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찾아 북에서 남으로 이사온 여인 강은정 자매 배불리 먹고 사는 꿈 자유롭게 사는 꿈 그 꿈을 그리며 넘어온 남쪽 땅에서 그녀는 복음을 만났습니다. 가족 모두를 자유의 땅으로 부르셨을 때에 감사! 출처: GOODTV 기독교복음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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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은 은혜의 땅 38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정말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천사의 말을 따라 산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 

지금까지 쌓아온 재력과 경력, 사회적인 지위, 완전히 정착된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과연 산 속으로 홀연히 떠날 수 있었을까.

예수님께서는 이런 상황에서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명령하신다.

두 천사의 손에 억지로 이끌려 성 밖으로 나온 롯의 가족은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천사의 명령을 받고 소알성을 향해 산을 올랐다. 

여호와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성에 유황과 불을 비같이 퍼부으셨다. 

생명이 있는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유황불에 타버렸다. 

롯의 아내는 두고 온 소돔성에 대한 미련과 궁금함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천사가 절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건만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 소돔성을 바라보았고 그 순간 소금기둥으로 변했다.

축복과 재앙은 어찌 보면 종이 한 장 차이와 같다.

롯의 가족은 아브라함의 간구로 인해 소돔성에서 유황불에 의해 멸망하는 것을 면하는 특혜를 부여받았지만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는 운명이 되었다. 

그리고 롯의 두 딸은 아버지 롯과 근친상간의 죄를 범하며 자식을 낳아서 후세에 모압과 암몬 족속의 근간이 되었다. 

모압과 암몬 족속은 그 이후 이스라엘과 대립하고 우상을 숭배하여 버림받은 이방 족속의 대명사처럼 쓰이게 되었다.

피닉스로 이주한 후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족에게 넘치는 은혜를 부어주셨다. 

우선 물질적인 부를 넘치게 허락하셨다. 

먹을 것이 없이 근근이 생활하던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도무지 상상도 못했던 부를 허락해주신 것이다. 

한동안 내가 소유하게 된 부를 가지고 그저 평안하게 남은 여생을 살아야겠다는 그런 안락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피닉스로 이주해서 영적으로 완전히 침체된 시기를 지나면서 가졌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물질을 허락해 주셨는지 그 이유를 확실 하게 깨닫게 됐다. 

물질은 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여질 때 비로소 물질의 가치가 드러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교도소 선교의 비전을 위해 물질을 사용하기 원한다. 

재소자들의 가족이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일이 없어지고, 재소자들도 출소 후에 가정과 사회로 돌아가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더욱 구체적으로 깨닫게 되길 원한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모든 인자함을 한순간에 잃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뒤를 돌아보지 않으리라고. 

뒤에 두고 온 쓰레기 같았던 일들, 즉 명예욕, 교단 정치, 세상 향락, 도박과 같 은 일들에 한 치의 미련도 두지 않으리라. 

뒤를 돌아보자 않는 한 주의 인자하심은 영원할 것이다.

피닉스로 이주한 뒤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부부 사이를 완전히 회복시켜 주셨다. 

지난 18년은 우리 부부에게 인고의 시간이었다. 

길고 긴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서로에게 깊은 마음의 상처를 주면서 정죄하던 고난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마음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이 허락해주신 내 아내를 사랑하게 되었다. 

마음 가운데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온전히 세워주실 것이라는 오기에 가까운 믿음이 있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무려 18년 만에 나의 이런 마음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다. 

부부관계에서는 오래 참고 인내하는 것이 어쩌면 갈등의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날 쉽게 가정을 깨고 있는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게 기다림의 미학을 전하고 싶다. 

하나님을 믿고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당신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 든 것을 회복시켜 주신다는 믿음.

만약 그 믿음만 붙들고 끝까지 기다릴 수 있다면 믿는 자들의 가정이 그렇게 쉽게 갈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도전을 던져주고 싶다.

이제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생명을 허락하신 의미를 찾게 되었다. 

그것은 내 가정이 회복되고 물질적인 복을 받게 된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큰 복이다. 

삶의 의미를 찾게 된 것은 이제 남은 여생을 살 수 있는 동기를 부여받은 셈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 음을 빼앗기며 살았던 시간은 지난 시간으로 충분하다. 

앞으로는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영원한 가치를 따라서 살리라. 

삶은 의미가 있다. 

인생은 가치가 있다. 

오직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거룩하신 뜻을 좇아 살려고 다짐할 때 이 모든 의미와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다. 

마음 속에 또 다른 갈등과 번민의 순간이 다가올 때 나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리라.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소금덩이로 바꾸는 그런 미련함을 다시는 범하지 않으리라'하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

 

출처: 김동욱 500/김태훈 목사

사막은 은혜의 땅 37

그래서 오랜 기간 동안 사막을 생명이 없는 광야로만 생각하고 따분하고 무의미 한, 그리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변화된 삶을 살기로 결단했다. 무익한 종이었던 오네시모가 바울을 만나 그의 가르침으로 유익한 종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나는 이 시대의 오네시모가 되기 원한다.

 

"자기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히 13:3).

 

오네시모의 심정을 품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히브리서의 말씀을 주셨다. 그 말씀을 통해 교도소 사역에 임하는 나의 자세를 돌아보게 하셨다. 재소자들을 우리와 다르게 생각하면 안 된다. 재소자들도 따지고 보면 모두가 사회적 환경, 인류의 원죄로 인한 희생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갇힌 자들을 대할 때 '나 스스로도 갇힌 자라는 생각으로 그들을 생각하라'는 히브리서 기자의 말씀은 교도소 사역에 임하는 가장 마땅한 사역 자세라고 믿는다. 미국의 크리스천들은 그래도 긍흘과 자비 사역, 교도소 사역 등에 더욱 체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편이다. 크고 작은 도시들마다 교회들에 의해 노숙자들을 위한 급식소가 운영되고 있고, Prison Fellowship Ministry와 같은 조직적인 교도소 선교 단체들이 오래 전부터 크리스천의 사랑과 은혜를 나누는 기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에서도 많은 기독교 단체와 교회에서 갇힌 자들과 소외된 자들을 대상으로 한 구제 사역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구제 사역을 통한 열매들을 많이 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사회적인 인식면에서도 한국은 소외된 계층에 대한 배려가 상당히 낮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재소자들의 경우 그 가족이 또한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한국과 같은 문화권에서는 재소자들의 자녀들까지 동일하게 취급되어 학교나 이웃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은 소리 없는 억눌림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효과적인 교도소 사역은 재소자와 재소자 가족을 동시에 포용할 수 있는 사역이 되어야 한다. 가족이 있는 재소자가 복역 기간을 마치고 다시 사회에 돌아와 재적응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대개 가족들과의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통계에 의하면 재소자가 교도소에 있는 동안 가족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했던 재소자들은 대부분 형기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가 다시 재범을 일으키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가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면회를 오는 사람이 없어서 가족들과 완전히 단절되었던 재소자들은 70% 이상이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로 돌아온다고 한다. 그래서 교도소 사역의 핵심은 가족 관계의 회복이라는 또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다. 가족 관계가 정상적으로 회복될 때 교도소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같은 범죄를 또 범하는 우를 반복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교도소 선교단체 중에는 성탄절에 재소자들의 자녀에게 장난감을 선물해 주는 Angel Tree라는 프로그램을 오래 전부터 운영해서 교도소에 갇혀 있는 재소자와 자녀의 관계를 회복시키는데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작은 선물이지만 성탄절과 같은 명절에 교도소 안에 있는 부모의 이름으로 선물을 받게 되는 아이들은 이 작은 선물로 큰 위로를 받고 부모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는 것이다. 재소자들의 자녀들은 알게 모르게 부모들에게 버림받았다는 느낌과 어려움에 처한 가족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잘못된 길로 빠지기 쉽다. 그렇기 때 문에 이런 작은 선물을 통해서라도 아이의 마음 깊은 곳에 새겨져 있는 상처들을 감싸 주고 치료해 주는 사랑의 정성이 필 요한 것이다.

 

목적이 없이 사는 삶은 공허한 삶, 의미 없는 삶이 될 수밖에 없다. 생명도 그 자체는 의미가 없다. 부와 재산도 결국은 헛것이다. 가진 것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자신의 재산이 컴퓨터 재벌 빌 게이츠의 재산이나 또는 성경에 기록된 솔로몬 왕의 부를 능가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러나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부를 소유했던 솔로몬 왕도 삶의 종말에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라는 절규에 가까운 메시지를 후세에 남겼다.

 

"롯의 처를 생각하라."

 

예수님의 이 메시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신앙인들에게 큰 도전을 던져 준다. 롯의 가족이 살고 있던 곳은 소돔과 고모라 땅이었다. 그 당시 가장 문화가 발전되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던 곳이었다. 사람 들이 많이 모이다 보니 조금만 장사 수단이 좋은 사람이면 단기간에 큰 재산을 모을 수 있는 곳이었고, 재산을 쌓은 사람들 은 그 재산으로 온갖 향락을 누렸던 곳이 었다. 소돔과 고모라는 컴퓨터와 비싼 자동차들만 없을 뿐이지, 아마도 오늘날 향락과 섹스 문화에 흥청거리는 헐리우드 거리와 흡사한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롯은 목축업자였다. 아브라함과 분가하면서 많은 가축들을 받아서 소와 염소, 양들을 그 지역에서 가장 많이 가지고 있었던 소돔 땅의 유지였다. 좋은 고기를 사먹기 위해 비싼 돈을 서슴지 않고 쓰는 소돔 사람들로 인해 롯은 단기간 안에 큰돈을 만지게 되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는 이제 롯의 가족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정치판에 관심이 많았던 롯은 슬슬 그 지역의 유지로서 법관으로, 정치가로 진출을 모색하고 있던 중이었다. 롯의 장성한 두 딸은 이미 약혼을 하고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으며 누가 보더라도 롯의 가족은 아쉬운 것이 하나도 없는 가장 행복한 삶을 누리며 살고 있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알리기 위해 두 천사가 롯의 집을 방문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결혼 잔치를 앞두고 집안이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을 때, 재력가로 성장한 롯이 법관으로 정치 입문을 생각하고 있을 때, 소돔성 내에서 롯의 가정이 가장 행복한 가정으로 알려지고 있을 때, 바로 그때 두 천사가 롯을 찾아왔다. 그리고 하룻밤 사이에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어버리고 소돔성을 떠나라는 전갈을 전했던 것이다. 롯과 그 아내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그들은 천사의 말을 듣 고 떠나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무척 망설였을 것이다. 결코 쉽게 발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창 19:16).

 

롯은 스스로 소돔 땅을 떠날 수 없었다. 그래서 두 천사가 롯 가족들의 손을 잡아끌어서 강제로 성 밖에까지 나가게 했다. 그것은 여호와의 인자하심 덕분이었다.

 

출처: 김동욱 500/김태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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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은 은혜의 땅 36

"형님, 올해 칠순을 넘기시는데 이제는 예수님을 꼭 영접하셨으면 합니다. 성경 말씀에 보면 모든 사람이 태어났다가 반드시 죽게 되는데 죽은 뒤에는 심판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형님이 천국에 들어가게 되시길 바랍니다."

 

전화기 저편에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화기를 내려놓지도 않았다.

 

"형님, 마음 가운데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시고 이제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교회에 출석하시면서 신앙생활을 시 작하시면 좋은 일들이 있을 겁니다."

 

또다시 긴 정적감이 전화기를 통해서 전해졌다.

 

"너 목사된 지 얼마나 됐냐?"

 

"1995년도에 안수 받았으니까 어느덧 10년 된 것 같습니다."

 

"그래, 목사로 일하면서 나를 위해서도 기도했던 적이 있었냐."

 

"물론이죠, 형님."

 

"정말이냐?"

 

"예."

 

"알았다. 한번 교회에 나가보도록 하지."

 

그리고는 늘 하던 것처럼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조금 전에 형님이 자신의 입으로 했던 말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 한번 교회에 나가 보도록 하지."

 

보통 때 같았으면 또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고함부터 지르고 전화를 끊었을 형님인데 생전 처음으로 내 말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다. 나는 울먹이며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둘째 형님이 교회에 나가 보시겠다고 했어. 우리 계속 형님 가족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자고."

마음 속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끓어올랐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주의 종으로 부르셨다. 내가 주의 종이 되기로 결정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다. 나를 주의 종으로 부르신 이는 분명히 하나님이셨다. 그리고 그 분은 당신의 때에 당신의 방법으로 당신이 세우신 사람들을 통해 일을 이뤄 나가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이다. 삼청교육대의 지옥훈련 경험을 하게 하셨던 것도 이제는 왜 그런 끔찍한 일을 겪게 하셨는지 이해가 된다. 삼청교육대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면서 하나님께서는 내게 갇힌 자들을 돌보고 위로하라는 감동을 주셨다. 그동안 관심 없이 그냥 지나쳐 버렸던 부분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안개에 가려져 있던 거대한 산이 바람이 불어 안개가 걷히며 그 위용을 서서히 드러내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성령의 바람은 나의 영혼을 감싸고 있던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안개를   한순간에 몰아내 주었다. 이제는 내가 가야 할 길, 내가 생명을 바쳐 해야 될 장래의 사역들이 환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갇힌 자들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이 제대로 떨어지기만 하면 그보다 더 좋은 토양이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이 땅 위에서 사역을 하시던 동안에도 특별히 옥에 갇히고 억압받는 계층을 위해 많은 관심을 보이셨고 그들을 위한 사역을 많이 하셨다. 예수님의 관심은 세상의 지식을 많이 쌓고 부를 누리고 있는 기득권층에 있지 않았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 애통해 하는 자, 갇힌자, 심령이 가난한 자, 지식이 없는 자들에게 사역의 초점을 맞추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눅 4:18).

