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의 설교_ 천국은 마치

하나님의 성회(윤영일) 2019. 9. 27. 01:42

(마태복음22:2-10) 본문과 함께 “천국은 마치”라는 제목으로 허락하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천국은 비밀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은 비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첫째 예수님의 천국 비유로 오늘의 본문 이외의 다른 천국 비유 말씀 중에서 선택된 마태복음13장 3-9 의 씨앗 뿌리는 비유입니다.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쌔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마태복음22:2-10) 본문과 함께 “천국은 마치”라는 제목으로 허락하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천국은 비밀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은 비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첫째 예수님의 천국 비유로 오늘의 본문 이외의 다른 천국 비유 말씀 중에서 선택된 마태복음13장 3-9 의 씨앗 뿌리는 비유입니다.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쌔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10 절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예수님께서 이렇게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은 이 백성들이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한다”는 무슨 말씀입니까?

돌이켜 보면 신앙생활은 꾸준히 잘한다는 교인들 중에도 특히 부흥회나 특별 집회에는 무관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관심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혹 집회 같은 장소에서 병 고침을 받거나 큰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이 무슨 올가미를 당하며 그야말로 꼼짝 못 하도록 더 구속당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오해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더 많이 구속을 당하게 되며 크신 은혜를 받게 되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의 강가에서 마음 놓고 헤엄을 칠 수가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야말로 찰랑대는 물가에 발을 들여 놓치도 못하는 그런 교인들을 비유하시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24.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결실을 맺는다 하더라도 마음 밭의 상태에 따라 100배, 60배, 30배 역수로 열매로 맺을 수도 있다는 비유입니다.

 

축복의 최고 수가 100배 입니다.

창26:12절에서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역대상21:3에는 “요압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께서도 100배의 영적인 열매로 비유하십니다. 가시떨기로 기운이 막히고, 새들에게 쪼아 먹히고, 돌밭에서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곧 말아버리니 그 씨가 무슨 열매를 맺겠습니까? 당연한 100배의 축복에서 60배로 30배로 줄어들며,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하십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막 4: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은 100배, 60배, 30배의 결실로 표현되어 있는데 비해 마가복음 30배 60배 혹 100배로 결실을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좋은 땅에서도 결실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경고의 말씀입니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옥토만이 결실할 수 있습니다. 돌발작 같은 마음 밭에서는 결실할 수 없습니다. 천국은 마음이 옥토같은 사람만이 받아 드릴 수 있습니다.

2. 두 번째 천국 비유는 곡식과 가라지 비유입니다(25-30)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 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 하시나이까

29.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첫째 비유에서는 씨가 뿌려지는 우리들의 마음 밭을 말씀하셨는데, 두번째의 비유에서는 뿌려진 씨앗에 관한 말씀입니다.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가라지는 농사 지을 때 보리, 밀, 벼와 같은 곡식과 함께 자라는 것으로 열매를 맺을 때에나 구별되는 악한 것입니다. 가라지는 자랄 때에 곡식과 뿌리가 서로 엉켜 자라는 것으로 가라지를 뽑으려다 오히려 곡식까지 뽑게 됩니다.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분명 주인이 좋은 씨앗을 뿌렸는데 마음 밭이 악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고 사단이와 벗하여 오히려 가라지를 내면 최후의 심판에서 가라지를 낸 돌밭짝이는 지옥에 갈 것이라는 비유입니다.

3. 세 번째 천국 비유는 겨자씨 비유입니다(31-32)

 

31.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어떤 사람이 밭에 겨자씨를 심었습니다. 이 겨자씨는 모든 씨앗 중에 가장 작은 씨입니다. 이런 겨자씨가 싹이 나고 자라더니 어느 풀보다도 크고 후에는 큰 나무가 돼서 공중의 새들이 날아와 가지에 깃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가보니 겨자씨 꽃이 보입니다. 가을 철이면 그곳에서 선물로 겨자씨를 가지고 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앗입니다.

 

사복음서를 보면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며 제자들을 꾸짖는 예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믿음이 적(작)은 자들아 하셨으니, 큰 믿음도 있는지요? 네! 큰 믿음이 있습니다.

