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아브람을 처음 불러내셨을 때, 아브람에게 믿음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아비집을 떠나기는 했는데 아버지 데라를 모시고 하란으로 갔다가 다시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가기는 했는데..., 기근이 들자 굶어죽을까봐 '하나님의 지시하신 곳'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갈대아 우르가 가까웠다면 아마 갈대아 우르로 돌아오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 곳에서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까봐 두려워 아내를 누이라고 했습니다. 도저히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의 행동이라 할 수 없습니다. 비겁하고 가련하고 한심한 사내의 모습입니다. 그 비겁함으로 아내를 빼앗겼습니다. 아내 사라가 바로왕에게 시집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로의 집에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 재앙이 얼마나 크고 무서웠던지 바로가 놀라서 사라를 돌려주고 그들을 빨리 떠나 보내려고 금과 은, 육축과 노비를 아브람에게 잔뜩 안겨주고 잔뜩 지워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하나님은 이 믿음 없는 아브람에게 한 마디 꾸중도 안 하셨습니다. 아브람에게 믿음이 없는 것을 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하여 아브람의 믿음이 조금 자랍니다. 그래서 조카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리라,' 하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조카 롯이 붙잡혀갔을 때 318인 거느리고 쫓아가 찾아오는 대단한 용감성도 발휘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 믿음은 연약하기만 하였습니다. 15장을 보십시오. 그돌라오멜을 쳐부수고도 아브람은 두려워합니다. 두려워하는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이 계시는데 무엇이 부족하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람은 여전히 두려워하였습니다. 자식 없이 죽는 것이 더욱 두려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제게 씨를 안 주셨습니다. 이 하인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저의 후사입니다, 씨를 안 주시니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아니, 하나님이 자식보다 못 하단 말입니까? 그런 믿음 없는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한 마디 꾸지람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밤하늘의 별을 보여 주셨습니다.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그런데 여기에서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것 참 희한한 일입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여주니까 믿었다니 말입니다. 그리고 더 희한한 것은 밤하늘의 별을 보고 믿은 아브람을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밤하늘 별을 보고 믿은 것이 어째서 의가 되는 것일까요? 갈라디아서 3장을 찾아봅시다.
(갈3: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이 약속의 자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지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요8:56)

하나님께서 그 날 밤 밤하늘 별을 보여 주실 때 하나님은 "네 자손들"이라고 복수형으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네 자손"이라고 단수형으로 말씀하셨답니다. 아브라함은 "아니, 하나님. 후손들이라고 하셔야 맞잖아요. 하나님은 문법도 모르십니까?" 하고 따지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히브리어 문법을 잘 모르셔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아닙니다. 그 날 밤 아브람에게 밤하늘 별을 가리키면서 하나님은 아브람의 자손 가운데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신 것이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별을 가리키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저렇게 하늘 가득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늘 가득한 예수 그리스도....
그것이 산산히 부서져 흩어질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 생명으로 구원 받을 수많은 성도들,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하는 것인지, 온 우주 가득한 그리스도의 영광과 찬송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아브람은 그 말씀을 그대로 그냥 믿었습니다. 그러니 아브람은 예수님을 믿은 것이 되고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린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참 이상하다 싶습니다. 아니, 웃긴다 싶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하시는 것을 보면 믿음 없는 아브람을 불러내셔서 믿음 없는 아브람에게 억지로 믿음을 주시고 억지춘향으로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니 말입니다. 아브람에게 복을 주시려고 작정하시고 억지로 끌고 나와 억지로 입을 벌려 믿음을 먹이시는 것처럼 하시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어 마땅한 죄인이 억지로 이끌려 나와 억지로 먹이시는 믿음을 받아먹고 하나님의 영광의 자녀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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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향기가 온 지면에 


찬송 :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성경 : 미가 6:6~8

요절 :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시는 것이 아니냐 (8)


작년에 일가재단이 수여하는 제27회 일가상(사회공익 부문)을 받은 사람은 일본인 '레이코

가부라키 리'여사입니다. 그녀는 한국인 최초로 세계보건기구(WHO)의 수장을 지낸 이종욱

박사의 아내이기도 합니다.


레이코 여사는 처녀의 몸으로 아무 연고도 없는 한국에 와서, 나자로 마을의 한센병 환자들

을 돌보며 십수 년을 봉사했습니다. 자원 봉사를 하던 중에 의료 봉사를 온 이종욱 박사를 

만나 결혼했고, 그 뒤 전 세계 한센병 환자촌을 다니며 남편과 함께 병자들을 돌보았습니다.


남편이 소천한 뒤로는 페루 리마의 빈민촌에 들어가, 빈민 여성들의 재활을 돕고 문맹 퇴치

교육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독실한 그녀는 한국어도 일본어 성경과 한국어 성경을 대조

해 읽으면서 배웠다고 합니다. 


실로 그녀의 생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의 삶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예배'

라고 하면 우리는 주일예배나 저녁 예배등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예배는 특정한 시간에 한정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예배처럼 구별된 시긴뿐 아니라 우리의 신생 전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교회에서만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일상행활이 곧 예배가 되게 해야 합

니다.따라서 신앙이라는 표현보다는 '신앙생활'이라는 말을, 


에배보다는 '신앙생활'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신앙과 예배는 생활과 연결되어 표현하

는 것이 맞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언자는 "내가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며 무엇으로 높으신 하나님께 결배할까? 라며 예배에 대해 질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대답하기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제사는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드

리는 것보다, 수천 마리의 양이나 수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드리는 것보다,일상생활에서 정의

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고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처음으로 예배드렸을 때 '예배의 향기가 온 지면에 진동하여 하나님께

서 그 향기를 받으셨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창 8:21) 아무쪼록 우리가 매주 드리는

예배는 물론이거니와 실상생할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드리

는 예배의 향기가 온 세상에 퍼지기를 기도합니다.


* 과연 삶에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고 있습니까?


기도

하나님, 싱앙과 삶이 불리되지 않게 하소서. 나의 삶이 곧 에배가 되게 하소서. 생활 속에서 예

수 그리스도를 닮아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살게 하소서.그리하여 오직 하나

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태원 목사  한빛교회 

[ 7 ] 하나님의 속성

1. 전지전능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능치 못하신 일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전지하신 것입니다.
(민 32:23) 『너희가 만일 그같이 아니하면 여호와께 범죄함이니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
(민 32:23) 『너희가 만일 그같이 아니하면 여호와께 범죄함이니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

(대상 28:9)『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대상 28:9)『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렘 16:17) 『이는 내 눈이 그들의 행위를 감찰하므로 그들이 내 얼굴 앞에서 숨김을 얻지 못하며 그들의 죄악이 내 목전에서 은폐되지 못함이라』
(렘 16:17) 『이는 내 눈이 그들의 행위를 살펴보므로 그들이 내 얼굴 앞에서 숨기지 못하며 그들의 죄악이 내 목전에서 숨겨지지 못함이라』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신 것입니다.
(창 17:1) 『아브람의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 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 35:11)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창 35: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출 6: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출 6: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렘 32:17)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과 드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시니이다』
(렘 32:17)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

(계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2.무소부재
하나님은 천지에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도 계시고, 교회 밖에도 계시며, 우리들과도 계시고, 이웃사람들과도 함께 계시니 그분이 계시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우리들의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시간과 물질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시 33:5) 『저는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시 33:5) 『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시 119:64)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땅에 충만하였사오니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시 119:64)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땅에 충만하였사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사 6: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사 6: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렘 23:2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렘 23: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3.영원불변(현재하시는 분)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으로서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고, 오직 현재만 있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영원하신 하나님은 또한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사 48:12) 『야곱아 나의 부른 이스라엘아 나를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
(사 48:12)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

