구의 세상을 진실로 믿고 거짓말과 행동을 합리화하게 되는 증상이다. 자신이 절실하게 원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므두셀라 증후군(Methuselah Syndrome): 과거의 기억들 중 좋은 추억은 기억하고 나쁜 기억은 지우려 하는 심리 상태를 의미한다. 선별 기억을 통해 부담스러운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경향을 보여준다.

 

윤지숙  ⓒ 뉴스파워

 

가져온 곳: USA 아멘넷

      가끔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받고도 그것이 기도의 응답인지 알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상했던 방식으로 기도의 응답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응답을 깨닫지 못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큰일을 이루고 계시는데도 우리가 이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기대치가 높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욕심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선하심을 찾는 자세를 갖는다면 당신의 삶은 변할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전과는 다른 시각에서 상황을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스토미 오마샨

기도할 수 있는데

 

 

가끔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받고도
그것이 기도의 응답인지 알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상했던 방식으로
기도의 응답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응답을 깨닫지 못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큰일을 이루고 계시는데도
우리가 이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기대치가 높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욕심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선하심을 찾는 자세를 갖는다면
당신의 삶은 변할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전과는 다른 시각에서 상황을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스토미 오마샨

기독교와 윤리②

 

 

 

 

0d81a9612451ef397ba58a5eb9c4f861_1489420213_44.jpg셰익스피어에 의하면 “인간은 역사의 무대에 잠깐 등장하여 충분히 이해하지도 못하는 역할을 하다가 사라진다.”고 하였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누군가 아주 재미있는 상상을 하였습니다. 아주 먼 훗날 인간에 버금가거나 능가하는 존재가 등장하여 지구의 역사를 재정리하게 될 때 두 가지 사실을 예상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는 그들의 역사책에 인간 종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구의 역사에서 인간은 순간처럼 짧게 살다가 절멸(絕滅)한 종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인간 종에 대해 많은 기록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생존 기간은 짧지만 지구 환경에 끼친 해악이 워낙 엄청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흔히 동물의 생태질서를 먹이사슬로 설명합니다. 먹이사슬이란 다른 말로 하면 약육강식입니다. 힘센 동물이 약한 동물을 잡아먹고 약한 동물은 자기보다 더 약한 동물을 잡아먹고 사는 먹이사슬을 정글의 법칙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생태환경에는 약육강식의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존재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기생의 방법도 있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생(symbiosis)이나 상리공생(相利共生, mutualism)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생물들도 많습니다. 또한 말미잘과 숨이고기는 편리공생(commensalism)의 방식으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동식물들에게 약육강식이니 공생 혹은 상리상생 또는 편리공생이라는 방식이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동식물은 본능의 생존방식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인간이 이해와 연구를 위해 그렇게 분류한 것뿐입니다.

     

사람들은 강한 자가 약한 자의 것을 빼앗는 착취행위를 동물적 약육강식의 방식이라고 비난하기도 하고 공생과 상리상생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생물들의 생존방식을 인간이 본받아야 할 아름다운 것이라고 하지만 동식물의 행동은 윤리적 평가를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에게는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모든 행위에 대해 윤리적 평가를 하는 것은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행위 중의 의지와 상관없는 본능적 행동은 윤리적 가치 평가를 할 수 없다는 점을 이미 앞 글에서 지적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동물과는 다르게 행동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당위적인 행위입니다. 철학에서는 인간 행동을 사실적인 것과 당위적(obligatory)인 것으로 구분합니다. 당위란 의무를 지우는, 의무적인, 강제적인, 필수 등의 뜻입니다. 마땅히 뭐 뭐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사람의 행위에 대하여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최순실씨가 국정을 농단한 게 사실이라면 “최순실씨가 국정을 농단했다.”고 하는 것은 객관적 진술입니다. 그러나 “아 글쎄 최순실씨가 그렇게 나쁜 사람인 줄 몰랐다. 대통령을 가지고 놀았구먼!”이라고 하면 이것은 평가적인 발언이 됩니다. 개인적 행위뿐 아니라 인간 집단의 행위에 대해서도 이렇게 평가가 들어가는 행위를 평가의 대상이 되는 행위라고 합니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을 탄핵했다.”고 하는 것은 객관적 진술입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그렇게 엉터리인 줄은 몰랐다.”라고 하는 것은 평가적 발언입니다.

