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6:1-4)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십니다.
2절을 보니 큰 무리가 따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뭐라고 써져 있습니까?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니라.’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는 표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거나 따르기 때문도 아니고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가르침을 받고 배우려고 해서도 아닙니다. “봄이니라.” 곧 “구경함이라.”입니다.

우리 어릴 적 시골엔 별 구경거리가 없었습니다. 그 땐 TV도 없고 영화관도 없었습니다. 어쩌다 시골동네에 서커스단이 오면 온 동네 아이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동네어귀에 장대에다 확성기를 달아서 세우고 동네가 떠나가도록 틀어댔습니다. “동춘 서커스, 와서 보시라, 기가 막히는 곡예, 원숭이쇼도 있습니다.”
병을 고치겠다는 간절한 바람으로 오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신기한 구경꺼리였던 셈이지요.

3절을 보니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셨습니다.
그런데 4절이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필이면 유대명절인 유월절에 예수님은 디베랴 바다 건너편 산에 오르시고 수많은 무리들이 그리로 몰려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리는 그들 자신이 왜 그리로, 예수님께로 몰려오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다만 예수님께서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에 몰려오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유월절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출애굽 유월절, 그 밤에 양을 잡아 피를 문에 바르고 구워서 먹는....
요한복음 기자는 지금 그들이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먹으려고 몰려오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6:5-7)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5절을 보니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십니다.
몰려오고 있는 무리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그 모습, 예수님의 그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그들을 위하여 예비된 유월절 어린양이신 것을 이미 알고 계십니다. 아버지께서 이를 위하여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것도 모르고 표적을 구경하려고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살리려고 자신의 몸을 찢어 주셔야 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나중에 결국 유대인들은 어린양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게 되지요.
사람들은 예수님을 잡아 채찍질하여 예루살렘 한 가운데에 피를 뿌리고 그를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불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뜨거운 태양으로 예수님을 구웠습니다.

예수님이 빌립에게 물으십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실 것을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이 기록한 오병이어의 기적은 단순히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오천 명에게 먹이신 기적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표적과 축복에 맞추어놓고 보면 이 사건이 갖는 참의미를 놓치게 됩니다.
미리 아셨다는 것이 어떤 아이가 보리떡과 물고기를 가지고 왔고, 그걸 내어놓을 것이고, 그러면 예수님께서 능력을 발하셔서 오천 명이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뻥튀기를 하실 것을 미리 계획하셨다는 그런 단순한 뜻이 아니란 말입니다.
오병이어, 그것은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유월절 어린양이신 자신을 온 세상 죄인들에게 나누어 먹이시는 예표의 표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로서 내려온 참 떡, 생명의 떡이라는 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빌립을 시험코자 함이라.... 무슨 시험요?
예수님의 제자라면 예수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제자라면 최소한 스승 예수님이 누구신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빌립은 전혀 엉뚱한 대답을 합니다.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이백 데나리온....... 큰 돈입니다. 품꾼 200명의 일당입니다.
오천명을 먹여야 하니, 조금씩만 준다 해도, 한 사람당 도시락 오천원씩만 잡아도 이천오백만원, 맥도널드 햄버거 샌드위치를 Meal로 하나씩 나누어주려면 7~8만불은 있어야 합니다. 엄청난 돈입니다. 여자와 아이들을 빼고도 말입니다.
삼년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닌 제자의 대답은 이렇게 현실적이고 계산적이었습니다.
주판이 좌르르 튕기고 계산기가 도르륵 돌아간 것입니다.

(요6:8-9)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이번엔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구해왔습니다. 주판부터 튕기고 머리부터 굴리는 빌립 보다는 낫습니다. 그거라도 찾아내어 주님께 가지고 왔다는 사실이 매우 기특합니다. 그런데 그 안드레의 믿음 역시 거기서 거기입니다.
“그것이 이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되겠삽니이까?”

제자들은 예수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선생님,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이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여러분의 믿음도 혹시 이 정도 수준 아닙니까?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이렇게 능력 없고 보잘것없습니까?
지금 우리가 가진 복음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복음은 온 인류의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뒤집는 능력의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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