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 발달하고 세상이 살기 좋아질수록 약삭빠르고 강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순박하던 인심은 사라지고, 정직하면 손해보고, 착하면 빼앗기는 살벌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남이 더 가져가면 내 몫이 줄어들거나 없어진다는 제로섬 경제논리 속에, 1등이 되어야만 살아남는다는 무한경쟁체제 속에, 인간사회는 날이 갈수록 약육강식과 생존경쟁의 살벌한 동물세계를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성경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거든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구하는 자에게 주며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고 말씀하십니다. 속도 없고 배알도 없이 바보처럼 주고 빼앗기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고 위하여 기도하라고까지 하시니, 누가 이 말씀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선인과 악인을 가리지 않으시고 그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배알 없고 속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우리도 당연히 그런 속없고 배알 없이 다 베푸시고 다 빼어 주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그런 속없고 배알 없는 성품 그대로 아버지께 순종하여 죄인들을 위하여 그 참혹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보라서 십자가 지셨습니까? 태양이 멍청해서 누구에게나 비취고, 비가 속이 없어서 누구의 밭에나 고루 내립니까? 만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만 사랑하시고, 의인만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고, 예수님이 사람 골라서 피 흘려주셨다면 우리 같은 죄인이 한 사람이라도 구원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속없이 배알 없이 무한히 나누어주셨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한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그 완전한 사랑 때문에 나같은 죄인도 구원 받은 게 아니겠습니까? 

왼편 뺨도 돌려대며 겉옷도 벗어주며 원수를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대로 사십시다. 그렇게 해야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해야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주님이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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