     

그런데 그 평가는 반드시 전제된 가치의 토대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치는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보편 가치여야 합니다. 예를 들면, 살인과 거짓은 나쁘다는 것이나 정직과 공평은 좋은 것이라는 가치는 보편적 가치입니다. 결혼은 아름다운 것이고 간음과 간통은 악하고 추하다는 것도 보편 가치이기에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가치입니다. 아직까지는 거짓과 살인이 왜 나쁜 것이냐 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결혼은 아름다운 것이고 간음이나 간통은 악하고 나쁜 것이라는 데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거짓이나 살인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게 되는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니체는 강한 자만이 살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였으니까 니체 철학에 지배 받는 무신론자들을 비롯하여 상대주의를 존중하는 현대인들은 언제 노골적으로 그런 주장을 하게 될지 모릅니다.

     

인간이 존중해야 할 가치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윤리 도덕적 가치, 아름다움의 가치, 경제적 가치, 과학적 가치 등이 있습니다. 정의와 선과 사랑은 윤리 도덕적 가치이고, 의식주에 관계 되는 것은 물질적 가치 또는 경제적 가치이며, 음악이나 예술 등은 아름다움의 가치라고 할 수 있으며,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도구를 과학적 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가치를 창출하거나 해치는 행위도 다 평가의 대상이 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이런 여러 가지 평가를 할 수 있는 행위 중에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도덕적 평가를 할 수 있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악하다.’ 혹은 ‘선하다.’라고 평가 할 수 있는 행위가 그런 종류에 속합니다.

     

그 다음은 ‘당위의 근거는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상대주의가 지배적인 현실을 생각할 때 보편 가치는 무엇에 의해 보장되고 왜 존중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담론의 주제로 삼아야 합니다. 왜 우리가 정직해야 할까요? 왜 우리는 거짓 말 하면 안 될까요? 왜 살인을 하면 안 되고 거짓말 하면 안 되고 법과 질서는 지켜야 하는 것일까요? 이러한 물음은 철학에서 오랫동안 제기해 온 문제입니다. 철학은 이러한 질문을 제기하였을 뿐 아니라 그 질문에 대한 나름의 대답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철학의 의무요 역할이기도 합니다. 철학은 스스로 제기한 이 물음에 대해 답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고 그 결과 그 질문들에 대해 설명하는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첫째는 목적론적 이론입니다.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 왜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목적론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목적론적 설명이론이라고 합니다. 왜 우리는 착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하느냐에 대한 목적론적 설명은 우리가 착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착하고 정의롭게 산다는 것은 법과 질서를 지킬 뿐 아니라 보편 가치를 존중하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살아야 사회 질서가 유지되고 질서가 유지되어야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탄핵되자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사회적 정치적 무질서입니다. 막연하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무질서가 무서운 것이라는 점은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할 때 대통령과 국회와 헌재와 검찰과 언론이 법을 어긴 것보다 더 위험하고 두려운 것은 무질서입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의 상황은 입법부와 사법부와 행정부와 나아가서는 언론과 국민 모두가 보편 가치와 법을 무시하는 경향이 지나친 정도입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주장과 행위를 법과 정의와 나라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외국인들이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내리게 될 평가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아직까지 보편 가치와 법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이해와 그것들을 지키려는 행위가 부끄럽게도 미숙한 어린아이 수준이라는 점입니다.

 