(계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17)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계 1: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계 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 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계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말 3:6)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말 3:6)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히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이처럼 우리들이 신앙하는 하나님은 스스로 자존하시는 분으로서 영원한 현재이신분이십니다.
(출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 3:14) 『And God said unto Moses, I AM THAT I AM: and he said, Thus shalt thou say unto the children of Israel, I AM hath sent me unto you.』(NKJ)
(출 3:14) 『And God said to Moses, "I AM WHO I AM." And He said, "Thus you shall say to the children of Israel, 'I AM has sent me to you.'"』‘New Revised Standard Version’
(출 3:14) 『God said to Moses, "I AM WHO I AM. This is what you are to say to the Israelites: 'I AM has sent me to you.'"』(KJV)
(출 3:14) 『God said to Moses, "I AM WHO I AM." He said further, "Thus you shall say to the Israelites, 'I AM has sent me to you.'"』(NIV)

4.거룩하심
우리들의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들도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옥에도 티가 있다’는 우리나라의 속담이 해당이 되지 않는 거룩함이십니다.
(출 15:11)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 누구니이까』
(출 15:11)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출 22:31)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지니 들에서 짐승에게 찢긴 것의 고기를 먹지 말고 개에게 던질지니라』
(출 22:31)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지니 들에서 짐승에게 찢긴 동물의 고기를 먹지 말고 그것을 개에게 던질지니라』

(출 31:1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출 31:1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

(레 11:44)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레 11:44)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레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레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레 20:7) 『너희는 스스로 깨끗케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 20:7) 『너희는 스스로 깨끗케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 20:8)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케 하는 여호와니라』
(레 20:8)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니라』

(레 20:26)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레 20:26)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민 27:14)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제 너희가 내 명을 거역하고 그 물가에서 나의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
(민 27:14)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때에 너희가 내 명령을 거역하고 그 물가에서 내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

(시 99:3)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찌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시 99:3)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지니 그는 거룩하심이로다』

(시 99:9)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경배할지어다 대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도다』
(시 99:9)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대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

(살전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살전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5.살아계심
하나님의 속성 중에서 중요한 속성은 지금도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롬 9: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9: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고후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고후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

(딤전 3: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딤전 3: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딤전 4: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딤전 4: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히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히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 10: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히 10: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히 12: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히 12: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계 10:6) 『세세토록 살아 계신 자 곧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계 10:6)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은 영원한 현재로 지나간 세대와 오늘의 세대와 앞으로 나타날 세대를 지금 현재로 만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출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히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반면에 이 세상의 모든 우상들은 사람들의 수공물이요, 죽어 있는 모습입니다.
(시 115:4-8)『[4]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5]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6]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7]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8]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
(시 115:4-8)『[4]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5]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6]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7]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8]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렘 10:3-5)『[3] 열방의 규례는 헛된 것이라 그 위하는 것은 삼림에서 벤 나무요 공장의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 [4] 그들이 은과 금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요동치 않게 하나니 [5] 그것이 갈린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 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에게 메임을 입느니라 그것이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라 하셨느니라』


(렘 10:3-5)『[3] 여러나라의 풍습은 헛된 것이니 삼림에서 벤 나무요 기술공의 두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 [4] 그들이 은과 금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나니 [5] 그것이 둥근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 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이 메어야 하느니라 그것이 그들에게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출처: USA 아멘넷 자게판/복된소식

믿음으로 보면 특별하게 보입니다 


찬송 : 211장 값비싼 향유를 드린 

성경 : 요한복음 12:4~11

요절 : 예수게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긴직하게 하라 (7)


영국 BBC 방송에서 죽기 전에 기 봐야 할 세계 최고의 여행지 50곳을 선정하여 방송한

적이 있습니다. 1위로 선정된 곳은 미국의 콜라라도 고원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협곡 그

랜드케니언(Grand Canyon)이었습니다


해다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는데 각자가 보고 느끼는 것은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오랜 세월 침식 작용으로 깎이고 깍여서 형성된 계곡이라고 단순하게 행각하

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엄청난 규모의 협곡을 바라보며 조물주에 대해


묵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을 보는 가치관에 따라 같은 것을 보면서도 서로 다

른 생각을 합니다.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베다니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열렸습니다. 잔치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를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

고는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린 것입니다. 집안은 온통 향유 냄새로 

가득 찼습니다. 그때 지켜보고 있던 가룟 유다와 제자들은 이 행유를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는 것이 더 옳지 않느냐며 따졌습니다. 매우 날카롭고 일리 있는 지적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와 가룟 유다는 같은 향유를 가지고 왜 이처럼 서로 다른 생각을 했을까

요?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 했다기보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돈이 아까웠던 것

입니다. 반면 마리아는 예수님께 드리는 것은그것이 무엇이든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구

원의 주라고 고백되는 예수님께라면 얼마든지, 기꺼이 드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를 질타하는 제자들을 향해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

을 간직하게 하라"(7)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낭비가 아니라 장례를 준비한 것임을 분

명히 밝히셨습니다. 믿음 없이 보면 낭비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의 잘례를 준비하는 거룩한 의식이었던 것입니다.우리의 삶도 마

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그 무엇도 남지 않는 낭비하는 인생을 살지만, 예수님

을 붙잡고 가면 준비하는 인생, 아름다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 마리아의 헌신이 낭비로 보입니까, 거룩한 준비로 보입니까?


기도

히나님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보지 못하고 좋은 것을 좋게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샹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삐둘어진 시야를 바로집아 주셔서 예수님의 시선으로 보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지 분별하여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

멘.


                                                          남근형 목사  푸른사랑교회 

미북 정상회담이후 싱가폴에서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질문과 답을 통해서 중요한 부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미군의 철수나 병력의 감소는 없습니다.

2. CVID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 검증가능하고
돌이킬수 없는 완전한 비핵화를 한다고
했습니다.

3.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 심도있게
다루었다고 했으며 나중에 더 정은이와
대화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4. 기독교인들의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다고 했으면 나중에 더 진전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5. 비핵화는 시간이 어느정도 걸리는
문제라고 말을 했습니다.

6.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가 어느정도 되었다고 판단될때까지 경제 제제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주님 오시는 발자국 소리들-

김정은이 은둔의 생활을 하다가
트럼프의 협박에 못이겨 국제무대로
나왔으니 이젠 예전같이 미친 개새끼처럼
날뛰지는 못할 것이고,
그 것을 빌미로해서 북한체제변화를 시키는
계기로 삼을 것 같네요!
향후가 흥미진진~~

트럼프가 많은 사람을 투입해서
완전한 핵폐기를 하겠다고 했으니
결국 폐쇄국가인
북한의 빗장을 연 셈입니다!
폐쇄국가가 빗장을 열면 변화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김정은이 미국측 요구대로 싱가폴까지
기어나왔다는 것은 중국 시진핑의
꼭두각시에서 미국의 관리 영향권에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이란 핵협정 탈퇴,
미북회담 취소발표 등의 강수에
꼬리를 만 것입니다!

미국이 CVID와 북한의 체제보장을
맞교환한다는 시나리오를 뜯어보면
북한의 체제보장은 미국이 김정은을
죽이지 않겠다는 보장을 의미합니다.

