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기세덱
주경신학 2016. 10. 16. 22:02
(qd<x,AyKil]m', Melcisedevk , Melchisedec) 「의의 왕」
아브함 시대의 예루살렘 제사장(창 14:18). 후대에 이상적인 왕의 전형이 되어 이러한 왕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영원한 제 사장"이라고 칭하게 되었다(시 110:4). 히브리서에서 그의 특이한 지위를 묘사하여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논하고 있다(히 5:6-10, 7:).
"이 멜기세덱은 살렘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히 7:1)
<자료 1>
멜기세덱과 그의 행한 일에 대한 역사적 언급은 창세기 14:18-20에 나온다. 그런데 히브리서 7장에서는 대제사장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면서 전장을 이 멜기세덱과 비교하고 있다. 여기서 멜기세덱은 왕으로 묘사한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의의 왕이요 살렘 왕이라 하였다. 다시 말해서 평화의 왕이란 것이다. 더 나아가서 그는 부모가 없으며 족보도 없고 시작과 끝도 없어서 하나님의 아들과 같으며 영원한 제사장으로 있는다 하였다(7:2-3).
그러면 여기 멜기세덱은 역사적 인물일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였나? 또 역사적 인물이 아니었다면 왜 여기서 그리스도의 제사장직과 비교하고 있는가? 그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무엇인가?
먼저 역사적 인물로서 멜기세덱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창세기 14장에 나오는 멜기세덱의 이야기는 중간 청동기 시대로서 B.C. 1500년 이전의 일이었다. 그 시대는 다양한 도시 국가들로 나라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돌라 오멜 왕과 그 동맹군이 소돔과 고모라 왕을 사로잡고 거기서 살았던 롯도 포로로 잡아갔다. 이 소식을 듣고 아브라함이 그의 집에서 훈련시킨 318명의 사병을 거느리고 가서 그 동맹군을 격파해 롯을 구하고 탈취 당했던 물건과 많은 노략물을 얻어 돌아온다(창 14:1-16). 그러나 거기서 중심 인물은 그돌라 오멜 왕에게서 회복을 바랐던 소돔 왕과 아브라함을 축복한 멜기세덱이다. 특별히 멜기세덱은 제사장 왕으로서 아브라함에게서 1/10을 받았다고 하였다. 이 기록은 분명히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설명이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은 역사적인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어디의 누구였는가? 멜기세덱의 뜻은 나의 왕은 의롭다거나 정의롭다는 뜻으로 합법적인 왕으로 해석하는 학자가 있으나, 의의 왕이란 해석이 적합하다.
유대인 철학자 필로(Philo)도 멜기세덱을 평화의 왕이요 의의 왕이라 불렀다. 이 의의 왕이란 말로서는 그가 누구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다음에 나오는 살렘이란 말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이 말은 완성하다, 다 지불하다는 뜻으로 보는 이가 있으나 평화란 뜻이 옳다. 그러므로 살렘 왕은 평화의 왕이란 말이다. 그런데 사해 사본이나 랍비들 그리고 조세프스는 시편 76:2을 따라 살렘을 시온과 동일시한다. 이렇게 볼 때 멜기세덱은 시온 즉 예루살렘의 왕이었을 것이다.