이번의 대통령 탄핵은 대한민국이 법에 대해, 민주주의에 대해, 이념에 대해 미숙하고 국가관이 허약하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공표한 셈입니다. 어린아이는 유치함이 무엇인 줄 모르고 유치함을 드러내고,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이 무엇인지 모르고 어리석은 짓을 하듯이 대한민국은 스스로의 수준을 잘 모르기 때문에 미숙하고 유치한 행동을 정당하다는 듯이 용감하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둑이나 게임에 비유하면 불과 몇 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이 심각한 수준입니다. 나는 인간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당위론적 행동에 대한 목적론적 설명이론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 영역에서 하나님을 몰아낸 상황에 어차피 절대가 없으니 목적론적 수준에서라도 당위론적 행동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착하고 정직하게 행위 하는 것이 인간의 행복과 안녕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는 차원에서라도 보편 가치와 법과 질서가 존중되고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언론들은 너무나 많은 거짓말을 해왔습니다. 언론뿐 아니라 정치인과 온 국민이 거짓말을 다반사로 하면서 자기가 하는 말이 거짓말인 줄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거짓말의 종류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를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거스틴은 거짓말을 8가지로 분류했고, 마크 트웨인은 889가지의 거짓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교만과 미움과 증오와 시기심 때문에 과장하고 왜곡하고 또 편리를 따라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왜 거짓말을 하면 안 될까요?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면 필요해서 하는 것일 텐데 모두가 거짓말을 하는 것을 서로가 인정해 주면 어떻게 될까요?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내가 거짓말을 하면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의 거짓말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입는 피해가 과거에 비해 지금은 엄청나게 크고 치명적이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개인이 거짓말을 해도 피해가 크지 않았습니다. 현대는 언론 매체가 발전하여 개인이나 공공 언론이 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해 거짓말을 하면 그 폐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이 광범위 한 영역과 많은 사람에게 미치게 됩니다.

 

대한민국은 북한의 핵만 두려워할 게 아닙니다. 민족의 지도자 도산 안창호 선생은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온갖 수모를 당하는 것은 힘이 없기 때문이며, 힘이 없는 이유는 단결하지 못해서이고, 단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서로 속이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거짓말의 가공할 해악을 간파하고 피를 토하듯이 부르짖었습니다. ‘거짓이여! 너는 내 나라를 죽인 원수로구나. 군부(君父)의 원수는 불공대천(不共戴天)이라 했으니, 내 평생에 죽어도 다시는 거짓말을 아니 하리라.’안창호 선생은 조선이 망한 원인을 일본 때문이 아니라 거짓말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탈세율은 26.8%로 그리스나 스페인과 비슷하고, 보험금 13.9%가 보험사기로 지불되고, 교통사고 입원 율이 일본의 9.5배나 되는 나라, 작금의 대한민국 언론이 그렇게 거짓말을 많이 하고 국회와 검찰과 많은 국민이 그 거짓말에 휘둘리는 것은 국가의 존립이 몹시 위태롭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회와 검찰과 언론과 온 국민이 총체적으로 거짓말 광란을 벌이는데도 나라가 이만큼 지탱하는 것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기적이고 은혜이고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대해 오래 참으심 때문이지 한국인의 의식과 국격이 고상해서가 아닙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 아멘넷 뉴스(USAamen.net)

"이슬람교, 세계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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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종교는 '이슬람교'로, 전문가들은 21세기 말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데일리굿뉴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종교는 무엇일까. 퓨리서치센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슬람교가 전세계 종교 중 가장 빨리 성장하는 종교로 밝혀졌다.

 

이슬람교는 이슬람교도가 다수인 국가나 지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퓨리서치센터는 "유럽에서 2050년에 이슬람교도가 전체 인구의 10%를 차지하고, 21세기 말에는 이슬람교가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는 가톨릭을 포함해 개신교 등 기독교 인구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부터 2050년까지 각 종교의 성장률은 이슬람교 73%, 기독교 35%, 힌두교 34%였다.

 

이슬람교의 성장세가 빠른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의 출산율이 높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슬람교 여성의 출산율은 평균 3.1명인 반면 비이슬람교도 여성의 출산율은 2.3명이다.

 

이와 함께 이슬람 인구의 평균 연령은 비이슬람 인구보다 7년 젊은 것으로 조사됐다.

 

퓨리서치센터의 조사 중 흥미로운 부분은 이슬람교도에 대한 미국인의 시각 변화다. 9.11 테러 직후인 2002년과 현재를 비교한 결과, 공화당 지지자들은 더 부정적으로 바뀌었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더 긍정적으로 변해 대조를 이뤘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슬람권 6개국(이란, 시리아, 리비아, 예맨, 소말리아, 수단) 출신 국민의 입국을 90일간 제한하는 2차  '반(反) 이민' 행정명령을 내렸으나 종교 차별을 막는 헌법에 위배된다며 법원에 의해 시행이 중단된 바 있다.

 

김주련 ⓒ 데일리굿뉴스

 

가져온 곳: USA 아멘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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