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용서 받았다는 여부를 어떤 식으로 알 수 있습니까?(리차드 십스)
개혁주의 자료 2014. 1. 16. 02:07죄가 용서 받았다는 여부를 어떤 식으로 알 수 있습니까?(리차드 십스)
내 죄가 용서받았다는 여부를 어떤 식으로 알 수 있습니까?
(다음에 나오는 두 가지 기준을 시금석으로 삼으면 여러분의 죄가 용서받았는지 그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1) 죄사함을 받기 전에 일어나는 일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2) 죄사함을 받은 후에 일어나는 일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만일 여러분이 겸손하고 진실하게 죄를 고백한다면 여러분의 죄는 용서받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그러므로 내가 죄 용서받았다는 것을 느낌으로 경험하든 그렇지 못하든 만일 내가 진심으로 철저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죄를 고백했다면, 내 죄는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만일 죄 용서 받았다는 느낌을 우리가 손쉽게 경험하게 된다면 우리는 사탄의 유혹에 대해서 지나치게 자신만만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긍휼 가운데 우리가 그런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잠시 보류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그리고 철저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우리 죄를 고백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약속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 죄를 사하셨다는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만일, 내가 진심으로 죄를 고백하고 시인해 놓고서도 하나님께서 차용증서를 소각하지 않으셨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죄를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 사람의 죄는 틀림없이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시면 그와 동시에 (죄에 반기를 들 수 있는)능력도 그 사람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마 9:2,6).
하나님께로 돌이킬 힘이 있다면,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순종할 힘이 있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을 계속 영위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 사람의 죄는 용서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항상 그를 앞으로 인도하는 믿음의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능력이 자신 안에 발휘되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정말 죄사함을 받았는지 그 여부에 대해서 의심을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본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죄를 제해 주시고 용서 해 주시게 되면, 불의를 모두 제해 달라는 기도를 들으신 후에 '우리에게 선을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증거는 (죄사함을 받으면) 양심에서 어느 정도 평안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죄사함을 받은 사람도 어쩌면 양심의 평안을 많이 누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절망하지 않을 정도만큼의 평안은 틀림없이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다시 말해서, 믿음으로 인해서 우리의 죄가 사면되었으니,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담대하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정도의 화평을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 안에 있는 하나님을 감히 바라볼 수 있는 담대함이 어느 정도 있다면, 이것은 그 사람의 차용증서가 소각되고 그 모든 죄가 사해졌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시금석입니다. 가룟 유다 같은 사람이나, 아히도벨 같은 사람이나, 사울과 같은 사람은 그 마음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정도의 담대함을 가지고 그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넷째로, 죄를 용서받으면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많이 넓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머리에 향유를 붓고 눈물을 뿌리며 머리카락으로 발을 씻어주는) 여인을 향해서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눅 7:47).
그러므로,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뜨거울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 영혼 위에 빛나셨고,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죄사함에 대한 확신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 사랑의 분량에 비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죄사함의 확신을 더욱 더 많이 얻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더욱 불타오르도록 만들기 위해서 말입니다.
분노하시고 성이 나 있고 진노가 가라앉지 않은 하나님을 영혼이 사랑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니, 그런 경우에 오히려 영혼은 아예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이 사람의 경우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기 때문입니다.
다섯 번째로, 또 죄를 용서받으면, 그것은 그 사람을 적당하게, 즉 다른 사람들에게 관대하고 인자하고 용서를 베풀 줄 아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줍니다. 대개의 경우 자기 자신의 양심과 화평을 누리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온화합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한 사람들은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했다는 것을 증거 합니다.
반면에 잔인하고 인정머리 없는 사람의 경우, 바로 그런 됨됨이가 그 사람의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인식으로 뜨거워지거나 녹아내린 적이 전혀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골로새서 3장 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옷 입고."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자비로운 태도를 취하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지체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입증합니다.
가장 시급한 일은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애쓰도록 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의 권세를 제거하시고 굴복시키시도록 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와 그에 따르는 모든 심판을 완전히 제하시도록 합시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가 아무리 이 세상의 모든 쾌락을 한 몸에 누리며 산다 해도, 우리는 단지 비참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사람에게 있어서, 이 세상의 모든 쾌락을 한 몸에 누리며 사는 것은 사형 선고를 받은 역적(逆賊)이 감옥 안에서 누리는 자유에 불과합니다. 비록 이 사람이 원하는 모든 것이 완벽한 서비스와 함께 하나도 빠짐없이 조달된다 해도, 그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게 되면 그의 마음은 얼어붙게 되고 그의 용기는 꺾여집니다. 그리고 그는 감옥밖에 있는 가장 미천한 짐마차의 마부나 맥주 잔을 나르는 사람(tankard bearer)이 자신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고 그리고 그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처지를 부러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자신의 죄를 사면(赦免) 받지 못하고, 하나님과 화해하지 못한 사람의 형편도 이와 똑같습니다.
자신의 죄가 하나님의 장부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자신을 대적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그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들을 무장시켜서 자신을 대적하여 복수를 감행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이상 그 사람에게는 아무런 위안도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 영혼 사이에 있는 분쟁을 멈추지 않는다면(take up) 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재인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죄사함을 확신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경우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얻기까지 한 시간도 편안한 마음으로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의 삶은 불확실하고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지옥이나 파멸과 우리 사이에는 한 걸음 차이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간구하여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쉴 새 없이 간구하십시오. 여러분이 어렸을 때 지은 죄와 성인이 된 후에 지은 죄,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를 용서해 달라고, 무슨 죄든지 다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모든 불의를 제하소서'라고 말입니다.
-돌아오는 배역자 중에서-
포도나무 선교회
'개혁주의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혁주의 인간론 (0) | 2014.01.24 |
---|---|
왜 열매 맺는 가지에도 타락의 잔재가 있는가? / 토마스 굿윈 (0) | 2014.01.22 |
알미니안주의의 ‘조건적 선택’에는 세 가지 문제점이 있다 / 조엘 비키 (0) | 2013.12.22 |
마태복음 강해 67 (마 13: 31-34 (0) | 2013.12.18 |
박혜근 교수, 알파코스는 개혁신학 아니다 (0) | 2013.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