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아내에게
문학/詩 2009. 2. 16. 04:50음악 : Walking With You (The DAydream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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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아내에게 - 시 : 황지우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아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 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알한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 있는 만큼 그대의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묻은 손으로 짚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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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님의 시를 읽는 내내
남편들의 어리석음을 본다.
"사랑한다"는 말을 아껴
나중에 쓰리라... 다짐하는 동안,
아내의 작은 가슴은 병들어 가고 있다
아프다...
세월이....
바람이 유난히도 스산하다....
벌써 꽃샘추위가 시작되려나....
주님만 다시 한 번 바라보아야겠다...
그분은 말씀하시지..."딸아,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래서 난 목숨도 아깝지 않았어..." 라고...
아, 유난히도 그분의 위로가 그리운 날이다.
- 속절 없이 흘러가는 발렌타인 데이 저녁 명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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