북한사람들이 김정은을 죽이는 것까지
차단해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펌글

미북회담 결과에 관한 소고

 

중국처럼 북한도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면서 국제무대에 진출하려고 하나보지만...중국은 정은이처럼 그렇게 심한 독재체제도 아니고. 3대 세습왕조도 아니란 것이다. 이런 때 ICBM 폐기문제를 언급조차 하지않은 트럼프...우찌 해석해야 할지...대략난감이다.

 

지금으로서는 국가에 닥칠 위기, 좌경화를 막는 것은 우리 모두 투표에 참여하여 2번 찍는 방법 외에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한 분도 빠지지말고 일어나 모두 투표를 잘하기 바란다. 트럼프는 이전 지도자와 마찬가지, 정은이에게 시간만 벌어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 국민이 바른 투표로 살려내는 길 외에는 희망이 없다.

나 하나가 모여 둘이 되고 둘이 모여 셋이된다. 시냇물이 모여 강물이 됨을 앚지 말자.
우리가 힘쓸 때, 하나님께서 일어나 도우실 것이다. /최송연

 

기독교를 계시의 종교라 함은, 하나님은 인간의 지혜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계시로만 알려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죄로 하나님에 대해 무지해졌을 때만 아니라 타락 전에도, 그의 생득적 지혜로는 완전한 하나님 지식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적 계시(existence revelation)'가 있었고, 하나님의 신성이 내재된 만물계시(롬 1:20)도 있었지만, 그것들만으로는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가 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 크고 광대하셔서, 인간의 하나님 지식은 장님 코끼리 만지듯 편린적이어서, 2위 성자의 말씀(λ?γο?, logos)의 계시 없이는 제대로 알려질 수 없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계시는, 삼위일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분 하나님이신 성부, 성자, 성령 각 위(位)는 오직 삼위일체적으로만 알려지십니다. 흔히 삼위일체 하면 고도의 신학 수련을 받은 전문 신학자들의 사변적 지식인 줄 아나, 사실은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의 보편적 지식입니다. 만일 누가 삼위일체적으로 하나님을 모른다면, 그는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고, 그런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성자 그리스도가 창세 전부터 말씀(λ?γο?)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요 1:1) 이유도, 성부 하나님을 계시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크신 하나님은 성자 로고스(λ?γο?)를 통해서만 알려질 수 있으며, 그 없이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신다면 인간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히 12:19)."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동원된 '말씀(히 11:3, 벧후 3:5)'이 바로 '성자 로고스'였습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창 1:3)"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이 '성자 로고스'였고, 그 로고스로 인해 빛이 생겨났습니다.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골 1:16)"고,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고 한 말씀이 그 뜻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여 하나님에 대해 깜깜해진 후에는,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이 알려졌습니다. 그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인간에게 말씀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행 28:25)",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히 1:1-2)".


성육신하신 2위 성자도-성부가 그랬듯이-육체로 나타난 그의 '존재적 계시(existence revelation)'만으로는 온전히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2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을 때, 그를 알아보고 영접하는 자들이 없었습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요 1:10-11)".


성자는 오직 아버지와 성령으로 말미암아 삼위일체적으로 알려지도록 경륜되었습니다.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 인줄 아노라(요 5:31-32)",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요일 5:7)".


많은 사람들이 성육신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도록 나타난 하나님의 '존재적 계시(existence revelation)'로 알지만, 사실 성육신의 근본 목적은 계시가 아닌, 육체에 죄를 담당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계시가 목적이었다면 당연히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알아봤어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골 1:15) 이스라엘 땅을 밟고 다니셨지만, 성부와 성령의 계시를 받은 소수 외는, 그를 하나님으로 알아보는 이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향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고백한 베드로를 보고,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라고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직 아버지의 성령으로만(삼위일체적으로) 알려진다는 뜻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를 자기보다 앞서 계신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알아 본 것도 성령으로 말미암았고(요 1:29-34), 다음의 구절도 동일한 어조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 15:26)."


하나님이 보이는 사람의 육체를 입고 나타났음에도, 그의 정체성이 사람들에게 가려졌음은, 삼위일체적 계시 없이, 위(位)의 '존재적 계시(existence revelation)', 곧 보고 듣고 만져지는 육체의 현현만으로는 알려질 수 없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그 몸의 못자국과 창자국을 본 후에야 비로소 예수를 하나님으로 알아 본 도마를 향해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되도다(요 20:29)"고 하신 것은, 오감에 의존된 그의 믿음의 불완전성을 타박한 말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다고 한 것은, 드러난 그의 육신을 본 때문이 아니라, 삼위일체적 계시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이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고 한 것은,-자신이 예수님을 직접 본 것은 사도됨의 확증이라는 뜻이지만-삼위일체적 계시로 알려진 예수 이해는 마치 보고 듣고 만지는 오감의 체험처럼 확실하다는 뜻입니다.


오늘 사람들이 자신이 예수님과 동시대에 태어나 예수님을 오감으로 직접 경험했다면, 지금보다 더 예수를 잘 믿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가 유대인들 앞에 나타났을 때, 그를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더 북돋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혼란에 빠뜨려졌다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하니(요 10:24)."


이는 보고 듣고 만지는 오감이 진정한 신앙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는 반증입니다.  만일 우리의 신앙이 보이는 것에 좌우된다면, 성육신하기 전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보고 즐거워했던 아브라함이나(요 8:56), 그리스도를 보지 못함에도, 믿고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벧전 1:8)고 가르친 베드로는 다 실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믿음에 확신을 북돋도록 보냄을 받은 성령의 사역도(살전 1:5) 불필요해집니다.


제자들의 경우에도, 성자 그리스도가 복음을 이루시고 승천하므로, 오감의 기능이 불필요해지고,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성령을 힘입었을 때, 오히려 믿음이 더 확실해졌습니다.


끝으로 3위(位)인 성령 역시,-성부와 성자가 그랬듯이-스스로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그리스도의 증거에(삼위일체적 증거에) 의존되어 있음을 말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자신을 나타내는 방식은, 선포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므로 자신을 드러내는, 상호 교호적(interactive) 방식입니다.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누군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하면, 성령이 그것을 듣고 "아 저건 내가 증거 해 주어야 하는 말이네" 라며 그 말에 찰싹 붙어 증거해 주는데, 그 증거 과정에서 성령이 복음을 말하는 자와 듣는 자에게 현현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군가에 의해 복음이 선포되지 않으면, 성령은 복음을 증거할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이 복음을 증거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성령이 자신을 나타낼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됩니다.


이렇게 '복음 선포'와 '성령의 나타남'은 불가분이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말하지 않으면 성령을 실업자로 만들고, 그의 나타나심도 봉쇄당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복음전파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이룰 뿐 아니라, 성령의 나타남의 첩경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령 체험을 원하며, 그것을 획득할 수만 있다면 어떤 희생도 각오하겠다는 결연성까지 보입니다. 그들 중에는 다행히 좋은 교사를 만나 건전한 성령체험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신비주의자나 종교다원주의자들에게 낚여 영적 파산을 당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진정한 성령체험이란, 한 마디로 성령의 증거에 수반되는 성령의 현현에 연루되는 것입니다. 복음 증거를 첫째 사명으로 삼는 성령은, 그 어디에서보다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 자신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이는 가장 안전하고도 확실한 성령체험의 방법이며, 또한 성경의 약속이기도 합니다(요 15:26). 그리스도의 복음과 연관성 없이 발생되는 성령체험은 신뢰할만한 것이 못됩니다. 칼빈(John Calvin)도 언제나 성령과 말씀을 연관지었으며, 그에게 붙은 '성령의 신학자'라는 별명은 '말씀의 신학자'라는 별명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존 번연(John Bunyan),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같은 청교도들의 성령체험 역시, 복음이 말해지는 강단과 전도 현장에서 연루된 경험이었습니다.