 

그런데 교회들은 어떠한가. 가난하고 실력이 없고, 사회적 지위도 낮은 사람들은 철저히 무시당하고 오히려 사회적 지위 가 높고 재력도 단단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도 행세를 하고 있다. 또한 그들이 담임목사의 총애를 받으면서 교회 생활을 즐기는 것이 오늘날 많은 교회들의 모습은 아닐까. 우리는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 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예수님의 원칙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갇힌 자, 병든 자, 연로한 자들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져야 한다. 갇힌 자들에 대한 사역은 기독교인들에게 항상 중요한 사역 중의 하나였다. 4세기 기독교 사학자로서 지금까지 당시 기독교 문화와 관련된 가장 많은 사학적 자료들을 남기고 있는 기독교 역사학자 유세비우스는 당시 기독교인들의 삶에 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교회 내 형제자매들 중에 갇힌 자가 있을 때 주일에 남녀 모든 회중이 이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드리며 찬송을 부르면서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는 성찬식을 먼저 거행했다. 그리고 옥에 있는 형제를 위한 합심기도를 하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왜냐하면 옥에 갇힌 자들은 옷도 제대로 못 입고, 음식도 공급받지 못했다. 그래서 오로지 외부에서 그들을 방문하는 가족, 친척들에 의해 먹을 것을 공급받고 근근이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기독교인들은 그 형제, 자매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것들, 귀한 음식들을 아낌 없이 나누었다."

 

예수의 가르침대로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형제, 자매들을 위해 자신의 것을 열심히 나누는 그런 거룩한 마음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 아름다운 행동들이 있었기에 초대교회 시대 때 사자 굴에 던져지고 산 채로 나무에 매달려 화형을 당하는 감당하기 힘든 환난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교회가 나날이 늘어나고 믿는 자들의 수가 갑절로 계속 늘어나는 강한 생명력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이었다. 오네시모는 무익한 자에서 하나님의 사역에 쓰임받는 유익한 자로 변신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오네시모는 노예로 있던 집에서 물건을 홈쳐 도망했다가 로마의 옥에 갇혀 있는 동안 사도 사울을 만났다. 그 후 오네시모는 예수의 복음을 통해 새롭게 중생하는 경험을 하고, 바울의 도움으로 옛 주인을 찾아가 용서를 받았다. 그 후에는 바울의 충실한 제자로서 그의 이름대로 유익한 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오네시모라는 이름은 유익 또는 이익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저희가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 게 하리라"(골 4:9).

 

나는 성령의 조명을 새롭게 받으면서 이 시대의 오네시모가 되리라는 결단을 했다. 나는 오네시모와 같이 무익하고 주인의 집에 있는 물건들을 도적질했던 사람이었다. 

 

출처: 김동욱 500/김태훈 목사

사막은 은혜의 땅 35

"김 목사님, 아들이 마약에 빠져있는데 며칠 동안 집을 나가서 소식이 없습니다. 아들을위해서기도해주십시오."

 

나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아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지금 이 시간에 로버트의 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그의 아들이 지금 이 시간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저희들은 알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 간구하건대 천군 천사를 동원하시사 그 아들을 사단의 공격에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마약의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아직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데 그 아들이 하루빨리 학교로 돌아가서 학업을 무사히 마치고 대학까지 잘 진학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길을 열어 주시옵소서. 또한 이 시간에 부모를 위해 기도하오니 저들의 마음을 위로하시사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게 하시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평안을 회복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한국말로 기도했다. 물론 그가 알아들을 리 없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실 기도니까 말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내가 기도하는 동안 그 매니저의 어깨가 들썩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의 언어는 유한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언어는 인간의 말과 사상과 문화적인 차이를 모두 초월한다. 얼마 후 로버트의 아들은 집으로 돌아와 다시 학교에 출석했다. 그는 늘 나를 볼 때마다 감사의 뜻을 전하며 계속적으로 기도해 줄 것을 당부했다. 나는 피닉스 다운타운에서 노방 전도를 시작했다. 성경책 한 권을 들고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외쳤다.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구원의 확신을 심어 주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부끄러운 것도,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염려도 없었다. 내 평생에 지금처럼 구원의 확신이 이렇게 강하게 내 마음과 영혼을 사로잡았으면 죄를 범하며 낭비했던 시간을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내는 나의 갑작스런 변화를 그저 주시하고만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며칠 동안 저러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겠지'라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아내의 마음을 알 수 있었지만 구태여 미주알 고주알 설명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누구보다도 아내의 마음을 먼저 움직여 주실 것을 나는 믿고 있었다. 그러던 아내가 서서히 내 행적에 대한 질문을 해오기 시작했다.

 

"오늘은 낮에 어디 다녀왔어요?"

 

"응, 다운타운에 잠깐 나가서 전도하고 왔지."

 

"날이 무척 더웠는데…"

 

"그래도 그늘 밑에는 괜찮더라고."

 

"전도지 같은 것은 좀 구했어왔어요?"

 

"아니, 아직…. 근데 그냥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만 해도 성령님께서 나중에 그 사람들의 영혼을 움직여 주실 거라는 확 신이 들어. 그래서 그냥 계속하고 있지."

 

"근데, 당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무슨 일이 있었으니까 이렇게 하루아침에 사람이 표정부터 변한 거 아니겠어요."

 

"좋은 일,놀라운 일이 있었지. 얼마 전 새벽에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님이 나를 다시 만져주시고 회복시켜주는 영적인 체험을 아주 구체적으로 했어."

 

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하나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그날 아내에게 결혼생활 18년 만에 처음으로 삼청교육대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마음속 깊은 곳의 상처를 아내에게 털어놓았을 때 아내는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한동안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아니,당신이 그런 끔찍한 삼청교육대에 끌려갔었단 말이에요? 그리고 그곳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는 이야기 가 정말 사실이에요?"

 

"그래, 모두 사실이야. 하지만 그동안 삼청교육대에 대해서 말을 해 봐야 아무 소용도 없었어. 오히려 나를 더 이상한 사람 으로 보는 주위의 눈초리 때문에 내 생각 가운데 아예 없었던 일로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었지. 그렇지만 그 상처는 말을 안 한다고 없어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나봐. 지금이라도 당신에게 당시의 일을 말하고 나니까 얼마나 속이 시원하고 좋은지 모르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속에 있던 아픔과 상처들을 다 털어놓을 걸 그랬다."

 

나는 그날 이후 삼청교육대의 관련자들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했던 마음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제는 내가 그 사람들을 직접 다시 대면하게 되더라도 예수의 사랑을 가지고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의 확신이 섰다. 세상이 확 달라 보였다. 20여 년 동안 막혀 있던 체증이 한 순간에 뚫리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성령의 뜨거운 조명이 있은 후 이번에는 삼청교육대에서 받았던 과거의 상처를 대기 중으로 드러냄으로써 과거의 악몽으로부터 치유를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변하자 세상이 덩달아 변했다. 아내가 변했고, 아이들 이 변했다. 사업장에서 고정적으로 만나던 사람들이 변했고, 길 가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도 변했다. 결국 내가 변할 때 세상의 모든 환경이 더불어 변화된다는 간단한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전도의 열정을 되찾으면서 마음에 가장 부담으로 다가온 것은 내 가족, 친지들에 대한 전도였다. 8남매 가운데 먼저 세상을 하직한 둘째 누님을 제외한 7남매가 모두 생존하고 있는데, 그들 가운데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면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형제는 아무도 없었다. 먼저 둘째 형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미국에 가장 먼저 이민 와서 미국 식당을 운영하며 탄탄한 재력까지 갖춘 둘째 형님은 아직까지도 내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전도를 하려면 가슴부터 떨려왔다. 물론 둘째 형님 덕분에 미국에 이민 올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어렸을 때 그렇게 천대를 당했기 때문에 둘째 형님은 가까이 가기에는 너무도 힘든 존재였다. 나이 차이도 열일곱 살이나 되고 나보다 모든 면에서 경험도 많고 배운 것도 많은 형님에게 감히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참으로 부담스러웠다. 인간적인 나약함 때문이 었지만 그런 마음의 부담을 극복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음을 강하게 먹고  충분히 기도한 후에 둘째 형님에게 전화를 했다.

 

"형님, 평안하시지요?"

 

"그래, 너는 좀 어떠냐. 애리조나는 많이 덥다고 하던데."

 

"지낼 만합니다. 형님, 그런데 건강은 좀 어떠십니까?"

 

"그럭저럭 괜찮다."

 

출처: 김동욱 500/김태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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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은 은혜의 땅 34

심령의 변화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한순간에 온다. 이러한 변화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 외엔 표현할 방법이 없다. 사도행전 9장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회심사건이 그랬고 기독교 역사 가운데 가장 존경받고, 영향력 있는 신학자였던 성 어거스틴의 회심도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인해 한순간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4세기의 대표적인 신학자 성 어거스틴은 성직자가 되기에는 너무도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었다. 육신의 쾌락에 빠져 향락을 즐기고 있는 동안 16세의 나이에 이미 사생아 아들을 낳았고, 한동안 마니교에 심취해서 우상숭배를 열심히 했고, 점성술에 심취했던 사람이었다.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와 권고로 완전히 세상에 빠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온전한 신앙생활도 하지 못한 채 간간히 육체적인 쾌락에 온몸을 불사르곤 했던 어거스틴은 그의 나이 32세가 되던 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어느 날 정원을 산책하고 있던 중에 그는 옆집 아이들이 장난하며 떠드는 소음 가운데 "집어서 읽어라"라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고 무시하고 계속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몇 번 또 같은 음성을 들은 후 집으로 뛰어 들어가서 서재에 놓여 있는 성경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그때 어거스틴이 읽은 성경 말씀이 바로 로마서 13장 13절이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어거스틴은 이 말씀을 읽은 후 육신의 죄악 가운데 사로잡혀 있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철저한 회개를 거쳐 심령의 변화가 경험한 후 당대에 가장 영성이 뛰어난, 그리고 16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심령의 변화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에 의해 한순간에 일어 난다. 심령의 변화는 어거스틴에게도 그렇게 역사했고 수세기가 지난 오늘날 나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했다. 그래서 악한 영에 눌려서 물질 중심의 생각에 사로잡힌 채 황량하게 메말라 가고 있던 나의 심령을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변화시켜 버린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좀처럼 변화되지 않는 자녀들을 위해서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영혼을 위한 지속적인 중보기도가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그 영혼을 향해 역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장모님의 지속적인 기도가 가장 큰 힘의 근원이었다. 올해 96세가 되신 장모님은 기도의 사람이다. 우리가 결혼한 이후 지난 18년 동안 장모님은 단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 가정을 위해서, 그리고 부족하지만 주의 종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나를 위해서 불철주야로 기도해 주셨다. 어거스틴에게 그의 어머니 모니카의 중보기도가 있었다면 내게는 장모님의 중보 기도가 있었다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다. 장모님은 내가 목사 안수를 받은 이후 단 한 번도 내게 말을 내린 적이 없다. 전화통화를 할 때도 늘 존댓말을 사용하셨고 또 나를 위해 기도하신다는 말씀을 잊지 않았다.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장모님이 나를 위해 늘 기도해 주시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마음의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심지어 장모님은 자신의 친딸인 내 아내에게도 주의 종의 아내가 된 이후, 즉 사모가 된 이후에는 반말을 하지 않으신다. 주의 종에 대한 철저한 존경과 신뢰, 그리고 영적 섬김의 원리를 확실하게 일상 생활 가운데 실천하시는 분이 었다. 그래서 피닉스 사막은 내게 은혜의 땅이다. 우리 가족이 피닉스로 떠날 때 다른 사람들은 그 덥고 건조한 사막 땅에 뭐 하러 이사 가느냐며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하 나님이 왜 우리 가족을 피닉스로 보내셨는지 그 뜻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사막은 생명이 살지 못하는 황량한 땅으로 인식되어 있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사막은 죽었던 생명이 다시 활력을 얻고 소생하는 기적의 땅, 은혜의 땅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극적으로 심령의 변화를 경험하고 난 후에 나는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덩달아 변화되는 것을 목격했다. 가장 확실한 변화는 내 마음을 괴롭히고 사로잡았던 걱정과 근심, 조바심과 같은 것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내 몸 안에 있던 더러운 요소들이 장맛비에 쓰레기 쓸려 내려가듯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끔하게 청소되었다. 지속적인 두통도 그쳤고, 이런 저런 생각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던 불면의 고통도 사라졌다. 대인 기피증으로 여겨질 정도로 주변의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이제는 이웃집에서 그만 좀 찾아오라고 할 정도로 사람들과의 만남을 즐기게 되었다. 기도할 때 방언도 다시 회복되었다. 방언 기도를 다시 시작함으로써 우선 기도 시간이 늘었고 기도의 질이 달라졌다. 나를 위한, 나의 가족을 중심으로 했던 이기적인 기도의 방향이 이제는 남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이타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 전도의 열정이 다시 불붙기 시작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변화였다. 미국에 와서 이민 초창기에 전도하다가 뺨을 맞을 정도로 집요하게 전도했던 그 전도의 영이 다시 회복되었다. 주님의 사랑을 전하지 않고는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달아왔다. 그렇지만 주변에 한국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대부분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었다. 나의 영어 실력은 단어 몇 마디 뱉어놓고 나면 모든 밑천이 다 드러나는 상황이라 내심 망설임도 있었지만 일단 전도의 발을 내딛었다. 아내가 운영하고 있는 가게 옆에 큰 마켓이 있는데 매일 아침 그곳에 찾아가서 우선 종업원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Are you happy, today? Believe in Jesus. He will give you a real happiness. I will pray for you"

 

처음에는 조금 맛이 간 이상한 동양 사람으로 생각했던 종업원들이 시간이 지나가면서 반응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마켓을 찾아와서 예수를 증거하며 자신들을 축복해 주는 것을 보면서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모두 호의적으로 태도가 변했다. 지금은 내가 마켓 안으로 들어가면 몇몇 종업원들은 먼저 내게 말한다.

