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받은 열 명의 문둥병자들(누가복음 17:11-19)


여기에는 열 문둥병자를 고치신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른 복음서에는 이 기사가 없다. 문둥병은 유대인들이 어떤 특별한 죄 때문에 받는 형벌이라고 생각하였으며, 다른 어느 병보다도 하나님께서 노여워하시는 표시로 여겨졌다. 그러므로 세상 죄를 없이하려고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길거리에 누워 있는 문둥병자들을 보실 때에 진노하시기보다도 특별한 관심을 가지셔서 그들을 깨끗하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때에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약 중간 위치에 이르셨다. 이곳은 예루살렘이나 갈릴리에 비해서는 생소하신 곳이었다. 이곳은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에 있는 국경 지대이다. 주님께서 이 길로 가신 것은 이 문둥병자들을 찾아내어 고쳐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주님을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참아 냄이 되신 분이기 때문이다(사 65:1 참조). 우리는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Ⅰ. 문둥병자들이 그리스도께 한 말. 이들은 열 사람이 한 단체를 이루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는 단절되어 있었지만 문둥병자들 끼리는 서로 대화를 나눌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제 우리가 주목할 것은 

1.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한 촌에 들어가실 때에 만나 뵈었다. 이들은 주님께서 여행으로 인한 피로를 풀으실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피로하신 채로 촌으로 들어가시고 계신 주님을 만났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본체 만체하시지 않았으며 그들의 호소하는 바를 뒤로 미루시지도 않았다. 

2. 문둥병자들은 성한 사람과는 거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는 율법이 있기 때문에 "멀리 서" 있었다. 영적으로 문둥병자와 같은 우리들도 그리스도께 가까이 하려고 할 때에 아주 겸비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극히 순결하신 주님께 누가 감히 가까이 할 수 있으랴? 우리는 불순하다. 

3. 문둥병자들의 요구는 전원이 일치되고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13절). 그들은 멀리 있었으므로 음성을 높이어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하고 외쳤다. 그리스도의 도움을 받기 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주님을 선생님으로 모셔야 하며 그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게 되면 그는 곧 구주이신 예수이시지 다른 분이 아니시다. 그들은 특별히 자기들의 문둥병을 고쳐달라고 간구하지 않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였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동정을 구할 때에도 이 말씀으로 족하다. 왜냐하면 문둥병자들은 그것으로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문둥병자들은 예수의 명예를 듣고 있었다(주님은 이 지방에 대하여 정통하시지 못했지만). 그래서 그들은 용기를 내어 주님께 간청을 하게 되었고, 그 중의 하나가 아주 평범하고도 쉬운 말을 꺼냈을 때에 모두가 가담하여 한 목소리로 외쳤던 것이다. 

Ⅱ.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문둥병의 감식자인 제사장에게로 보내어 검사를 받게 하셨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병을 고쳐 주시겠다는 적극적인 말씀은 하지 않으시고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14절)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그들의 순종심을 시험하신 것이었으며 그렇게 시험하심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것은 마치 나아만에게 "가서 요단강에 몸을 씻으라" 한 경우와 같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그리스도의 은총을 받기 원하는 사람은 주님의 길과 방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 이 문둥병자 중의 몇 사람은 주님의 명령을 듣고 "고치면 고치고 그렇지 않으면 못 고치겠다고 할 것이지 헛걸음이나 하게 제사장에게로 가라고 하는가"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합의가 되어 모두가 제사장에게로 갔다. 의식적인 율법이 아직도 유효한 때이었으므로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지켜야 될 것으로 여기시고, 이에 대한 세평을 지키며 또한 그들의 임무를 계속 수행하고 있는 제사장들에게 경의를 표하시느라고도 그렇게 하셨겠지만 아마도 보다 깊은 뜻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제사장들의 판단과 증인이 병을 고치는데 보다 완전함을 기할 것과 제사장은 마땅히 각7성하여 육체적인 질병 이상의 질병에 대한 지도력을 가져야 할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다. 

Ⅲ.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래서 제사장에게 보이는 데도 어울렸고 자기들이 깨끗하게 되었음을 제사장에게서 증명을 받게도 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우리도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다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자비롭게 우리를 만나 주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고 계시지 않는다. 가서 제정되어 있는 의식에 순응하자. 가서 기도하고 성경을 읽자.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가서 믿을 만한 성직자에게 너의 사정을 말하라. 그러한 수단이 너의 병을 고쳐 주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한 수단은 성심껏 이행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고쳐 주실 것이다. 

