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기도 무조건 멀리해야 하나, 본질을 찾아야 하나

성령론 2015. 5. 2. 20:47

조직신학회 전국대회서 공헌배 박사 발제… 한·중·일 신학포럼도 진행

 

▲한국조직신학회 전국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김진영 기자

 

한국조직신학회(회장 배경식)가 9일 오후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대학교회에서 제9회 전국대회를 ‘한국교회를 위한 신학의 미래’를 주제로 개최했다. 특히 공헌배 박사(한국기독교학술원 연구교수)가 ‘방언기도에 대한 개혁신학적 고찰’을 제목으로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기도는 알아 들을 수 있는 말로 해야”

 

공 박사는 우선 “개혁교회의 교리들은 방언기도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 이유는 방언으로 하는 기도는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고, 제대로 된 기도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잘못 구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알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특히 종교개혁의 전통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를 수 없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언기도의 경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를 제대로 하는지, 하나님의 이름을 잘못 부르는지를 구별할 수 없으므로 그 기도는 타당하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공헌배 박사. ⓒ김진영 기자

이어 그는 “칼빈은 방언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예외를 두었다. 내적 감정의 힘이 부족해 스스로 기도할 마음을 일으키지 못하거나 감정이 격렬해져서 자연적으로 방언이 터져 나오는 경우”라며 “칼빈은 현상적으로 방언이 일어나며 또 방언기도가 가능하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도 인정했다. 하지만 그것을 권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웬만하면 방언으로 기도하지 말고, 지성과 헌신이 따른, 이해할 수 있는 말로 기도하라는 것이 칼빈의 주문”이라고 말했다.

 

공 박사는 칼 바르트의 견해를 살피며 방언기도에 접근하기도 했다. 그는 “사람들은 흔히 방언의 성경적 근거로 사도행전 2장과 고린도전서 12장을 예로 든다”면서 “그런데 칼 바르트는 성령 임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오늘날에도 사람들을 그리스도 앞에 대면시킨다고 여겼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의 방언사건을 소통으로 이해했다. 즉 성령의 임재를 동시통역기와 같은 차원에서 이해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리고 칼 바르트는 고린도전서를 주석하면서 고린도 교회야 말로 바울을 속상하게 한 곳이요, 문제가 많은 교회로서, 인간 혹은 영웅들을 숭배하고 이교적 종교행태와의 혼합을 시도해 은사를 오남용했음을 지적했다”며 “따라서 개혁교회의 기도신학이나 목양의 방식을 따를 때 기도는 알아 들을 수 있는 말로 해야 하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오남용되지 않도록(망령되게 일컬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정한 방언기도 경험하는가에 더 초점 둬야”

 

그러나 공 박사의 발표를 논평한 김화영 교수(연세대)는 “칼빈의 경우, 상당히 전투적인 그의 경향에도 불구하고, 방언기도를 대면한 태도는 무엇이 더 본질적인 것이냐의 식별에 있는 것 같다. 칼빈의 초점은 성령으로 인한 방언과 다른 영으로부터 오는 유사방언의 식별과 구분에 있다”며 “개혁주의 교회가 구더기를 잡는 것에만 주력하지 않고 성령충만함, 그리고 성령과 청중의 하나됨을 경험하는 진정한 방언기도를 경험하고 있는가에 더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 교수는 “방언의 은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의 활용에 있어서는 특별히 성경적 식별과 지도가 필요하다”며 “성령이 마음 깊은 곳에서 통회하도록 하여, 알아들을 수 없지만 성령이 신비의 언어로 말하게 할 때, 소통하여 공동체의 유익을 구하는 방향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즉 공동체에 덕을 끼치도록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방언기도의 중요한 존재 이유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한편 이날 한국조직신학회는 전국대회와 함께 한·중·일 신학포럼을 함께 개최했다. 이 포럼의 기조강연은 일본의 코이치 기무라 박사, 중국의 왕친성 교수(푸단대), 한국의 김영복 교수(한일장신대)가 각각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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