오늘 누가 성령 체험을 하기를 원한다면, 이상한 방법을 쓰지 말고 지금 밖으로 나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우리 죄값을 지불하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입니다"라고 말하십시오, 그러면 성령께서 당신이 전한 그 복음을 증거해 주시며, 당신에게 자신을 나타내 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들은, 한 분 하나님의 각 위(位)는 삼위일체적으로만 알려진다는 사실들을 설명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대표, byterian@hanmail.net)


저·역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쉽게 풀어 쓴 이신칭의(CLC), 근간)> 등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07744


출처: 영적 분별력/진실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 한아름

YouTube에서 'LA 시사논평 TV / 613선거 투표용지 벌써부터 불법?' 보기
https://youtu.be/yXGI59hlRDM

제조업 가동률 70%로 추락…반도체 외끌이 경제 한계

◆ 휘청거리는 한국제조업 ◆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제조업에 이상 징후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산업생산이 2개월 연속 감소하면서 공장가동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으로 떨어졌다. 수출증가율도 둔화세가 뚜렷하다. '반도체 외끌이'로 버텨 온 한국 제조업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30일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전 산업생산은 전월 대비 1.2% 감소했다.

산업생산이 전월 대비 1.2% 감소한 것은 5년 전인 2013년 3월(-2.0%) 이래 가장 큰 감소폭이다. 서비스업 생산이 소폭(0.4%) 증가했으나 자동차(-3.7%)와 기계장비(-4.3%) 생산이 크게 줄면서 광공업 생산이 감소(-2.5%)한 것이 두 달 연속 전체 산업생산 감소로 이어졌다.

수출 호황을 이끌던 반도체 생산은 전월 대비 5.0% 증가했으나 자동차,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등 나머지 주력 산업은 글로벌 수요 감소 여파 등으로 빨간불이 켜졌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1분기 기저효과에도 불구하고 올해 1분기 판매량이 모두 감소세를 기록했다. 승용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탄탄했던 버스·트럭 등 상용차 부문도 주름살이 지고 있다.

현대차 전주공장 중형트럭 라인은 4월 물량 감소를 이유로 1주일간 가동을 중단했다. 자동차산업이 주춤해지면서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전월 대비 1.8%포인트 하락한 70.3%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을 받았던 2009년 3월(69.9%) 이후 9년 만에 가장 낮은 가동률이다.

잘나가던 디스플레이 업체들도 중국의 무분별한 LCD 패널 저가 공세로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1분기에 983억원의 영업손실을 본 LG디스플레이는 올해 LCD 투자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중국 업체의 생산 물량 확대가 지속되고 있고, 업체 간 경쟁이 심해져 '불확실성'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국 디스플레이산업을 이끄는 양대 플레이어는 2분기에도 실적 부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스마트폰 분야도 심상치 않다. 1000달러 이상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가격 저항이 큰 데다 스마트폰 교체 주기 증가로 중국 시장마저 수요 감소세에 접어들어 삼성전자가 판매 반등의 모멘텀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시장조사기관인 카운터포인트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세계 2위 스마트폰 시장인 인도에서도 최근 샤오미에 점유율 1위 자리를 내준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제조업 부진은 수출 통계에서도 확인될 전망이다. 한 경제 전문가는 "4월 수출 실적은 2016년 10월 이후 18개월 만에 처음으로 전년 대비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일자리 문제도 걱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인실 서강대 교수는 "반도체발 통계 착시 현상이 심각한 상황에서 다른 산업에 대한 체질 강화 대책이 시급하다"며 "이는 일자리 정부임을 내세우는 정부의 고용 정책과도 연결돼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연규욱 기자 / 강영운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어느 목사님과 아들이 제게 상담을 했습니다.

 

어느 목사님과 아들이 제게 상담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목사님의 입장에서 합리적(?)으로, 아들에게 권면하고...

아들은 아들의 입장에서 합리적(?)으로 아버지에게 요구하는...


목사님은 아들을 사랑한다는 전제,

아들은 목사인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몇시간을 서로 옥신각신 했습니다.


마주보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다른 세상 얘기를 하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

도무지 합의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나라(입장)의 말을 합니다.

서로 못 알아 듣습니다.


저도 이전에는

누구보다 말이 안 통했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아내가 좋은 신앙인이 되길 바랬었고,

아들들을 잘 키워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다고

잔뜩 부담만 주는 몹쓸 남편이자 아버지였습니다.


사람들은 상대가 바뀌길 바라지만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길 바라십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의 은혜입니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 7:5)


대화는 한국말(영어)로 서로 잘 알아듣고 하는 듯 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아무리 유창하게 말해도

서로의 뜻이 전달 안되니 결국 대화가 통하지 않게 됩니다.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참 많이 힘듭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아니고는 아무리 유창한 말과

지식이 있어도 복음이 쉽게 전해지지 않습니다.


영안은 상대방 속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는 것입니다.


이웃(형제)을 알아볼 수 있는 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길 간절히 사모할 때입니다.

은혜를 알면 알수록 내가 없어지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타납니다.


강도 맞은 죄인들에게는 사랑으로,

스스로 의롭다는 바리새인들에게는

무관심한 듯 때가 찰 때까지 인내하며...

그리스도인은 분별의 영이 임한 자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처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출처: 짐바브웨 선교-그리스도의 마음이 있는 자가 <선교사>입니다! 원문보기   글쓴이: 김명호

 

 

 

「政治와 軍事는 실험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고대국가 이래, 최고의 금기(禁忌)사항이다. 


세상에서 실험이 안 되는 것, 실험해서도 안 되고, 실험해 볼 수도 없는 것이 이 두 가지이다. 


정치에서 정책을 내놓고 일단 실험해 보고 결정하자 했을 때 실패하면, 어떻게 되느냐, 

개인이나 기업의 경우에는 그 피해는 그 개인만의 것이고, 그 기업만의 것이다. 

그러나 정치의 경우, 그 피해는 정책을 실험한 정치인의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의 것이 된다. 


그래서 맹자(孟子)에 나오는 「연목구어(緣木求魚) 후필재앙 (後必災殃)」이라는 어휘에 대해,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가슴깊이 새겨야 하는 금기어(禁忌語)가 있다. 


나무에 올라서 고기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럼에도 기어코 나무에 올라가 고기를 잡으려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정치인이다. 


그러나 그 피해는 그 어리석은 정치인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로 간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재앙(災殃)이 된다. 


그것도 국가적 재앙(災殃)이 된다. 


군사에서도 실험삼아 적을 공격해 보고, 실험삼아 전쟁해 보자.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이겠는가! 


적과 실험삼아 대화해 보자. 

실험삼아 4억 5천만 달러의 돈도 주어 보고, 그보다 10배나 많은 45억 달러의 돈도 주어 보자! 

그래서 어떻게 되겠는가. 

적은 대화를 기회로 전쟁준비를 하고, 그 현금을 재원으로 핵무기를 만들고, 미사일도 만든다. 