 

"Pastor Kim, I'm happy today, and you?"

 

자신은 오늘 참 행복한데 김 목사는 어떠냐고 먼저 응수를 하는 것이다. 마켓 매니저가 하루는 나를 찾아와서 기도를 부탁하기도 했다.

 

출처: 김동욱 500/김태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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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은 은혜의 땅 33

이런 일들이 왜 생겼을까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물질적인 복을 잘못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에게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물질적으로 상상하지도 못한 복을 받게 된 이후 나는 영적으로 메마른 '영적 사막의 시기'를 경험했다. 피닉스로 이주한 후 얼마 동안은 아마도 내가 주의 종이라는 사실조차도 잊고 살았던 것 같이 부동산 거래에 온 신경이 쏠 려 있었다. 그 결과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넓은 땅도 소유하게 되었고 집도 사고 조그마한 비즈니스도 하게 되었다. 그 무렵 나는 많은 영적인 것들을 이미 잃어가고 있었다. 물질적인 풍요와 안락함이 나의 모든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다. 벤츠 최고급 SUV 승용차를 구입했다. 최고급 옷과 신발 그리고 가구들을 구입해서 집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제 16세가 되어서 임시 운전면허증을 받은 둘째 아들 성수에게는 분에 넘치는 고급승용차를 사주었다. 아들을 위한 것이기 보다는 나의만족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집안에서 대중 방송 TV만 보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성경 말씀은 형식적으로 읽었다. 기도에도 힘이 없었고 간절한 마음이 실리지 않았다. 특별히 하나님 앞에 간구하면서 기도할 기도 제목도 없었다. 피닉스로 이사 온 후 아내와의 사이가 얼마간은 좋게 회복되는 것 같더니 다시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사사건건 판단의 눈을 가지고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해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아내가 못마땅했다. 지난 18년 동안 계속해온 부부싸움이지만 이제는 그 강도와 횟수가 더 늘어갔다. 이틀에 한 번씩은 아이들이 옆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언성을 높이면서 부부싸움을 했다. 아내는 늘 습관처럼 하는 말이 있었다.

 

"막내 성구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나는 한국으로 나가서 전도만 하면서 살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요. 당신과 같은 사 람하고는 이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몇 번이나 똑같은 말을 들어서 이제는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오히려 거꾸로 그런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아내를 마음 속으로 정죄했다.

 

'아니, 저 여자가 성령 받은 사람이 맞아? 성령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남편에게 별거하자는 말을 밥 먹듯이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저 사람도 어찌 보면 가짜인지도 모르지.'

 

아내와의 갈등은 심적, 영적 갈등으로 확산되면서 그 폭이 날마다 깊어지고 넓어져 갔다. 풍요 속의 빈곤이었다. 마음 속에 공허함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삶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주변의 사막처럼 모든 것이 메마르고 황량하기만 했다. 우울증과 불면의 밤에 시달렸다.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도 싫었다. 삼청교육대 지옥훈련을 받고 난 후 나를 사로잡았던 대인 기피 증세가 다시 살아났다. 극도의 무력감에 빠졌다. 그래도 간간히 위로가 되었던 것은 "그냥 다른 생각하지 말고 이제 재산도 많이 생겼으니까 세계 여행이나 하면서 남은 여생을 그냥 풍족하게 살고 나름대로 신앙생활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마음 편하게 먹고 그렇게 살자"라는 음성이 들릴 때였다. 그것은 분명히 사단의 음성이었다. 잠시 그런 생각이 들면서 위안이 되기도 했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내 마음은 계속 절망과 좌절 가운데 뒤범벅이 되곤 했다. 갖고자 했던 모든 것을 소유하고 보니 정작 내 손 안에 잡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영적 공황의 시기는 오래갔다. 삶의 의미가 없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짜증났다. 간간히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기쁨을 회복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아이들에게나 아내에게 화를 내며 조그만 일에도 언성을 높이는 일이 더 많았다. 지옥과 같은 생활이었다. 차라리 가난할 때가 더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할 때는 그래도 먹고 살기에 바빠서 딴 데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간절하다 보니까 자연히 기도도 마음을 내려놓는 절실한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답답한 심정으로 기도를 하려고 무릎을 꿇으면 시꺼먼 거미와 복잡하게 엉켜 있는 거미줄이 눈앞에 선하게 보이곤 했다. 그 거미줄이 바로 나의 영적인 상태였다. 나는 하나님께 나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거미줄을 제거해 달라고 기도했다. 기도하다 보면 너무도 갑갑한 생각이 들어 혹시 이러다가 호흡이 막혀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다. 영적인 공격이었다. 그래도 오기를 가지고 기도했다. 악한 세력의 영적인 결박을 완전히 뚫고 나가 하나님과 긴밀한 교제의 줄을 다시 한 번 회복하고 싶은 열망이 간절했다.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새벽에 습관처럼 일어나 말씀을 보고 기도하기 위해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기도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 새벽도 그저 묵묵히 무릎을 꿇고 멍한 느낌으로 그렇게 앉아 있었다.

 

'네가 나를 믿느냐 그리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니라 너의 속에 있는 것을 다 내어 놓아라.'

 

어느 순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의 모든 것을 감싸기 시작했다. 하얀 세마포 같은 천이 뒤에서부터 무릎 꿇고 있는 나를 덮어씌우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성령님이 나를 감싸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수십 년 전 폐병 3기로 고생하고 있을 때 새벽 공기와 함께 나의 폐부 깊은 곳으로 밀려들어왔던 그 손길…. 미국에 도착해서 40일 동안을 열병으로 앓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인근 한인교회를 찾아갔을 때 전신에 감전되듯이 짜릿하게 나를 자극해 왔던 그 감격을 그날 새벽에 기도하는 가운데 다시 한 번 느끼고 있던 것이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많이 행음하였으므로 거룩한 제육이 그에게서 떠났거늘 나의 집에서 무엇을 하는고 그가 악을 행하며 기뻐하도다"(렘 11:15).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통곡하며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 영적인 간음을 행하다가 하나님의 임재를 다시 한 번 느끼고는 재를 뒤집어 쓴 채로 회개 기도했던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나는 그 날 새벽 하나님의 임재를 확실하게 체험했다. 하나님께서는 내 영혼을 사로잡고 있었던 악의 거미줄을 제거해 주신 것은 물론이고 기도할 때면 보이곤 했던 시꺼먼 거미까지 완전히 없애 주셨다. 문제의 현상은 물론 그 근원까지 제거해주신 것이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 너희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 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 15:16).

 

출처: 김동욱 500/김태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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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은 은혜의 땅 32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기도를 많이 해왔는데 나는 기도 시간부터 더 늘리고 하나님 앞에 더욱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혹시 잘못한 것이 있나요? 그렇다면 그 모든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시고 철저히 회개하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상가 건물을 조속히 처분할 수 있도록 사람을 보내 주시옵소서."

 

내 기도만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뉴욕에서 잘 알고 지내던 목사님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서 중보 기도를 부탁했다. 나는 주의 종들의 중보기도의 힘을 확실히 믿고 있었다. 주의 종들이 설사 자신의 행실에 문제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종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 권위가 있기 때문에 저들의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영적인 힘이 실려 있는 것이다. 여러 목사님들에게 현재 상황을 전하고 기도 부탁을 했다.

 

"목사님, 우리 식구들이 애리조나에 와서 잘 지내고 있는데, 지금 상가 건물이 제때 팔리지 않으면 좀 어려운 상황이 될 처지에 있습니다. 꼭 기억하고 기도해 주세요."

 

그렇게 말씀드리면 어떤 목사님은 물질에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권면의 말을 해주시는 분도 있었고, 어떤 목사님은 두말하지 않고 전화를 통해서 그 자리에서 중보의 기도를 해주시는 분도 있었다. 나는 기도만이 이런 어려움을 이겨나갈 통로라는 확신이 있었다. 한번은 시카고에서 사역하고 있던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서 중보기도를 부탁하려고 했는데, 그 목사님은 더 이상 교회에서 사역하지 않으셨고 다른 목사님이 전화를 받으셨다. 사실 얼굴도 모르고 그 목사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점도 없었지만 주의 종이라는 한 가지 사실만 확인하고 전화로 중보기도를 부탁했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주의 종들의 중보기도가 필요했다. 나는 물질에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던 적은 없다. 지금도 물질에 특별한 욕심을 부리지는 않는다. 옛날에 가난하게 살았던 것이 지긋지긋하게 기억나는 때는 있지만, 그렇다고 물질을 갖기 위해서 게걸스럽게 욕심을 부린 적은 없었다. 나는 부동산 거래에 대해서, 기술에 대해서 배워 본 적은 없지만 몇 번 거래 를 직접 성사시키면서 부동사 거래 절차에 있어서 중요한 점들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물질에 욕심을 부리는 것과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물질적인 복을 내 것으로 잘 받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상가 건물 거래가 이제 일주일 안에 성사되지 않으면 땅을 구입하기로 하고 걸었던 계약금을 그냥 날리게 될 형편이었다.

 

땅 주인은 불과 몇 달 사이었지만 땅값이 또 뛰어오르자 은근히 계약이 깨졌으면 했다. 그렇지만 나와 아내의 마음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이 거래도 반드시 성사시켜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단지 그 방법은 아직까지 알 수 없었고 그 길도 보이 지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아는 분들에게 중보기도만 열심히 부탁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의 해결이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방법으로 다가왔다. 당시 우리 상가 건물 거래를 맡고 있던 부동산 에이전트 가 우리의 상황을 알고 일정 이자만 받고 30만 달러를 빌려주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다. 이 사람이 부동산 에이전트인데 우리에게 뭘 믿고 빌려주겠다는 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에이전트가 계산에 귀신처럼 밝은 유대인이라는 점에서 믿어지지 않았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영어가 좀 짧아서 그러는데 다시 한 번 말해 주겠습니까?"

 

"그냥 내 마음에 당신들을 도와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내 친척들 중에 은행 CD 어카운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CD를 취소하고 현금으로 한 30만 달러 정도를 당분간 유통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계산을 해보니까 이자는 한 5천 달러 정도 될 것 같고 원금 환수는 상가 건물 거래가 성사되면 돌려 주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도 놀라서 대답도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간신히 그렇게 하자고 이야기해 놓고 집에 돌아와서 나와 아내는 기도하면서 펑펑 울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 유대인 에이전트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으면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 현실로 일어나게 된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에이전트가 친척들을 통해 급전한 30만 달러를 가지고 땅 구입 계약을 완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상가 건물 구입자가 타주에서 나타나서 좋은 조건에 건물 매매를 마칠 수 있었다. 거래를 다 마치고 난 후 알게 되었지만 우리를 도와주었던 유대인 에이전트는 유대교에서 개신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인해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 두고 계셨다가 급박한 상황 가운데 처하게 되었을 때 그들을 통해 도움의 손길을 마련해 주셨다. 하나님의 방법은 인간의 생각과 지혜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신묘막측한 것이다.