또 유세비우스(Eusebius)는 아브라함이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제사장이었던 멜기세덱에게서 선물을 받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해석된 그리심 산의 성전으로 한 손님을 맞이했다고 하였다. 이렇게 보면 살렘은 그리심 산과 동일시되며 이곳에서 멜기세덱이 제사장으로 다스리며 사역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 해석은 창세기 14:18의 칠십인 역을 지지한다.1)
그런데 멜기세덱은 이 사건 후에 곧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에는 사독 계열 제사장이 생겼고 이들이 아론 제사장 계열과 합치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 이유는 사독과 멜기세덱은 같은 어근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또 유대주의에서는 멜기세덱에 대해 하스모니아 왕조의 유대 제사장 왕들에서 어떤 증거를 찾을 수가 있다(B.C. 164ㅡ 63)고 생각하며 거기서부터 사두개 파가 나왔을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그들은 제사장이요 왕이었던 멜기세덱의 후예라고 생각한다. 그 밖에 다른 견해는 사해 사본에서 발견되는데 거기서 멜기세덱은 천사장 전사로 나타난다.2)
이렇게 볼 때 역사적으로 멜기세덱은 살렘 즉 예루살렘의 왕이요 제사장이었다. 그는 정종이 분리되기 이전의 신정 정치체제에서 역사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볼 때 그는 분명 선민 이스라엘이 아니라 가나안의 이방인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중에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물론 그의 사역자(제사장)까지 있게 하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제사장의 직분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는 멜기세덱의 역사성에 보다는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멜기세덱을 소개하고 있다. 그를 의의 왕이요 평화의 왕이며 출생과 부모와 족보가 없으신 분으로 소개함으로써 그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기에 적합한 분임을 지적하였다. 모세와 천사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는 제사장으로서도 레위 계통의 아론보다 더 근원적이시며 뛰어나신 분이시다. 그는 적어도 아래 세 가지 사실에서 레위의 제사장직을 초월하신다.
1. 그는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았다. 더 넓힌다면 레위인에게서 받은 것이다.
2. 그는 그보다 열등한 아브라함을 축복하였다.
3. 그는 레위같이 죽을 인간과는 대조적으로 영원히 사신다.3)
이렇게 하므로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의롭게 다스리시며 평화를 구축하실 것으로 기대되었던 메시아이심을 드러내고 있다(사 9:5-6; 32:17; 렘 23:5-6; 33:15; 단 9:24; 슥 9:1-10; 말 4:22).4)
주
1. George W. Buchanan, To the Hebrews(New York: Doubleday, 1972). p.117
2. Peter H. Davids, More Hard Sayings for the New Testament, p.104
3. George W. Buchanan, Op,cit., p.122
4. Ibid.,
http://www.revdavidsuh.com/
<자료 2>
창세기 14:18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나타나 제사장의 직능으로 떡과 포도주를 상징적으로 써서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있다.
멜기세덱과 같이 제사장과 왕의 두 직능을 한 몸에 겸비한다는 것은 후대에 이르러 이스라엘의 이상적 왕자로 되고, 따라서 이상적 왕자는 `멜기세덱과 같은 자'라고 칭함을 받았다(시 110:4).
이것은 히브리서 5:6, 7에 있어서 그리스도에의 적용에 대성(大成)되고 있다.
그런데, 그 당시 엘람 왕˙고임 왕˙시날 왕˙엘라살 왕이 소돔과 고모라를 침공했을 때,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사로잡혀 갔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이 정병 318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추격하여 다메섹 좌편 호바에서 롯과 부녀, 그리고 재물을 다 찾았다. 돌아올 때 소돔 왕이 나와 그를 영접하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상술한 바와 같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축복해 주자 아브라함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줌으로써 십일조의 창시자가 되었다.
멜기세덱에 대해 보는 관점이 많고 구구하지만, 히브리서 7:1- 17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그는 영원한 제사장(하나님의 아들)의 모형이다. 그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고 한다.
그의 제사장직은 조계(祖系)를 전연 가지지 않은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과 유사하다. 그는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아들의 모형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탄생 2,000년 전에 이미 멜기세덱이란 인물로 예표되었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보다 높다. 그가 아브라함에게 축복했고, 아브라함은 그에게 십분의 일을 주었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히브리서 7:4, 7, 특히 7절에 "폐일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느니라"고 하였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리만큼 영전이 컸다. 즉, 그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그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했다(창 12:3). 그가 아브라함을 축복한 점이 아브라함보다 높은 증표다. 떡과 포도주는 영적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의한 축복을 암시한다(마 26:26- 29).
그리고 `살렘'은 예루살렘일 것이다. 그 이유로써,
ⓧ 살렘은 이스라엘 사람의 가나안정복 전부터 예루살렘이란 이름으로 존재했으며, 왕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었다.
