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에서 벽돌을 굽는 데 대한 전통적인 그림이다. 인부들이 물에 젖은 진흙을 괭이로 짓이기고 있으며 다른 인부가 그 흙덩이를 벽돌 굽는 자에게 나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주전 15세기 테베의 무덤에서 발견됐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 ( 창 15 ; 13 )

1. 힉소스 ( The Hyksos )

주전 18세기는 서아시아가 정치적,군사적으로 불안정하여 많은 민족들이 이리저리 이주하던중 아케아인,고대 헬라인들이 남쪽으로 이주하며 메디아 지방의 셈족들에게 압력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들 셈족속들이 고향을 떠나 다른 시리아 족속들과 더불어 남쪽 팔레스타인과 애굽 델타 지역을 목장을 찾아 방랑하기 시작했다.

이들 혼합이 된 민족이 애굽 델타로 침입했을때 애굽 사제 이며 역사가인 Manetho는 이들을 '힉소스( 애굽말로 "힉"은 "왕"을 의미하며 "소스"는 "목동"을 의미합니다.)라고 부르고 이들이 두왕조를 세워서 통치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예기치 않았던 때에 동쪽 지역들로부터 천한 태생의 사람들이 몰려 들어와 우리 나라에 대한 승리를 호언하였다. 그들은 순전히 많은 숫자의 힘으로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우리 나라를 진압하였다."

애굽 역사상 힉소스의 통치 기간을 주전 1720 - 1570 년으로 잡고 있으며 본래의 애굽 왕조는 남쪽 테베(Thebe)로 피난하여 거기에서 왕조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후 세게넨레왕은 힉소스와의 교전중 전사하여 (왕의 미이라가 전사나 피살당한 경우인 부서진 상태로 발견됨) 그의 아들인 카모세가 이어서 육상과 해전에서 승리하고 다시 왕위를 이어받은 아모세(Ahmose)때에 이르러서야 힉소스의 수도인 아바리스를 점령하게 ㄷㅚㅆ으니 주전 1570년이었다.

2. 힉소스에 대한 다른 견해.  

1824년 영국의 고고학자 윌킨슨(G.Wilkinson)은 이집트 중부 지방의 한 유적지인 베니 하산에 들러 절벽의 중턱에 만들어진 바위굴 무덤들을 조사하였다. 모두 39개나 되는 이 무덤들 중에서 크눔호텝이라 불리는 한 귀족의 무덤 내부에는 이집트인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독특한 턱수염과 화려한 무늬로 짜여진 통치마를 걸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벽화로 그려져 있었다. 이들의 우두머리는 산양 한 마리를 붙들고 있었으며 그의 이름은 힉소스 ‘아비샤’로 기록되어 있었다. 또한 그림의 위쪽에는 ‘37명의 힉소스들이 눈 화장품을 팔기위해 이집트에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윌킨슨은 바로 이들을 통하여 아브라함을 비롯한 창세기에 등장하는 히브리 족장들의 실제 모습을 알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 무덤은 서기전 1900년경 건설된 것이어서 어느 정도 연대상으로도 가능한 추론이었다. 비록 이름은 다르게 나타났지만 이집트의 한 무덤벽화에서 히브리 족장들을 연상시키는 가나안 출신의 유목민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히브리 족장들중의 하나인 야곱은 스캐럽이라 불리는 이집트의 도장에서 그 이름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최고신은 태양신 라(Ra)였다. 이른 아침에 짐승의 똥을 공처럼 둥글게 뭉쳐서 굴리고 가는 말똥구리를 그들은 태양신의 운반자로 여겨서 풍뎅이 형상을 부적으로 만들었으며 도장으로 새겨서 반지에 끼고 다녔다. 1930년대 예루살렘에서 수집되어 베를린의 이집트 박물관에 소장된 한 스캐럽에는 ‘야쿱-헤르’라는 이름이 파라오를 의미하는 타원형 테두리로 싸여 있었다.

1969년 이스라엘의 항구도시인 하이파 근처 쉬크모나의 한 무덤에서 발견된 스캐럽에도 분명하게 상형문자로 ‘야쿱-헤르’가 표기되어 있었으며 베를린의 것과 거의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함께 출토된 토기들을 통하여 이 무덤의 주인공 야곱은 서기전 1750년경의 인물로 밝혀졌다. 또한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다른 스캐럽에는 이집트 제 15왕조의 파라오임을 증명하는 표시와 함께 야곱의 이름이 나타난다. 그는 힉소스 왕조의 제 2대 왕으로서 서기전 1600년경 통치했었다.

서기전 1900년경 화려한 채색 옷을 입은 아비샤를 비롯한 서른 일곱 명의 힉소스들, 서기전 1750년경 이스라엘 항구도시에서 발견된 한 도시의 왕 야곱, 그리고 이집트의 최고 통치자로서 군림했던 서기전 1600년경의 파라오 야곱 등은 모두가 창세기 족장들을 역사적으로 조명해주는 귀중한 고고학적 자료들이다. 비록 창세기에는 요셉이 총리대신으로 등장하지만 이집트 역사에서 힉소스라 불렸던 히브리 족장들은 파라오로서 약 100여 년 동안 이집트를 식민지로 통치했기 때문에 이제 그들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지도자들로 재평가 될 필요가 있다.
 


 
3. 신 왕국 시대 ( The New Kingdom )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그가 그 신민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엄하게 하여 고역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일이라 그 시키는 역사가 다 엄하였더라. ( 출애굽기 1 ; 8 - 14 )

애굽 18조 왕조의 첫 바로인 아모세는 이민족인 힉소스의 침입 경험으로 국방과 강한 왕국의 건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ㄲㅒ달았고 국내적으로는 건설 사업에 이스라엘 민족을 동원했고 국외적으로는 적극적인 군사적 제국주의를 취하여 이방 나라들을 점령하는데 힘쓰게 되었다.

아모세가 죽은후(BC 1546 ) 그를 계승한 아멘로테프 1세 ( BC 1546 - 1525 ) 와 투트모스 1세 ( Thumose ; BC 1525 - 1508 ) 는 남쪽의 누비아 왕국과 서쪽의 리비아 , 그리고 팔레스타인에 이르기까지 군사 정복을 시행하게 됐었다.

이후 투트모스 2세때 그의 여동생인 핫셉스트(Hatshepsut) 가 자기 남편을 시켜 오빠를 제거하고 아들인 투트모스 3세가 바로가 되기까지 22년간 여왕으로 애굽을 다스렸는데 이 여왕이 모세의 양어머니로 역사가들은 추정하고 있으며 다음회에 이를 다시 고증하고자  한다.  
 
 

출처: 아멘넷, 작성자: 누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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