 

물질적인 복은 영적 메마름의 지름길이다. 기독교 역사를 돌이켜 보면 물질적인 복과 영적 풍요함은 많은 경우에 반비례 곡선을 긋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물질적으로 받은 복을 잘못 활용하거나, 물질의 풍요함에 안주하기 시작하면 영적으로 메말라가기 때문이다. 오히려 물질적인 가난함이 영적으로는 풍요함을 경험케 하는 좋은 토양이다. 그래서 중세시대 때 많은 수도사들은 풍요와 육신적인 안락함을 떠나 의도적으로 극도의 가난함과 육체적인 고행의 길을 걸음으로써 영적인 풍요함을 누리고, 하나님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한국의 예를 봐도 그렇다. 한국이 잘살기 시작한 것은 불과 십수 년 전의 일이다. 1960-1970년대 한국의 형편을 돌이켜 보면 전국 곳곳이 빈민촌이었고, 끼니를 제때 찾아 먹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다. 오죽하면 "식사하셨습니까?"라고 물어보는 것이 일종의 안부 인사가 되었겠는가. 한국은 현재 영적으로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다. 물질적으로 엄청난 풍요를 누리게 된 반면, 영적으로는 망가질 대로 망가져 버린 것이다. 목회자들의 윤리의식에 큰 구멍이 뚫렸고, 성도들도 교회와 세상 사이에서 이중인격이라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가식과 위선으로 살아가면서 심신이 피곤하다. 사회적으론 반기독교 세력이 판치고 있다. 안티 기독교 운동으로 불리고 있는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익명의 공간인 사이버 세계, 인터넷을 통해서 바이러스처럼 확산되고 있다.

 

출처: 김동욱 500/김태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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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은 은혜의 땅 31

사업체는 워낙 장사가 잘 되던 상황이라 쉽게 매매자들이 나섰고, 가지고 있던 조그마한 부동산도 적당한 가격에 구매자가 나타나서 빠른 시간 안에 처분할 수 있었다. 12년 전에 목사 안수를 받은 후 개척했던 뉴욕새벽교회는 내가 신학교와 교단 정치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이미 흐지부지 문을 닫은 상태였다. 주의 종으로 하나님 앞에 이보다 더 죄송한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교회 문을 닫게 된 것에 대해서 그리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고 언제든지 마음을 잡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교회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맨해튼에 있는 사업체의 재산들을 다 정리하고 난 후에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불과 3개월 뒤에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9.11 사태가 발생했던 것이다. 9.11사태의 여파는 대단했다. 뉴욕시 전체가 오랫동안 초상집 같은 분위기였고 모든 비즈니스가 문을 닫다시피 했다. 물론 손톱 미용 가게와 같은 사업체는 졸지에 매상이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이런 일들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될지 아내와 나는 한동안 난감했다. 맨해튼 안에 있던 비즈니스를 3개월 전에 다 정리하고 그곳을 떠난 우리의 입장에서는 한편으로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었지만 그곳에 사업체를 새로 구입해서 들어간 사람들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 속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 가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우리 가족은 애리조나 사막의 도시 피닉스로 제2의 이민을 떠났다. 애리조나로 떠나기로 결정했을 때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살지 아무것도 정한 것이 없었다. 그냥 길을 떠났다. 가지 고 있던 가재도구들은 대강 정리해서 이삿짐 센터에 맡기고 우리들은 필요한 옷가지만 챙겨서 뉴욕을 떠나 서쪽으로 서쪽으로 며칠을 달렸다. 그렇지만 놀라운 사실은 아무런 불안한 마음이 없었다는 것이다. 미지의 땅을 향해 온 가족이 떠나면서, 그리고 아무 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상황에서 그저 운전을 하면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으면서 마음에 평안함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함이었다.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의 힘이었다. 피닉스로 이주를 결정한 데는 단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피닉스는 사막지대에 세워진 도시이기 때문에 일 년 내내 햇볕 이 많고 건조해서 관절염이나 뼈가 약한사람들이 살기에 가장 이상적인 도시라는 말 때문이었다. 그래서 피닉스는 동부지역이나 다른 곳에서 평생을 살다가 은퇴한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실버타운으로도 잘 알려진 도시였다. 피닉스는 애리조나 주의 수도로서 인구 6백만 명 정도가 살 고 있는 대도시다. 인구 규모로만 봤을 때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로 꼽힌다. 사막 위에 세워진 도시이기 때문에 도시 를 관통하는 물이 부족할 것 같지만 도시 곳곳이 푸른 잔디로 덮여 있는 거대한 오아시스다. 대도시들은 대부분 큰 강을 끼고 형성되기 마련이지만 피닉스에서 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웃하고 있는 콜로라도 주 로키 산맥의 눈 녹은 물을 공급받아 오히려 다른 지역이 가뭄에 시달릴 때도 물이 충분한 도시가 바로 피닉스다. 그렇기 때문에 피닉스는 그 자체가 기적의 땅이다. 물이 없는 곳에 세워진 도시가 물을 가장 충분히 쓰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철에 가장 더울 때 기온은 보통 화씨 110도를 넘는다. 한마디로 살인적인 더위라고 할 수 있지만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냉방 시설이 잘 되어 있는 건물 내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차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에어컨이 잘 나오는 차를 필수로 갖추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그렇게 더위 때문에 못 살겠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피닉스에 도착해서 우리는 다운타운 인근의 조그마한 모텔에 투숙한 후 우리가 살 집을 찾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이것은 완전히 무모한 방식이었다. 아직 중학교에 재학 중인 아이들을 둘이나 데리고 살 집도 학교도 정해 놓지 않고 무작정 집을 찾아보려고 다니는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있을 수 없는 일이 었다. 그렇지만 아내와 나는 하나님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시며 인도해 주시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는데 소경이나 다름없는 우리들이 자기의 생각과 의견을 가지고 뭔가 해 보겠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뢰했다. 조그마한 물건을 구입하는 일조차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실 때 그 물건을 구입했다. 피닉스는 정말 덥고 건조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건조 사우나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흑 하고 호흡이 막혔다. 7월 한여름 이곳의 날씨는 연일 화씨 110도(섭씨 45도) 정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뉴욕도 여름에는 많이 덥고 한국의 여름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덥지만 근본적으로 뉴욕이나 한국의 무더위와 피닉스의 더위는 질이 다른 더위였다. 아스팔트가 태양열에 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스팔트를 깔 때 특별화학물질을 추가해서 넣는다고 한다. 새 집이고 낡은 집이고 할 것 없이 냉방 시설은 가장 기본이다. 냉방 시설이 잠시라도 작동하지 않으면 완전 찜통에서 지내야 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피닉스에 도착한 이후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정에 큰 물질적인 복을 허락해 주셨다. 뉴욕 살림을 정리한 얼마간의 자본을 가지고 피닉스로 이주해 왔지만 나는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었다.

하나님의 지헤를 간구하며 충분히 기도한 후에 나는 피닉스 인근에서 주거지역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고 있던 챈들러 지역에 건평 4,000스퀘어피트 규모의 큰 집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구입했다. 집 주인이 마침 급하게 처분해야 하는 형편이 었기에 당시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내놓았던 것이 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집을 구입하고 난 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집값이 급상승 곡선을 그리며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집값이 매달 뛰어 오르기 시작했다. 또한 피닉스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상가 건물을 구입했는데 이 건물도 짧은 기간 안에 큰 수익을 가져왔다. 그러나 건물 관리에 많은 시간을 소모하는 것이 싫어서 투자 용도로 구입했던 건물을 일 년 만에 다시 시장에 내놓았다. 그런데 곧 팔릴 것 같았던 상가 건물이 시간이 지나도 적당한 매입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상가 건물이 일정 기간 안에 쉽게 팔릴 것을 예상하고 인근에 땅 120에이커 구매 계약을 체결하고 상가 건물이 팔리는 대로 잔액을 다 지불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상가 건물이 팔리지 않는 것이었다. 

 

출처: 김동욱 500/김태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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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생 중반까지 직장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신학공부를 할 때도 직장 생활을 하였고 전도사 시절에도 강도사 때도 목사 안수를 받고도 직장 생활을 하였다.

한마디로 직장과 교회를 겸하여 신앙생활을 하였다.

언젠가 부목사가 된 나에게 담임목사께서 수요예배 설교를 하라는 명이 떨어졌었다.

직장 퇴근시간이 6시이니까 7:30분에 드리는 수요예배에 설교하는 일은 시간상으로나 경험으로나 큰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목사 초년생에게는 멋진 설교를 해서 성도들에게 목사로써의 자격이 충분하다는 칭찬도 받고 싶었고 또 담임목사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심도 나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드디어 그날은 왔고 난 직장 근무 중에 틈틈이 시간을 만들어 준비한 설교 원고를 몇 번이고 들여다보면서 만만의 준비를 하였다. 

퇴근시간 30여분전!

사장실에 고위직 인사가 찾아온 것이다.

당시 비서실에서 근무하고 있던 나는 퇴근시간이 되었다고 훌쩍 자리를 떠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6시가 넘어 갔다. 도무지 두분의 면담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시간은 자꾸 흐르고 교회에 갈 시간은 다가오고 안절부절 못하는 내 모습이 내가 보기에도 역역했다.

이대로 퇴근하여 교회로 갈 것인가 아니면 교회가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예배시간이 임박해 왔다.  갈등은 계속되었다. 교회로 가야 하는가 아니면 포기해야 하는가

만일 퇴근해 버리면 사장이 노발대발 할 것이고 또 중대한 업무를 지시할 수도 있을 텐데 여비서 혼자 놔두고 퇴근한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이다. 반대로 교회를 포기한다면 성도들과 담임목사는 뭐라 할까? 목사가 직장에 매여서 설교해야 할 자기 본분을 잃고 예배에도 참석하지 않는 목사가 진정한 목사인가 한마디식4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갈등 속에 나는 그날 교회 가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직장에서는 자기 직분에 사명감이 투철한 사원으로,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뒤엎어버린 파렴치한 목사로 남게 된 것이다.

 

오늘날 이민 사회에서 주일에 일을 하는 성도가 많아지고 있다. 어쩌면 그들 모두가 신앙심이 좋은 교회 직분자들도 있을 것이다. 주일이 되면 이들도 지금 갈등한다. 교회를 가야하느냐? 직장을 출근해야 되느냐?

직장에서는 주일에도 교회를 포기하고 일하러 나온 용감한 사원으로 박수를 보내는 반면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소홀히 한 믿음 없는 직분자로 인정해 버린다.

과연 직장을 포기하고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성도는 하나님의 축복권 안에 들어간 거룩한 성도이고, 반면 주일 예배를 포기한 성도는 하나님의 축복권 밖으로 밀려난 성도인가?

 

여기에 기독교 상황윤리가 적용된다.

현실적 상황에 따라 우리는 목숨을 걸고 주일을 지켜야 할 때가 있다.

직장도 가정도 포기하면서까지도 주일을 지켜야 할 상황이라면 우리의 마지막 선택은 두말할 필요 없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교회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이 내가족의 삶과 직결되어 있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에 직장을 선택했다고  믿음도 져버렸다고 할 수 있을까?

 

아직도 우리에게는 이원론적인 사상적 흐름이 현대사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세상은 악하고 교회는 은혜받는 곳으로 이원화 시킨 영지주의 사상이 교회 안에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누가 교회 안에만 은혜가 수여된다고 하였나, 교회 밖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직장을 통해서 이웃을 통해서 사건 사고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는 내려지고 있다는 것을....

 

신앙은 갈등에 연속이다.

하나님을 선택할 것인가? 세상을 선택할 것인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당연히 하나님을 선택해야 한다.

그렇다면 주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세상을 선택하셨나요? 대답은 아니요이다. 비록 직장에 출근하는 것으로 인해 함께 교회 공동체와 예배를 못 드렸지만 그들의 심령 속에는 하나님에 대단 열망이 더 강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더 하나님을 찾을 것이다. 

결단코 주일을 못 지켰는데도 당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늘 그들 마음에는 하나님! 주일에 교회 공동체와 함께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는 여건도 만들어 주시고  믿음도 주옵소서라는 고백이 들어 있을 것이다.

 

반대로 교회 못나가는 것이 현실이 어쩔 수 없어서 못나갔다고 당연하게 여기는 성도들에게 묻는다. 어쩔 수 없어서 이젠 당연한 것이 되었다고 여긴다면,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 두자.생활에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21:34)

 

갈등!

이 육신이 벗어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모두 갈등 속에서 존재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일께다.     

 출처: 김동욱 500/한동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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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큐티시간에 <순종>에 대한 성령의 음성을 듣고 결코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 이렇게 블로그에 끄적여 본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순종을 어려워하며 나 또한 그러하다. 그 이유는 순종을 시작하면 끝까지 '내 힘으로' 순종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힘과 의지력을 총동원하여 힘들어도 이를 악물고 순종하고 또 순종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순종이라는 말을 처음 딱 들으면 '어렵다'는 고정관념이 고개를 쳐드는 것이다. 


그런데 순종은 그런게 아니었다.


죄를 짓는 과정도 유심히 살펴보면...

유혹이 내게 왔을 때에 그것에 대한 호기심과 이끌림에 의해 한번 첫발을 내딛으면 처음엔 어느 정도의 넘지말아야 할 선이 있다가도 그 선을 넘어버리면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서운 속도로 빠져들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순종의 과정도 이와 똑같다.


하나님의 말씀이 왔을 때에 처음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첫발을 내딛을 수 있다. 그리고 내 마음과 생각 속에 자리잡고 있는 어느 정도의 상식선과 보편적 가치관이라는 합리적인 틀 안에서만 순종한다. 그런데 그 선을 넘어서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성령께 이끌린 바 되어 무서운 속도로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를 경험하는 통로로 쓰임받게 되는 것 같다. 


