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7장) 아들을 죽이고서 아버지 집에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우리가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그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그들은 동생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맏형 르우벤이 죽이지는 말자 하여 그들은 요셉의 채색옷을 벗기고 구덩이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리고서는 앉아 음식을 먹었습니다. 구덩이에 던져진 요셉은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요? 아버지의 집을 떠나 형들을 찾아 세겜으로, 다시 도단으로 그 먼 길을 오면서 제대로 먹기나 했을까요?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 한 떼 이스마엘 족속이 길르앗으로부터 약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유다가 형제들에게 동생을 죽이지 말고 이스마엘 족속에게 팔자고 제안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은 이십 개를 받고 동생을 노예로 팔아넘깁니다. 이스마엘 족속은 요셉을 애굽으로 데리고 가서 노예로 넘깁니다.

  르우벤은 동생을 죽이는 악한 죄인들에게 남아있는 한 가닥 양심인지도 모릅니다. 그 양심이 돌아와 보니 큰일 났습니다. “아이가 없도다, 나는, 나는 어디로 갈꼬.” ‘나는, 나는’ 두 번이나 ‘나는’을 반복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 없는데 어떻게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양심이 있다면 대답해 보십시오. 아버지께 범죄한 자가 어찌 아버지에게 낯을 들고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범죄한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가 어떻게 하나님 계신 천국으로 갈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아버지를 속이기로 합니다. 양심을 속이기로 합니다. 요셉의 옷을 취하고 수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십니다. 그리고 그걸 아버지에게 가지고 갑니다. 죄 없는 수염소가 애꿎게 희생을 당하고 피 흘려 죽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아들의 옷인가 아닌가 보소서.” 찢어지고 피투성이가 된 아들의 옷을 보고 아버지는 통곡을 합니다.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먹었도다. 요셉이 정녕 찢겼도다.”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합니다.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나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고 애곡합니다.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내 아들에게로 가리라.” 지금 세상이라면 DNA 검사해보면 금방 탄로날 일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야곱은 까맣게 속았습니다. 그렇게 피 묻은 옷으로 아버지를 속이고 죄를 지은 아들들은 아버지의 집으로 뻔뻔스럽게 들어갔습니다.

  우리도 아들의 피를 들고, 피 묻은 아들의 옷을 가지고 돌아갈 것입니다. 그 아들을 죽이고서 영원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야곱은 모르고 속았으나 하나님은 아시고 속아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속아주시려고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죄를 인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아들의 피를 들고, 그의 의의 옷을 입고, 담대하게, '잘 했다,' 칭찬까지 받으며, 면류관까지 쓰고 영원히 아버지 집에 들어갈 것입니다.  

  (히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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