 

마15:28에는 귀신 들린 자기 딸을 고쳐주십사 하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이방인 여인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하시며 매몰차게 거부하시는 예수님에게 “여자가 대답합니다.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 가나안 여인에게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의 딸이 즉시 나음을 받게 됩니다.

 

겨자씨는 가장 작을 뿐만 아니라 어느 씨앗보다 단단합니다. 순도로 나타내면 100%의 순도를 의미합니다.

 

누가복음 17:6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 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어떠한 믿음이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면 그대로 되겠습니까?

“네 믿음이 크도다” 성경에서 유일하게 주님으로부터 큰 믿음으로 인정받은 가나안 여인의 믿음은 아마도 소개되는 성경에 열거된 믿음에 해당될 것입니다.

 

거룩한 믿음, 거짓이 없는 믿음, 행하는 의로운 믿음, 모든 것을 먹을만한 믿음,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 세상을 이기는 믿음, 의심하지 않는 믿음,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인내하는 믿음, 보배로운 믿음, 세상을 향하여 가난한 믿음, 구원받을 만한 믿음, 담대함으로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가는 믿음, 여러 믿음 중에서도 “세상을 향하여 가난한 믿음”이 가장 마음에 와 닿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 겨자씨와 같습니다. 보잘 것 없고 가장 작고 연약한 자일 찌라도 이 가장 작은 씨앗에, 100%의 믿음이 들어가기만 하면 뽕나무의 뿌리를 뽑을만한 큰 믿음이 될 것이라는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4. 네 번째 비유는 오늘의 본문인 혼인 잔치의 비유”입니다.

 

(마 22:2-10)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 차로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9.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10. 종들이 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말씀 준비를 하며 예수님의 천국 비유가 얼마나 많은지 무려 49가지가 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천국의 59가지 비유를 따로따로 들으면 알아들을 것도 같고 이해가 될 듯 안 될 듯합니다. 여럿 비유의 말씀을 잘 듣고 이해하여야 비유의 말씀이 풀리게 됩니다. 예수님이 비유를 통해 설교하시는 이유 중 하나는, 쉽고 강한 인상을 주는 이야기를 통해 영적인 진리를 쉽게 설명하시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4번 째의 혼인 잔치의 비유는 다른 모든 비유에 비해 더 강하고 충격적입니다. 자신들을 향한 비유설교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들은 바리새인들이 적대감을 들어내며 어떻게 하든지 예수를 잡을까 하여 서로 의논합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다시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천국을 임금의 아들을 위한 잔치로 비유하셨습니다. 천국은 잔치집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가장 기쁘고 웃음꽃이 피는 혼인잔치 집과 같다는 것입니다.

 

한 임금이 아들의 결혼식을 성대하게 준비하고 하객을 초대했습니다. 미리 초청장을 보낸 사람들에게 결혼식 당일에 종들을 보내 참석해 줄 것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한결 같이 자기 생업을 핑계로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또 몇몇은 왕의 종들을 모욕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왕은 노하여 군대를 보내 살인한 자들을 죽이고 동네를 불살라 버립니다. 그리고 이왕 벌어진 혼인잔치에 자리를 채울 하객을 아무나 오라 불러들입니다. 병든 자, 가난한 자, 눌린 자, 괴롭고 슬픈 자, 삶에 지친 자들 모두 나의 아들 혼인잔치에 나아오라 하십니다.

 

이 혼인잔치 비유는 난해한 비유 가운데 속합니다. 그러나 사실 난해한 게 아니라 사람들의 비위에 맞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구원에 대해 정말 보물과 같은 진리가 이 속에 담겨있습니다.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의 의도하시는 대로 영적인 깊은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시길 원합니다.