순종은 그래서 참 가슴을 뛰게 하는 즐거운 일인 것 같다. 

작디작은 내 삶을 통하여 크고 광대하신 하나님께서 과연 무슨 일들을 행하실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흥분이 된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영적인 세계의 법칙을 발견하게 된다.


사탄마귀는 내 안에 죄의 유혹을 붙잡는 그 행위(불순종)를 합법적으로 붙잡고 내 속에 들어온다는 것이며, 성령께서도 내 안에 순종하고자 마음을 기울이는 그 선택의 행위(순종)를 합법적으로 붙잡고 내 영을 사로잡으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하늘나라의 법칙이다.


따라서 불순종을 통해 사탄마귀에게 내 삶의 주도권을 합법적으로 내어주느냐, 아니면 순종을 통해 성령께 내 삶의 주도권을 합법적으로 내어주느냐의 싸움인 것이다. 나는 성령의 생명정부가 들어서서 마음천국이 이루어진 거듭난 사람이다. 죄는 불법이 되었고, 언제든지 거절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 있다. 이미 전세는 완전히 기울었다. 당당히 순종을 선택하여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 여전히 남은 죄의 찌꺼기와 잔재들에 마음을 기울이지 말자!


순종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힘으로 행하는 힘겨운 여정이 아니다.

내가 해야 할 순종은 첫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그 발걸음을 떼기까지가 힘겨운 갈등의 시간인 것이다. 일단 순종의 첫발걸음을 내딛으면 그 첫발걸음을 근거로 하여 성령께서 합법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하신다는 놀라운 진리... 결코 첫발걸음을 떼기 전에는 성령께서 강제로 내 삶을 강권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유의지를 주신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순종은 어렵지 않다. 첫발걸음만 내딛으면 그 이후부터 성령께서 개입하시니까...


그렇다고 첫발걸음만 내딛고 그 이후엔 나몰라라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성령께서 개입하시는 흐름을 타고 끊임없이 주님을 사랑하고 갈망하며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동행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저 높은 하늘 보좌에까지 날아가는 것이다. 지속적인 사랑과 소망과 믿음의 엔진을 가동시켜 주시는 성령 안에서의 자유로운 고공비행을 누리면 되는 것이다. 


순종의 첫발걸음은,

성령께서 개입하시는 합법적 근거라는 것을 기억하며...

오늘도 큐티하며 순종의 첫발걸음을 내딛는다.

할렐루야!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네 자손이 모래 같았겠고 네 몸의 소생이 모래 알갱이 같아서 그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하셨느니라 " (사 48:18-19)


<핵심정리>

- 순종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힘으로 해내야 하는 힘겨운 작업이 아니다.

- 내 할 일은 <순종의 첫발걸음>을 내딛음으로써 성령께서 일하실 수 있는 합법적 근거를 마련해 드리는 것이다.

- 그 이후부터는 거의 대부분 성령의 일이며, 순종의 첫발걸음을 내딛은 이후에 내가 할 일은 내 삶 속에 벌어지는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과 역사하심을 바라보며 마음껏 즐기는 것이다.



출처: 곰탱이의 하늘우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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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은 은혜의 땅 28

그렇게 나는 터무니없는 교만과 허영 속에 빠져 있었다. 개척한 교회의 이름을 '뉴욕새벽교회'라고 했다. 새벽은 내 인생에 있어서 늘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폐병과 투병할 때 성령님의 치유의 손길을 경험하면서 폐병이 완치됐던 기적의 시간이 바로 새벽 미명이 밝아오던 때였다. 그리고 마음이 분주하고 정리가 안 되며 영적인 답답함이 있을 때에 새벽에 기도를 드리고 나면 막혔던 숨통이 확 뚫리는 것과 같은 상쾌함을 느꼈다. 새벽은 내게 있어 늘 신선함과 기적 그리고 치유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기도하는 가운데 교회의 이름을 새벽교회로 하기로 결정했다. 

교회는 한 명의 교인도 없이 시작해서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 약 20여 명으로 늘어났다. 교인은 뉴욕에서 처지가 어려웠던 불법 체류자들, 오갈 때가 마땅치 않았던 가난한 유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에게는 도움이 필요했다. 목사로서 나는 그들에게 영적인 부분을 먼저 채워줬어야 했는데 우선 급한대로 물질적인 부분들을 많이 도와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런저런 소문을 듣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오면서 교인수는 금방 1백여 명을 훌쩍 넘어섰다. 그렇지만 그들 가운데 교회에 헌금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예수를 영접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저들은 단지 현실적인 도움, 예를 들면 영주권 신청에 필요한 서류가 필요했다. 유학생들의 경우는 용돈이라도 좀 받아갈 수 없을까 해서, 또는 무숙자 생활을 하는 이들은 따뜻한 밥 한 그릇이 그리워서 교회를 찾아왔다. 그런 중에 나는 영적으로 눈을 뜨고 저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파했어야 했는데, 영적으로 무감각해질대로 무감각해진 나는 그저 주석이나 베끼는 설교로 주일 강단을 때웠다. 또한 교단 정치와 관련된 일들에 모든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목회는 그렇게 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리고 나는 목회를 상당히 잘하고 있다는 심한 착각과 자기도취 가운데 빠져 있었다.

함께 신학교를 졸업하고 사역을 변변치 못하게 하고 있던 동료 목사들을 우습게 여기기도 했다. 그런데 잘못된 동기로 모이기 시작했던 사람들은 모일 이유가 없어지면 금방 교회에서 떨어져 나갔다. 은혜도 받지 못하고, 주일 설교를 통해 삶에 어떤 도전도 받지 못하던 사람들은 언제 교회에 나왔던가 싶게 아무 미련 없이 교회를 떠나곤 했다. 출석 교인이 100명까지 올라갔다가 한 달 만에 다시 20~30명 선으로 떨어지는 등 불안정한 모습이 몇 번씩 반복됐다. 나는 그 이유를 가끔씩 아내에게 돌리곤 했다. 사모가 목사를 위해 기도를 하기는커녕 주말이면 부부싸움을 걸어와 주일 설교를 준비해야 될 시간에 열불을 붙여 놓으니 무슨 은혜스러운 설교를 준비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나의 구차스런 변명이었다. 아내는 아내대로 주석이나 베껴서 줄줄 읽어 내려가는 설교가 무슨 설교냐며 오히려 빈축을 주기 일쑤였다. 목회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그렇게 엉터리 목회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목회를 잘 하려면 목사도 돈이 좀 많이 있어야겠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에 빠졌다. 돈이 있어야 교회 건물도 좀 번듯하게 지을 수 있고, 건물이 좋으면 사람들도 많이 찾아올 것이라는 완전히 거꾸로 가는 목회관을 갖고 있었던 것이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모임 자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그때 목회를 하면서 손댔던 비즈니스가 바로 동전 세탁소였다. 목회는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도 그 당시에 세탁기 130대가 들어간 동전 세탁소를 차려서 1 년 안에 아주 짭짤한 수익을 남 겼다. 내가 보기에도 나는 목회 쪽보다는 비즈니스 쪽에 훨씬 수완이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철저히 인간적인 목사였다. 그런 나는 명예에 사로잡혀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싶었다. 하루는 교회에서 후원하는 선교지의 학장님이 교회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는 선교지의 어려운 사정들을 털어 놓으면서 재정 지원을 해 주면 감사하겠다고 간곡하게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선교지에서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정부에서 정식으로 인가를 받은 학교이고, 박사 학위 코스까지 제공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신학교 재정을 위해 후원해주시면 명예박사 학위를 드리겠다고 말했다.

 

"명예박사 학위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저희 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정식으로 수여해 드릴 수 있습니다."

 

나는 학위라는 말에 명예박사 학위가 받고 싶었다.

 

"선교지에서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저희가 교회 사정만 된다면 좀더 많은 액수를 후원하고 싶지만, 지금은 학장님이 제안하신 것만 후원하겠습니다."

 

반 년 정도가 지난 후에 학장님이 운영하는 신학교에서 명예 신학박사 학위 학위증서와 박사 증명패가 도착했다. 그리고 그 증명패를 받고 난 다음 날 나는 명함을 새로 만들었다. 여러 가지 직함과 직책들이 너무 많아서 명함을 만드는 사람 이 몇 개는 좀 생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굳이 모든 직함들을 다 집어넣도록 부탁했다. 명함에는 6개의 직함과 직책이 적혀 있었고, 그 중에서 명예 신학박사 직함이 가장 첫줄에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신학박사 김태훈 목사가 되었다. 많이 배우고 못 배운 것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워낙 학벌이 부족했던 나는 자격지심 때문에 그 이름 뿐인 학벌과 직함에 그렇게 연연했던 것이다. 

 

구한말 일제시대 때 평안도의 한 교회에 목사님이 새로 부임하셨다고 한다. 그 목사님은 배운 것은 없어도 기도를 참으로 많이 하는 분이었다. 그 목사님이 부임한 후에 교회는 많이 부흥했다. 그런데 성도들의 마음 가운데 '저렇게 배운 것 없는 목사가 부임해서도 교회가 이렇게 부흥되니, 학벌이 좋은 목사가 오면 교회가 얼마나 더 부흥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목사님을 내보내고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목사를 모셔왔다. 그런데 교회가 부흥이 안 되는 것이었다. 새로 부임한 박사 목사님도 마음이 불편해져서 교회 관리집사에게 물었다. 

 

"전에 있던 목사와 나와의 차이가 무엇 입니까."

 

그러자 관리 집사가 말했다. 

 

"전에 계시던 목사님은 교회 지하실이나 강단 위에서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한 번도 엎드린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목회의 능력은 학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무릎 꿇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출처: 김동욱 500/김태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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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은 은혜의 땅 27

 

흑인 동네 중심부에 수년 동안 거의 방치된 상태로 버려진 건물이 있었는데 나는 이 건물을 잘 수리해서 아내 가게도 이곳으로 이전시키고 나머지는 렌트를 주면 좋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거의 헐값에 건물을 구입하고 목수 몇 명을 고용해서 한 달 정도 수리를 해서 아내의 가게를 그 건물로 입주시켰다. 그러자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몇 년 동안 방치된 건물이라 주변에 오가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는데 수리를 하고 손톱 손질 가게가 들어서자 건물을 찾는 사람들이 매일 늘어났다. 또한 상가 건물의 빈 공간을 임대해달라는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해서 짧은 시간 안에 건물의 빈 공간을 모두 임대했다. 아내의 사업장은 이곳에서도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성업을 이루었다. 동전 세탁소(Coin Laundry)를 운영할 때도 하나님께서 사업장에 큰 복을 부어 주셨다. 이 세탁소도 당초 시작할 때는 여 러 사람들이 가능성이 없다고 고개를 내저었던 장소였다. 그리고 지역적으로 무척 험한 동네였기 때문에 한인들이 쉽게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이상하리만큼 나는 이 곳에서 동전 세탁소를 시작하면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아내가 손톱 미용가게를 운영하는 동안 쌓은 신용으로 세탁소를 매입했다. 그리고 새로 세탁기 130대를 추가로 설치하고 세탁소 분위기를 완전히 새롭게 개조했다. 호주머니에 땡전 한푼 없는 상황에서 신용을 가지고 모든 일을 벌여놓았으니, 사실 세탁소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으면 우리는 순식간에 빚더미에 올라앉아 파산선고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었다. 내부수리를 다 마치고 세탁소 그랜드 오프닝 사인을 내걸었 다. 첫날은 손님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문득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이 정도밖에 사람이 오지 않는다면 좀 심각한데. 이 일을 어쩌지.'

 

나는 아무에게도 내 생각을 말하지 않고 그저 혼자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3-4일 정도는 계속 세탁소가 파리 날리듯 한산했다. 그런데 5일째 되던 주말부터 세탁소는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며칠 사이에 깨끗한 동전 세탁소가 새로 오픈했다는 소식이 입을 통해 소문이 나면서 주말에는 아침부터 130대나 되는 세탁기가 잠시도 쉴 틈 없이 밤늦은 시간까지 풀가동되었다. 월 매상은 예상했던 것보다 두 배 이상 올랐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우리는 그 비즈니스를 1년여 동안 운영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시세보다 많이 싼 가격에 매도했다. 그래도 우리는 시작할 때 들였던 투자 비용의 2배를 남겼다. 운영하는 사업체, 구입하는 부동산마다 한 번도 손해를 본 적이 없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물질의 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부동산을 몇 번씩 사고파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다른 사람들이 쉽게 보지 못하는 안목을 허락해주셨고 그로 인해 우리는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물질적인 부를 누리게 되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목사의 직분을 받게 되었을 때 참으로 심각한 문제들이 야기된다. 어느 신문 통계를 보면 한국에 개신교 목회자가 줄잡아 7만여 명, 미국 내에 1만 5천여 명의 한국인 목회자가 안수를 받은 목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한국 내에 무당, 점쟁이가 1 백만 명이라는 숫자적인 통계에 비하면 개신교 목사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문제는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준비된 사람들이 목사가 되었느냐에 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도 목사 흉내는 낼 수 있다. 그런데 결국 시간이 흐르고 나면 구멍난 부분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목사를 무당에 비유하는 것은 사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그리 유쾌하지 않은 비유이다. 사도행전에는 바울을 쫓아다니며 성령으로부터 받은 바울의 능력을 돈 주고 사려고 했다가 아주 심하게 야단을 맞았고 그 후에 정통 신앙을 떠나 모든 기독교 신앙 이단의 아버지가 된 마술사 시몬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마술사 시몬과 같은 그런 목회자들은 과연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난 후 목사라는 직책을 사회적 지위와 명예로만 생각했다. 오히려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은 신학공부를 하지 않고 안수를 받기 전이었던 평신도 시절이 더욱 뜨거웠다. 목사가 된 후에 나는 세상이 달라 보였다. 이제는 그 누구도 목사가 된 나를 감히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잘못된 가치관의 변화였다. 오랜 세월 동안 알게 모르게 여러 가지 천대와 멸시를 당하면서 내 마음 속에는 목사 안수만 받으면 그런 모든 억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기대감이 충만해 있었다. 그러니 나는 온전한 목사가 될 수 없었다. 이것이 나에게는 슬픈 일이었다.