Ⅳ. 그 중의 하나 오직 한 사람만이 "돌아와서 사례를 하였다"(15절). 그 사람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제사장에게 가서 깨끗하게 되었음을 선언 받고, 열 사람 모두가 원하는 감검된 처지에서 해방을 받기보다도 먼저 그 병을 고친 장본인 되시는 분에게로 돌아왔다. 그는 병고침의 이익을 받기 전에 먼저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원했던 것이다. 그는 감사함에 있어서 열성적이고 다정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는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리하여 자기의 깨끗해짐이 근원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감사했다. 그리고 또 그가 큰 소리를 지른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그가 기도할 때에 큰 소리를 냈던 것과 같다"(13절). 하나님께로부터 긍휼하심을 받은 사람은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어 그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고, 그의 체험에 의하여 그들도 하나님을 믿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리스도께 특별한 감사의 표시를 하였다(16절).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겸손하고 존경하는 자세를 취하고 "사례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 특히 병을 고쳐 주신 일에 감사해야 하며, 그리고 감사를 돌리되 빨리하고 미루적거리지 말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감사의 정이 사라지기 쉽다. 우리는 또한 기도를 드릴 때도 그렇지만 감사를 돌릴 때에 아주 겸손한 자세로 해야 한다. 그래야 야곱의 자손에 어울린다. 그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은총을 추구할 때나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을 때에 그것을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다는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창 32:10 참조). 

Ⅴ. 그리스도께서는 이 한 사람이 출중한 인물임에 주목하셨다. 이 한 사람만이 사마리아인이고 다른 사람은 다 유대인이었다(16절). 사마리아인들은 유대 교회에서 분리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가졌던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지식과 예배를 잊고 있고, 떠나고 있었는데 이 사마리아인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그리스도께서는 돌아와서 감사를 드린 이 한 사람에게 특별히 주목하였으며, 그와 함께 은혜를 받고서도 감사를 돌리지 않은 사람들을 또한 주목하셨다.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이방인인 오직 한사람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었다(17, 18절). 

(1) 그리스도께서는 선을 행하심에 있어서 풍성하시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않았느냐?" 주님께서는 전부를 고쳐 주셨다. 말씀 한 마디도 전체를 호의적으로 치료하였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깨끗하게 하시는 치료는 풍성하여 그 환자가 아무리 많더라도 전체를 다 치료하기에 넉넉하다. 여기서 열 사람이 한꺼번에 깨끗하게 되었다. 우리도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주님의 은혜를 받을 것이다. 

(2) 그런데 돌아와 감사를 드리기에는 얼마나 인색한지!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그들은 왜 감사를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을까? 이것은 배은망덕은 바로 죄라는 것을 암시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사람은 많은데도 올바른 자세로 돌아와서 자기들에게 베풀어진 은혜에 대하여 돌아와서 감사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겨우 열에 하나). 

(3) 감사의 정을 가장 많이 가졌던 사람들이 흔히는 가장 기대가 적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는지 모르겠다. 사마리아인은 감사를 돌렸고 유대인들은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계시 종교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자연 종교에만 지배를 받는 사람들보다 도덕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경건성과 헌신하는 점에 있어서도 뒤지고 부끄럼을 당하는 일이 많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유대인들의 배은망덕 곧 은헤를 받고도 전혀 그것을 무시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 일임을 알게 된다. 이것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말로 할 수 없는 큰 은혜를 베푸셨는데도 그것을 너무도 경시하는 인간 세상의 배은망덕도 암시한다. 

2. 그리스도께서는 19절에서 그 사마리아인에게 큰 격려의 말씀을 주신다. 나머지 유대인들도 병 고침을 받았다. 그들의 배은망덕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병이 도루 나게 해도 마땅하겠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들은 은혜를 감사하는 좋은 본을 눈 앞에서 보면서도 그대로 하지 않았다. 한편 사마리아인은 특별히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는 주님의 찬사를 받으면서 그의 병 고침을 확인 받았다. 나머지 사람들도 그리스도의 권능에 의하여 구원을 받았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불행을 동정하시고, 그들의 기도를 응답하여 구원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 사마리아인은 그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주님께서 그를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하여 보시고 구원해 주셨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리가 일시적인 은혜를 받았을 때에 그것을 믿음의 기도로 받아들이고 믿음의 찬양으로 감사를 돌릴 때에는 그 은혜가 배나 늘어나고 보다 유익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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