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11) 성경은 연장신용장과 같은 개인의 재정 관리에 대해서 어떻게 말합니까?
 
 
또한 기독교인은 개인의 빚을 갚는 것에 대하여 어떤 책임이 있습니까?
 
비록 성경이 오늘날 우리들과 매우 다른 문화와 사회에서 씌어졌지만 그것의 원칙은 영원한 것이며 또한 사람들이 어디에 살든지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이러한 지침과 진리 중에서 어떤 것들은 우리들의 개인 재정 및 사업 거래에 적용됩니다.
 
모든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만큼 수입을 만드는 것은 실제적으로 도전이 될 수 있는데, 그것은 특별히 새로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젊은 부부들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들은 인플레의 위협, 빌리는 돈에 대한 금리, 경제에 영향을 주는 정부의 결정,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불안전한 주식 시장, 유익하고 만족스러운 직업의 유지, 가족에 대한의무,  그리고 우리들의 모든 기대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부족한 시간과 돈에 대하여 고려해야만 합니다.
 
위에 나열한 대부분의 항목들은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사항은 소 비를 수입 이내로 통제하는 것 뿐입니다 – 실상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려야 하기 때문에, 수입의 90% 이내로 통제하는 것입니다 (이 항목의 끝에 있는 관심사를 보십시오.) 그러나 그것은 모든 복잡한 일들과 예상 밖으로 생기는 비용들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산을 세우는 것은 우리들이 훌륭한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현명한 하나의 방법입니다. 예산을 세우는 것은 가지고 있는 돈 이상은 쓰지 않는 것과 같이 간단할 수도 있고, 미래의 지출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위하여 매주 그리고 매달의 수입과 지출에 대한 기록을 유지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45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로마서 13:8)고 말한 바울의 가르침을 위반하는 것입니까? 그 구절과 이어지는 구절들은 빚에 대하여 적용할 수 있는 바울의 가르침에 대하여 설명을 해줍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바울은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우리들의 의무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빚을 갚지 않는 것은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말씀을 재정적인 빚에 적용하는 것은 적절합니다.
 
신용카드를 사용하여 구입했을 때, 혹은 정해진 시간에 지정된 금액을 지불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무엇을 구입했을 때, 그 계약에 따라서 정기적으로 지불을 하는 한 구매자에게는 아무 빚도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약속한 시간에 지불을 하지 않는다면, 구매자는 빚을 지게 되며, 그러한 경우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는 바울의 훈계를 위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원래의 계약 기간을 지킬 수 없다면, 기독교인으로써 해야만 하는 일은 채권자에게 문제를 설명하고 새로운 계약 체결을 요청하기 위해 그에게 연락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을 조정할 수 없다면, 지불해야할 의무를 가진 그 구매자는 빚쟁이가 됩니다.

 

할부 구입은 나쁘기도 하고 좋기도 합니다. 그것은 사치품이나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기 위해 쉽게 사용할 수 있지만, 또한 그 사람으로 하여금 계약에 따라 돈을 상환할 수 없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 나 신용으로 필수품을 사는 것은 실제로 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수년간 월세를 지불하는 것은 물을 땅에 부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집을 구입하기 위한 자격을 가질 수 있게 될 때까지만 행해져야 합니다. 만일 일이나 다른 것을 하기 위해서 차가 필요하다면, 그것 역시도 적절한 신용 구입이 됩니다. 만일 신용카드로 불필요한 것을 구입한다면, 매달 구매한 것에 대한 모든 금액을 갚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반드시 좋은 평판이 있거나 “칭찬 듣는” (사도행전 6:3) 사람이어서, 그가 진 정당한 빚을 갚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성경은 자신의 빚을 갚지 않는 사람을 사악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시편37:21). 연장신용장에 의한 중요한 구매는 흔히 담보물이 보증이 되기 때문에, 구매자가 지불을 하지 못할 경우에는 빚을 없애는 대신에 대금업자가 그 구입한 물건을 다시 가져 갑니다. 계약에 따라 값을 지불하지 않은 것을 갖는 것은 기독교인의 정직성에 위반되는 것이며, 그것은 죄악입니다.

 

예수님은 빌리는 것을 허용한 것처럼 보입니다 (마태복음 5:41; 누가복음 6:35). 그러나 신자는 신용대부(크레딧)를 매우 조심스럽게 사용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개인이나 가족의 예산을 가지고 정기적인 지출을 유지해 나갈 수 있습니까? 궁극적으로, 우리들은 잠언 저자의 지혜로운 말씀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고,그런  생각을 끊어 버릴 슬기를 가져라.” (잠언 23:4, 표준새번역) 그리고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 (잠언 28:20). 돈과 소유물을 취급하는 우리들의 태도는 아주 중요합니다.

 

관심사:

 

우리들은 도덕과 윤리가 추락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당한 의무를 피하는 수단으로 파산과 파산법 절차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많은 사람들의 사는 방법이 되었다고 해서 기독교인도 그러한 방법을 따라야만 하는 아무런 이유는 없습니다. 기독교인은 보다 높은 규범을 따라서 살아야만 합니다.

 

또 다른 관심사는 재정, 신용, 빚, 그리고 기독교 가정과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사회는 사치품으로 생각되곤 하던 것을 생활 필수품으로 만들었습니다. 가정은 그들이 필요로 느끼는 것들을 구입하기 위해서 두 사람이 일을 해야만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가정과 가족의 영적 성장은 사랑하는 부모가 함께 있지 못하는 대신에 사 주는 더 크고, 더 좋은 장난감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예산을 세우는 것은 실질적으로 가정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합의해야만 할 수도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복지는 모든 가정이 필요한 것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만 하는 사항입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시편 127:3). 돈이나 소유물이 자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 관심사는 마음으로는 원하지만 형편 때문에 십일조를 드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어떤 기독교인들의 태도에 관한 것입니다. 그들은 재정적으로 형편이 허락할 때에 주님의 일을 위해 헌금을 드리려고 계획을 합니다. 또한 그들은 신약성경 어디에서 기독교인들이 십일조를 드려야만 한다고 요구하는가 하고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신약성경 어디에서도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하는 구약성경의 말씀을 제거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그들의 십일조에 대해서 계속해서 명하심과 함께 그는 또한 그들이 더 중요한 의(義)와 인(仁)과 신(信)(마태복음23:23)에 대한 것을 순종하지 않는다고 책망한 것을 보면 십일조에 대한 말씀은 계속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십일조를 드릴 때보다 드리지 않을 때가 재정적으로 더 여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예산을 세우고 지출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돈을 최우선으로 삼는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 위에 기술한 것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이해에 근거한다.
 

 

#역자 첨부: 연장신용장 (extended credit) - 수출업자의 자금조달편의를 위하여 신용장개설 의뢰인의 요청으로 상품을 선적하기 전에 수익자가 신용장개설 은행 앞으로 무담보어음을 발행하면 이것을 통지은행이 매입하고 무담보어음이 발행된 후 일정 기간 내에 해당상품에 대한 일체의 선적서류를 어음매입은행에 제공할 것을 조건으로 한 신용장을 말함.

'하나님의 성회(윤영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교춤  (0) 2022.10.20
도박  (0) 2022.10.06
유물론  (1) 2022.09.10
일의 윤리  (1) 2022.08.27
구세주의 조건  (0) 2022.08.2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