 

나는 철저히 인간적인 목사였다. 목사가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기까지 충성해야 하는데, 나는 나의 의와 명예를 위해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차라리 평신도로 있을 때는 성령 충만한 가운데 그 기쁨과 감격에 넘쳐 노방 전도를 하고, 직장 안에서 동료에게 뺨을 맞으면서까지 전도를 했다. 그런데 목사가 된 후로는 노방 전도 같은 것은 평신도들이 해야지, 신학교 교육까지 받은 목사인 내가 직접 나서야 되겠냐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목사 안수를 받고 난 후 확실히 달라진 것은 짧은 목에 더욱 힘만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누가 뭐라고 한 마디 하면 "내가 목사인데 목사 앞에서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냐"라고 호통을 치기 일쑤였다. 특히 아내에게 더욱 심하게 그랬다. 기도 를 많이 하는 아내는 내가 영적으로 극히 메말라 있는 것을 감지하고 "기도를 더 하고 겸손하게 무릎을 꿇으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나는 일언지하에 아내의 말을 완전히 무시해 버렸다.

"네가 기도하면 얼마나 하겠냐. 나는 목사다. 목사 앞에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당신이 교만해서 그런 것이다. 여자는 그저 집 안에서 잠잠하는 것이 남편의 사역을 돕는 최선의 길이다."

 

그 당시 내게 있어서는 목사라는 직책이 최고의 감투였다. 교단 정치판에 이리 저리 개입하느라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내 고 있었지만, 그래도 안수를 받았는데 교회 개척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플러싱 지역에서 교회를 시작했다. 목회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다른 교회에서 협력사역을 하든 지 아니면 부목사로 사역 경험을 쌓는 것이 바람직한 단계였다. 그러나 나는 누구 밑에서 사역을 돕는다는 것이 왠지 자존심에 허락되지 않았다. 

 

출처: 김동욱 500/김태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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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은 은헤의 땅 26

그 당시만 해도 4백 달러면 적지 않은 돈이었는데 몇 시간 동안 슬롯머신을 열심히 당겼더니 졸지에 4백 달러나 되는 돈을 벌 수 있었다. 나는 신이 났다. 

 

'야,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나는 카지노의 짜릿한 맛에 완전히 매혹되고 말았다. 그 후로 나는 몇 달 동안 거의 매 주말이면 신학생이라는 직분도 망각하고 카지노를 전전하며 슬롯머신을 섬기는 맛에 살았다. 그 당시 아내는 신학공부를 시작한 남편을 내조하기 위해 맨해튼에 손톱 손질하는 가게를 시작했는데 가게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운영이 잘 되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   고 있었다. 덕분에 내 호주머니에도 여유 있는 돈을 조금씩 챙길 수 있었고 그런 돈만 생기면 나는 카지노로 달려갔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신앙 양심에 큰 갈등이 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명색이 신학을 공부하는 신학생이 주말이면 카지노로 달려가는 형색이 말이 안 된다는 자각의 음성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양심의 소리는 듣고 있었지만 '한 번만 더,한 번만 더'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몇 달을 도박과 신학 사이에서 헤매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또다시 결단을 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도박을 계속하면서 세상의 재미를 더 즐기든지, 아니면 다시 하나님의 양심에 합당한 신학생의 본분으로 돌아가든지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내가 나를 볼 때 나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회개를 참 잘한다는 것이었다. 잘못한 점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으면 나는 하다못해 아이들에게라도 나의 잘못을 이야기하고 용서받기를 원했다. 하나님 앞에서 알게 모르게 지은 죄가 있다면 나는 철저히 용서받기를 원하며 회개의 눈물도 많이 뿌렸다. 이번에는 도박문제로 인해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 도박에 맛을 들였는데 하나님이 고쳐 주세요 주말만 되면 도박장으로 달려가고 있는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흘을 베풀어 주셔서 저를 죄악의 구렁에서 건져 주시옵소서."

 

이틀을 금식하며 기도한 후에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고 치유받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러고 난 후 나는 다시 는 도박장을 찾지 않았다. 도박에 한 번 빠졌던 사람들이 들으면 믿기 힘든 일이라고 하겠지만 사실 나는 그날 이후 다시는 카지노라는 곳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도박은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끊을 수 있다. 자신의 의지로는 결코 끊을 수 없는 끈질긴 죄의 결박이 바로 도박이기 때문이다. 

 

도박과 신학 사이에서의 갈등은 그렇게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해결하고 3년 동안의 평신도 성경학교에서 요구하는 모든 학점을 이수할 수 있었다. 신학교에서 신학공부를 하면서 나는 더욱 낮아지고 겸손해지는 연습을 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무척 교만한 생활을 했다.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나는 돈 잘 쓰고 찬양 잘하고, 기도 잘하는 소위 말해서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는 신학생'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가난은 이제 옛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하나님께서는 아내의 비즈니스를 통해서, 그리고 부동산 구입을 통해서 물질적인 복을 넘치도록 부어 주셨다. 주급 150달러짜리 어려운 생활을 하던 때가 잊그제 같았는데 어느 사이엔가 한 달 생활비로 1만 달러를 쓰는 중상류층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물질적인 복을 부어 주실 때 우리는 좀더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 물질을 사용할 줄 알아야 했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한동안은 호주머니에 들어오는 현금을 가 지고 도박에 빠졌다가 성령님의 호된 질책의 음성을 듣고 도박을 끊기도 했다. 또한 한국에서 목사들이 신학교를 방문하면 무슨 대단한 갑부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봉투에 돈을 넣어서 용돈까지 챙겨주기도 했다. 그런 일들을 순수하게 주의 종을 섬기는 마음에서 했으면 좋았을텐데 돌이켜 보면 그것은 일종의 거만함이었다. 돈 잘 쓰는 신학생으로 알려지면서 학교에서는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수들 사이에서도 인기 있는 학생으로 꼽혔다. 그래서 본과에서 공부를 시작한 이후 2년 동안 학생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신학교를 뜻하는 영 어 단어인 Seminary는 공동묘지라는 뜻 의 Cemetery와 발음도 비슷하고 단어도 유사하다. 나는 이 두 단어 사이에 상당한 연관성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신학교에서 영성을 개발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더 가깝게 대면하지 못하는 형식적인 신학교 생활을 하다 보면,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서 신학교는 오히려 영적인 공동묘지가 된다.

말씀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주의 종으로 준비되기 위해 시작한 신학교(Seminary)가 오히려 영적인 침체, 결국은 영적 사망의 공동묘지(Cemetery)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서 신학교는 어쩌면 영적인 공동묘지에 더 가까운 기간이었다. 하나님을 열망하며 기도하던 순수한 마음이 신학교를 거치면서 영적 교만과 거드름으로 대체됐다. 그렇게 타락했던 신앙의 순수성을 다시 회복하기까지는 참으로 오랜 시간과 연단의 과정이 필요했다. 내가 신학공부를 시작하면서 아내는 곧바로 작은 사업장을 시작했다. 손톱 손질을 해주는 조그만 가게는 매일 손님들이 미어터질 정도로 잘 됐다. 우리 가게가 잘 된다는 소문을 듣고 주변에 동일한 손톱 손질가게들이 생겼지만 유일하게 아내의 가게에만 손님들이 몰렸다. 경쟁 가게들이 가격을 인하하면서 손님들을 빼앗아가기 위해 혈안이 되었지만 가게의 매상은 한 번도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업소보다 가격을 더 높여 받는데도 새로운 손님들이 계속 늘었다. 아내는 처음에는 혼자서 일하다가 도무지 일손이 딸려서 사람을 두지 않고는 가게를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한 사람씩 종업원을 고용하기 시작했던 것이 가장 많을 때는 그 조그만 가게에 9명의 종업원을 두기까지 했다. 물론 아내의 솜씨가 좋아서 손님이 몰리기도 했겠지만 그 사업장은 하나님이 복 주심으로 잘 될 수 있었다.

아내는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을 그냥 손님으로만 대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 대상으로 생각하고 그들에게 예수님의 복음 전하는 일에도 그렇게 열심을 냈다. 아내 가게에서 일하는 종업원, 손님들 모두가 이 업소에 들어오면 일단 예수님에 대해서 단 한 마디라도 듣지 않고 나가는 경우가 없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아내의 이런 전도의 열정을 기쁘게 받으셨다고 믿는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내게 부동산을 사고파는 안목을 주셨다. 아내의 사업장이 잘 되면서 더 넓은 장소로 가게를 이전해야 했는데 이때 기왕이면 건물을 구입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 들어서 몇 군데 상가 건물들을 보러 다녔다.

 

출처: 김동욱 500/김태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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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은 은혜의 땅 25

기다리다 못해 기도의 골방 문을 열어젖히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당신, 기도고 뭐고 지금 당장 집어치우고 빨리 나오지 않으면 골방 문에 못을 박아 버리고 말겠어. 알아들었어?"

 

나는 그렇게 말을 마구 뱉어버리는 나를 보면서 스스로 깜짝 놀랐다. 기도하는 아내를 어떤 이유로든 이렇게 박해하는 모습이 바로 사단의 모습과 같다는 섬뜩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아내는 그날 이후 나를 대하는 태도가 더욱 냉랭해졌다. 그 리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막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나는 한국에 나가서 수양관에 기거하면서 전도만 하면서 살겠어요. 어차피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렇고, 또 이혼은 절대로 못해 준다고 하는 당신이니까. 그렇게 때가 되면 서로 다른 곳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내의 말은 진심이었다. 한 집에서 살림을 하면서 같이 살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가까우면서도 멀게만 느껴졌던 사람이 바로 아내였다. 이렇게 마음이 멀어지면서 하루가 멀다하고 부부 싸움을 했다. 서로 이해하는 마음은 없고 판단과 정죄만 하는 관계가 되었으니 사사건건 싸움을 하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서로의 다른 점들에만 눈이 갔다. 그래서 싸움은 계속됐다. 우리 둘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달랐다. 나는 기도를 해도 통성 기도를 해야 기도를 좀 한 것 같은데 아내는 주로 묵상기도를 하고 통성기도를 크게 하는 사람들을 경멸하는 눈초리로 바라보곤 했다. 나는 직선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인데 아내는 수동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나는 춥고 차가운 것이 좋은데 아내는 추운 것이라면 아주 질색이고 더운 여름에도 냉면을 먹는 일이 거의 없다. 나는 싱거운 음식이 입에 맞는데 아내는 짠 음식을 좋아한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는 좀 시끄럽게 들어야 하는데 아내는 조용한 음악을 평화롭게 듣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목소리가 무척 큰 편인데 아내는 늘 조용하게 말한다. 나는 라스베이거스식 성경 읽기를 통해 마구잡이 은혜를 사모하는데 아내는 체계적인 성경공부와 묵상을 즐긴다. 나의 혈액형은 Ab형인데 아내는 O형이다. 나는 대강 대강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인데 아내는 매사에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는 많은 경우 자기 중심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데 반해 아내는 옆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비교적 깊은 편이다. 우리는 달라도 서로 너무나 달랐다. 우리 둘은 결혼생활이 길어질수록 서로 다른 점들만을 발견하면서 더욱 깊이 싫어했다. 함께 앉아 밥을 먹는 것도 싫었다. 아내는 막내가 고등학교 졸업하는 그날을 기다리는 것이 유일한 소망인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서로 다른 가운데 유일하게 일치하는 부분은 나이가 동갑이라는 것과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뿐이었다. 물론 그것도 경외하는 방법상에서는 서로 일치하지 않았지만, 마음의 중심 가운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마음은 유일한 공통분모였다. 그런데 그 공통분모는 가장 큰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하나님의 때가 되면서 오랫동안 끌어왔던 미움과 갈등의 시간도 하 나님의 은혜로 드디어 끝을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고, 그분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끝까 지 복을 주신다는 그 말씀이 바로 우리 가정을 두고 하는 말씀이었다. 돌이켜 볼 때 길고 어두운 갈등의 터널을 무사히 지나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터널의 끝에 밝은 광명 천지가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을 믿고 의뢰하는 가정에서는 될 수 있는   한 이혼이 없어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 당장은 힘들고 모든 것이 괴로울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당신의 가정을 회복시키시고 또 그 환난과 고통의 경험을 들어 사용하신다. 부부싸움에서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것을 요즘 와서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부부싸움에서 이기려고 해봤자 나만 힘들고, 또 설사 이겼다고 해도 별다른 의미가 없다. 오히려 "그래, 당신 좋은대로 해보자"라고 양보하면 거기서부터 길이 열린다. 자존심은 무슨 알량한 자존심인가. 부부 사이에 자존심은 하와의 사과와 같은 것이다. 괜히 건드리고 서로 상하게 하면 그로 인해서 모든 일들이 시작된다. 자존심이 상해서 서로 말을 안하게 되고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서로 용서를 하지 못한다. 자존심 때문에 물건을 집어 던지기 시작하는데 결국 집어 던진 물건에 부부가 깨지고 애꿎은 아이들이 얻어맞고 피를 흘리기 일쑤다. 부부 사이에 자존심은 서로 세워 주기만 하면 된다. 부부 간에도 서로 숨겨야 할 프라이버시, 사생활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위험천만한 것이다. 침대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만나는 부부가 서로 모르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시한폭탄을 지붕 위에 얹어놓고 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부부 사이에는 어떠한 비밀도 없어야 한다. 크리스탈과 같이 투명한 부부관계가 되어야 비로소 완전한 한 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신학공부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우선은 학력이 짧아 신학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했고 나는 늘 주의 종이 된다면 평신도 장로로서 교회에서 쓰임을 받기 원한다고 기도를 해왔던 터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주위에서 신학을 권유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가는 소리로 듣고 말았는데몇 번이나 같은 말을 듣고 난 후에는 '글쎄, 내가 신학을 공부해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뉴욕에 있는 신학교를 몇 곳 알아봤는데 그 중 한 곳에서 평신도 성경학교에서 만 3년 동안 필수 학점들을 모두 이수하면 신학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주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3 년! 처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마음으로 평신도 성경학교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성경공부를 시작해보니 정말 말씀을 배운다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 성경을체계적으로 보는 눈도 갖게되었다. 주위에서 사람들이 김태훈 전도사라고 부르면 괜히 우쭐해지는 마음도 들었다. 이제 조금만 더 참고 열심히 공부하면 나도 목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이 들떠 있을 때 마귀는 나의 허점을 치고 들어왔다.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집사님 한 분이 주말에 바람도 좀 쐴 겸 가까운 곳에 있는 카지노를 다녀오려고 하는데 같이 가자고 권유하는 것이었다. 뉴욕에 살면서 그곳을 한 번도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냐며 그냥 관광 삼아서 한 번 다녀오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따라나선 첫 번째 카지노 방문에서 나는 거금 4백 달러를 땄다. 

