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돈 목사-자기계시와 은폐 사이에서

박영돈 목사 2016. 5. 7. 04:06

자기계시와 은폐 사이에서



말은 자기계시인 동시에 자기은폐의 수단이다. 우리의 말을 통해 자신이 드러난다. 우리 영혼과 인격의 얼굴이 나타난다. 인간은 말씀하시는 인격이신 하나님을 닮아 유일하게 말하는 존재로 지음 받았다. 죄의 치명적인 결과는 말이 진실한 자기계시의 방편이 아니라 자기를 은밀하게 포장하는 은폐의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말이 은폐의 방편으로 작용하는 방식은 아주 다양하다. 먼저 침묵함으로 자신을 은폐한다. 말이 너무 많은 것 못지않게 말이 너무 없는 것도 문제이다. 말이 없으면 과묵하고 근엄하며 신비한 무엇인가로 가득한 존재로 자신을 포장할 수 있다. 이것이 침묵의 영성을 구가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꼼수이다.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침묵의 경건을 추구하는 분들과 오래 같이 지내도 도무지 그 속을 알 수 없어 갑갑하기 그지없다. 참된 인간관계의 기본은 자신을 말과 글로 정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또 다른 은폐의 방식은 말로 자신을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미화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문제이다. 말과 글이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을 멋지게 꾸미는 가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식과 경륜이 많을수록 이 포장술은 완벽해진다. 다른 이들 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멋진 가면을 자신으로 착각하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과 탁월한 신학적인 지식까지 완벽한 자기 은폐의 수단으로 동원된다. 온갖 선하고 좋은 말은 다 골라 하며 은혜롭고 감동적인 설교를 하려는 나 같은 목사가 그런 일에 고수가 된다. 지식이 얄팍하고 판단이 미숙한 사람은 그 포장의 조잡함이 확 티가 나지만 공부깨나하고 영특한 사람일수록 이 포장술은 감식이 불가능할 정도로 고차원이 된다. 그럼에도 예리한 매의 눈을 가진 사람들의 레이더망은 피해가지 못한다. 그런 이들에게 매서운 매의 눈과 함께, 가면의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하는 인생들을 긍휼히 여기는 부드러운 비둘기의 눈도 필요하리라.


<박영돈 목사>

출처: 개혁주의마을/Grace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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