그 절호의 찬스를 어느 적이 놓치겠는가. 

실험삼아 해 본 것이 적에게는 천혜(天惠)가 되고, 준 쪽에서는 재앙이 된다. 


더욱 기이한 것은 그것이 얼마나 재앙을 불러오는 실험인가를 의식 없이 실험하는 것이 정치인의 「실험행태」이다. 


대통령이 되고 난 뒤, 느닷없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발표했다. 

국민은 알지도 못하는데, 선거 때의 국정과제라고 했다. 

환경단체의 실험과제를 숙의(熟議)도 없이, 전문지식도 없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피해를 보았는가. 

원전 재개까지 1천억 원의 손실을 보고, 그리고 471명의 공론화 위원회에 4십 수억 원의 헛돈이 들어갔다. 

그 돈은 누가 내는가. 

실험의 당사자 개인이 내느냐, 아니면 소속한 여당의원 개개인이 내느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내가 어떤 실험을 하고, 그 실험의 결과 어떤 재앙을 만나든 나에겐 책임이 없다. 

그것이 대통령이고, 정치인이고,  그리고 권력 실세들이다. 

그 돈은 국민인 내가 내야 하는 것으로, 아닌 밤중에 벼락 맞는 꼴이다. 

맹자 말대로 완전히 후필재앙이다. 


최저임금 몇 천원 올리느냐로 온 국민이 촉각을 세우는데, 그들에겐 몇 천원이며, 몇 십억 원은 돈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 「국민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국민은 선거 때 외는 「실체」가 없다. 

실감(實感)이 가지 않는 존재이다. 

그래서 함부로 국민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다.


실험실의 모르모트는 오직 실험의 대상일 뿐이다. 

실험이 잘못 되었다고 모르모트가 말하는가. 


대통령의 안보특보는 「동맹을 파기하는 일이 있어도 평화는 지켜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런 안보특보가 정녕 대통령을 보좌할 수 있는가. 

안보가 실험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그런데 그 특보는 안보를 실험하려고 한다. 


우리에게 동맹은 곧 평화이다. 

적어도 우리에겐 동맹과 평화는 같은 말이다. 

동맹이 깨지면 자동적으로 평화도 깨진다. 


그 생명의 동아줄인 「동맹」에는 그 어떤 논리 어떤 수사학으로도  「파기」라는 말을 함께 쓸 수가 없다. 

그런데 특보라는 사람이 태연히 그렇게 말하고,  다른 동료들도 아무렇지도 않은 양, 태연히 받아들이고 있다. 


안보에 관한 한, 그래도 前정권이 지금 정권보다는 훨씬  더 국민의 마음을 안심시켰다. 


그럼에도 현 정권의 정무수석이라는 사람이 한 신문(중앙일보 10월 20일)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시기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닌 문제인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고 안심이 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안보를 말하면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고 하는데도,  

밑에 보좌하는 사람들은 현실과 전혀 다른 인식을 하고 있다. 


청와대의 정책실장으로 있는 사람이 삼성(三星)을 이  나라의 「원흉」이라고 책에도 쓰고 주장도 하고 있다 

이 사람은 원흉(元兇)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썼는지 알 수가 없다, 

원흉은 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의 우두머리이다. 


삼성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못된 짓을 하고 있고, 또한 삼성은 우리나라 기업들을 대표하고 있으니,

우리 기업들은 모두 이같이 못된 짓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얼마 전 미국 포브스지에서 지난 일백년  동안 아시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혁신기업으로 어떻게  삼성을 선정했는가. 

삼성 다음이 일본의 자존심인 도요타이고, 그 다음이 소니, 그리고 네 번째가 인도의 국책은행이고, 

다섯 번째로 중국의 알리바바를 꼽고 있다. 

어째서 그 사람들은 청와대의 정책실장과 그렇게도 차이가 나는가. 


부끄러워 차마도 하기 힘든 말이지만, 교육부 장관이란 사람이 지난 번 청문회에서 한 “그때는 표절이 관행이었다”는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청문회에서 보면, 아, 그러그러한 수준의 사람들이 장관이 되고, 대법원장이며, 헌법재판소 소장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지만, 적어도 「교수」였다는 사람은 달라야 한다. 

배우는 학생이 있고, 평생 연계를 갖는 제자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교수가 「표절(剽竊)」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고 쓰고 있다면, 그거야말로 학생들에게나 제자들에게  너무 수치스럽지 않는가. 

표절의 표(剽)는 훔치는 표자이고,  표절의 절(竊)은 도적질하다의 절 자이다.


「훔치고 도적질 하는 일」이 대학에서나 학계에서 어느 시대이고, 어찌 관행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런 일은 옛날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그런데 있다고 말한다면, 너무 낯 두껍고(후안厚顔),  너무 부끄럽고 창피함을 모르고(무치無恥)있는 것이 아닌가. 


이 정부는 입만 열면, 적폐청산을 내건다. 

조선(朝鮮)이 어떻게 망하던가, 적폐정산을 하다 망했다. 

적폐(積弊)만 아니고, 숙폐(宿弊), 구폐(舊弊)까지 모두 내 걸었다. 


쌓인 폐단(적폐) 묵은 폐단(숙폐) 옛날 폐단(구폐) 일소를 부르짖다가 나중에는 망할 힘도 없어 외국인이 와서 망하게 했다. 

율곡(栗谷)의 직간에도 양견구폐(量蠲舊弊·구폐를 헤아려 폐지한다)라는 말이 자주 자주 나온다. 

적폐든 숙폐든 구폐이든 지난 날의 잘못된 것이고, 지난 날의 것은 지금 절대로 일소되지 않는다. 

일소든 청산이든 하려고 하면, 과거와의 싸움이 된다. 


과거의 잘못을 새로운 시대의 자산으로 삼는 정권은 성공해서 미래를 열지만, 그것을 청산하려고 하는 정부나 정권은 반드시 실패한다.  

왜냐하면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소득 주도로 하는 성장 또한 실험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그것으로 성장을 일으켜 본 예가 없기 때문이다. 


공무원 수를 늘려 일자리 만드는 나라치고 망하지 않는 나라가 있었던가. 

이 모두 철저히 국민을 우롱하는 실험들이다. 


前 정권이 「정권을 우롱(愚弄)」했다면, 지금 이 정권은 「국민을 우롱(愚弄)」하고 있다. 

앞으로도 「국민 우롱」은 더 계속될 것이다. 


 그것이 아마추어 정권의 실체이다. 


노무현 정부가 철부지 정권이듯이, 이 정부는 그야말로 「풋내기 정권」이라고 생각된다.

 

풋내기 정권: 「정권 우롱」의 前정부와 「국민 우롱」의 現정부삼성이 우리나라의 원흉이라고? 철부지같은 소리하는 정권2018-06-01
편집국 whytimespen1@gmail.com

 
 
 

소망        
         최송연/詩  

캄캄한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별 한 개를 줍습니다.

폭풍이 휘몰아치는 바다에서
따뜻한 등대의 불빛을 찾습니다.

바싹 메마른 사막에서
새빨간 선인장 꽃 한송이 피워냅니다.

십자가 위에서 흐르는 그리스도의 피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줍니다.

소망은
손으로 만지는 것 아니고
눈으로 보는 것 아니며
귀에 들리는 소리도 아닙니다.