 

출처: 김동욱 500/김태훈 목사

* 김경애 사모의 간증 *

 

그런데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모든 관심이 아이들에게 집중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두아이 다 태어나면서부터 원인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서 나는 잠시도 아이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성수는 나면서부터 치루병이라는 희귀한 병에 걸렸다. 이 병은 아기의 항문 주위에 지방질이 끼면서 병균이 서식하고 고름이 생겨서 대변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드는.병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데려가서 고름을 짜내고 대변을 받아내야만 아이가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고름을 짜낼 때의 고통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진통제 주사를 맞히고 고름을 짜내도 아기는 울다가 중간에 졸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고통으로 인해 콧등에 진땀이 송송 맺히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무엇보다 두려웠던 것은 병균이 항문을 타고 창자까지 번지면 그때는 정말 위험한 상황이 된다는 의사의 주의였다. 그 당시를 회상할 때마다 나는 아이를 낳고도 산고가 몇 달 동안 계속되었던 것 같은 오랜 진통을 느끼게 된다. 성수는 계속 눕혀 놓으면 항문 주위에 좁쌀만한 빨간 반점들이 온몸으로 번지곤 해서 항상 팔에 안고 있어야만 했다.

아이가 예뻐서 안고 있는 것도 한두 시간이 지나면 힘든데, 아파서 칭얼거리는 아이를 하루 종일 안고 있다 보면 허리가 끊어지는 듯한 통증이 찾아오곤 했다. 병원에서는 아이가 두 살이 될 때까지는 수술도 할 수 없고 그냥 지금과 같이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으면서 아이가 정상적으로 성장해 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병균이 창자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아이에게 독한 항생제를 계속 먹이도록 했다. 아이를 위해 밤이면 이불을 적시며 하나님께 치유를 간구했다.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힘든 나날들이었다. 언제부터인가는 기도할 힘도 없었다. 기도할 힘이 있다면 그것은 아직도 살아 있다는 증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기적은 일어났다. 정확히 성수가 생후 7개월 되던 날, 하나님께서는 성수의 병을 거두어 가셨다. 문둥병에 걸렸던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 7번 몸을 담갔다가 나왔을 때 거짓말처럼 문둥병이 사라져 버린 것처럼 성수의 항문 주위가 어느 날 하루아침에 거짓말처럼 깨끗해졌다.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시던 그날, 나는 아이의 항문 주위를 손가락으로 깨끗이 닦아주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엔가 주변의 불순물들이 빠져나가는 느낌을 생생하게 느꼈다. 그리고 아이는 치유되었 다. 성수를 치료하던 의사는 하루아침에 성수가 깨끗하게 치유된 것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유대인 의사였는데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이냐고 몇 번을 다그쳐 물었고, 나는 그저 예수님께서 치료해 주셨다는 말만을 계속 반복했다. 과학과 의술이 아무리 발전된 21세기라고 해도 인간의 의술이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능력의 손으로 치유해 주신 것이다. 할렐루야! 성수는 그렇게 고통을 겪으면서 컸는데도 불구하고 체중이나 신체 발육은 정상적인 아이들을 능가할 정도로 쑥쑥 자라서 우량아 선발대회에 한 번 나가보라고 할 정도로 건강하게 자랐다. 나는 성수의 질병이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견고케 하시기 위해 허락하셨던 고난이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만일 그 당시에 내가 아이를 위해 기도하지 않고 치료에 집중하지 않았다면 나는 결혼생활에 대한 불평과 실망에 젖어서 오히려 더 어려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환난과 고통은 무엇이든 축복의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이때부터 조금씩 깨닫을 수 있었다. 막내를 임신했을 때는 초음파 검사 결과 아이가 좀 비정상적으로 자라고 있다며 순산을 해도 아이가 기형아가 될 확률이 높다고 했다. 또다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나는 어찌할 줄 몰랐다. 주위에서는 당연히 유산을 시켜야 되지 않겠냐고 했지만 나는 절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그렇게 지울 수 없다고 믿었다. 기도 하며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하나님, 어찌해야 합니까. 왜 이런 시련을 제게 계속 주시는 겁니까. 하나님, 도와 주세요."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동안에도 매일밤 기도 시간을 눈물과 통곡으로 보냈다. 결국 임신 8개월 만에 아이를 조산했다. 어떤 기형 아기가 태어났을까. 모두 긴장하고 아이를 이모저모 검사했는데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모든 것이 정상인 정상아로 출산했던 것이었다. 나는 초음파 진단을 했던 의사가 오진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 아이를 출산할 때도 나로 하여금 그토록 고통 가운데 기도하게 하심으로 당신의 기적을 태중에서 이뤄 주셨던 것이다. 아이들은 내가 환난의 강을 건너가게 만들어 준 힘이었고 결혼 생활이 정말 힘들었을 때 그래도 살아가야 할 의미를 부여해준 소중한 선물이었다. *<간증 끝>*

 

둘째 아이를 출산한 후 우리 부부는 거의 10여 년 동안 잠자리를 함께하지 않았다. 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부부가 어떻게 그처럼 오랜 시간 동안 육적으로, 영적으로 서로를 철저히 외면하면서 살았는지 정말 이해되지 않는 일이지만 우리 부부는 하나님의 은혜로 최근 부부 관계가 다시 회복되기까지 길고 긴 빙하기와 같은 냉랭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았다. 돌이켜 보면 결혼 이후 지난 18년 동안 서로 상대방을 정죄하며 갈등과 철저한 위선 가운데서 살아온 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서도 우리 부부가 이혼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정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욱"하는 마음이 치밀어 올라 이제는 끝내 버리고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비집고 올라오려고 하면 "하나님이 짝지어 준 배필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라는 말씀이 귓가에 쟁쟁하게 울렸다. 거기다 나는 호적상으로 이미 세 번이나 이혼했던 그런 전과자(?)가 아닌가. 무엇이 부족해서 또 한 번 이혼 경력을 늘려 가면서까지 이 가정을 깨겠는가. 이혼은 이제 내 목에 칼이 들어오는 한이 있어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내는 사정이 좀 달랐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 오면 저녁 식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곧바로 기도 골방으로 들어가서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나올 줄 몰랐다. 자신은 골방에서 기도하며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삶의 가장 큰 낙이라고 공공연히 말했다. 그런 아내를 보면서 나는 성질이 나곤 했다.

 

"자기가 무슨 그렇게 대단한 기도의 여인이라고…. 꼭 그렇게까지 기도할 필요가 있는가."

 

하루는 샤워하고 침대에 누워서 아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출처: 김동욱 500/김태훈

 

 

내 안의 옛심장이 연결된 큰 대동맥, 대정맥들을 잘라내어 이제 더 이상 거침없이 뿜어대던 죄악의 굵직한 혈관들은 차단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다 끝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새심장을 이식해야 온전히 사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들을 하나하나 주의깊게 따라가며 초집중하여 심장이식수술을 따라갑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롬 6:8-9)


이제는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의 의미를 조명해 주십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는 것은 반드시 <옛사람의 죽음>을 전제로 합니다. 확실하게 옛 자아가 죽어지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다는 것'이 전혀 무의미하고 도무지 와닿지 않는 일입니다.

자아가 시퍼렇게 살아 돌아다니는 상태에서는... 그리스도로 산다는 건 어불성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었는데 그리스도로 사는 게 잘 안되는 사람이 있다면
 아직 그의 옛사람이 안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확실하게 죽는 방법은 죄 가운데 살아가는 삶의 결말이 '지옥불못'임을 깨닫고 사형선고를 받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사형선고를 받고 
살아야겠다는 영적 대각성이 일어날 때에야 비로소 '죽어야 산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확실히 옛사람이 죽어진 사람은 결코 죄의 미혹에 반응하거나 따라가지
 않습니다. 새삶의 본질되신 성령께서 우리의 영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본질을 완전히 새 것으로 바꾸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두움을 좋아하는 흉측한 애벌레가 빛을 좋아하는 예쁜 나비가 되듯이, 자꾸 어둠속으로 숨어들어가는 옛사람이 죽고 빛되신 주님의 보좌앞으로 자꾸 나아오려고 하는 새 사람이 우리 속에 
창조된 것입니다.

그 새 
사람의 이름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령께서 내 육체를 빌려서 거주하시는 새로운 피조물!!! 이것이 바로 진정한 나의 본질이요 아이덴티티인 것입니다.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롬 6:10-11)

이제는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은 우리는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더이상 옛사람은 내가 아니다! 내 안에 새로이 창조해 주신 새사람이 나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난 이후에도 여전히 옛사람이 나라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사탄마귀가 교묘하게 우리 생각에 침투하여 뿌리고 간 치명적인 가라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삶의 변화가 없고, 여전히 죄가운데 넘어지며 실패하는 이유는, 여전히 십자가에 처형된 옛사람을 '나의 본질'이라고 믿고 살기 때문입니다.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박혀있는 상태이지만 육신이 살아있을 동안에는 목숨이 붙어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상태에서도 입만 살아서 우리에게 거짓으로 속삭이며 새사람으로 살지 못하도록 부추기고 있습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말씀을 날마다 내 육체에 선포하며 나를 미혹하는 옛사람에게 똑똑히 들려주어야 합니다. 그리고는 내 안에 새사람이 되어주신 나의 근원적인 본질이신 성령님을 믿으며,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 (롬 6:12-13)

사탄마귀는 예수님의 성령정부가 들어와 본격적으로 내 삶에 출범하여 통치하시는 기간조차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끈질긴 존재입니다. 내 삶에 합법적으로 출범한 생명의 성령정부와 말씀의 법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불법을 끊임없이 자행하며 치고 들어옵니다.

결국 그들의 목표는 죄가 다시 
내 삶의 왕 노릇하도록 정권을 탈환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입니다. 그것을 이루어 내 영혼을 영원한 지옥으로 끌고가려는 것이 사탄마귀의 필생의 소원입니다.

