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으로 끝나는 믿음

마 14:28 베드로가 예수께 "주님이십니까? 그러시다면 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하십시오." 하고 소리쳤다.[공동번역]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그 밤, 예수님은 밤중에 바람과 파도에 거슬러 고생하는 제자들에게로 물위로 걸어가십니다. 거기서 주님을 유령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의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신지를 시험(테스트)합니다.
(*퀴리오스 에이 쉬 에이미: 주여! 만일(it be) 당신이 주시어든(나는 ...이다, 나는 ...있다)출 6:2‘여호와’)

 베드로는 위대한 신앙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이 여호와이신 줄을 시험하고 확인하였지만 모든 삶에서도 하나님 되심을 잘 몰랐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였지만,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과 능력의 완전하심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몇 시간 전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책임지시는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시고 그 능력을 나타내셨건만 그 능력의 중심에서 경험한 증인이었으나 그의 믿음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던것 같습니다.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서 빵은 공급하시는 분(마 14:13-21)인 줄은 알았지만 그 외에 다른 것도 공급하시고 채우시는 분일 줄은(예컨대, 풍랑도 잠재우시는 분)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후 광야에서 그들의 전 삶을 책임지시는 (빵-만나)분인 줄을 모르고 불평불만 한 것처럼.... (그들의 생식(정력) 문제나 입고 자고 하는 전 삶의 문제- 미용, 건강 등도 완전하게 책임지시는 분임을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떡(만나-의식주)에만 국한시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혹 전능하시고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잘 못 이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나(일용할 양식-주기도문)는 모든 삶을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상징입니다. 만나는 모든 삶을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약속이며, 만나는 모든 삶 가운데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증거입니다.

 아직도 예수님(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의 구원자이심은 믿지만 인생 전반의 모든 문제 즉, 물질 의 문제나 건강 뿐 아니라 심지어 나의 취미와 기분까지도 챙기시는 완전한 삶의 주되심을,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과연 예수님을 구주로 믿습니까? 믿는다면 주님이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입니까?

 나는 하나님을 믿는가? 하나님의 기적을 믿는가? 주님을 믿는가? 주님의 선물을 믿는가?
혹, 주님은 우리의 죄 문제는 해결해 주셨지만 인생의 다른 문제는 해결할 수 없는 분으로 알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능력은 제한적이신가요? 출애굽 후 야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는 매일 먹이셨지만 다른 것, 예컨대 삶의 전반에 대하여는 모른 척하셨습니까? 사십년 동안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발과 의복은 어떻게 입히셨으며 사십년간의 광야의 추운 밤 날씨에 난방과 낮의 뜨거운 날씨에 냉방문제는 어떠했습니까? 낮엔 구름으로 덮어 시원하게 하셨고 밤에는 불기둥을 두어 추위를 모르고 지내도록 가장 완벽하게 보호하시고 돌보시지 않으셨습니까? 또한 수많은 짐승들의 먹이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끊임없이 이동하고 하는 동안 어디에서 목초를 구했을까요?  신약성경의 우리 주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지 않던가요?

 오늘 교회는 하나님께 무엇을 기대하며 나아갑니까? 사람들이 구름떼 같이 몰려오는 것입니까? 교회의 건물들이 크고 멋지게 세워져 가는 것입니까? 재정적인 풍요함인가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과 교회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인가요? 아님 온갖 은사와 기적이 나타나는 것인가요?