그는
고난의 밤과 흑암의 저 너머에
언제나 새날과 새 아침이 있음을
굳게 믿는 이들에게
미소로 찾아와 주는 천사입니다.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왕께 바치는 내 노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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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는 우리가 그 미디어에 부여하는 것 이외에는 윤리적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다. 소셜미디어는 그저 도구에 불과하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도구이다. 그리고 우리는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다.

 
소셜미디어가 잘 사용된다면 그것은 서로 서로를 연결해 주고, 정보도 제공하고, 즐겁게 해 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 사용되면, 너무 자주 그렇듯이, 우리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하루를 망치기도 하고, 심하게는 인생을 파멸시킬 수도 있다.
 
크리스천이라고 소셜미디어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실수로 말미암아 복음의 근거를 해칠 수 있다. 예수님의 메시지를 전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조차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크리스천들이 공통적으로 일으키는 실수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에 좋은 의도로 한 것이지만, 좋은 의도라고 모든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1. 입증되지 않은 사실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이라고 자막을 추가하게 하는 특정 메시지를 전하는 그림, 사진, 또는 짧은 영상이나 링크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퍼 나르지 않기를 바란다.
 
만약 당신이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지 않아야 한다. 전달하지 말고 그냥 지나쳐 버리라. 크리스천은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져야 하는데, 슬프게도 그것이 우리들에 대한 평판은 아닌 것 같다. 이것은 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입증되지 않은 사실을 전달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2. 우쭐거림과 비난
 
종종 청개구리가 차를 홀짝거리며 마시는 사진 위에 쓰여진 밈(meme)들을 보았을 것이다. 그것들을 그냥 내버려 두라. 마지막 부분에 “그러나 그것은 나와는 아무 상관 없어요”라고 끝나는 밈들은 아무도 설득하지 못한다. 포스터에 나타나는 우쭐거림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3. 들춰내기
 
“무신론자 교수는 자신이 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크리스천 학생이 이것을 말하기 전까지는” 같은 식으로 태그되어 있는 비디오들. 그러한 것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한다.
 
4. 나는 옳다, 당신은 틀렸다.
 
크리스천들이 불신자들에게 어리석다고 느끼게 한다고 해서 그들이 예수님께 오지 않는다. 논쟁과 토론할 수 있는 장소들이 있다. 그러나 소셜미디어는 결코 그러한 곳은 아니다.
 
5. 예수는 나의 정치적 견해에 동의한다.
 
개인적으로 정치적인 견해가 다르지만 좋은 크리스천들을 많이 알고 있다. 또한 정치적 견해가 다른 쪽에 있는 선량한 크리스천이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고 여기는 선량한 크리스천들도 많이 알고 있다.
 
당신이 싫어하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크리스천들을 상상할 수 없다면 그렇게 투표한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볼 것을 권한다. 그들에게 고함치기보다는 잠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우리 모두 무엇인가 배울 수 있을 것이다.
 
6. 하나님이 당신을 지옥으로 보내실 거야
 
당신이 지옥이 실제라고 믿는다면, 그것에 대한 비통함을 느끼는 것 이외에는 어떤 것도 있어서는 안 된다. 영원한 장소에 대한 비난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불신자들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며, 무례하고, 도움도 되지 않는다.
 
7. 그냥 말하는 건데...
 
크리스천들이 자주 사용하는 영특한 표현인 “그냥 말하는 건데”라는 식으로 말하고 싶은 유혹이 있을 때, 그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8. 상업적인 도용
 
새로운 제품, 앱 또는 영화가 나올 때마다 그것들에 “하나님” “ 순수” 또는 “믿음” 이라는 크리스천 키워드를 자막으로 사용하여 엉성한 모조품을 가지고 나오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다음 주 설교 시리즈로 최근 코미디 영화의 예술작품을 등에 업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따라하고 싶은 오리지널을 창조하는 힘들지만 필요한 작업을 하도록 하자.
 
9. 당신의 죄는 나의 죄보다 심하다
 
죄는 실제이다. 이것은 처절하게 파괴적이다. 죄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우리가 할리우드나 워싱턴의 죄에 대해서 계속해서 큰 소리를 내기 이전에 우리 자신의 행동은 얼마나 깨끗한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 좀 더 분주해야 할 필요가 있다.
 
<Christianiy Today에서 발췌>

미국에게 발각된 시리아 내 북한군 비밀 지하기지

     

풍계리 폭격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박재권

 

  요즘 들어 이스라엘은 당장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형국인 듯하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북한의 핵을 신속히 제거해야 할 처지가 된 것 같다는 말이다.(소문에 의하면 이미 모사드가 여기저기 다니며 핵 시설과 탄두를 다 파괴하고 폐기했다는 다소 황당한 설도 있기는 하다. 전에 풍계리, 길주 등에서 일어난 인공지진 등이 이를 추측 가능케 하기도 한다.)

  

  현재 북한에 대해서 유심히 살펴보아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북한이 지금까지 그토록 핵무기개발에 온 힘을 다해 정성을 쏟은 마당에 갑자기 핵을 포기 하겠다고 했다는데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마라톤으로 따지면 결승점이 코앞인데 더 이상 뛰는 것을 포기 한다는 것과 같은 대단히 비상식적 일이 아닐 수 없다.

 

 

풍계리 폭격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북한 인공지진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그러므로 순진하고 단순한 사람들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지 몰라도 그들의 이중성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그리고 비핵화 하겠다는 북한의 말을 그들이 직접 한 것이 아니라 제 삼자인 대한민국의 대북특사단이 미국에 가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 말이다.

 그런데 더 의아한 것은 그 말을 트럼프 대통령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두 말하지 않고 덥석 받아들였다는 것이다.(여기에는 미국측의 고도의  덫이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 북한의 공식적인 답이 없는 상황은 매우 이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비핵화”라는 말을 대한민국정부가 만들어낸 말인지, 북한의 진심인지는 아직까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선언의 진의를 떠나서 핵을 보유했다고 하는 북한과 “비핵화 선언” 소식을 대신 전한 대한민국은 이 선언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함으로 매우 엄중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북한이 진심으로 북한에 있는 핵을 들어내겠다고 했다면, 모르면 몰라도 분명히 그들에게는 또 다른 꼼수가 숨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실재로 북한 핵시설을 다 들어낸다고 해도 다른 대안이 있다면 미국 사찰 팀에게 모든 것을 다 보여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들은 핵무기 개발시설을 북한이 아닌 제 3국에 만들어 해외에서 생산을 하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는 것이다.

 

즉 북한이 핵무기를 자국이 아닌 해외에서 생산한다는 논리인데, 그 곳은 현재로서는 시리아가 가장 1순위로 꼽을 수 있는 나라다. 북한이 이미 생화학 무기를 생산하는데 있어서 깊이 관여한 시리아에서 핵무기를 생산할 수만 있다면, 미국에게 북한 내 핵시설을 모두 다 보여 주고 폐쇄시킬 수 있으며, 그 조건으로 대북제재 해제와 미군철수 등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부수적으로 해외에서 비밀리에 생산한 핵무기를 거액을 받고 시리아는 물론 이란에도 공급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만에 하나 실재로 그렇게 된다면 이것은 대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철천지원수인 이란과 시리아가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면 이스라엘은 매우 위험해 질 수밖에 없다.

 

북한 시리아 지하 핵시설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그래서 오늘, 내일 그저 미국의 북폭만을 학수 고대하고 기다리다가 늦어질 것 같으면 이스라엘이 먼저 나설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도 있다.