 

성경은 천국 안내서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천국에 대한 비유는 많은 데 천국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체적인 모습은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천국에 대한 모습은 겨우 한 장뿐입니다.요한 계시록 21장 꼭 한 장만 천국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어디인가에 같습니다. 꿈에서 어디를 갔습니다. 작은 방에 책상이 있고 한 사람이 의자에 앉아있습니다. 그 방에는 창문이 하나 있는데 방 안에 앉아있는 사람이나 창문이나 벽이나 온통 색깔이 옅은 회색입니다. 그 사람 앞에서 무슨 순서를 기다리며 내가 서 있습니다. 그런데 한없이 무언가 순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너무 지루하기만 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다리기가 너무 지루하여서 “예수님 천국을 보여주세요” 그리고 계속 기다립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다림이 너무 지루해서 자다가 꿈에서 깨어납니다.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어 꿈에서 어디를 갔습니다. 작은 방에 책상이 있고 한 사람이 의자에 앉아있습니다. 그 방에는 창문이 하나 있는데 방 안에 앉아있는 사람이나 창문이나 벽이나 온통 색깔이 옅은 회색입니다. 그 사람 앞에서 무슨 순서를 기다리며 내가 서 있습니다. 그런데 한없이 무언가 순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너무 지루하기만 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다리기가 너무 지루하여서 “예수님 천국을 보여주세요” 그리고 계속 기다립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기다림이 너무 지루해서 잠에 빠집니다.

 

다음 날 일과를 모두 마치고 저녁에 리빙룸에서 저녁을 보내고 있는데 지난밤 꿈이 생각이 납니다. 여보 지난밤에 꿈을 꾸었는데 똑같은 꿈을 두 번이나 연속으로 꾸었지, 그런데 그 꿈에서 순서를 기다리기가 너무 지루하여서 예수님 “천국을 보여주세요” 그랬는데 글쎄 지금 보니 “예수님께서 천국을 보여주시지 아니하셨네” 그렇게 꿈 이야기를 하였더니 내자 집사님 왈! 당신은 좋겠어요! 예수님이 그러한 꿈을 다 보여 주시고요.

혹시 오늘 밤에 천국을 보여 주실 지도 모르니 나는 일찍 들어가 자렵니다. 하면서 혼자 안방에 들어가 잠을 청합니다.

 

다음 날 shop에 출근을 하여 평상대로 QT 시간을 같습니다. QT 시간이 끝날 때쯤 갑자기 그 꿈 생각이 납니다. 아니 지난밤에 예수님께서 천국을 보여주시지 아니하셨네, 덜컥! 처음으로 느껴보는 섭섭함에 빠져 듭니다. 주를 향한 영적 섭섭함에 빠져서 얼마를 눈을 감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섭섭한 상태에서 눈을 번쩍하고 뜨는데, 갑자기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천국이 눈에 확 들어오며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천국에 가지 않고 천국을 맛 본 저의 영적 체험입니다.

 

직장인 저의 Shop에 출근하면 의례히 QT를 하며 성경을 읽으며 일을 시작합니다. 바로 어제 읽은 성경 말씀이 요한계시록 4장의 내용이었습니다. 처음 성경을 읽을 때에는 통독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빨리 읽는데 집중합니다. 처음에 성경을 속독으로 빨리 읽고 나면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에 남는 것이 없고 마음이 갈급해지기만 합니다. 그래서 횟수가 나가면서 통독 대신 정독을 하면서 말씀을 읽습니다. 성경 읽기를 정독하며 성경에 나타나는 숫자나 형상이나 읽는 내용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숫자를 적어 넣고 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한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영적 섭섭함에 깊이 빠져 있다가 감았던 눈을 번쩍 뜨는데 어제 QT 시간 공책에 그렸던 요한 계시록 4장의 그림이 눈에 확 들어오는 것입니다.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 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세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네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 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9.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요한 계시록 21장이 천국의 모습이면, 요한 계시록 4-5장은 천국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우리를 위하여 죽임을 당한 어린양과 함께 하나님께 영원토록 드릴 영적 예배의 실제의 모습입니다.

 

한영 찬송가 365 장 "내 주의 지신 십자가"

 

예수님의 비유에서의 천국은 인류를 모두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고 인류를 향한 사랑입니다.

마태복음 22장의 비밀한 천국 비유의 말씀은 본문의 10절 이후에 11절로 14절 로 비유가 계속됩니다.

 

11.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 때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이 비유에서 특히 14절은 그 때나 지금이나 듣는 사람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 설교입니다.