 성도 개인의 신앙생활과 믿음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적인 필요와 요구에 응답하시는 분,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도록 때 맞춰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 정도로만 기대하며 마치 이방인들이 자신들의 섬기는 신께 기도하듯이 그렇게 축복만을 기대하며 왜곡된 신앙행위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출애굽 후에 시내광야 호렙산 밑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해낸 여호와 하나님이다’라고 외치며 섬기는 아론과 및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은 모습입니다. 금송아지 하나님은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교회 안에도 이런 황금으로 치장된 거짓 신들이 하나님으로 둔갑하여 백성들을 미혹합니다. 아론과 같이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하나님으로 가르치는 자들이 강단에서 판을 치고 있습니다. 물질을 하나님으로 섬기며 성공과 축복을 하나님의 선물로 둔갑시키며 왜곡시키는 일들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혹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그 방면에 경험이 많다거나, 사람의 숫자-많고 적음-와 사람의 재산-가능성과 배경-과 사람의 능력을 의지 하거나 기대하지는 않습니까?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런 말을 합니다. ‘암환자 한 명만 고치면 고생 끝’이라 던지 심지어 ‘돈 많은 사람 한 명만 거꾸러뜨리면 목회 성공(?)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목회는 사업이 나 장사도 아니며, 더욱이 한탕주의 투기나 로또복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나의 창조주시며, 생명의 주인이시며, 삶의 완전한 소유주시며 절대 주권이 그 분께 있음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믿음의 근거가 사실이냐 아니냐에 있음도 아니며, 가능성이나 배경이나 재산이나 능력이나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며 더더욱 나 자신의 어떠한 조건도 혹은 믿을만한 어떤 사람도 믿음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가운데, 교회요 성전 된 나의 마음 안에 있는 법궤, 임마누엘이신 하나님, 성령으로 임재 해 계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거나 왜곡하거나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내가 그 하나님의 자리에 있거나 그 영광을 탐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이 예수요(죄에서 구원뿐 아니라 모든 삶에서의 구원이심), 그리스도시오(왕-다스리심, 선지자-말씀하시고 가르치심, 제사장-중보자/보호자)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자녀 됨의 권세)이요 임마누엘(영원히 동거, 동행)이심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거룩한 이름이 ‘여호와’이십니다. 그 분은 말씀(언약)하신 것은 반드시 행하시며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렘 33: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그분은 우리의 전 삶을 완벽하게 책임지시는 분이시며 자녀들이 가장 좋은 것, 최상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그분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우리의 전 삶을 주님께 올려드리고 믿기만 한다면, 삶의 주권을 왕 되신 주님께 완전히 내어드리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그분의 이름의 뜻입니다.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가장 유일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 몸(body), 하나님의 거처, 하나님의 집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함께 사심, 하나님이 나의 주인 되시고 하나님이 나를 통해 절대주권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삶을 사시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의 소유이며 나의 삶은 누구의 삶이어야 합니까? 가정, 사업, 사역 등 내 삶의 모든 것의 주권에 대하여 심각하고 진실하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그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맡겼으며 순응하십니까? 기도하고 응답이 없어도 아무것도, 심지어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무심한 사람으로 손가락질을 당한다 해도 믿음으로 그분의 주권을 인정할 수 있는지요?

 이것은, 내가 지금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 의 문제이지 하나님의 능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분은 믿음에만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을 때만, 역사하시고, 믿는 자에게만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과 우리의 사업과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사역을 완전히 경영하시게 하려면 나의 불신앙(부분적인 믿음)을 깨뜨려야 합니다. 만나만이 아닌 풍랑도 잠잠케 하시며(불가능한 환경) 물(바다)위로도 걸을 수 있도록 하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하느냐?”(31)

 성경은,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히 4:2)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복음이요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받았음에도 그 말씀을 믿음에 결부시키지 않는다면 아무런 능력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믿음대로 되는 이 변할 수 없는 분명한 법칙은 우리의 전 삶에서 역사합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잘못된 믿음이 우리 가운데서 제거돼야 합니다. 물질 문제가 시급하고, 부흥의 문제가 시급한 그리고 수많은 영적 육적 문제로 고민하는 주의 종들과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은 빵 밖에 안주시는 제한적 능력의 하나님이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나는 믿지 않으면서 누구에게 믿음을 증거 할 것이며, 누구에게 그런 제한적인 능력의 하나님(?)을 믿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매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의 산 증인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사기꾼 거짓말쟁이요. 하나님도 사기꾼 하나님, 무능한 하나님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철저히 회개해야 할 때입니다. 가장 강력한 적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인지도 모릅니다. 공허하고 메마른 외침과 생명 없는 거짓 믿음의 행위를 회개하고 살아계신 하나님, 오늘도 나를 통해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손에 자신을 내어 드리십시다. 나의 전 삶이 주님의 삶이됨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인정합시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 진실로 무릎을 꿇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주 예수님, 주님은 진실로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나의 왕이시며 나의 구원이시며 나의 보호자십니다. 주님은 나의 아빠십니다. 주님은 나와 영원토록 함께 계십니다.  주여! 주는 반드시 약속을 이루어주심을 내가 믿습니다. 완전하신 주여 나를 주님께 기꺼이 내어 드립니다. 나의 주님을 사랑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출처: USA아멘넷 독자공간 게시판/김은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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