 

그런데 정보에 관한한 세계 어느나라에게도 뒤지지 않는 미국이 이미 이러한 상황을 간파하고 감시에 들어 간 듯하다.

 

언론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북한군이 시리아에서 대규모 비밀 지하기지를 운영한다는 정황을 포착, 감시 중이라고 미국의 우파매체 ‘프리비컨’이 보도했다.”고 한다.

 

“美‘프리비컨’은 지난 14일(현지시간) 중동 지역 언론을 인용해 ‘美정부는 북한군이 시리아에서 대규모 지하 비밀기지를 만들어 놓고, 이곳에서 핵무기 개발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신무기 개발을 하고 있다는 정황을 포착해 현재 추적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북한군은 알 아사드 대통령의 고향인 시리아 콰르다하 인근에 비밀 지하기지 건설을 끝내고 운영 중이라는 첩보가 계속 나오고 있다고 한다. 美‘프리비컨’은 시리아 뉴스 포털인 ‘자만 알 와슬’이 지난 3월 초순 보도한 내용도 소개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북한군의 시리아 비밀기지는 2011년 3월 착공에 들어가 7년 동안 건설했으며, 이 지역에 대한 시리아 정부군의 경비 수준이 삼엄하고 비밀 수준이 높아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시설 또는 북한군 무기 생산시설로 추정된다고 적었다고 한다.

 

‘자만 알 와슬’은 또한 ‘(북한군의 비밀 지하기지는 콰르다하 지역의 깊은 골짜기에다 7년 동안 지었으며, 긴 터널 공사를 할 때는 북한 전문가가 감독을 맡았다,’고 전했다고 한다.

 

美‘프리비컨’은 ‘의심 지역을 촬영한 위성사진으로 볼 수 있는 북한군 비밀 지하기지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며 ‘시리아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지역의 북한군 비밀 지하기지는 그 규모가 매우 크고 산 속에 위치하고 있어서 단순한 화학무기 공장 및 저장고가 아니라 핵무기 개발 시설일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美‘프리비컨’은 ‘북한이 알 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생산시설에 도움을 주고 있으며 관련 부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美정부 관계자의 말을 들었다’면서 美국무부 관계자 또한 ‘시리아의 화학무기 생산능력을 회복하기 위해 북한이 알 아사드 정권을 돕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美‘프리비컨’은 또한 시리아에 새로 지은 북한군 비밀 지하기지가 이란과의 무기개발 협력에 사용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美‘프리비컨’은 ‘트럼프 정부는 북한과 이란, 시리아 간의 무기개발 협력을 끊으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고, 동맹국들에게도 이런 노력에 가세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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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시리아 지하 핵시설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처럼 시리아 뉴스포털 보도가 사실일 경우 북한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시리아에서도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에 엄청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이러한 문재를 한가롭게만 바라 볼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다급한 입장에 처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난날 이스라엘 모사드는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이 살아 있을 때 그를 제거하려고 한 바 있다. 또한 전 세계 유태인들이 김정일에 대해서 기소하기도 했으며, 결국에는 김정일이 죽었는데 그가 누구에 의해서 죽었는지 아니면 자연사 했는지 그 당국자들이 아니면 아무도 모른다.

 

이렇듯 모사드의 작전은 언제든지 엄청난 파장을 불러 올 수 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을 빼면 많은 부분 의미가 없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 조차도 이스라엘을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좀 독특한 존재, 즉 독특한 민족 정도로만 알고 있어서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

 

비록 지금은 잠시 넘어져 있는 이스라엘은 사람들이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 편에서는 간단한 나라가 아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예루살렘을 지키시고, 결국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회복 시키실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났으며 베냐민 지파라.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느니라. 너희는 성경이 엘리야에 관하여 말한 것을 모르느냐? 그가 하나님께 이스라엘에 대하여 중보하여 말씀드리기를,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홀로 남았는데 그들이 나의 생명을 찾고 있나이다.”하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의 형상에 무릎을 꿇지 아니한 칠천 명을 남겨 두었노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의 선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1~5)

'타이타닉호의 이등 항해사 찰스·래히틀러가  공개한 침몰 뒤에 감춰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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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를 통해 잭과 로즈의 러브스토리는 널리 알려졌지만, 그 외 타이타닉호에 대해 더 알고 계신 것이 있습니까? 과연 그날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1912년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부닥쳐 침몰하는 과정은 영화로 재연됐습니다. 하지만 영화만으로 실제 상황을 다 알기는 어렵습니다. 당시 생존자인 부선장은 오랜 세월 침묵 끝에 드디어 사고 당시의 이야기를 공개했습니다.

1912년 4월 14일은 공포의 날이었습니다. 사고로 1,514명이 사망했고 710명이 구조되었습니다. 사고 당시 38세였던 타이타닉호의 이등 항해사 찰스·래히틀러 씨는 구조된 승객을 책임지기 위해 선원 중 유일하게 구조된 승무원이었습니다.

아래는 찰스·래히틀러 씨의 타이타닉호 참사의 자세한 사정을 담은 17페이지 분량의 회고록입니다.

선장은 침몰을 앞두고 여성과 아이를 먼저 구조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많은 여성승객들이 가족과의 이별 대신 남아있기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높은 소리로 ‘여성과 아이들은 이리 오세요!’라고 불렀지만, 가족을 버리고 혼자 구명보트에 오르려는 여성과 아이는 몇 명 없었습니다.
래히틀러는 ‘살아 있는 동안 그 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첫 구명보트가 바다로 내려가고, 저는 갑판 위에 한 여성에게 말했습니다. “부인, 어서 구명보트에 오르세요!”
그녀는 뜻밖에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아니요, 저는 배에 남겠어요.”
이 말을 들은 여성의 남편이 “그러지말고 어서 타세요! 여보!”라고 말하자, 여성은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습니다 “혼자 가지 않겠어요. 당신과 함께 이 배에 남을거에요.”

그것이 제가 본 그 부부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애스터 IV(당시 세계 최고 부자) 씨는 임신 5개월 된 아내를 구명보트에 태워 보내며 갑판 위에 앉아, 한 손에는 강아지를 안고 다른 한 손에는 시가 한 대를 피우면서 멀리 가는 보트를 향해 외쳤습니다. ‘사랑해요 여보!’
승객들을 대피시키던 선원 한 명이 애스터 씨에게 보트에 타라고 하자, 애스터 씨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사람이 최소한 양심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남은 한 자리를 곁에 있던 한 아일랜드 여성에게 양보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배의 파편들에 의해 찢겨진 애스터 씨의 시신을 생존자 수색 중이던 승무원이 발견했습니다.
그는 타아타닉호 10대도 만들 수 있는 자산을 가진 부호였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거절했습니다.
자신의 목숨으로 양심을 지킨 위대한 사나이의 유일한 선택이었습니다.

성공한 은행가였던 구겐하임 씨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에도 화려한 이브닝드레스로 갈아 입으며 이처럼 말했습니다. “죽더라도 체통을 지키고 신사처럼 죽겠습니다.”

구겐하임 씨가 아내에게 남긴 쪽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었습니다
“이 배에는 나의 이기심으로 구조받지 못하고 죽어간 여성은 없을 것이오. 나는 금수만도 못한 삶을 살 바에야 신사답게 죽을 것이오.”

