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중생의 결과이다

율법, 복음 2014. 7. 24. 00:15

믿음은 중생의 결과이다 / 월터 J. 챈트리 ('잃어버린 복음'에서 발췌)

 

 

믿음은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에 의해 다시 살아난 인간 마음의 행동이다. 사도 바울의 말을 들어보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8-10)

 

하나님께서 부자 청년 안에 새 영을 창조하실 때, 그는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그의 책임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 성향을 주시지 않는다면, 즉 하나님이 자비 가운데 그에게 새 마음을 주시지 않는다면, 그는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었다. 믿음은 하나님의 영이 이루시는 거듭남, 즉 중생의 결과이다.

 

회개도 생명의 선물을 받은 사람의 행동이다. 그러므로 회개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행5:31)라고 선포했다. 만일 부자청년이 회개했다면 죄 사함을 얻었을 것인데, 그럴 경우 회개 자체가 구주의 선물이다. 죄인이 회개하기 위해서는 주권적 하나님께서 그의 돌같이 굳은 마음을 제거하시고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셔야 한다(겔36:26 참조).

 

부자 청년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막10:17)라고 물었다. 예수님은 그에게 그의 재산을 전부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자신을 따르라고 분명히 대답하셨다. 예수님의 대답을 들은 부자 청년은 자기가 영생을 얻기 위한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그것은 그가 순종하지 못하도록 주님이 막으셨기 때문이 아니다.(주님은 그렇게 하도록 그에게 촉구하셨다). 그의 외부에 있는 어떤 다른 힘이 그의 회개와 믿음을 방해했기 때문도 아니다. 그의 회개와 믿음을 불가능하게 만든 것은 그의 악한 마음이었다.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막10:21)라고 명령하는 것은 코끼리에게 하늘을 날라고 명령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것은 굶주린 사자에게 눈앞에 있는 양을 잡아먹는 대신 시금치를 먹으라고 명령하는 것과 같다. 부자 청년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슬픈 기색을 띤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가 주님의 말씀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자 청년이 떠난 다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었다.

 

"그렇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저 청년이 내 명령대로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피조물의 본성을 바꾸실 수 있다.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그릇을 만들듯이 하나님은 피조물을 만드셨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들을 새롭게 하시어 자신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꾸셔야 그들이 회개하고 믿을 수 있다.

 

예수님은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3:7)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온전히 의지하도록 만든다. 그들은 구원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가능성은 그들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우리 구주(救主)의 교훈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사실 주님은 죽은 사람에게 숨을 쉬고 걸으라고 말씀하신것이다. 부자 청년은 죄와 허물 가운데 죽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주께서 그에게 탐욕의 무덤에서 걸어 나오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그에게 도덕적 생명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그에게 재물을 버리고 자신을 섬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날 복음을 전할 때 주님처럼 우리도 사람들에게 분명히 요구해야 한다.

 

우리가 전도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고 간청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은혜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면, 그들은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열매를 바라는 소망을 주님 안에 두어야 한다. 전도 대상자의 의지 또는 여타의 정신적 능력에 두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복음전도라는 미련한 것으로 죽은 죄인들을 다시 살리기를 기뻐하신다(고전1:21 참조).

 

 

월터 J. 챈트리의 '잃어버린 복음'에서 발췌(137-141p)

가져온 곳 : 
블로그 >생명나무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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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한아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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