ⓨ 시편 76:2에서 살렘은 예루살렘(평화의 성읍, 평화의 소유란 뜻)의 단축형으로써 쓰이고있다. ⓩ 만일 멜기세덱이 다윗처럼 같은 이 도성의 왕이라면 시편 110:4에서 다윗의 주가 멜기세덱과 대비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① 예루살렘은 아브라함이 호바와 다메섹에서 귀환하는 도상에 있었다는 것(창 14:15, 17, 18) 등의점을 들 수 있다.
http://cafe.daum.net/LoveBibleLove/DRaT/
<자료 3>
1. 창세기에 등장하는 멜기세댁
창14장에 보면 엘람 왕 그돌라 오멜이 자기를 섬기는 이웃 나라들이 자신을 배신한 일에 격분하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나라를 쳐 전쟁을 일으키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들이 싯딤 골짜기에서 싸울 때 소돔과 고모라 왕이 그에게 패하여 병사들은 역청 구덩이에 빠지고 왕들은 겨우 도망했습니다. 엘람 왕은 소돔과 고모라 성에 들어가 모든 재물을 약탈하고 주민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 때 그 성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가족들도 포로로 잡혀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 같은 롯의 소식을 듣고 집에서 길러온 용사 318명을 거느리고 단숨에 쫓아가 엘람 왕을 기습했습니다. 이 기습전에서 대승한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포로로 잡혀간 자기 조카 롯과 모든 사람들과 재물도 빼앗아 올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 올 때 소돔 왕이 친히 아브라함을 영접하러 마중 나왔으며 살렘왕 멜기세댁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을 영접했던 것입니다. 이 때 멜기세댁이란 이름이 성경에 처음 등장하고 있으며 이 자리에서 멜기세댁은 아브라함에게 축복했습니다. 그의 축복은 ‘천지의 주재이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의 대적을 너의 손에 부치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할 지로다’고 했습니다.
2. 멜기세댁의 신분
멜기세댁의 신분을 보면 그는 살렘 왕이라고 했습니다. 살렘이란 말은 평강이란 뜻입니다. 이곳이 어디인지 알려진바 없지만 지금의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한 도시로 아마도 그 지경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 당시 살렘이란 지역을 지배하는 왕의 신분으로 있었으며 아브라함에게도 알려지고 그도 아브라함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에 대하여 전혀 몰랐다면 신분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의 노략물의 십분의 일을 바칠 이유도 없었거니와 멜기세댁에게 축복 기도를 받지도 아니했을 것입니다.
그의 이름을 풀어보면 멜기란 말은 왕, 세댁이란 말은 의란 의미로 멜기세댁이란 의의 왕이란 뜻인 것입니다. 그의 신분에 대하여 성경에서는 그를 살렘의 왕이라고 했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고 했습니다. 히7장을 보면 멜기세댁은 아브라함보다 높은 자로 나와 있는데 그 이유는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해 주었으며 아브라함으로부터 11조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멜기세댁은 예수님의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을 설명하는데 반드시 성경에 등장해야 할 인물입니다. 만약 이 사람이 없었더라면 예수님은 그의 제사장직에 대한 성경적인 증명이 전혀 없기 때문에 우리의 제사장이시며 왕이신 그의 직분에 대해 증명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의 백성들의 속죄 제물이 되셨다면 그 제물이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그런데 율법에 따르면 그 속죄 제물을 드려야 할 사람이 대제사장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유대인들에게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제사장이란 반드시 레위 지파의 자손 중에서 나와야 하는데 유다 지파이신 예수님이 무슨 성경적 근거로 대제사장 직분을 하실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예수님이 왕이 되시는 일은 그가 유다 지파에 속하셨으며 다윗의 자손이기 때문에 인정을 받으실 수 있지만 그가 대제사장이 되실 수 없는 것은 그는 레위 지파에 속한 제사장의 자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성경에 멜기세댁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의 속죄제물과 제사장 직에 대하여 설명할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왜 멜기세댁이 등장하여 예수님으로 하여금 레위가 아니라 멜기세댁의 서열을 따라 제사장이 될 사실을 증거해 주는 것입니까? 멜기세댁은 레위 자파도 아니요 아론의 자손도 아닙니다. 아론이나 레위란 인물은 아브라함이 멜기세댁을 만난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제사장의 직분은 반드시 레위지파의 자손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멜기세댁이란 사람이 이들이 존재하기 이전에 제사장의 직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제사장은 동시에 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멜기세댁은 살렘 왕이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멜기세댁의 반열을 따라 제사장이 된 예수님은 멜기세댁처럼 왕과 제사장이 동시에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왕의 직분과 제사장 직분의 법적 근거를 만들어 놓으시기 위해 율법적인 대제사장이 생기기 이전에 이미 창세기에 멜기세댁을 등장시키신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시요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예수님의 이 같은 신분은 멜기세댁과 같이 영원히 변함이 없으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왕이시며 우리의 제사장이신 예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 그에게 간구하며 그의 도우심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3. 멜기세댁과 그리스도와의 관계 (히브리서 7:1-10)