미국 메이시(Macy’s)백화점 창업자 슈트라우스 씨는 세계 2번째 부자였습니다. 그가 어떤 말로 설득해도 아내 로잘리 씨를 구명보트에 태우지 못했습니다. 아내 로잘리 씨는 “당신이 가는 곳에 항상 함께 갔어요. 세상 어디든지 당신과 함께 갈 거예요”라며 남편을 두고 배에 오르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8번 구명보트의 책임 선원이 67세의 슈트라우스에게 “누구도 어르신이 보트를 타는 것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구명정 탑승을 권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슈트라우스 씨는 단호한 말투로 “다른 남성들보다 먼저 보트에 타라는 제의는 거절하겠습니다”라며 생사의 순간에도 초연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63세의 아내 로잘리 씨의 팔을 잡고 천천히 갑판 위의 의자에 앉아 최후의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현재 뉴욕 브롱크스에 슈트라우스 부부를 기리는 기념비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습니다.
‘바닷물로 침몰시킬 수 없었던 사랑.’

프랑스 상인 와트열 씨는 두 아이를 보트에 탄 여인들에게 부탁하고 배 위에 남아 아이들과 작별했습니다.
두 아들은 이렇게 구조되었고 세계 각지의 신문사들이 어머니를 찾을 수 있도록 연달아 사진을 실어주어 어머니와는 재회할 수 있었지만, 배에 남겨진 아버지와는 다시는 볼 수 없었습니다.

남편과 미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난 리더파스는 남편을 꼭 껴안고 혼자 살아남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남편은 주먹으로 그녀를 기절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미 바다 위에 떠 있는 구명보트 안이었습니다.
그녀는 평생 재가하지 않았으며 남편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리스 로잔의 생존자모임에서 스미스 부인이 자신에게 자리를 양보한 여성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시 제 두 아이가 구명보트에 오르자, 만석이 돼서 제 자리는 없었습니다. 이때 한 여성분이 일어나서 저를 구명보트로 끌어당기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올라오세요. 아이들은 엄마가 필요합니다!”
그 대단한 여성은 이름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위해 ‘이름없는 어머니’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희생자 중에는 억만장자 아스테드, 저명 신문가 헴스테드, 육군 소령 바트, 저명 엔지니어 루오부어 등 사회의 저명인사가 많았지만, 이들 모두 곁에 있던 가난한 농촌 부녀들에게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타이타닉호의 주요 승무원 50여 명 중 구조를 책임졌던 이등 항해사 래히틀러 외 전부 자리를 양보하고 배와 함께 생을 마감했습니다.

새벽 2시, 각자 도망가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1번 연산사 존·필립스는 여전히 전산실에 앉아 마지막 순간까지 ‘SOS’를 입력하며 자신의 보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선미가 물에 가라앉기 시작했을 때, 삶과 죽음의 마지막 순간, 사람들이 서로에게 외쳤습니다.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그날, 우리 모두 위대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줬습니다. 제가 당신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습니다. 일본 철도원 차장인 호소 노텍스트 씨는 여장을 한 채 여성과 어린이들로 채워진 10번 구명보트에 올랐습니다. 그는 귀국 후 바로 퇴직당했습니다. 모든 일본 신문사와 여론은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했으며 그는 십여 년 뒤 후회와 수치로 가득 찬 삶을 마감했습니다.

1912년 타이타닉호를 기리는 자리에서 타이타닉호를 건조한 선박회사 White Star Line는 희생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성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해상 규칙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들의 행동은 약자들에 대한 배려이자, 그들의 개인적인 선택이었습니다.”

‘Unsinkable’의 저자 다니엘 알란 버틀러는 약자를 살리기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기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태어나서부터 책임감이 가장 중요하다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삶 앞에서 모두 평등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놓치고 혼자 남겨져 돈과 유산으로 외롭게 살아가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죽음 혹은 삶의 어떤 고난과 마주친다 해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절대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고전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고전13: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고전13: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고전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https://youtu.be/A17YXyqt3os

여전히 기억할 사람


찬송 : 439장 십자가로 가까히

성경 : 신명기 34:4~8

요절 : 뱃브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6)


오늘은 '현충일'입니다 국난(國難)의 위기에서 조국을 지키다가 고귀한 목숨을 바친 순국

선열의 희생을 기리는 날입니다. 국립서울현충원에 가면 '위해 봉안관'이라는 곳이 있습

니다. 말 그대로 위패만 봉안되어 있습니다.


6.25전쟁, 월남 전쟁 등에서 전사하거나 순직한 사실이 확인되었지만 유골 또는 시신을

찾지 못한 경우, 그리고 사망 당시 안장 대상이 이니었다가 법령 개정으로 당사자기 되었

지만 유골이나 시신이 없는 이들의 위(位)가 새겨져 있습니다.


또 이곳 지하에는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을 통해 발굴한 무명용사들도 안치되어 있습니다.

비록 유해 발굴했다고 해도 누군지 알 수 없는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공간입니단. 만약

모세가 우리나라 국립현충원에 묻힌다면 우패 봉안관에 모셔질 것 같습니다.


모세는 80세에 하나님께 부름 받은 이후 40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었습니다.그러나

민족의 지도자였음에도 성경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6)고 기록하고 있습

니다.비록 모세의 묘지는 지금도 찾을 수 없지만, 그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모범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화려하게 꾸며진 묘소보다 더 중요한 것

은 '그가 어떻게 살았는가'하는 점입니다. 비록 위패만 봉안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분의 희

생은 참으로 고귀합니다. 모세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의 모지는 찾을 수는 없어도 모세는 사명을 좇아 살다간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

다. 사명감은 참 중요합니다. 순국선열들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사명감에 기꺼히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희생했던 것입니다. 모세의 마지막 삶도 그랬습니다.


사명을 따라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가 주어진 사명에 충성할 수 있도

록 지켜 주셨습니다.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7)


모세가 120세에 죽었는데, 병들거나 기진(氣盡)하여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죽는 순간

에도 눈빛이 흐리지 않았고, 기력도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사명을 다한 죽음입

니다.


사명이 끝나자, 이 땅에서의 생명도 마무리되었습니다. 우리도 순국선열들처럼, 또 모세

가 그랬던 것처럼 사명에 충실하게 임하다가 하늘로 돌아가는 순전(純全)한 인생들이 되

었으면 좋겠습니다.


* 내가 받은 하늘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오늘 그 사명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기도

하나님, 우리나라와 민족을 여기까지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사명을 다한 순국선열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그 희생의 터 위에 세워진 우리

나라에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도 사명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김교석 목사  덕교교회 

 

노페트하크마 01-(6) 하나님의 경륜을 밝혀주는 성경

[ 6 ] 하나님의 경륜을 밝혀주는 성경(경륜과 섭리)

성경은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을 사람들에게 밝혀주는 생명의 책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말의 뜻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뜻은 사람들의 간구로 변경되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간구로 인하여 변경될 수도 있는 하나님의 계획을 말하는 것입니다.
(엡 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엡 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을 밝혀주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기록된 성경 말씀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민 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민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하나님의 경륜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하나님의 경륜의 대표적인 예 ---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그러므로 우리들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성도들이지 종교인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을 통하여 이해하고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도들이 기도를 할 때에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고 응답하여 주시거나,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정적인 섭리의 예 --- 열상 18:44 – 엘리야의 7번 기도의 응답 손만한 작은 구름
*하나님의 부정적인 섭리의 예 --- 창 18:32 – 아브라함의 6번 기도와 의인 10명이 없어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

 

 

출처: USA 아멘넷 자게판/복된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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