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운명론이 뭐예요?

자료실 2010. 3. 25. 10:30
나는 왜 이런 운명(運命)을 타고 태어났습니까? 라고 하는 상담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성도들이 당황스럽고 억울하고 좋지 못한 일을 당할 때마다. “내 운명은 왜 이럴까”, “나만 왜 이렇게 살지? ” 하는 식의 “운명(運命)”을 한탄들 합니다. 목사님! 운명은 거부할 수 없는 사슬입니까? 운명론(運命論)이란 뭐예요?


▲탑골공원 거리 점술 사진

우리 민족은 불교(佛敎)와 유교(儒敎)의 영향을 받아서 인지 모르지만 모든 불행을 숙명적(宿命的)으로 해석하면서 인생의 불행이 휘몰아 칠 때 자기의 운명론(運命論)으로 맡기고 삶을 저주하며 불행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서구 기독교(基督敎)문화에서는 인간은 어떠한 환경에서나 가혹한 고난의 회오리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칠지라도 자신의 환경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창조적이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사고의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 생각은 “조상 때문에”, “내 사주팔자(四柱八字)때문에” 하면서 내 운명론으로 돌리면서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1, 운명론(運命論)의 어원

동양사상(東洋思想)인 역학(易學)에서 인간의 운명론은 음양오행(陰陽五行)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지구를 중심으로 많은 행성(行星)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까이 있는 행성으로 목성(木星).화성(火星).토성(土星),금성(金星),수성(水星),이 있습니다. 이 행성들은 태양이 발산하는 천기(天氣)를 받아서 또 하나의 기(氣)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목기 ,화기, 토기, 금기. 수기의 기(氣)라 합니다. 이 목(木).화(火). 토(土). 금(金). 수(水)의 다섯 가지를 오행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행(五行)의 하늘의 천기(氣)가 땅의 지기(地氣)와 어울리면서 춘하추동(春夏秋冬)사계절이 생겨난다고, 사람도 태어나는 순간 어떤 오행의 기운(氣運)을 더 많이 받았느냐에 따라서 체질과 성격은 물론이고 운명(運命)까지 결정된다고 믿는 것이 운명론입니다.

2, 운명론(運命論)의 의미

1)선천명(先天命)

인간은 수태되는 순간부터 오행의 구성 상태가 각기 다르게 결정되며, 수태 후 출산 직전까지 변화작용을 계속하면서 철저히 외부의 기(氣)와 차단된 자궁 속에서 자라나 출산의 순간을 맞게 되는데 출생하는 그 날의 일진에 따라서 우주 오행(五行)이라는 천기(氣)를 부여 받는다고 합니다. 그 오행의 상태와 불급의 차이에서 성별이 결정되고 체질과 용모와 성격이 형성되고, 질병에 걸리고 직업과 빈부귀천이 이루어진다고 하며 이것을 선천명(先天命)이라고 합니다.

2)후천운(後天運)

후천운이란 일생동안 살아가며 대운(大運;십년주기)과 세운(世運;일주기)에서 어떠한 오행의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서 제각기 흥망성쇠(興亡盛衰)와 길흉화복(吉凶禍福)이 일어나게 된다고 하는 것,. 이것이 후천운(後天運)이라고 합니다. 선천적인 명(命)과 후천적인 운(運)을 총칭하여 운명(運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국인 가운데 운명론(運命論)에 잡힌 자들은 모든 것이 운명으로 결정되는 것이므로 체념하고, 운명에 순응하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무슨 큰일을 결정 할 때는 점(占)쟁이나 역학(易學)자를 찾아서 그것이 내 운명과 어떻게 될 것인가를 물어보고 결정합니다.

만일, 그 재미로 본 ‘오늘의 운세(運勢)’가 좋으면 은근히 기대하게 될 때는 이미 운명론의 사슬에 자신을 어느 정도 맡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점(占)이나, 사주(四周), 운명(運命), 길일(吉日)에 자기 인생을 맡겨서 사는 사람은 항상 곤고합니다. 왜냐하면 사주나 점에 의존해 살면 하나는 좋으면 분명히 하나는 나쁘기 때문에 굿(㖌)이나 고사나 부적의 필요가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굿하다 망한다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운명론(運命論)자들은 항상 하루 시작하는 것이 두렵기만 하고 조금만 일진이 안 좋아도 “재수가 없느니”, “운대가 맞느니”, “운수가 사납느니”, “액땜을 했느니” 말들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 괴로움 그 날에 족하니라”(마6;34)고 말씀하셨습니다.

3, 운명론(運命論)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

사람은 누구나 미래와 자신의 운명(運命)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점술(占術)의 미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에 점(占)을 보는 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수는 점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재미 삼아 점(占)을 본다고 할지라도, 그러나 그 재미가 함정이 되고, 그것은 자신의 삶을 사탄에게 의탁하는 것이며, 결코 재미에 머물지 않게 됩니다.

위대한 사상과 신앙과 인격은 다 고난의 산물입니다, 시련과 고통을 한국의 전통적인 운명론으로 비관하면서 도피주의자의 방법으로 응하지 말고,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고 하였습니다. 한국인의 운명론(運命論)은 우리 민족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제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삶을 지배하시는 하나님 앞에 맡기고 기도해야할 때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고 고백하셨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한국적인 운명론(運命論)을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서양격언에“생각을 심어서 사상을 거두고, 사상을 심어서 행동을 거두고, 행동을 심어서 성격을 거두고, 성격을 심어서 운명을 거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생각이 삶음을 좌우한다는 교훈을 담은 격언입니다.

동양적인 숙명론(宿命論)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므로 체념하고 운명론에 순응하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사람이 생각하는 대로 그 사람의 됨됨이나 운명이 좌우되기 때문에 스스로 운명(運命)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적극적인 삶을 교훈하는 것이 기독교적인 문화입니다.

출처: 아멘넷, 서재생 목사님의 칼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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