1) 멜기세댁이란 이름에 담겨진 메시야적인 의미
멜기세댁이란 이름에는 메시야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연관되는 것입니다. 멜기세댁이란 이름이 의의 왕인 것처럼 사32:1절에서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의로 통치하는 왕’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예언하고 있는 ‘장차 의로 통치할 왕’이란 그리스도가 장차 만 왕의 왕으로 온 세상을 통치하실 일에 대한 예언인 것입니다. 이 예언은 유대인이 소망하고 있는 메시야왕국(천년왕국)에서 이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멜기세댁이란 이름은 그 이름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직분에 대한 예언적인 뜻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의 직분은 살렘 왕이라고 했습니다. 살렘이란 평화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살렘 왕이란 평화의 왕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분입니다. 사53:5절에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또 사9장에서 주님의 탄생에 대한 예언에서 ‘평강의 왕’이란 이름으로 나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누리게 하신 평화의 왕이시며 평강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또한 멜기세댁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우리 주님에 대하여 히7:26절에서 ‘하늘보다 높이 되신 우리의 대제사장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멜기세댁은 그의 이름이나 그의 직분 등 모든 일에 있어서 다 그리스도의 예표 인물로서 적중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묘하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2) 멜기세댁은 그리스도의 높으심을 증거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멜기세댁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높으신 분이신 가를 보여 주셨다는 사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에 대하여 기대와 소망은 가졌지만 그 분의 위치가 아브라함이나 다윗이나 모세정도의 인물로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날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 각하느냐 뉘 자손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그들은 ‘다윗의 자손이니이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시 한 가지 문제에 대한 질문을 계속하셨습니다.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기를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하시니 그들은 유구무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삼으셨지만 아브라함보다 더 높은 멜기세댁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메시야이신 예수님은 바로 이 멜기세댁의 서열을 따라 왕과 제사장이 되신 분이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멜기세댁의 신분이 마치 수수께끼처럼 나오고 있습니다. 그의 신분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다고 했습니다. 방불하다는 말은 똑같다는 뜻이 아니라 비슷하다는 뜻입니다.
그에게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은 멜기세댁이 아담의 자손이 아니란 뜻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치고 아담의 자손이 아닌 존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멜기세댁은 천사였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천사가 왕으로 사람을 다스리며 제자상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린다는 일은 성경에서 상상도 하지 못할 일입니다. 이 말의 뜻은 멜기세댁의 인간적인 계보가 전혀 없다는 데서 한 말입니다.
멜기세댁이 그리스도의 예표적 인물로 등장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족보가 없어야 합니다.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적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존재가 성경에서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존재로 기록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멜기세댁을 성경에 등장시키실 때부터 그의 족보를 기록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마 1장에는 예수님의 족보가 나옵니다. 그러나 이 족보는 예수님의 육신적인 혈통관계를 계보로 만든 것이지 그 분은 원래가 하나님의 본체이시며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족보에 해당되실 분이 아니십니다. 멜기세댁은 육신적인 예수님의 예표가 아니라 그의 왕권과 제사장 직분에 대한 서열로 등장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인간적인 족보가 성경에서 삭제되었으며 영원히 존재하는 하나님의 아들처럼 등장시킨 것입니다.
결론 : 멜기세댁의 제사장 직분은 성경적으로 그리스도에게 넘겨 드림으로,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예표 인물로서의 성경적인 사명을 이룬 것입니다. 우리는 이 멜기세댁에 대하여 깊은 지식을 가짐으로 우리 주님의 제사장 직분에 대하여 놀라운 지식을 갖게 되며 우리의 신앙이 장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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