성경은 죄로 우리의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그리스도의 보혈의 값을 치르고 사신 우리의 몸을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주도권을 내어주지 말라 하십니다. 오직 자기 자신의 본질과 정체성이 하나님께 드려진 성령의 본질임을 인정하며 우리의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촉구하는 것입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롬 6:14-15)

이제 더 이상 죄는 우리의 삶에 힘을 쓸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죄의 영향력과 최종목표가 바뀌어진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죄의 목표는 우리를 영원한 지옥으로 끌고가는 것이었는데, 예수님을 믿은 후에 죄의 목표가 단지 하나님과의 일시적인 교제단절이라는 목표로 수정된 게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여전히 죄가 내 속에 이루고자 하는 유일한 목표는 반드시 내 영혼을 영원한 지옥불못으로 끌고가는 것입니다. 그 목표외에는 다른 목표가 없습니다.

이러한 무시무시한 죄의 정체를 바로 안다면... 결코 적당히 죄와 타협하여 근거없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평안하다 안전하다 안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죄와 손잡고 하나님을 등지고 걸어간다면... 주님과의 교제가 단절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돌이키지 아니하고 끝까지 고집스럽게 죄와 손잡고 나아간다면...
 그 사람의 마지막 결국은 영원한 사망, 즉 지옥불못임에 틀림없습니다. 죄가 얼마나 두렵고 끔직한 존재인지를 바로 알 때 건강한 긴장감을 가지고 끝까지 죄와의 영적 전투에 경각심을 갖고 드려질 수 있는 것입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롬 6:16)

이제 남은 건 <순종>입니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만약 죄에게 순종하여 죄의 종으로 살아간다면 그 마지막은 사망이고, 주님께 순종하여 순종의 종으로 살아간다면 그 마지막은 의로움과 영생인 것입니다.

성경은 확실하게 이야기합니다. 믿는 자들의
 순종이 단지 주님과의 교제 단절 여부의 문제가 아닌, 천국이냐 지옥이냐 영생이냐 사망이냐를 판가름하는 영원한 운명을 좌우하는 문제라는 것을...



출처: 곰팅이의 하늘우체통

▲ⓒ토니 데이비스 공식홈페이지 캡처
토니 데이비스 공식홈페이지 캡처

가스펠 가수 토니 데이비스(Tony Davis)가 5발의 총알을 맞고 사망한 지 30분 만에 다시 살아났다. 데이비스는 사망한 즉시 천국에 입성했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뒤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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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스는 지난 10월 12일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을 마치고 아내를 데리러 가는 길에 갑자기 나타난 한 남성이 그에게 총을 겨눠 변을 당했다. 폭력조직 가입절차 중 하나인 '묻지마 총기난사'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다리와 몸에 각각 1개, 4개의 총이 박힌 데이비스는 "왜 저를 버리셨나요. 내 삶을 전부 주께 드렸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인생이 끝나다니"라고 원망했다. 그러자 문득 하나님이 아니라 사단이 저지른 일이란 것을 깨달았고, 순백의 여인이 불쑥 나타나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질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마침내 숨을 거둔 데이비스는 생전 보지 못한 고운 색감의 크고 아름다운 도시를 보게 됐다고 한다. 그곳에서 평온과 기쁨을 느꼈지만, 얼마 되지 않아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사명을 받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는 것이다.

7시간의 수술을 받은 끝에 사망선고를 받은 데이비스는 영혼이 몸으로 돌아오는 느낌을 받았고, 이내 눈을 뜨게 됐다.

토니 데이비스 공식홈페이지 캡처
토니 데이비스 공식홈페이지 캡처

그러나 데이비스는 총알이 박혀 절단 위기에 놓인 다리를 보고 절망감에 "나는 선한 사람인데,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며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한다면 다리를 낫게 해줄 것"이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는 자신을 공격한 폭력조직원을 용서하기로 했고, 놀랍게도 따뜻한 기운과 함께 다리가 치유되는 경험을 했다.

데이비스에게 나타난 기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번 사고로 인해 더는 노래를 하거나 말을 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은 데이비스는 다음날 목을 감싼 튜브를 제거했다. 그리고 첫 마디로 "예수님"이라고 말한 뒤 "나는 노래할 수 있고, 두 발로 점프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사고로 3번의 기적을 체험한 데이비스는 "하나님이 하나의 사명을 주시고 내 삶을 회복시키셨다"며 "그 사명은 하나님을 향한 영원한 믿음과 용서가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 : 기독일보 http://kr.christianitydaily.com/articles/89973/20161122/5%EB%B0%9C%EC%9D%98-%EC%B4%9D%EC%95%8C%EC%9D%84-%EB%A7%9E%EA%B3%A0-%EC%82%AC%EB%A7%9D%ED%95%9C-%EC%A7%80-30%EB%B6%84-%EB%A7%8C%EC%97%90-%EB%8B%A4%EC%8B%9C-%EC%82%B4%EC%95%84%EB%82%98%EB%8B%A4.htm 

 

* 김경애 사모의 간증 *

 

나는 매사에 조용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편이었다. 기도도 조용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도 조용히 묵상하면서 말씀 읽는 것을 사모했다. 나의 이런 신앙 전통은 올해 96세가 되신 어머니로부터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친정어머니는 기도의 사람이다. 어머니는 무슨 일이 있으면 늘 하나님께 기도를 먼저 올렸고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머리맡에 두시고 말씀대로 사시길 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어머니에게 많은 복을 내려 주셔서 지금까지 네 번이나 죽음의 고비에서 기적적으로 다시 살려 주셨고, 이제 100세를 코앞에 두고 있는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새벽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일정시간 동안 기도하고 말씀 읽는 생활을 매일 반복하고 계신다. 어머니는 9남매 중 막내딸인 나를 위해 특별히 더 많은 기도를 해 주셨다. 오늘날까지 내가 건강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친정어머니의 눈물어린 중보기도의 힘이라고 나는 늘 믿고 있고, 감사드리고 있다.

 

그런데 남편의 신앙생활 모습은 좀 유별난 데가 많았다. 기도할 때 고함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통성기도를 하는 것도 그렇고, 특히 매일 아침 라스베이거스식 성경 읽기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었다. 아니, 어떻게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슬롯 머신 당기듯이 요행수에 맡겨 그날 열어 주신 페이지의 말씀을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또한 매일 새벽마다 5시만 되면 일어나서 화장실 변기통을 붙잡고 기도하는 괴팍스런 기도 습관에 놀라기도 했다. 하루는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농담처럼 하는 이야기 를 들었다.

 

"태훈아, 네가 믿는 하나님은 뭐 꼭 그렇게 시끄럽게 큰 소리로 기도해야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시냐. 그리고 그 꼭두새벽에 왜 변기통을 부여잡고 기도하냐. 하나님도 냄새는 싫어하실 텐데…"

 

남편은 늘 불 같은 신앙생활이 올바른 신앙생활이라고 믿었다. 물론 뜨겁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부분인데, 문제는 뜨거운 신앙생활이 한결같이 계속되어야 그 가치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불같이 뜨거웠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모습이 있는가 하면, 특별한 장소, 상황에서는 뜨거웠다가 평상시에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면 그것은 그냥 인위적으로 뜨거운 척하면서 신앙생활의 덧칠을 입힌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의 신앙생활 모습 가운데 그런 불규칙한 부분을 보게 되면서 서서히 판단의 눈이 붙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사람의 아들 성민이를 정말 내 자식으로 여기고 그렇게 잘해주고 싶었다. 열심히 성민이를 위해 기도하면서 그 아이의 영혼이 상처 받지 않고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옆에서 최선을 다해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발견하게 됐다. 남편이 내가 성민이에게 그렇게 다가가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것이었다. 남편은 항상 성민이는 자신이 알아서 잘할 테니 그냥 집안일이나 잘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나는 그런 태도를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성민이에게는 관심을 주고 보살펴줘야 될 엄마가 필요하고, 나는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성민이에게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데 남편은 무슨 이유인지 나의 접근을 의도적으로 막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히 성민이와 가까워지기는 점점 힘들어져 갔다. 하루는 직장 일을 마치고 지하철역을 나오는데 마침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우산을 들고 마중나온 성민이가 보였다. 얼마나 기쁘고 좋았던지 나는 날아가듯 성민이에게 달려가 단숨에 그 아이를 끌어안고 얼굴에 뽀뽀를 해댔다. 그런데 마지못해 내 품안에 안겨 있던 성민이는 가까스로 나를 뿌리치고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벽에 기대어 서 있 는 것이었다. 나는 좀 서먹해졌다.

 

"성민아, 이제 집에 가자."

 

"아니에요, 나는 아빠를 기다릴 테니 먼저 들어가세요."

 

성민이는 아빠에게 우산을 주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나는 뒤통수를 아주 심하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날 비를 맞고 돌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알게 되었지만, 당시 남편은 두 번 째 결혼했던 여자가 성민이를 상습적으로 구타했던 기억이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성민이를 맡기지 못했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이와 나 사이에 사랑의 다리를 만들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남편에 대한 원망과 아쉬움은 쉽게 지울 수 없는 또 다른 상처가 되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감사한 일은 성민이가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든지간에 이제는 어느덧 결혼해서 화목한 가정을 이 루고 너무도 아름답게 잘 살고 있다는 사실에서 큰 위안을 받는다.

 

결혼 초기의 삶은 지옥과 같은 나날이었다. 결혼하기 전에 나를 적극적으로 말렸던 사람들의 말을 왜 듣지 않았을까 후회가 막심했다. 남편은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 특히 신앙의 색깔에서 현격하게 차이가 있었다. 그가 말하는 자신의 신앙은 성령의 뜨거움이었지만 내가 보는 그의 신앙은 위선과 자기 기만이었다. 열심히 전도하는 것도 자신의 의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였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 뜨거운 신앙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바리새인과 같은 신앙적 위선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교회 안에서는 사뿐사뿐하게 대화하던 그가 집에 돌아오면 심지어 자신의 친어머니에게까지 화를 내며 소리지르는 모습을 보며 나는 완전히 위선자에게 시집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유일한 위로와 기쁨의 시간은 골방기도 시간뿐이었다. 나는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리고 아침에 시간이 될 때마다 아파트 한 쪽 구석 옷장인 골방에 들어가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그 시간 동안만은 내 주위의 모든 환경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나 사이에 일대일 대화의 시간이었다. 밤에 골방기도에 들어가면 나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른 채 기도에 깊이 빠지곤 했다. 그런데 남편은 골방 문을 열어 젖히고 침대에서 벌써 한 시간 동안 기다리고 있는데 무슨 기도를 그렇게 오랫동안 하냐며 마치 불신자 남편과 같은 험악한 인상으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도 했다. 그런 남편과 잠자리를 함께 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결혼 초기,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아직 신혼 재미에 빠져 있어야 했을 그 시기에 나는 깊은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에게 아들 둘을 선물로 주셨다. 결혼 초기에 아이들도 없었다면 나는 분명히 무슨 일을 저질렀을 것이다. 

출처: 김동욱 500/김태훈

성경의 한 부분처럼 기적적인 일이 발생했다. 중동에서 은밀하게 예배를 드리고 있던 한 목사가 사자들에 의해 이슬람 테러리스트로부터 구출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WND(World Net Daily)가 보도했다.



WND에 의하면, 중동지역에서 성경배포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기독교단체인 Bibles for Mideast 대표인 폴 시니라지 목사는 예배를 드리던 중 세 마리의 사자들에 의해 이슬람 과격파들로부터 구출되었다고 자신의 목회 사이트에서 밝혔다.


폴 목사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내생명을 구했다”며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찬송한다”고 말했다.


폴 목사는 이 기적적인 이야기는 3주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했다. 3주전 그가 몇 성도들의 침례를 막 마치려고 했을 때 이슬람 과격파들이 도착하여 그들에게 돌을 던졌다. 폴 목사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다시 전문병원으로 후송됐다.


앞서 폴 목사에게 돌을 던져 중상을 입혔던 이슬람 과격파들은 폴 목사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강제로 병원을 떠나게 했다. 폴 목사는 무슬림에서 크리스천으로 개종한 수풀 근처에 살고 있는 동료목사 아이윱의 집에 은밀히 이송되었다.


폴 목사는 그 집에서 동료목사의 아이들, 노모와 함께 머물고 있었다. 성도들도 은밀히 폴 목사를 방문했으며 그들은 함께 기도회를 가졌다.


약 3주 후 부활절 주일에 폴의 동료 목사 아이윱이 성도들과 예배를 드리고 있을 때 갑자기 이슬람 과격파들이 무기와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들이닥쳤다. 폴 목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폴 목사는 중상에서 충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었다. 예배를 드리던 모든 성도들이 희망을 잃고 그날이 생애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했었다고 폴 목사는 말했다.


바로 그때 한 마리의 사자가 숲속에서 나타나 이슬람 과격파 한 명을 공격했다. 다른 이슬람 과격파들이 사자를 공격하려고 했을 때 두 마리의 사자가 더 나타나 공격했다.


사자의 갑작스런 공격에 너무 놀란 이슬람 과격파들은 달아나 버렸다. 하지만 사자들은 폴 목사와 신자들을 그대로 남겨둔 채 떠났다. 폴 목사는 “더욱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그 숲속에 사자들이 살고 있다는 기록은 없다” 고 말했다.


이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사자들이 천사들이었고 하나님이 보낸 것이라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린다고 말했다.


원문기사 https://goo.gl/Rxu9QQ

기사번역 : 뉴스앤넷


가져온 곳: 갓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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