 

초대된 혼인 잔치와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에 대한 비유는 성경에서 마태복음 22장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에 초대된 자들이 잔치에 합당한 예복을 갖추지 않고 참석했다면 그 어리석은 자들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말씀 그대로입니다. 그 수족이 결박되어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져 짐을 당하는 것이 오히려 마땅합니다. 바깥 세상은 어둡고 캄캄한 영원한 저주의 세상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에서 제외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혼인 잔치의 비유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잔치에 초대된 사람이 갖추어야 할 당연한 예복이 문제였다면 혼인 잔치의 주인공이 된 신부의 결혼 예복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정작 혼인 잔치의 주인공이 갖추어야 할 비유의 말씀은 성경에 어디에도 없습니다. 가리워져 있는 천국 비유 말씀 중에서도 정말로 가리워져 있는 비밀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교회와 구원받은 성도들을 신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9)”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 요한계시록 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세마포(細麻布, linen)는 아마 섬유로 짠 천을 말하는데 구약에서 대 제사장인 아론과 그 아들들이 입는 의복을 만드는 주요 재료였습니다.

 

성경이 의미하는 구원받은 자들이 깨끗이 빨아야 할 세마포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사야 61:10}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어린 양의 보혈의 피로 구속을 받은 어린 양의 장래 신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의의 옷을 입혀 주시는데, 그 의미는 우리가 여전히 용서는 받은 죄인이로되 예수의 의의 옷으로 덧입혀 주셨기에 더 이상 죄가 없다 인정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교회 형제들과 격렬한 토론을 벌일 때는 예수의 의의 옷으로 죄를 가려 주심을 저는 “깍꿍 구원”이라 표현합니다. 마지막 심판 때까지만 구원받은 자로 인정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의 공로로 덧입혀 주신 의의 옷이 세마포로 불리는 영적 의미입니다. 성도가 세마포를 점이나 흠이나, 꾸김살이나 더러움이 없이 혼인에 입고 나아 갈 정결한 예복을 스스로 깨끗하게 빨아야 함이 마땅합니다. 그것이 어린양의 신부가 신랑 예수님과의 구원의 사랑을 지키며 주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이 복음의 중심에서 견고하여 흔들림이 없이 믿음의 절개를 지켜야 함이 신부된 우리의 의무와 약속입니다. 성도들이 지키고 갖추어야 할 주를 향한 믿음을 절개와 정절로 표현되어 성경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마가복음8:38)의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를 공동번역에는 "절개 없고 죄 많은 이 세대"로 번역되었습니다.

 

또한 여자의 정절이 성경의 두 군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디모데 전서와 요한 계시록입니다.

디모데 전서의 정절은 성도들의 단정함과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정숙한 여인의 모습입니다. 죄많은 세대에서 성도가 지켜야 할 Dress Code가 이 말씀에 속하는 것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9절-10절)

9절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10절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디모데전서2: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여자들이 믿음 생활을 정절로서 지키기를 여인의 해산에 비유하셨습니다

주님이 신부 되는 성도들에게 요구하시는 세마포는 요한 계시록에 등장하는 정절, 즉 성도들의 구원하신 예수님을 향한 변개치 아니하는 신앙의 절개를 의미합니다.

 

(요한 계시록 14:4-5)

4절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       한 자들이니

5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시편 73:27편)

주님을 멀리하는 사람은 망할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정절_새번역)을 버리는 사람은 주님께서 멸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요한 계시록에서 주를 향한 성도가 지켜야 할 정절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 22장:11절-14절에서 혼인 잔치에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향한 비유를 직접 신부에게 비유로 대입하여 혼인 당사자인 신부가 혼인식장에 더러운 예복을 입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신부가 마땅하게 지켜야 할 신앙의 절개를 지키지 아니하고 세마포를 더렵혔다면, 신랑이신 예수님을 향한 신앙의 정절을 지키지 아니하며 다른 신을 음란하게 섬기며 세마포를 더럽혔다면, 마지막 심판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엄위하심 앞에 영혼이라도 녹아내리지 아니하겠습니까?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천국의 비유는 비밀입니다. 그 많은 비유들 중에서도 특별히 숨기워지고 가리어져 있는 당사자인 신부가 혼인 잔치에 입어야 할 세마포의 숨겨진 비밀입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 겨자씨의 비유, 혼인잔치의 비유를 살펴보며 성경에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 숨겨져 있던 우리가 혼인 잔치에 입어야 할 세마포에 관한 비밀한 비유에 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할렐루야.

 

 

 

2019. 9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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